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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그리고 고두심, 이병헌 그리고 이정은까지, 매주 2회분 업그레이드되는 <우리들의 블루스>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16부작이겠지 했는데 지난 주말에도 2회분이 방송되어 또 보고 있다. 대체 몇회까지 가는가  살피니 20부작이란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언제까지 가도 언제 끝나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드라마인 것 같다.  책으로 치면 단편집 혹은 중편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이문구의 소설   우리 동네』와 같은 설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 달쯤 살아보고 싶은 제주특별자치도가 배경인 점이 있고, 특별하게 1인 혹은 몇몇 주인공에 집중한 서사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김혜자 그리고 고두심 하면 생각 나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연장 혹은 그  드라마가 가진 롱런의 조건을 갖추었다, 20부작이란다, 그런데 더 가도 상관없이 나름의 시청율을 유지할 것 같다. 


한 집안 살림의 디테일을 거의 다  알고 있는 농촌(어촌) 공동체가 배경이다. 전지적 관찰 시점이 통용이 된다. 때문에  이 집 또는 저 집의 이야기가 다 드라마의 소스다. 익명의 도시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누구나 주인공이다.  그렇게 단편소설집, 중편소설집 연작처럼 주인공이 된다, 될 수 있다.  

이 드라마가 '제주의 삶'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색한 톤으로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것만으로도 '좋음'이다. 그리고 생각나는 소설집이 있다.  『갈보콩』이다.   『갈보콩』에 등장하는 편편의 주인공의  성들이야 김씨도 있고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동네> 연장선에 있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쎄다.  



영화를 보면 엔딩크레딧 이후, 익숙한데 하면서 촬영지 내지는 협조해주신 데에 대한 기록이 올라간다. "저 사람 뭐야"  그냥 한 회일 뿐인데 꼼꼼히 살피는 직원 때문이 보내는 시선이 어둠 속에서도 느껴져 늘 갈등이지만, 그 촬영지와 배경만은 아니지만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었구나, 하는 것까지 살피고 극장을 나온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우리 드라마 역사의 이정표 하나가 될 것 같다. 16+20회, 그 이상도 될 것 같은데.. 21세기의 <전원일기>로 지속가능ㅎ란 요소를 갖추었는데...    지켜보겠지만, 나름대로 가진 설정을 낭비하지 않기를, 극 속에 문득 다큐의 주인공 최불암 샘이 서귀포 어디쯤을 방문해서 '먹방'을 하는 설정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거긴 없고, 여긴 있는, 거긴 없는 것 당연하고 여긴 있는 것  당연해야 하는 그 설정 속에 <전원일기>가 있었다.  변화되는 농촌 삶과 동떨어지면서  그 생명은 끝이 났다.  무서운 곳은 농촌이 농촌다워야 하는 대로의 복무지을 이행할 필요가 없어진 현실이 더 슬프다, 제주는 우리니라 대표 '섬'이다. 그야말로 지방자치다. 그것 잃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대한 나의 편견은 '제주도 여행'이구나, 였다.  그런데 이쁘게 감사하게 보고 있다.  지지는 100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리고 이미 얘기했지만 또 하나 여기에는 주인공이 없고(없어야 하고) , 딱히 내세울 사람이 없다. 없어야 한다. 그것이 설정이고 그것이 힘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받은 오해는 화려한 캐스팅이다. 아니기도 하고 그런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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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6-06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병헌은 연기를 참 못하는 것 같다. 보고 또 보아도

stella.K 2022-06-06 1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런가요? 전 이병헌이 내내 연기를 잘 하나? 했다가
이 드라마에서 나름 잘 하네. 그랬어요.
무뚝뚝하고 가방끈 짧은 역이 잘 맞네 했거든요.ㅋ
초반엔 이게 뭐지? 좀 지루한데 했는데 뒷심이 있어
역시 노희경! 했습니다. 그런 드라마가 이번 주말이면 끝나네요.
노희경 드라마도 앞으로 얼마를 더 볼 수 있을까 싶네요.
드라마 시장도 워낙 빨리 바뀌어서…

Meta4 2022-06-08 00: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끝까지 잘 보겠습니다.
 

