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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타키투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3월
평점 :
“타키투스가 살던 시대는 많이 알려졌지만, 막상 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역사가는 라틴어로 “말이 없다(tacitus)란 뜻의 이름에 걸맞게, 자신에 대한 말을 극도로 아꼈다.” _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그는 하버드대학교 고전학 교수로, 『가장 위험한 책』 에서 타키투스를 정식으로 소개하는데, 그 첫대목이다. '가장 위험한 책'이란, 기원후 98년에 집필된 『게르마니아』로, 부제는 '로마제국부터 나치 독일까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다. ‘제목도 서문도 없이 갑작스럽고 아이러니한 결말만 있는 30페이지(양피지)도 안 되는 소책자’에서 작가는 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방대작 분량의 저작에서도 작가는 자기 노출를 삼간다. 해서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 꼭지들의 글머리를 쓰듯 크레브스도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 드라마 <바바리안>을 타키투스 활동 당시 지도와 함께 소개했다. 타키투스가 왜 자기 얘기를 극도로 삼갔을까, 하는 물음에서 글을 이어간다. 디테일한 보고서라기보다는, 로마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 게르만족에 대한 소논문 『게르마니아』를 왜 썼는지, 집필 동기를 엿보기 위해서다. 분량이 짧더라고 꼭 언급했어야 할 굵직한 사건이 있는데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일까?
굵직한 사건이란 제국 로마가 게르마니아 완전정복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기원후 9년의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다. 드라마 <바바리안>은 이 전투를 재조명한다. 게르마니아 후손들이 그들의 언어(독일어)로 독일 민족 영웅 아르미니우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은 역사드라마다. 집필 이후의 역사 곳곳에서 그랬듯 『게르마니아』는 이 드라마의 캐릭터, 세트(배경) 및 의상(분장) 등을 재현하는데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타키투스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스치는 정도로 (로마사의 일부로만) 언급할 뿐이다.
그런데 독문학자로, 독일 유학 시절 오늘날 희랍어와 라틴어 원전번역에서 독보적인 성을 쌓게 되는( 이 책을 최초로 원전번역한) 천병희 선생은, 주석과 옮긴이 서문 등에서 타키투스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분량이 짧은 책이기도 하지만 옮긴이 주석이 중요한 이유는, 앞서 소개한 한 권의 두툼한 책이 책을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총60장 중 27장(장례)까지, 게르마니족의 기원과 거주지(1~5장), 각종 제도(6~15장), 사생활(16~27장)까지는 흥미롭게 읽힌다(1부). 2부라고 할 수 있는, 28~46장까지, 게르마니아로 부를 수 있는 부족들을 소개하는데,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읽어야 하지, 한숨부터 나온다. 그런데, 6부작 <바바리안>을 보고 나니 이 뒷부분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르마니우스(아리)는 자신의 양부(養父)가 이끄는 로마군 17,18,19군단을 격파하기 위해 맨 처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케루스키족의 족장이 된다. 그리고 투스넬다와 결혼하는데 정치적인 선택이다. 투스넬다(드라마의 설정으로 본다)는 경쟁 관계의 부족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며, 아리와의 결혼도 그 연장선에 있다. 결정적인 순간, 동맹이 무너지려 하자 핏빛 희생을 하며 예언을 동원하는 등 위험을 무릅쓴다.
드라마 <바바리안>에 언급되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 적극 참여한 주요 부족들은 다음과 같다.
캇티족(83~86면), 부룩테리족(88~89면), 카우키족(92~93면), 케루스키족(94~95면), 킴브리족(96~99면).
마르시족도 등장하지만, 별도(장)로 다루고 않는다.(2장 2절, 라인강의 지류인 루어 강과 리페 강 사이에 살던 게르만족, 주석, 지도 참고). 괄호 안은 『게르마니아』에서 소개되는 부족들의 해당 지면이다. 그런데 전투는 기원후 9년에 진행되었고, 타키투스는 98년경에 집필하였다. 소개한 지도상의 해당 부족들의 위치나 점유지가 드라마 속(실제 역사)의 그것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해당 부족들은 언급한 대목들을 살펴보자. 그 부족들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을 발췌했다.
*캇티족(30-31장):두 장을 할애한다. “게르마니족치고는 판단력과 수완이 뛰어나 지도자들을 선출해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는가 하면”(83면),“행운은 믿을 것이 못 되고, 믿을 것은 자신들의 용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83) ‘다른 게르마니족은 전투하러 갈지 몰라도, 갓티족은 전쟁하러 간다.“(84), ”청년이 되자마자 모발과 수염을 길게 기르며, 용기에 바친다고 서약한 이런 옷을 적을 죽일 때까지 얼굴에서 벗지 않는다.“(85)
*부룩테리족(33장):동쪽의 토이토부르크 숲 쪽에서 라인강으로 흘러드는 리페 강 계곡에 살았다. 기원후 9년 바루스가 지휘하던 로마군이 전멸하다시피 했을 때 아르미니우스에게 협력했으며, 기원후 70년 바타이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연루되었다.(88면, 절멸된 부족, 옮긴이 주석으로 대체).
