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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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들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다. 앞서 읽은 영원한 유산은 할머니와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되었을 정도로,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깊게 묻어난다. 도대체 할머니와 어떤 사이였기에 거의 모든 작품에 할머니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싶을 정도로 궁금했다. 이 작품,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를 읽는 일은 그 할머니에 대한 궁금증을 풀 기회이기도 했다. 다 읽고 보니 작가는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던 게 아닐까 싶었다. 작가의 할머니는 작가가 죽을 때까지 닮고 싶은 인물이며, 할머니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존경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기억 속 할머니의 태도는 지금 작가와 딸 관계의 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현명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작가. 아기에게 꿀짱아라는 애칭을 붙이고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엄마였다. 하지만 엄마가 되는 길은 고됐다. 잘한다고 하지만 완벽하지 않았고, 마음처럼 아이와 잘 지내지도 못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지쳐 쓰러질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했고, 머리만으로 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깨우쳤다. 아등바등 급하게 갈 필요가 없다는 것, 실없는 농담으로 두루뭉술 넘어갈 수도 있는 것, 티격태격하다가도 어이없게 웃고 마는 게 우리가 경험하고 배운 육아법일 테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웃음도 나고, 한숨이 푹 쉬어지기도 한다. 누구나 비슷하게 건너온 육아의 강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다. 나 역시 아이가 없어도 직접 간접으로 경험한 육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는데, 작가처럼 일상의 모든 면에서 현명하게 살아오신 할머니가 계셨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부모로서, 작가로서 살아가는 일이 막막할 때마다, 특히 아이를 키우고 살면서 어려울 때마다 할머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떠올렸다. 오래전 할머니가 해왔던 걸 기억하면, 양육의 방식을 새롭게 보게 했다. 할머니와 함께한 유년 시절은 현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할머니의 방법을 배우면서, 아이 앞에서 힘들 때마다 적용한다. 할머니가 보여준 관용의 태도는 양육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존경스럽다. 특히 미니멀한 언어의 사용은 지혜로운 사람의 그것이었다. ‘말 없는 사람으로 존재했던 할머니는, 모든 일상을 다섯 단어로 채워 넣었다. ‘그래, 안 돼, 됐어, 몰라, 어떡해할머니의 다섯 단어는 단순하고 익숙했다. 저 다섯 단어로 어떻게 일상의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듣다 보면 깊은 속내가 보인다. 공감과 이해가 가득한 말이었다.


할머니의 다섯 단어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작가는 일상에서 겪는 많은 순간에 할머니의 단어를 대입한다.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언어의 과용이 얼마나 독이 되는지 깨닫는다. 내가 하는 많은 말보다 조용히 들어주는 일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걸 아는 순간이다. 할머니가 보여준 언어의 미니멀리즘이 왜 와닿는지 알겠다. 할머니가 보여준 건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아이를 양육하는 좋은 환경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걸 작가는 깨닫는다. 그 깨달음을 자기가 경험한 육아의 현장에 적용하며 들려준다. 할머니의 유산은 다섯 단어로 채워진 사랑이었다. 누구보다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태도는 육아의 장을 넘어서 인생의 모든 순간에 담아낼 자세였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테다. 저마다 옳다고 믿는 육아 방식에 최선을 다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최선이 아이에게도 최선은 아닐 수 있다. 작가의 엄마가 채찍질하면서 좋은 교육과 사랑으로 잘 자랄 수 있었지만, 그게 인생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을 유지하던 작가는 사십 대의 어느 날 무너진다. 이유 모를 무기력함, 작가 생활에 위험이 될 난독증까지 겪는다. 그때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객관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였다. 자책하지 않고 지금 나를 웃게 해줄 소박함을 찾는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이 시기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마치 우리가 겪은 사춘기와 비슷한 상황이라 여긴다. 지금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 딸을 온전히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때 작가의 삶의 태도 역시 바뀐다. ‘최선열심이란 건, 지금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으로 인정하는 것. 작가는 이런 마음을 가질 때마다 어김없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가 이런 작가를 보며 무슨 말을 하실지 안다. “장혀.” 이 한마디는 할머니가 건네는 위로이자 격려이고, 사랑이었다.


환한 웃음과 시무룩한 한숨 사이 정도에 불과한 할머니의 작은 감정 표현은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아마도 모종의 동화(同化) 과정이었을 것이다. (188페이지)


읽으면서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이었다. 말이 주는 상처를 생각하니 작가의 할머니가 말하는 다섯 단어는 지혜이고 배려였고 믿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른이란 이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이런 할머니가 없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내가 이십 대 중반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계셨지만 자주 보지 못했다. 명절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서로 말을 하는 순간 상처가 되는 말들이 오갔기에 굳이 보고 살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의 이런 기억에 남은 할머니만 생각하다가 작가가 들려주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 작가의 모습 기저에 할머니가 존재한다는 걸 알겠다. 고요하게 보내는 사랑의 말이었고, 할머니가 없는 시대에 배우고 살아가는 사랑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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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0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2-11-0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