#1. <미스터 선샤인>(24부작) 23부.  조선에 다시 돌아온 유진(이병헌)은 최포수 등 그간 작고한 이들의 무덤을 찾아 애도한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동행 은산(김갑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멀리 서해로 해가 지고 있었다. 무덤들을 배경으로 앉은 두 사람이 맥주를 마시면서(음복) 나누는 대화다. 


유진: 전 여전히 조선의 주권이 어디에 있든 관심 없습니다.  그저 그 여인이, 제 은인들이 안 죽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멀리 계속 가보는데 그 길이 자꾸 겹칩니다. 의병이랑.

은산: 비껴 가거라, 총 맞기 싫으면.

유진: 그랬어야 되는데 끝내 비껴가게 될 것 알면서도 온 생을 걸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나도 배멀미를 하는구나. (웃음) 그러니 잘 왔다고 해주십시오.

은산: (잠시) 잘 왔다, 이놈아.

유진: 죽지도 마시고요. 전 그것만 할 겁니다. 어차피 겹친 길.


#2. 잔잔한 물가(WATERSHIP DOWN)라는 점만 다를 뿐 <미스터 선샤인>(인용) 장면과 거의 유사한 앵글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애니메이션)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의 완결편인 4화(포위)의 마지막 장면. 앞일을 예지하는 능력을 가진 파이버(동생, 오른쪽)와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헤이즐(형)이 나누는 대화이다.  '잘 자라고'는 곧 '잘 살았다고'가 된다. 


헤이즐슨 일이야., 흐레이루?

파이버별 일 아니야형이랑 잠깐 앉아 있고 싶었어대단한 길을 함께 걸어왔네정말 기뻤고 영광이자 특권이었어.

헤이즐:  관찮아, 파이버. 

파이버괜찮아. 잘 자라고 인사하러 왔어나의 리더이자 내 형내 친구, 굿 나잇~.


'흐라이루'는 작은 흐라이어'라는 뜻으로 토끼 파이버의 다른 이름이다.  원작인 책 속 '토끼어사전'에 따르면,  토끼는 넷까지 셀 수 있는데, 넷을 넘으면 무조건 흐라이어라고 한다.  '흐라이루'라는 이름으로 보아, 이 둘을 포함하여 한배(한 엄마)에서 태어난  형제들은 다섯 명이 넘었을 거라고 한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드라마)의 원작소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양장)는 아쉽게도 절판 상태. 언제이고 중고매장에 가면 구입 1순위 책이다. 


#3. 대체로 한 시즌이 8회분으로, 시즌1, 시즌2, 시즌3으로 이어 제작되는 서양 드라마와 달리, 어느덧 우리 드리마는 16회를 기본으로 완결되는 추세를 따르고 있다.  해서 16부작으로 아쉬운 드라마도 곧잘 등장하여 20부작으로 연장되기도 하는데 , K-드라마의 시대라고 해도, 16부작 정도의 이야기가 아닌데, 질질 끄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24부작임에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미스터 선샤인>은 성공작이라 하겠다. 24부를 남겨놓고 있지만, 인용한 장면은 인용2의 두 주인공 토끼가 그간 이룬 성취를 회고하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 <미스터 선샤인>이 넷플릭스 서비스 덕분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애플TV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드라마 <파친코>의 선전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시대물로 두 드라마의 시간이 겹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조선의 주권이 어디에 있든 관심 없다.'는 유진의 태도에서, 소설 <파친코의 강렬한 첫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가 읽히기  때문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단한 애국심이 있어, 참전하는 것은 아니다.  해질 무렵의 조선에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다가온 현실에 응전하게 한다. 은산의 길과 유진의 길은 다른 듯하면서도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끝날 예정이다. 

'택지 개발로 위험해진 고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에 정착하기까지(1부), 이후에는 워터십 다운을 지켜내기 위한 무용담의 주인공 형제( 헤이즐과 파이버)가 나누는 대화, <미스터 선샤인>의 한 장면과 오버랩이 된다. 



