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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__<천 개의 바람이 되어> 가사  앞부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になって A Thousand Winds)는 작시 미상일본 작곡가 아라이 만이 작곡한 J-POP에 속한 곡이다2003년 11월 6일 일본에서 싱글 앨범 "<천의 바람이 되어>로 발매되었다국내에는  2009년 2월 16일, 팝페라테너 임형주가 한국어로 번안 및 개사하여 자신의 미니앨범(My Hero)의 마지막 7번 트랙으로 수록하여 한국에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이 곡은 추모곡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런 자리에서 사용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대표공식 혹은 대표추모곡.. 이란 식이다.  작시 '미상'이라고 하였지만, 스토리가 있다.  1932년 미국 볼티모어의 주부 메리 프라이가 지은 시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오.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그 출처)"가 출처라는 것프라이는 모친을 잃고 상심해 있던 이웃을 위로하려고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의 이 시를 썼다원래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전승되던 작자 미상의 시를 그 기원으로 본다.


먼저 세상을 떠난 고인들을 기리는 추모곡으로, 미국과 일본한국에서 모두 인기를 얻은 곡. 그런데 왜 천 개의 바람일까?  천일이라는 물리적 시간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본다. 영혼을 보내는 '49재'도 있지만, 예를 중시한 유교사회(조선)에서는 부모상을 현직이 어디였건 3년이라는 애도기간을 허락하였고, '경력단절' 없이 유족은 그 기간의 애도 휴가를 보장받았다. 그래서 '3년상'이라고 한다. 말이 3년상이지, 그 날들의 수를 합산하면 1,000일이 좀 넘는다. 부모와 자식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더라고, 3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유지를 받들기 위해 자성하는 시간을 좀 가지시라,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부모의 묘소(산소)를 지키는 시묘살이 3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금은 정확히 의무 복무 연한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전쟁 이후 상당기간 군에 입대한 장병들의 의무복무 연한은 하루도 빠지지 않는 3년이었다.  그래서 '3년이라는 시간'이 나왔다. 충과 효가 다르지 않다는 개념이 이 물리적 시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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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이슈가 있다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과 자기관리 열풍이 도무지 식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이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이 성공의 비법이라는 논리는 참으로 어리석다, (2)그들의 남다른 성공은 타고난 역량을 아주 잘 발휘한 덕분이긴 하다하지만 그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뒷받침해준 덕분이기도 하다누구든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는 우연이라는 것이다똑같은 비법(?)을 실행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그들만큼 성취하지 못한다아쉽지만 그런 성공은 소수의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


성취 예측 모형』(최동석 지음) 82면이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간파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깝다. 독서(강연) 시장을 분석하는 동안, 자주 거론되는 메시지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자기계발, 자기관리 관련 서적군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는 법' 투성이인데,  알만한 인간들 중의 위인들이 그 예시로 등장한다는 점이 어쩌면 한계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굵직한 메시지(자기 철학)은 사실상 없다, 는 것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이다.  성취 예측 모형』도 예외는 아니다. 개개의 역량 발견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비범한' 삶을 살아가는 '위인'급들이 예시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이 부분은 필자도 언급하고 있다. 어떤 대단한 조직의 CEO에게 '사회 지도층'에게나 필요한 메시지를 담은 것 같지만,   성취 예측 모형』에서의 역량 탐사는 나를 만나는 방법, 나를 찾는 길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어 제시하는 사람 또한 '스티브 잡스'다.  최동석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에 '그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인도로 향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단 스티브 잡스(이미 작고했고) 쯤을 소환해야 독자들이 귀기울인다는 '계산'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도 한 차례 살피자.  잡스는 인도에서 여러 유명한 선사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그러던 중 돌연 더 이상 구루를 찾지 않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온다왜 그랬을까그 이유는 스스로 선불교의 진리를 깨우쳤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을 사용하지 않지요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을 사용합니다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중략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선불교는 제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략저는 선불교의 진리를 깨우쳤습니다스승을 만나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려 하지 말라당신의 스승은 지금 당신 곁에 있으니."


