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나는 종이다. 사람 없는 오래된 절에 있는, 미리 스위치를 눌러두기만 하면 시간과 횟수 정확하게 지켜 울리는 전자동 종이다. 오늘 나는 평소와 달리 자정이 조금 못 되어 제야를 알리기 위한 중후하고 엄숙한 소리를 마호로 마을로 보낸다.” _12월 31일 토요일, <나는 종(鐘)이다>에서, "나는 기계다."
소설 『천일의 유리』(전2권)는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난데없는 에피소드를 만나, 따분할 때마다 펼치는 책이다. 이게 소설이 맞나, 여느 독자의 첫인상도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하루에 한 꼭지씩 무려 1,000개의 퍼즐들의 첫문장은 ‘나는 □□이다’로 시작된다. 여기서 ‘□□’은 시점이며, 화자(話者)이다. 이번에는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정 즈음에 울리는 ‘종(鐘)’이 관찰자(시점)다. (내 구조의 비밀은 세상에 죄 알려지고 말아) “아무도 내 소리에 옷깃을 여미지 않는다.” 오로지 소년(요이치)과 그의 친구인 파란 새(큰유리새)가 ‘내 소리’에 어김없이 반응하고 “쓸쓸하네,”라며 운다. 이에 그들이 가련하여 나는 고백한다.
“나는 결국은 괘종시계와 마찬가지로 그저 기계일 뿐이니까. 아무쪼록 가볍게 흘려버리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일부러 한 번, 즉 백아홉 번째 소리를 장치가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내 자신의 의지로, 고오옹, 하고 낸다.”
#01. '괘종시계와 다를 바가 없다'며 자신을 비하하는 종이 108번 다음 한 번 더 울릴 대한민국 서울 종로의 종각에서는 33번, 일명 보신각 종소리가 울린다. 108번(백팔번뇌)처럼 타종 33회는 불교의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원래는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종을 108번 울렸는데, 아침과 저녁 예불을 알리는 타종 횟수도 그렇고, 제야의 종도 33회로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왜 하필 보신각 제야의 종이 33회인가 그 유래는 조선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오른다. 1396년에 한양성이 완성되고 종루는 1398년에 완공했다. 이때부터 새벽 4시에 33번(28수+중앙 별자리 5수) 타종하여 성문을 열고, 저녁 10시에는 28회(동서남북 별자리인 28수 반영) 타종하여 성문을 닫는 의식이 시작되었다는 것. ‘숭유억불(崇儒抑佛)’ 이념을 실천한 조선이지만 불교가 국교였던 전 왕조의 영향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 않았나 싶다.
#02. 타종 횟수 관련,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친구는 일행과 함께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에 있는 지금은 퇴락한 사찰을 찾은 적이 있단다. 찻길은 있지만 오가는 중에 차를 만나면 교행하기가 힘든 곳. 2박3일쯤 머무는데, 거기 한 처사(남자 신도)를 만난다.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절 바깥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 다담(茶談)을 물리고 ‘차곡차곡(茶穀茶穀)’ 절차에 따라 곡차(穀酒)를 마시는데, 주지 스님도 속세에서 공수하는 곡차(막걸리)를 모른 척해주신다는 것.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예초기를 가동하며 사찰 일원의 시설관리부터 정원사 노릇까지 하는 처사에게 월급을 대신한 일종의 배려였다. “여기서도 하는 일이지만……,”
곡차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처사가 이전 절에서 머물던 이야기를 꺼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사찰인데, 처사는 거기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는데, 중요 일과 중 하나가 조석으로 예불을 알린 타종이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책이라고는 거의 없는 수납장에 가까운 책꽂이에서 종이컵 하나를 꺼내더란다. 구겨진 흔적이 역력한 그 종이컵에는 노란색이 선명한 굵직한 콩이 반쯤 담겨 있었다.