*카우키족(35장):게르마니아는 북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데(유틀란트 반도), 그 초입에 산다. 한쪽 끝이 캇티족 나라에까지 뻗어있다. 그토록 광대한 지역을 이들은 단순히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 채우고 있다(인구가 많다). 탐욕과 권력욕을 멀리하고 저들끼리 조용히 사는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이웃 부족들의 재물을 강탈하지도 않는다(그러나 필요할 때는 적극 참전한다).(92~93)
*케루스티족(36장): 카우키족과 캇티족과 이웃이다. ”오랜 동안 지나친 평화를 누린 탓에 나약해졌다.“(94, 사실은 내분으로 약해져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옮긴이 주석에 따르면, 타키투스는 여기서 이 부족이 주축이 되어 기원후 9년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족장 아르미니우스의 지휘 아래 로마군에 크게 승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기원후 90년경 캇티족에게 제압되어 왕이 추출되고 영토의 일부를 내준, 독립은 유지했지만 명망은 크게 줄어든, 케루스족의 근 황만을 (조롱하듯) 언급한다. 역사적인 전투를 이끈 지휘자가 이들 부족의 족장이었음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르마니우스는 족장인 아버지가 로마와 공물을 부치는 조건으로 휴전하면서 보내야 했던 두 아들(인질) 중 하나다. 뒷통수를 맞은 로마 입장에서는 껄끄로운 존재이다.
*킴브리족(Cimbri): 다른 부족보다 소개가 길다.(드라마에서는 시캄브리(Sicambri)족) 명성이 자자하던 부족은 지금은 작은 부족이란다. 기원전 113년 유틀란트반도에서 일어난 이 부족(민족)은, 끊임없이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치명상을 입혔다. 타키투스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슬쩍, ”아우구스투스 황제1)에게서도 바루스2)와 함께 그가 이끌던 3개 군단을 빼앗아갔다.“(98)라고, 로마군 2만여 명이 전사한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언급한다. 타키투스가 이 전투를 언급한 유일한 대목이다.
*1)아우구스투스 황제. 로마 초대황제, 재위 기원전 27년~기원후 14년.
*2)바루스(Varus). 아그립파의 사위로 기원전 13년 집정관을 지냄. 그가 이끌던 제17·18·19군단은 기원후 9년 현지인 출신 외인부대 지휘관이었던 케루스키족 아리미니우스의 함정에 빠져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전멸하고 바루스는 자살한다. 최근의 발굴 결과 전투가 벌어진 곳은 오스나브뤼크 시 근처의 늪지대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전투로 로마군은 라인 강과 엘베강 사이의 점령지를 포기하고 라인 강 서쪽으로 물러났다.
타키투스는 왜 킴브리족을 소개에(케루스티족과는 달리), 그들로부터 입은 로마의 손실을 가감없이 언급하는가? 기원후 39년 가이우스 카이사르(칼리큘라, 일명 ’작은 장화‘)가 이들을 크게 위협했다. 하지만 실제 싸우지도 않고 전투에서 이긴 것처럼 켈트족을 게르만족 포로처럼 끌면서 개선식을 했다. 로마사의 해프닝(笑劇)이었다. 기원전 83년에도 도미티아누스(재위 81~96년) 황제도 캇티족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승리했다고 개선식을 올렸다. 로마 입장에서는 치욕, 제국 역사에 울린 경종이었다. (『게르마니아』 )집필 시점에 가까운 역사라서 언급한 것일까? 로마와의 국경에 있는 캇티족은 당시 케루스티족을 사실상 지배하는 등 건재한 시력이었다. 또한 (당시는) 북쪽 변방에 있지만 킴브리족은 그들을 늘 위협하는 상수(常數)로 여겼음을 읽을 수 있다.
타키투스가 어떤 의도에서 이런 논문을 썼는지, 의도는 확실하지 않다. 집필 당시 새 황제 트라이아누스는 라인 강 국경 근처에 머물렀다(제위 기간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내는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리면..). 그에게 로마에 가장 위협적인 야만족은 게르만족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논문을 썼으리라. 설득력이 있다. 도미티아누스는 로마 플라비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 로마를 공포 정국으로 몰고 갔다. 96년 그가 암살당하자 로마 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타키투스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 언론의 자유를 되찾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하필 ”게르만 민족의 기원과 관습"을 쓴 이유는? ”게다가 그 근처에 가 보지도 못했을“(가장 위험한 책) 타키투스가 말이다. 『일리아스』 2권의 ’함선 목록‘처럼 『게르마니아』 2부의 부족들 소개도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만, 거듭 읽는 동안, 관련 드라마나 영화를 함께 보는 동안 숨은그림찾기처럼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아래는 현대 독일과 그 주변 지도. 위의 지도(스캔)는 아래 지도와 유사하게 트리밍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