위의 책 122면 인용을 재인용했다.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여행, 파랑새는 늘 멀리 있다는 설정(프레임)에서 벗어난 사례가 '새로움'이다.  오래전 얘기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최동석이 일침을 가하는 비판의 '전설'에 속하는 책이었구나 싶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내가 왜 그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것이 '달'이었는데.. 정작 그것이 달이심을 몰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것,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그 자체가 나의 놀라운 변화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들으면서 자족하는 것, 그 프레임에 빠져 있다. 그런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나의 독서의 전환점은 문득, 왔다. 서양을 좀 알자. 갑질을 일삼고 있는, 그들의 뿌리를 좀 알자.  멀리가 말랑말랑할 때는 좋은 번역이 없어서, 라고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고, 당면한 문제가 뒤섞여 있어 여유가 없었다.  책을 읽을, 공부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든 '무모했다.' 그 결핍이 서양을 알고자 하는 독서로 분출된 것은 아닌지.  성취 예측 모형』에서 바람직한 모델로 제기하는 게르만모형이 뭔지,  조심스럽게 『게르마니아』를 읽었지만, 딱히 몇 마디로 정리는 못하고 있다.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저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가리키는'이 '가르치는'은 아니다. 그 가르침을 오롯이 받아들일 준비도 없다.  "사회구조와 시스템",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 선거인데.. 그러므로 "~하는 법'이나 찾고 또 찾으면서 '학구적인' 삶, 노력하고 있어 하고 하는 것, 그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엮인 책 , 『그리스 로마 에세이』에는 거의 모든 서양인들의 '자기계발'과 '자기관리'가 실려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0 위인선)에는 예시 가능한 고대의 위인들이 선별되어 있다. 이다희 님(이윤기 선생님 따님)이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편 번역도 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처럼, 나는 이렇게 읽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런, 북리뷰 안에 찾고자 하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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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6-08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카고대학은 인문교양 기반의 종합대.. 그런데 거리를 지켰나, 동양의 고전리스트를 만들지는 않았어요. 그레이트북스라는 것. 그 선을 넘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인 것 같다. 그들도 모르고 안 하고 했지만 거기 있는, 그런 모습이 이쁘더라고요. 그런 생각에서 쓴 글임. 나는 내가 가진 것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여러분, 다시, 출마 할까요?"  대통령의 마지막 퇴근길을 유투브(실시간)로 배웅했다. 5월 중순 초입이었다. 다음 날 취임식 참석하고 서울역을 떠나며(배웅), 양산통도사역(울산)에 도착하여(마중) 시민들에게 감사하는 대통령의 모습도 지켰다, 우리 정치사에서 흔한 풍경은 아니었기에. 그런 대통령 말씀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덕분에'다. 국민 여러분 덕분에..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때문에'와 '덕분에'가 흔재되어 있지 않다(모든 연설문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자리에 ''때문에'를 쓰는 정치인들 무지 많다.  알만한 방송인들도, 구분 못하는지, 안 하는지, 그런 발언을 무심코 한다.  '덕분에'는 감사의 언어다. '때문에' 감사하다는 것도 불가하지는 않으나, 어색하다. 그리고 모든 '때문에'의 자리에 '덕분에'를 쓸 수는 없다(이와 관련된, 국어 의미론  논문이 있을 것이다). 다만 '사랑하기 때문에'처럼 '사랑'과 '때문에'가 만나는 지점은 '덕분에 '보다는 '때문에'가 더 세련된 느낌이다. 웃게 하고 울게도 하는 사랑, 사랑이란 늘 그렇다. 당신이라고 '때문에' 힘든 일 없었을까, '문재인의 위로'로 치고'문재인을 위로'로 읽는다.  