“새벽에는 스물여덟 번, 저녁에는 서른세 번 종을 쳐야 하는데 내가 몇 번을 치고 있는지 늘 헷갈리는 거요,”
해서 마련한 궁여지책이 33개의 콩알이었다. 저녁 타종 때는 처사의 오른쪽 호주머니에 33개의 콩알이 담겨 있고, 한 차례 타종을 할 때마다 콩 한 알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기는 식으로 숫자를 체크했다. 새벽종을 울리려 나갈 때는 책꽂이에 콩 5알을 남겨 놓고 나가는 식이었다는 것. “누가 세겠어, 그런데 아닙니다. 어느 날 새백, (타종이) 한 번인가 빠진 모양인데, 주지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한마디 하더라고요.” 친구는 33개의 콩알 사진을 촬영해 두었다고 보내주었다(사진). 새벽(朝)예불에 28회, 저녁(夕)예불에 33회, 조선의 보신각 타종 횟수와는 정반대다. 여기에도 뭔가 음모가 있는 것인가?
#03. “백아홉 번째 소리를 장치가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내 자신의 의지로, 고오옹, 하고 낸다.” 원 플러스 원(1+1)도 아니고 투 플러스 원(2+1)도 아니고, 무려 백팔번뇌 플러스 원(108+1)이 새롭게 다가온다. 왜 108일까? 불교의 발생과 전파가, 인도 어디쯤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데는 이론은 없을 듯하다. 소설 『천일의 유리』(전2권) 시간 배경은 1987년~1989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천황이 죽고 새로운 천황이 즉위하여 연호가 바뀌는 격동기다. 그리고 그 종소리는 오늘 우리가 아는 여느 사찰이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한 일본의 절, 신사(神祀)에서 울려퍼진다.
남산 아래, 해방촌에는 108계단이 있다.(331면) 용산고 뒤편 후암동 옛 종점에서 남산의 남사면 언덕 위로 오르는 긴 계단이 그렇단다. ‘108 계단’이라고 부르니, 108개의 계단이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이 108계단을 오르면 신사(神社)가 있었단다. 일본제국을 위해 생명을 던진 일본군들의 명복을 기리는 곳, 거기에 조선인들이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했다. 그 흔적이다. 이제 108이란 숫자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도 계엄군 지휘본부를 옛 신사가 위치한 자리했다는, 조망이 좋은 산 정상에 설치한다. 전남 구례에 출장을 갔다가 지인의 안내로 손쉬운 등반을 한 적이 있다. 지리산 정상 가운데 하나인, 노고단 정상을 쉽게 오를 수 있다고. 정상 가까이 주차하고, 느리게 걸어도 왕복 두 시간쯤 발품을 팔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다. 거기 S자 곡선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나무(방부목) 계단이 있는데, 혹시 오를 때는 생각했는데, 내려올 때 따박따박 세어보니 계단 숫자가 108개였다. 숫자에는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런 숫자가 있다.
#04. 고대 그리스, 스파르테 정체의 초석을 다진 사람, ‘뤼쿠르구스 전’(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입법자 뤼쿠르고스에 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첫 문장)지만 숫자는 의외로 정확히 등장한다. 원로원의 원로는 28명. 그가 창설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 원로원(비극의 상원) 원로는 28명. 28인가?
1)(아리스토텔레스): 뤼코르쿠스와 결의한 30명 중 두 명이 겁이 나서 빠졌다(30-2=28)
2)(스파이로스, 6*4=28): 처음부터 28명이었다. 7*4=28(28의 약수 중 28을 제외한 나머지 약수 1,2,4,7,14의 합이 28이므로 28은 완전 수)이다.
그런데 정설은 있다. 이 책에도 있지만, 내(플루타르코스) 생각에, “뤼쿠르코스가 원로원 수를 28명으로 정한 까닭은 28명에 2인의 왕을 합하면 모두 30명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28명+2명=30명의 원로들) 다음이 중요합니다. 28+2인의 왕들(씨족 1명, 부족 1명: 혈연 1인 지연 1인)의 세력(입지)을 반영했다는(『플루타르코스』 26~27면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