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번역 일리아스 / 오뒷세이아 세트 - 전2권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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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내가 오랜만에 내 서재 문을 두드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고전 번역가 천병희 선생께서 별세하셨다는 부고를 접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에 평생 바친 천병희 교수 별세_플라톤 전집 등 주요 원전 40여 종 우리말로 옮겨(한겨레 고명섭 논설위원)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에 평생 바친 천병희 교수 별세 : 학술 : 문화 : 뉴스 : 한겨레 (hani.co.kr)

향년 84세. 『일리아스』-『오딧세이아』 세트에서부터 플라톤의 대화편 전편 완역까지, 선생은 대한민국 독자들이 서양 고전들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일평생 원전 번역의 신세계를 펼치셨다.[2019년 플라톤전집 7권을 완역했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정치학』·『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이 고인의 손을 거쳐 완역됐다,] 

『일리아스』부터 읽느냐, 『오딧세이아』부터 읽느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처럼 선택은 독자들 몫이지만, 이 두 권의 책이 서양 고전 읽기의 출발점이라는 데에 이의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양(인문학)교육을 대학 전체의 커리큘럼에 적용한 시카고대학의 일명 ‘그레이트 북스’ 시리즈(시카고대학 선정)의 서양 고전 읽기의 1번이 『일리아스』이고 2번이  『오딧세이아』이다. 이처럼 두 권의 책은 (서양) 고전 읽기, 인문학 공부에서 ABC에 해당한다.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는 시카고대학 그레이트 북스 리스트에 상당 부분(앞부분)을 천병희 선생 덕분에 원전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독자들에게는 내일모레로 다가온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국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당시에 20여 권, 정년 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주석하면서 집중적으로 번역하신 고전들이 40여 권, 부고 기사에 따르면, 그리고 돌이켜보면 선생의 꾸준한 번역 작업은 인생을 마무리하는 숨 갚은 여정이었던 것 같다. 

천병희의 원전번역이 우리 출판계는 물론이고 우리 현대사에 어떤 의미인지, 내게 천병희 선생이 평생 가꾸신 고전의 숲의 길을 안내한 친구가, 했던 말로 추모의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에 그런 대목이 나와. 지주였던 최참판댁 땅이 얼마나 많았는지, 소설의 공간인 평사리 근동의 주민들은 그 집 땅을 밟지 않고서는 어디를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는……. 이처럼 우리나라 독자들은 천병희 선생이 원전번역한 서양 고전들을 읽지 않고서는 서양 고전에 접근할 수가 없다는…….” 

나는 천병희 선생의 번역서 읽기의 칠부 능선에 겨우 올랐지만, 책을 펼칠 때마다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만석지기 최참판댁의 드넓은 땅들 못잖은 면적의 (서양) 고전의 숲을 평생 일구신 분이 천병희 선생이다. “정년퇴직 이후 20년 동안 하루에 6시간씩 꼬박 고전 번역에 몰두해 하루 60여 행의 적은 소출로도 40여 종의 고전을 번역”(숲 출판사 보도자료)하신 분. 

대학 교수나 강사들, 학자들의 연구 실적으로 번역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문화, 원전 번역은 기간산업, 말하자면 산업화 시대를 이끈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라고 번역의 중요성을 목청껏 외침에도 대통령 공약집에나 실리고 묻히는 ‘특이한’ 나라, “번역청을 설립하시라!”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향년 84세로 생을 마감하신 고전번역가 천병희 선생을 추모하는 내 나름의 글을 쓰면서, 선생이 일생을 통해 남기신 유언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2022년 12월 21일 22시 49분에 작고하신 천병희 선생님의 명복을 소원합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022년 12월 24일,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진행될 예정이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서양) 고전의 숲을 맘껏 걸었습니다. 그리고 걷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서양) 고전의 숲을 맘껏 걸었습니다. 걷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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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12-22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천병희선생님께서 별세하셨군요 ㅠㅠ
고전이라는 단어에 우뚝 서 계신 분이신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Meta4 2022-12-23 02:05   좋아요 1 | URL
결혼식장에는 안 가도 장례식장에는 꼭 가는데.. 사랑은 하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많이 아프네요. 감사

scott 2022-12-23 0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그리스어 희랍어 원전 번역에 한 획을 그으셨던 분
앞으로 이런 분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Meta4 2022-12-23 02:11   좋아요 0 | URL
감사, 앞으로 이런 분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timeroad 2022-12-25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고 기사를 읽었는데, 오늘에야 모처럼 알라딘에 글 하나를 올릴 시간을 내었네요. 감사~

Meta4 2022-12-27 18:25   좋아요 0 | URL
어제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