 


299. 아버지와 딸들

어떤 사람에게 딸이 둘 있었는데, 한 명은 원예사에게, 다른 한 명은 도공에게 시집보냈다얼마 뒤 그는 원예사의 아내가 된 딸을 찾아가 어떻게 지내며 하는 일은 어떠냐고 물었다그녀가 말하기를모든 것이 그녀 뜻대로 되어가고 있지만 신들에게 한 가지 간청할 일이 있다고 했다그것은 다름 아니라 채소가 목마르지 않도록 날씨가 궂어 비가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뒤 곧 그는 도공의 아내가 된 딸을 찾아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그녀가 말하기를다른 것은 부족한 것이 없지만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그것은 다름 아니라 도자기가 마르도록 날씨가 계속 청명하고 해가 비치는 것이라고 했다그는 그 딸에게 말했다. “너는 좋은 날씨를 바라고 네 언니는 궂은 날씨를 바라니 나는 너희 둘 중 누구와 기도해야 하니?”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일에 손대면 둘 다 놓친다.'  부동산? 서울의 집값? 이솝 대변인의 공식 메시지다. '옛날에'로 시작되는 우리 이야기에도  우산 장수 아들과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가 걱정하고 있다.  짚신 장수 아들이 소금 장수로 등장하기도 한다. 제목을 정하라면 <어머니와 아들들>쯤 되겠다.  비 오는 날에는 짚신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 해가 뜨는 날에는 우산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머니. 아흔이 훌쩍 넘은 어머니가 일흔에 이른 아들에게 차조심하라 걱정하시는 마음, 그것이 어머니 마음이니 걱정하는 어머니가 어머니답다. 걱정하는 마음은 곧 기다리는 마음이다.  

 

늦은 밤 편의점 가는 길에, 인동초 네 그루 하늘로 오르는 화분에 물을 주었다(사진은 4월 어느 날이다, 지금은 밤이라). 돌아오는 길, 이슬비가 내린다. 봄가뭄이 심하다. 주기적으로 물을 주지 않으면 잎이 시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혀가 탄다. 꼭 햇볕이 쨍쨍할 때 발견하니 속상한다. 해가 뜨기 전이나 해질 무렵이라야 하는데, 때가 안 맞는 것. 어쨌든 모처럼 제 시간에 물을 주고 돌아오는 데 비가 오시다니.. 나로서는 감사다.  하느님과 동업하는 농부들을 위해서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솝 우화의 아버지는 지금 어떤 생각이실까? 

오늘은 비가 오네,  큰아들 우산이 좀 팔리겠어,  녀석 재미 좀 보겠는걸. 오늘은 덥구나, 소금은 영업 시간 있어 매출 좀 올리겠는걸. 그래도 아픈 손가락이 먼저라, 걱정 앞서지만 '덕분에'로 받아들이면 세상이 달리 보이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로 치명상을 입은 소상공인들에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단다. 코로나19 '때문에 ' 피해를 본 업체가 대다수이지만 코로나19 '덕분에' 매출이 오른 업종도 있다. 선별 지급이 어떻고 퍼주기는 안 된다, 등등 이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겠지만,  애매한 업종, 애매한 상태라면 지급하는 쪽이었으면.. 다만, '덕분에' 바쁘게 뛰어야 했던 택배 노동자 등 그들에게,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 있다.  


056. 숯장수와 세탁소 주인

어떤 집에서 장사를 하던 숯장수가 이웃에 세탁소 주인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숯장수는 그에게 가서 자기와 함께 살자면서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친해지고 한집에 사는 만큼 생활비도 더 적게 들 것이라고 했다세탁소 주인이 대답했다. “그것은 나로서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오내가 하얗게 만들어놓은 것들을 당신이 검댕으로 까맣게 만들 테니 말이오.”(출처: 위와 같음)


'서로 다른 건 그것이 무엇이든 맞지 않다'는 메시지다. '무엇이든'이 아프다. 하는 일이 서로 달라 '때문에' 두 사람은부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면 잘 살았을 것 같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 아니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조심조심, 존중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너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다름 인정하지 않을 때, 조화로울 것처럼 보이는 부부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난다. 숯장사의 고정 거래처, 그 고객들이 세탁소의 고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매출이 더 늘 수도 있다. 숯을 취급하는 사람은 숯장사만이 아니다. 숯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좋은 관계는 시작된다.  

첫째의 파라솔 아래서 둘째가 소금을 팔 수도 있지 않나. 