'읽기'보다도 '보기'가 익숙해진 때를 살아간다. 책의 길이 있고 드라마(영화)의 길이 있다. 하지만, 스티븐 킹으로 대표작가로 미국의 현대 작가들이 영상화를 전제로 작품을 썼다는 것과 헐리우드의 영광은 뗄 수 없는 상생, 하모니였다. 무슨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이 더불어 팔릴 수 있는 적기에, 독자들은 <파친코>(소설) 개정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파친코> 개정판 출간 알림 신청을 하고 있다는 건 좀 그렇다. 1천원 적립(추첨), 안 되어도 상관없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도 신간을 구입할 수 있기를. 

자꾸만 작아지는 종이책 시장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의 '새롭게', '다시' 보기와  상호보완하면서 상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준비된 이들에게 온다.  

(소개한 드라마 컷은 핸폰 사진, 해당 화면을 직접 촬영했다. 상태가 좋지 않다. 그렇지만 한움큼 쥔 모래알처럼 사라지는, 해질 무렵의 시간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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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타키투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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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망자의 이름은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망자(亡者)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 영화 초반에서도  이곳에서는 금기라며, (아프리카) 현지 가이드가 경고하지만 무심코 스쳤다.  감독 시드니 폴락, 주연  니콜 키드먼숀 펜.. 감독도 제작진도 화려한 영화,  2005년에 제작되어 국내에도 개봉된 영화, 넷플릭스에서 만난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 2005) 이야기다.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아프리카 오지의 한 나라와 미국 뉴욕 UN본부 안팎,  아프리카 태생인 UN 통역사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 분)이 그녀 외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언어로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을 엿들었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제 그녀는 살인 대상 1순위가 되어 목숨이 위태롭다. 그녀가 연방요원 토빈 켈러(숀 펜 분) 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간다. 인터프리터(interpreter), '통역사'의 얘기에 귀를 기울울 시간이다.  


연방 요원(숀 펜): 분노는요? 이 일이 시작되고 만난 사람 중에서 당신이 주와니(아프리카의 독재자)에게 가장 원한이 많더군요. 그 자의 지뢰 때문에..

통역사 (니콜 키드만)~, 망자의 이름을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누군가 살해되면 익사 재판이란 의식으로 1년간 애도 기간을 보내죠. 강가에서 밤새 열리는 의식으로 새벽에 살인자를 배에 태워 물로 띄워 보내 빠지게 하죠. (살인자는) 묶여서 수영도 못 하죠. 망자의 가족이 선택해요. 살인지를 익사시키든가 구해주든가 족은 가족이 살인자가 죽도록 두면 정의는 실현하지만 평생 애도하면서 보내요. 그러나 살려두고 목숨을 뺏는 거로 결론짓지 않으면 그걸로 슬픔은 사라져요. 복수는 애도의 게으른 형태죠. __<인터프리터>, 러닝타임 40분 전후


영화 초입의 의문점이 풀리는 대목이지만 소화하기까지 상당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는 '그렇'지만 가슴을 설득하기까지, 1년이란 애도기간처럼 시간이 필요하였다.  망자와 이별하는 데 필요한 49일처럼,  그날 망자와 작별하는 우리의 49재처럼 1년째 되는 날 진행된다는 의식(Drowning Man Trial)은 많이 닯았다. 살인자를 죽일 수 있고, 살릴 수도 있다.  선택권은 유족들에게 있다.  1년 동안 살인자는 혹은 그의 가족 친지들은, 망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용서를 구했을까?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들이 어찌했건 용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유족들은 선택할 뿐이다. 살리면 슬픔은 사라진다. 그러나 복수(방치)하면 정의는 실현된다. 하지만 평생을 애도하면서 보내야 한다. '용서'했다면, 더 이상 망자의 이름마저 언급하면 안 된다. 생각의 여지가 넓어지는 대목이다. 


아래 인용에서 '그곳'은 오늘날 독일어권인 게르마니아이고, 수집하고 관찰한 그들의 '생태' 를 들려주는 이는 기원후 100년 전후를 살아가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다. 


