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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ㅣ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평점 :
알람 맞춰놓고 챙겨볼 정도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시리즈는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방송을 볼 때도 즐겁게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보고 들었는데, 책으로 정리되어 나올 때마다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었다. 매주 들려오는 주제마다, 세계사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랍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겉핥기로 배운 내용,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까지 들려오니 빠져들곤 했다. 시리즈 세 번째 책, 이번에는 전쟁이다. 116년 동안 이어진 백년전쟁부터 가장 최근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방송에서 미처 내보내지 못한 내용까지 더해져 전쟁의 역사가 그대로 들려온다. 우리가 아는 전쟁의 이유와 사뭇 다른 목적이 숨겨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까지 파헤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알고 나면 전쟁의 모습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재밌게 지식을 쌓는다는 마음에 읽고 듣기에는 흥미로웠으나, 읽을수록 그 내용은 참담했다. ‘전쟁’이란 단어가 주는 장면을 알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그 참상을 확인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계사에서 전쟁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싶은 절망이 앞선다. 누군가 일으킨 전쟁에 나름대로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그 전쟁으로 희생되는 많은 사람까지 생각하지 않는 건 잔인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백년전쟁, 미국의 독립전쟁, 아편전쟁, 메이지 유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베트남 전쟁, 소말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요구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이 전쟁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동안 배워왔던 기억을 꺼내자면, 이들 나라는 갖가지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다. 그 전쟁에는 양국의 문제도 있었지만,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제삼자가 나서서 전쟁을 발발하며 확대하는 때도 있었다. 각국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겠지만, 무모한 시도는 피를 부를 뿐이다.
프랑스 왕위 세습 문제로 시작된 백년전쟁은 17세의 양치기 소녀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프랑스가 이기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잔 다르크는 마녀로 불리며 화형을 당한다. 이게 말이 되나? 정치적인 이유로 그녀는 마녀로 처형당했다가 다시 정치적인 이유로 명예를 되찾기도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는 하나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하지만, 어떤 이유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후에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의 존재가 언급되면서 이용되기도 했다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감하다.
영국의 식민지 13개국이 모여 일으킨 미국 독립전쟁은 그들로서는 치열하게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겠으나, 이 전쟁으로 원주민은 피해자가 된다. 이유도 모르고 연관도 없는 원주민은 피해자로만 남을 일이다. 세상 많은 일에는 주고받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영국은 청나라의 차(tea)를 수입하면서 이 거래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자꾸 손해가 나는 일에 청나라에 개항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이에 보복하듯 몰래 아편을 팔기 시작한다. 이미 아편에 취한 사람들을 휘두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영국은 이 공격(?)으로 넘치는 이익을 뽑아냈다. 메이지 유신은 내분의 명분을 외부에서 찾아내려 조선을 이용했다는 게 억울하게 들린다. 듣다 보면 전쟁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차지하고자 하는 이익을 위해서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원하지도 않는 전쟁의 중심에서 피해자로 남는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영국이 개입하면서 시작된 전쟁이었고, 정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으니, 이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는 누가 구제해줄 것인가. 답답할 노릇이다.
우리나라도 참가했던 베트남 전쟁은, 처음에는 내전으로 시작되었으나 곧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의 규모는 커졌다. 이때 사용된 고엽제는 말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남겼고, 현재에도 이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고엽제와 함께 언급된 게 네이팜탄인데, 자료 화면으로 봤던 ‘네이팜탄 소녀’의 장면은 끔찍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뛰어오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로웠다. 누가 만든 명분의 전쟁에서 왜 힘없는 민간인이, 어린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피해자가 되는 슬픔은 어떤 전쟁에서도 비슷하다.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 역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후에 들은 얘기인데, 한국군도 이 전쟁의 민간인 학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견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전쟁은 계속되는가.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은 없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나라는 자국민 보호와 이익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겠지. 장기전이 되어버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영국과 소련이 연관되어 있고, 특히 소련은 나비 지뢰로 또 한 번 아이들을 학살하는 일을 저질렀다. 소말리아 내전은 부패한 정부를 더는 봐줄 수 없어서 시작되었지만, 이는 또 다른 분단국가가 되는 형국이었다. 특히 소말리아 해적은 유명하지 않은가. 이들은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여겼는데, 어느 국가의 투자자들은 이 해적을 지원한다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 전쟁을 도우려는 것인지 말리려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도다.
많은 전쟁 중 가장 실감하고 있는 게 올해 2월 발발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기에 더 가깝게 들린다. 이 전쟁을 처음 봤을 때는 곧 끝나겠지 싶었는데, 각국이 원하는 바가 너무도 달라 평행선으로 달리는 듯하다. 러시아는 가스관 공급과 차단을 반복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경제를 옥죄고, 우크라이나 역시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고 하니, 서로의 방향이 다르다는 건 명확하다. 문제는 이 전쟁 역시 피해자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데 있다. 핵무기까지 언급하는 러시아의 공격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하고 염려스럽다.
전쟁의 이유는 다양했다.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는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택 때문인 듯하다. 내 것이 아니면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더 많이 좀 더 강한 국가가 되어야 다른 공격으로부터 우위에 있다고 믿는 건지 왜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갈등을 종결할 수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그 전쟁에서 피해자는 늘어난다. 대화가 필요한 때라는 건 알겠지만, 누구도 쉽게 그 대화의 장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 게 또 문제가 된다. 그런데도 화해와 협상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 피해가 더는 계속되지 않도록 말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들려주는 전쟁사가 재미있었다. 학교 다니면서 시험공부 할 때 잠깐 들여다봤던 주제였는데, 이렇게 들으면서 다시 보니 이 역사가 내가 알던 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게 새롭다. 특히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는데, 그 기록의 내면을 조금 더 섬세하게 본 느낌이다. 전쟁에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다. 이 책에서는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와 피해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해준다. 소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다툼과 분쟁, 갈등과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 전쟁이 끝나야 하는 이유를 같이 들으면서, 인류 역사에서 더는 전쟁이 언급되지 않을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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