때문명사나 대명사어미 ‘-’, ‘-’, ‘-’, ‘-’ 뒤에 쓰여앞에 오는 말이 뒤에 오는 일의 까닭이나 원인임을 나타내는 말.


덕분(德分)주로 ‘~’, ‘~()’, ‘~이다의 꼴로 쓰여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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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집 거리가 가까운 구 씨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다. 서울이 계란(鷄卵)의 노른자라면 서울을 감싼 경기도는 흰자에 속한다, 그 비유 참신하였다. 이방인 구 씨를 품고 있는 염씨네_세 자녀는 경기도 끝자락 어디쯤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여가 활동은 꿈, 결혼 적령기 넘기고 연애마저 자유롭지 않은 것도 주변에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의 재택근무인 구 씨는 남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대부분의 여가에 술을 사러 오가거나, 마시거나, 취해 있다. 좋게 말하면 애주가나 술꾼, 정확히 술중독이다. 변방에 살기(때문에)에 빠듯한 일상을 반복하는 세 자녀의 눈에 직장과 집이 너무 가까워 (덕분에) 술이나 마시는 구 씨의 대비되는 일상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철역 부근의 편의점에서 소주 한두 병 혹은 두세 병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가로등1이 내뿜는 빛이 끝나는 지점과 가로등2가 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지점 사이를 지나는 구 씨. 소주병이 달그락거리는 음향 효과. 집으로 가는 대체로 어두운 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길에서 막내딸 미정은 구 씨를 발견한다.

염씨 부부를 포함하여 세 자녀까지 염씨네 일가와 구 씨가 하는 일의 공통점은 기다림이다. 그들은 무엇, 지금과 다른 어느 때의 무엇을 기다린다. 때로 그 무엇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단지 어떤, 특정할 수 있는 사람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소주 한두 병을 마시고 떨어지면 다시 24시간 편의점으로 한두 병의 소주를 사러 가는 구 씨(할인마트에 가서 한 박스를 사오세요 제발). 생존을 위해, 자기 계발 차원에서 시간 관리를 하는 이들에게 그는 0점짜리다.

미정은 지금과 다른 뭔가를 줄기차게 기다리고 있으며,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못마땅하여 기다리지 않기 위하여 도발적인말과 행동을 한다. 구 씨는 다른 듯 닮았다. 빈방에 그간 마신 소주병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그가 뭔가를 기다린다는 건 누구나 짐작하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술병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운 풍경에 집착한다. 기다림의 징표다.

염씨네 큰딸 기정은 리서치 회사의 중견간부다. 상사인 남자는 바람둥이인데 그 상대들이 하필 회사 여직원들이다. 좋지 않다. 그는 대상에게 로또복권을 선물하면서 작업을 시작한다. 로또는 토요일에 추첨인데 금요일 퇴근 무렵, 불금’의 시작 시점도 아니고 꼭 월요일에 대상(여인)에게 로또 복권을 선물한다. 여행의 참맛은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에 있다. 두근거림. 늘 실망했으므로, 그 메커니즘 알기에, 로또 복권 구매는 부질없고 이성은 허락하지 않는다. (생략) 그런데 내게  금전적인 데미지는 없고 뭔가를 기다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런 모티브를 제공하는 사람, 이제 그를 기다린다그는 이제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된다.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NFT이든, 기다림에 기댈 수 있는 뭔 그런 것. 이것들도 일종의 기다림의 대상이다.,

뭔가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뭔가를 걸고 싶은데 걸만한 것이 마땅치 않다. 기다리고 싶은데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어 열심히 역경 넘어 서 달린다. <달려라 메로스>처럼, 누군가 내 삶의 어느 지점에서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1이 있을까?


<기다린다는 것에 대한 책들>

그러니까 달리는 것이다. 믿고 있으니까 달리는 거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 늦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목숨도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를 따라 와라! 피로스트라토스.”(234피로스트라토스는 왕의 인질이 되어 메로스를 기다리는 석공의 제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마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아정말 못 참겠어.)__1막에서, 에스트라공의 대사

블라디미르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엘라스트공 그건 그렇지.