"그곳에서는 아버지나 친족의 원한과 우정이 대물림된다. 그러나 원한이 조정될 가능성도 없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도 정해진 수의 소나 양을 바치면 속죄되고, 전 가족이 이런 보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에도 이롭다. 원한은 인관 관계가 제약받지 않는 곳에서는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__66면, 게르마니아21장 중에서


우정처럼 '원한'이 대물림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 전제이다. 하지만 다른 길도 있는데, 앞서 살핀 영화에서처럼, 복수심은 주머니 속 송곳이다. 분노를  품은 이가 결국 상처를 입는다.  그  마음고생에서  벗어날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 현재인의 심사에는 더 다가오지 않을까.  원한을 산 자(=살인자)는 '헤아릴 수 없는' 보석금을 내고 용서를 받았다는 얘기일까? 그런 재력만 있으면 살인해도 무방하다는 그런 해석일까? 더 큰 그림을 읽을 수 있다. 

한 부족이 생존하는 데 구성원들이 그런 원한을 품고 살아간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한이 대물림되고 쌓이면 공동체 전체가 내분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인근 부족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약탈하고 약탈당하는 싸움이 진행 중이다. 거대한 로마 제국과도 맞짱을 떠서 치명타를 날리는 그들의 힘은 이런 가능성을 열어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투키디데스는 복수혈전이 진행되는 어지러운 로마 황실을 떠올리면서 '한편 부럽고 한편 두려운' 게르마니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했다면 죄송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통보하는 것인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태도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최근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건부 감사 못지 않게 조건부 용서도 개운치 않은 뭔가를 남긴다. 용서도 아니고 감사도 아니다. 이런 무늬가 통용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영화 속 용서는 한편으로는 남은 이들의 이기적인 선택이다. 책 속의 용서는 '조건'이 따르지만 더 '인간적'일 수 있다. 가문이 멸망할 정도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살인, 하려면, 하렴. 현실에는 말 그대로 현실적으로 따라야 할 문법이 필요한 것. 그래도 책이나 영화나 용서를 구하는 이의 진정한 참회가 전제되어 있겠지, 생각하고 싶다.  이 선택 또한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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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일지라도 전화를 받는 친구가 드물지만 있다. 좀 늦었지만 퇴근 중이다. 한 잔쯤 걸친 목소리다계속 다녀야할지 고민이다. 내게도 그런 고비가 몇 차례 있었지. 선생이 그러시더라.  측간(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어 봐야 냄새만 밴다, 라고 했지만 도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할 일 한 것 아닐까,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  


354. 항아리들 

오지항아리와 청동항아리가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오지항아리가 청동항아리에게 말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헤엄치란 말이야가까이 오지 말고너와 부딪치면 나는 깨질 거야내가 본의 아니게 너와 부딪쳐도 그렇고.”


'날강도 같은 권력자의 이웃에 사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늘 불안하다.' 이솝우화 한 대목을 슬쩍 언급하지만 꼰대가 꼰대에게 하는 소리쯤으로 들릴 것이다. 시종일관 한 직장에서 일하고 정년퇴임을 한 이들이 느낄 허전함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찾지마, 히말라야 산등성이 어디쯤에서 트래킹이나 하면서 살아갈거야,. 한 잔 하면 대학 산악반 시절을 떠올리며 호언장담하던 공무원은 지금 인테리어업자인 친구 회사에서 업무보조(데모도)로 일하는데, 일과가 끝나고 친구들과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이 그렇게 달콤하단다. 청동항아리(갑)가 오지항아리(을)의 오지항아리임을 알고 협력을 이끌어낸다면 좋겠으나 사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한두 차례 당한 것으로 액땜하려니 하지만, 늘 한 발 물러선 그 이력 때문에 유사한 처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는 집으로 가기 위해 무려 10년을 세상 곳곳을 떠돌아야 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던가. <일리아스>에서 지장(智將)으로 손꼽히는 활약을 하지만, 트로이아 입장에서는 그런 그가 얼마나 얄미웠겠는가. 트로이아 편을 들었던 신들도 저주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20년 만에 오뒷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 삶은 행복했을까?  이후로도 그는 그간의 행위를 정화하는, 자숙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서사시는 마무리된다.  


"퀴클롭스, 그대는 내 유명한 이름을 물었던가요? ..내 이름은 '나무도아니'요. 사람들은 나를 '아무도아니'라고 부르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다른 전우들도 모두.' (오뒷세이아, 9권, 228면) 


평범한 삶 쉽지 않다. 기회에서 벌이에서 양극화는 심화될 조짐이니 더욱 그렇다.  궤도를 벗어났을 때에야  그렇고 그런 삶이 대단하게 다가온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지굼도 꿈이 있다., 라면 좋겠는데, 완료형 마무리가 씁쓸하다.      




