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끊임없는 비교에 시달리고 괴로웠던 게 나만의 기억은 아니리라.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비교와 간섭으로 받아왔던 고통이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럼 결혼하면 끝이냐고? 그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낳는 데로, 딸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 혼자는 외로우니 둘 이상은 낳아야 한다 등등 남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연관 없는 사람들이 나의 자녀 문제를 정하려고 든다. 듣기 싫은 소리 들으면서 참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이러다가 정말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정도의 극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자기 인생이 아니고, 남의 인생이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사는지,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살아가는 순간마저도 그들의 몫인 거다. 제발 멋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헤치고, 걱정이랍시고 오지랖 떠는 일 좀 그만해주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행’이 아니라 ‘불쌍’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나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지곤 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 문제 때문이다. 새로 관계를 맺고, 무슨 통과의례처럼 호구 조사가 시작된다. 나이는 몇이냐, 어디 학교 나왔냐, 결혼은 했냐, 아이는 몇이냐. 특이 이 나이 먹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특히 같이 일하는 사이로 엮이는 사람들은 아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다. 여기 나와 일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는다. 아이가 없다고 말하면 순간 몇 초쯤 침묵.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대답은 '아...' 이미 아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특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이 없는 우리 부부의 삶을 불쌍하게 보는 눈빛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아이를 낳는 건 개인의 선택이고, 낳았으면 책임을 다해 길러야 하는 게 부모의 의무이다. 그거면 된 거다.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처음부터 계획했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그냥 각자가 감당하면 되는 일 아니었나.
아이 없는 우리 부부가 어떤 마음과 계획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되던 중에, 아이 없이 살아가는 부부에 관한 책 몇 권을 읽게 됐다. 사실 다 읽을 필요도 없긴 했다. 온전하게 우리 둘이 잘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고, 노후의 삶이 불행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외에 뭐가 더 있을까. 그런데도 굳이 읽어본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 부부가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게 잘한 일인지 아직도 100%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까지 다 고려해야 하니까. 그래서 인생에서 아이를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가 더 듣고 싶었다. 어떤 자세로 노년을 준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를 거로 예상했지만, 역시나. 각자의 이유로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고, 각자에게 맞는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자발적으로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인 10년 차 부부의 이야기 『우리, 아이 없이 살자』에서는 부부 사이의 변화를 찾아냄으로써, 관계 재정립과 아이 없는 부부생활을 잘 만들어가는 계기로 여행을 선택했다. 1년간의 여행 후 이 부부는 분명 달라졌다. 보편적인 정답이 아니라 그들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 말고도 부부 관계에 조금은 고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들이 함께 겪은 여행지에서의 고단함을 같이 경험해도 좋겠다. 어쩌면 실컷 싸우기만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그 힘든 시간을 같이 경험하다 보면 사랑을 넘어선 동지애가 싹틀지도 모른다. “전통적 사고나 사회적 규범이 만든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던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룰을 만들어 지켜나가기로 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175페이지, 『우리, 아이 없이 살자』)
딩크족 여성 18명의 이야기를 직접 담아낸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역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그들의 선택이고, 본인의 선택에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의 시선과 말들은 어김없이 이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듯이 참견하며 인생 지도를 다시 그려주려고 한다. 타인이 잊고 있는 그것, 아이 없는 삶을 여성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와 같이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라는 것. 무례한 오지랖에 상처 입으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노하우를 같이 듣게 된다. 실질적인 경험담을 듣는데 최적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서른을 지나고 마흔을 향해 가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 여자들의 친구 관계는 대개 결혼을 중심으로 한 번, 출산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재편된다. 삶의 형태, 사는 지역, 관심사, 친밀도,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 자유와 책임의 문제까지 서로 달라지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60페이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몇 권 더 읽긴 했는데, 비슷하게 중복되는 부분도 많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중에 객관적으로 들리면서도 당당하게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이었다. 저자는 아이 없는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선택을 위한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확신을 들려준다. 중립자의 시각에서 아이 없는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다. 저자가 상담했던 사람들은 거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으면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는 사람들(어쩌다 보니 아이 없이 살게 된 사람들), 행복하게 아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 아이를 낳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들(사정상 어쩔 수 없이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 기저에는 위의 세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본인의 선택에 잘 책임지며 살아가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치 비정상의 삶이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은 좀 거둬주시기를.
저자는 우리 사회의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자녀를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자녀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일부 부모는 자녀를 낳은 일을 후회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다. 피임약의 등장은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결혼했으니(결혼하지 않았어도)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겼던 시대는 지나갔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누가 탓하거나 혀를 찰 일이 아니라는 것. 부모가 아이를 낳은 것에 책임을 지듯,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있는 가정과 아이가 없는 부부가 겪는 경제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기에 이 부분에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노키즈존을 선호하는 사람과 비선호 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시선의 차이가 있는지, 아이가 있는 집에는 세금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혜택을 주면서 아이가 없는 집에는 필요해도 받지 못하는 혜택이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더 많고 다양한 생각들이 언급되는데, 싸움판 벌어질까 봐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어떤 정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이 선택이든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의 문제일 텐데, 개인의 선택 문제에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여길 문제가 있다면, 이는 깊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이 주제의 많은 책이 아이 없는 삶 자체를 찬양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고, 그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이 고단함에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일의 긍정적인 면만 말하지도 않는다. 아이 없이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이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고민에 저자는 말한다. 아이 있는 삶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고, 어떤 불안이 더 큰지 비교할 것 없이 비슷하다고, 이런 고민 자체가 헛된 일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이 없는 삶에 대해 누군가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려고 든다면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사생활을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다고, 이 삶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말하면 된다고,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를 인지할수록 불안감은 덜하다고 말이다.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하는 게 인생이 아니었던가.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없다면 택할 수도 있는 몇 가지 길을 부모가 됐다면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혹은 생물학적인 조건으로 부모가 될 수 없다면, 인생의 다른 목적을 찾아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의 사명은 각자 내린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풍요롭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270~271페이지,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아이 없는 삶을 먼저 살아본 이들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표현하는 ‘childfree’가 더 어울리긴 한다. ‘childless’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반면 ‘childfree’는 아이 문제를 우리가 선택했다는 어감을 담고 있어서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와 더 맞는 듯하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제각각이더라도, 아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건 똑같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을 찾아가게 하는 글이다. 지금 내가 늦은 저녁 시간에 남편과 둘이 각자의 책을 읽으며 뒹굴뒹굴하는 것 같은 취미가 필요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노년의 만족이 다를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성격도 아주 다른데, 다행히 비슷한 거 하나는 책을 보는 일상이라는 거다. 나는 출간된 종이책이나 전자책을, 남편은 지금 연재 중인 작품들을 찾아서 본다. 서로 시간 보내는 일이 아주 다르지 않게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이 없는 부부를 바라보는 편견에 무심해지는 것. 아이가 있어도 불행할 수 있듯이, 아이가 없는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 지금 바라는 소박한 세 가지다.
*) 이 책에는 더 많은 사례와 그들의 선택에 대한 근거, 아이 없는 부부에게 사회가 부여하는 불평등한 정책들이 언급된다. 여기에 다 옮길 수도 없지만, 각자의 선택과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를 것이기에 한마디로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과 다른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국가의 정책과 세금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