블라디미르 아니면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사이 우린 약속을 지키러 나온 거야(134)





기다림이 가디림이라는 보증이 되지 않은 채, 정처 없이 오로지 그냥 기다린다. 그런 두 사람의 부랑자를 그려낸 희곡이 있다. 바로 사무엘 베케트(1906~1989)고도를 기다리며(1953년 초연).(171)

어떤 의미에서 달려라 메로스는 기다리게 하는 쪽의 괴로움을 그린 작품이다.(60(실제로) 다자이 오사무가 했던 것으로 보이는 말, ‘기다리는 쪽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쪽이 괴로울까?’라는 말도 세상이라는 우화 속의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62기다리는 쪽은 그저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붕괴, 즉 자괴(自壞). 그런데 기다리게 하는 쪽은 기다리는 사람의 신뢰를 시련에 빠뜨린다.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동안 줄곧 타자를 해칠 가능성을 안고 있다.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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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웃자고 한 소리가 실없이 던진 농담이 아닐 때가 있다. 웃음을 함유한 말(풍자)이 가진 힘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칼럼으로 문명비판을 신랄하게 하였는데,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초판 1995, 개정증보판 1990)이 대표적이다. 책은 에코의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증보판인데, 마지막 옮긴이(이세욱) 글에서 흥미로운 발견이 있다. 에코는 자기 글이 어렵다고 말하는 독자들을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로 여겼다는 것. 나라 안팎에서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이 즈음, 에코가 살아있다면  어떤 일침을 가할까, <계시>마저 사라진 언론에 대하여!


기호학자이자 작가,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를 소설 장미의 이름은 그리스 비극의 미학을 입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후속편이, 곧 희극을 다룬 시학2가 세상에 나왔으나 극소수만 공유하고 있다, 금서를 숨기려는 세력과 발굴하려는 이들 사이의 갈등과 전쟁이 소설 장미의 이름 설정이다. 전문분야인 기호학과도 연관이 깊지만, 그가 장서(藏書)들 틈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소설을 흥미롭게 읽는 또 하나의 관점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수록된 컬럼들. ‘책과 원고를 활용하기’, ‘서재에 장서가 많은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 ‘공공도서관의 체계를 세우는 방법(1981)’ 등에서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이 책 곳곳에는 에코표 웃음 코드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꼭지만 고르라, 곤란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한 꼭지만 고르라면 <연극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를 아는 방법>(1988)이다. 에코는 세상에 없는 책을 다룬 책(장미의 이름)을 썼다. 이 에피소드에는 문제작 시학(아리스토텔레스)이 극찬한(꽃 중의 꽃) 비극 <오이디푸스 왕> 관련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에코의 미국) 유학 시절, 필자(A)는 기숙사 문 닫는 시간(자정) 때문에 숱한 연극들을 처음부터 보면서도 딱 10분이 모자라 끝부분을 보지 못하였다.(A는 오이디푸스가 그 끔찍한 비밀이 드러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친구(B)를 만난다. 그도 학생이고 검표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B는 지각하는 관객들 때문에 극의 초반 10분쯤을 보지 못했다). 먼 훗날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대화가 흥미롭게 소개된다.

 


A(에코): 이제 오이디푸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얘기 좀 해봐

B(검표원 알바): 간단해 어머니는 목을 매고 그는 스스로 자기 눈을 멀게 하지

A: 안됐군. 하지만 결국 그건 자기 잘못에서 비롯된 거야.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했잖아.

B: 맞아 그런데 그는 어째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 그 점이 늘 궁금하더라고…….

A: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역병이 돌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왕이었고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B: 그런데 자기 어머니를 아내로 맞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A: 당연히 전혀 몰랐지! 그게 바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지.

B: 프로이드의 환자 얘기 같아. 자네가 오이디푸스라도 그들의 얘기를 곧이듣지 않을 거야.

 

천병희 옮김 <오이디푸스 왕>은 국내 공연에서 원전번역 텍스트가 그대로 대사로 사용, 공연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위 인용 부분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처럼, 이제 막 연극이 끝난(암전) 무대에서 (미리 녹음된 주연 배우들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자네가 오이디푸스라도 그들 얘기를 곧이듣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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