친구야, 최근에 <노바디>란 영화를 보았어, 주말에 찾아서 보렴.  조심조심 살아, 어쩌겠어. 그리고 국내영화로 하나 더 추천한다.  <쏜다>(2006)이던가.  


아래, 영화 <노바디> 스틸 컷. 


아래, 영화 <쏜다> 도입부,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박만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아내는 함께 사는 게 재미없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회사는 유도리 없다고 정리해고를 통보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박만수는 평생 최선을 다해 모범적으로 살아온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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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가 대체로 수다쟁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 못 된다. 가장 수다스러운 자들이 그들의 가게로 몰려와 죽치고 앉아 있는 탓에 그들도 자연스레 그런 악습이 몸에 배는 것이다. 아르켈라오스 왕은 어느 수다스러운 이발사가 수건을 둘러주며 "머리는 어떻게  깎아드릴까요, 전하?"라고 묻자 "조용히 깎아주게!"라고 재치 있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수다에 관하여> 중 표제 에세이 한 장면이다(지금은 그리스 로마 에세이에 포함되어 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쓴 전기 작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런 그가 이런 철학에세이를 남겼다? 전기 작가는  늘 숨은 신이라야 하는데. 한동안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살피면 '영웅전'에는 숱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고  유머와 위트가 풍부하다, 이제는 내 이야기 좀 해보겠소, 라고 쓴 자신의 글이니만큼 예외일 수 없다. 주제에 걸맞게, 간결한 문체로, 수다스럽지 않게 수다에 관하여 의견 제시, 인용은 그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예다.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늑대의 살갗 아래 >(The Skin of  the Wolf,  Bajo la piel de lobo, 2017)다.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냥꾼 인생이다.  콘셉트이기도 할 것인데,  영화는 '텔링'은 거의 없고 '쇼잉'에 집중한다.  때문에 영화 번역가(의 직업 특수가 있다. 영상의 스트리밍 속도에 맞게 짧게 번역해야 하는)가 할 밀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말 없음을 보완하지도 않는다. 아니, 처절하리만큼 인색하다.  묵언수행 선승처럼.  영화의 매력이다.  

몇 안 되는 대사 중 주제 문장을 제시하라면,  있다.  여기 밝히고 싶지는 않다.  말하지 않는 가운데 말하고자 했던 숱한 것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 가능하지만, 그 한마디 인용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자연인이다>(콘테츠명을 거론해서 죄송하지만)  에피소드 중 하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밋밋하게 시작  밋밋하게 마무리,  그런데 왜 리뷰까지 쓰게 만들 정도로 남는 무엇이 있는  영화인지,  그것이 숙제다. 


미용실에 간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묻는 다. 생각한다.  '무엇을 해주신다는 얘기신지,  해드리거나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 어떻게 해요'가 더 낫지 않나, 서비스 요금 받는 건 거래고,  암묵계약으로 어떻게  할까요 묻는 것인데, 이 원장님, 자기가 뭔가를 내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 여기까지는 감사, 그런데 해드린다고 말씀하시네. 머리를 잘라주세요.(머리를)' 기타 등등. 그래도 주문은 늘 "짧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공자님 편 읽는데, 동서양이 왜 동서양인가, 그 경계가 무너질 수 있다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공자의 인(仁)이, '친절'로 대치 가능할까? 

그레이트북스를 선정한 시카고대학교의 인문학 커리큘럼이  동양은 동양이 알아서 하세요, 라고 유보했던 것 새삼 생각한다.  

서양화는 채움, 동양화는 비움, 여백의 미란다.  

어느 서양인이 동양화 가격 흥정을 하면서 

빈 공간 많으니 몇 호(엽서 사이즈) 만큼은 디스카운트 합시다,  

그 여백 . 자막 걱정 없이 거의 읽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었던 

영화를 보면서  삶은 거기서 거기 라는 것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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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2022-04-17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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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8 0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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