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 2021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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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12년에 공연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네」는 메난드로스가 대표작가인 그리스 신희극 등장과 관련하여 각별한 의미가 되는 작품이다. 또한 정통 그리스 비극이라는 장르가 해체 혹은 진화되는 이정표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비극이 끝나는 즈음에 그리스 비극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성을 되새기게 한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 부록(2권) 옮긴이 해설, 「헬레네」 소개 말미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발견한다. 과연 ”「헬레네」를 비극으로 볼 수 있을까?“ 현대적 비극 개념에서 본다면(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전학자들이 정립한 그리스비극이란 이런 것이란 개념인지, 현대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비극’이란 뜻인지)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에우리피데스)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당연히 비극이었다.“는 것(2권, 677면). 1)여전히 신화와 영웅 전설이 소재다. 2)디오뉘소스제에서 공연된 드라마다. 3)“(그들에게는) 불행한 결말보다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관련된 비극적 상황”이 있다. 이상 비극의 필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

”「헬레네」를 비극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과연 ‘(그리스)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그리스)비극’ 장르가 지닌(갖춰야만 하는) 일반적인 특성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특히 2)는 그 시절, 그 (비극)무대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비극이란 논거다. 대학 시절 호기심에 선택한 미학 강의(그들에겐 전공필수)에서 관심 있게 들었던 ‘예술제도론’(‘제도미술론’으로 기억)을 떠올린다.

‘어떤 사람을 미술가로 정의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미술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미학자인 조지 디키는 어떤 대상이 ‘예술’로 불리면, 그것은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유명한 예술제도론이다. 대표적인 예는 이렇다. 상업 공간(매장)에 전시·판매 중인 공산품 양변기를 갤러리로 옮겨 전시했다. 이 때 그 상품은 예술공간에 전시되었으므로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처럼 (그래도)「헬레네」는 (아직) 그리스 비극이라는 얘기다. 「헬레네」는 정통 그리스 비극 장르의 정체성을 흔든 문제작, 그리고 그 ‘경계’에 위치한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연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비극(예술제도론?) 

「헬레네」는 비극으로 볼 수 없다!! 비극적 상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인간과 신들의 의미심장한 만남이 없다. 2)주어진 운명에 맞서는 처절한 자기주장도 없다. 3)(비극 구성의 필수인 ‘필연’은 사라지고) ‘우연(偶然)’이 새로운 힘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등장한 ‘우연’은 이후 아테나이 신희극(메난드로스가 대표작가)의 지배적 원리가 된다는 것. 다만 근거3) 관련 에우리피데스에게 우연은 ‘우연의 유희’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인간적 가치를 함유하고 있으며, “슬기로써 대처해 나가는 인간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 에우리피데스의 후기 비극 세계가 그리스 신(新)희극의 소시민적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것을 위해 길을 닦아 놓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 

아테네 신(新)희극의 길을 연 에우리피데스 

아테나이 구(舊)희극(아리스토파네스는 대표작가)이 절찬리 상연되던 시기에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들도 공연되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희극에 당대 인물인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에우리피데스를 등장시켜, 조롱하고 비판한다. 그의 비극이 내용과 기법에서, ‘전통’을 벗어나는 것이 못마땅하였으리라. 무엇보다 두 작가는 ‘연설술(수사학)’을 무기로 등장하여 시대정신이 되는(특히 철학계를 뒤흔든) 소피스트들에 대한 수용 태도에서도 대립한다. 당대의 ‘뉴웨이브’에 대한 에우리피데스의 진보적인 수용(작용)과 아리스토파네스의 보수적인 반발(반작용)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현대의 드라마는 내용(소재)와 스타일에서 여러 장르로 분화되어 있지만(장르소설, 장르드라마도 있다) 일반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하게 하는 개연성 있는 주인공의 등장,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흥미를 유발하는 에피소드가 흥행에 필수요소인 것. 에우리피데스가 「헬레네」에서 사용한 우연이 ‘진지 모드’였다면 메난드로스의 신희극에서 우연은 유희(遊戲)를 위한 소스(도구, 에피소드, 구성 요소)였다. 그렇게 현대 드라마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희극에만 국한되지 않는) 세련미를 갖춘 드라마 장르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헬레네」에서 진지한 ‘우연’, 신희극에선 유희 

「엘렉트라」(1권 마지막에 수록)에서 에우리피데스는 당대의 비극 소재(신화와 영웅전설)를 새롭게 해석하여 파란을 자초한다.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하고 친딸 엘렉트라와 친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되는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보다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녀는 헬레네와 자매이다(아가멤논과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형제이다). 이어 공연된 「헬레네」(2권 첫 작품)에서 이런 경향은 가속된다. 자의건 타의건 트로이아로 간 헬레네는 환영일 뿐이라는 것. 헬레네가 스파르테를 떠난 것은 분명하나 실제 헬레네는 그 기간(대략 17년)에 이집트에 머물렀으며, 그의 배경도 이집트(아이귑토스)이다. 이 비극 작가는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독자들이) 그렇다고 여기는 ‘사실’을 과감하게 흔든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은 아닌가, 영웅 신화와 전설, 그에 기반한 서사시의 서사, 그 ‘정설’을 거침없이 뒤틀었다. 가능한 변화이지만 당대의 통념과의 정면승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교나 운율 등에 깃든 그리스 비극의 ‘진화’(?)를, 혹은 생성과 소멸, 계승을 (원전 번역의 탁월함에도) 비전공자로서는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그리스 신화와 문학(서사시와 비극)에서, 트로이전쟁이 실제 역사인가 논란마저 진행 중임에도, 민감한 인물이고 예민한 소재이며 영원히 아름다움인 ‘헬레네’의 여러 모습을 따라가며 읽는다. 필자에게 「헬레네」는 이런 독서 탐사, 독특한 경험의 출발점이자 분기점이다.  

그리스 비극의 창조적인 파괴자, 에우리피데스 그리고..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를, 아이스퀼로스는 (비극의)‘창시자’, 소포클레스는 (비극의)‘완성자’자로 부르는 데에 이견은 없다. 그런데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면 늘 애매하다. 필자는 ‘그리스 비극의 파괴자’라는 수식을 그에게 선사하고 싶다. ‘창조적인’ 파괴자. 그리고 여기에 ‘현대 드라마의 창시자’라는 각주를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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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2-1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이는 말) 개정판에 올리는 첫리뷰라는 것을 확인하고 몇 가지 기본 정보를 덧붙인디.『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에는 에우리피데스의 현존하는 작품 19편이 수록되어 있다. 1권 세 번째 수록된 「알케스티스」가 공연연대로는 첫 작품. 그런데 (비극 경연에 출품한) 비극3부작은 아니고 사튀로스 극를 대치한 말하자면 ‘소품‘. 이 작품을 1권 세 번째에 수록한 것을 예외로 하고, 나머지 18편이 1권과 2권에 공연연대 순으로 실려 있다. 1권 마지막 작품이 「엘렉트라」, 2권(9편 수록) 첫 작품이 「헬레네」다. 이들 비극 작품들은 여느 비극들처럼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재해석한 작품군, 그리스 신화(전설)를 차용하고 재해석한 작품군,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난데없이 「헬레네」이야기를 한 것 같아, 설명을 덧붙인다.

새우 2022-02-19 11:24   좋아요 1 | URL
한번 읽는데도 오래 걸리고, 관해서 리뷰쓰기도 벅차고 그렇지요. 배려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