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만이 아니라도 가끔씩 짧은 우화를 모티브로 정기적인 글을 써보려하는데 쉽지 않다. 오늘은 이솝우화 중 한 편을 골라 필사하는 심정으로 입력해보았다. <217. 늑대와 양들>이다. 258편의 이솝우화 전편을 번역한 것 중 217번째 글이다.
"늑대들이 양 떼를 습격하려 했다. 그러나 개들이 지키고 있어 양들을 수중에 넣을 수 없자 늑대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꾀를 쓰기로 했다. 늑대들은 양들에게 사절단을 보내 개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늑대들의 말인즉, 개들이 그들 사이의 적대관계의 원인이니만큼 개들만 넘겨주고 나면 그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것이었다. 양들이 앞일을 내다보지 못하고 개들을 넘겨주자 늑대들은 힘들이지 않고 양들을 차지하게 되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양 떼를 마구 도륙했다." -<217. 늑대와 양들>,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정본 이솝우화>>(천병희 옮김)
일단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안정적인 삼각 구도가 깨진 것이다. 개와 늑대, 개와 양, 양과 늑대는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힘겹지만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늑대들과 양들의 협정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것은 개들, 그 다음이 양들이지만 결국 늑대들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개들에 이어 양들까지 잡아먹은 것은 졸은데, 무슨 냉장고나 냉동고가 있어, 그 많은 양의 먹을거리를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당수는 썩어 부패할 것이며, 곧이어 궁핍의 시간들이 찾아올 것이니까. 앞서 <216. 늑대들과 개들이 서로 화해하다>에는 늑대들과 개들이 협약을 하지만, 결국 개들부터 죽이고 양들을 잡아먹는다는 늑대들의 성공스토리가 담겨 있지만, 거시적으로 늑대들도 굶어죽지 않았을까 싶다.
이 우화에 대한 교훈이 "이와 같이 나라도 민중의 지도자들을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내주면, 나라 자체가 머지않아 적의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이다."이지만 '견제와 균형'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양들에게 개들의 존재는 굳이 사자성어를 찾자면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다소 억지 같지만 늑대들에게도 개들의 존재는 순망치한이라 할 수 있다. 두 세력 사이의 경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록 굶는 날이 좀 있더라도 기회를 엿보면서 개들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틈새를 노려, 양들을 포획하는 지속가능한 사냥이 가능했으니까.
중국 춘추 전국시대 말, 진나라 헌공은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여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먼저 괵(虢)나라를 치고 우나라를 칠 계획이었다. 그런데 괵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우나라가 있어, 헌공은 우나라에 신하를 보내 길을 통과 시켜줄 것을 청했다. 그때 우나라의 궁지기가 진언을 했다. “전하, 절대로 진나라에 길을 내어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 "괵 나라는 우 나라에 울타리와도 같다. 만약 괵 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면 우리 우 나라도 망하게 된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어 진나라는 괵 나라를 치고, 여세를 몰아 우 나라까지 정벌하게 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유래다.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상태는 좀 다르지만 소비에트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군사력 2위의 러시아와 EU(유럽연합) 사이에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지내다가 마침내 폭발한 경우이기에 그렇다. 아직 종전선언도 못한 한반도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살아간다. 한 나라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순망치한'처럼 정권를 잡은 주체가 누구냐를 떠나서, 여와 야를 떠나서 흔들리면 "다 죽는" 절대적인 영역이 있다. 안보와 외교가 그렇다. 또한 경제도 상보적으로 이들 분야와 뗄 수 없이 맞물려 있다.
기왕 인체와 관련 비유를 들었으니 하나만 덧붙이자.
"인체 가운데 자연이 혀만큼 안전하게 울타리로 둘러친 부위는 없다. 자연은 혀를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이를 배치했으니 말이다."(플루타르코스 <수다에 관하여> 3장)
입술 다음이 치아인데 그 치아가 혀를 보호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수다를 떠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씀이지만, 그것이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든 말든, '고삐 풀린' 말을 두고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만 그랬던가, '순망치한'이 그렇고 그런 옛 경구가 아닌 상태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왼쪽 단행본은 현재 절판되고, <그리스 로마 에세이>에 플루타르코스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음. 주석이 오른쪽 페이지 아래에 잘 정리되어 있어, 편리함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