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나노 일본어 중급② 6단계 (교재 + CD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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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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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시선으로 행간의 의미를 잘 파악하면서 읽어야 하는 게 시일 것 같은데, 막상 펼쳐본 정호승의 시는 그냥 일상을 듣는 기분이다. 세상의 슬픔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바라본 어느 장면을 그려내고, 과거의 어느 날을 추억하는 말들. 하나의 문장이 구절이 되면서 쌓인다는 게 어떤 건지 보는 것 같다.


그동안 그가 펴낸 13권의 시집에서 추린 275편의 시가 담긴 시선집이다. 7부로 나뉘어 담겼는데, 살펴보니 시가 발표된 순서로 수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인이 나이 먹어가는 흐름을 시의 구절들이 따라온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 등단 50년이라는 시간에 어울리는 시선집이 아니었나 싶다. 다양한 생각들, 경험들, 시선들이 보이는 그대로 적혔다. 있는 그대로 다 담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대로 다 담아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시인의 감정은 넘치듯 넣어두었는지도.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364페이지)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다고, 그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는 첫 번째 단락으로 시작하는 시다. 어떤 시간을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온 국민이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날이다. 바닷길이 하늘길이 되었다고, 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이냐고, 잊지 말자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이 두렵다고. 그래도 잊은 적이 없다는 마지막 구절은 마치 다짐처럼 들린다. 잊은 적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는 약속 같은 말.


아무리 중요하고 큰일이라도, 매체에서 한참을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1년쯤 지나고 비슷한 시기가 오면 기념한다고 과거의 같은 날을 기억한다. 그리도 다시 바쁜 일상에서 잊기 쉬운 날들이다. 누굴 탓하랴. 우리 삶이 그런 것을. 그렇다고 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을 상기하게 하는 시인의 구절은,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고통의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 상처를 가슴에 묻고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 시인의 가슴에도 상처가 되고 슬픔으로 남아있구나. 그 슬픔은 우리 일상에서도 깊게 자리한 감정이라는 걸 드러내기도 한다.


눈조차 오지 않는 쓸쓸한 오늘밤에도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불행하고

희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더 불행하다

(밤길에서, 84페이지)


꾸역꾸역 잘 견뎌온 오늘이 또 다른 희망으로 불행의 크기는 줄여준다는 걸까? 살아가는 수많은 날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마치 우리 삶의 종착역이 희망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처럼, 누구나 똑같이 그곳을 향해 가는 게 인생이라는 듯이.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건가 싶은데, 정말 아직 희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슬퍼할 수도 있다는 말을 알 것도 같고. 희망을 가운데 두고 생기는 이 묘한 감정을 한 마디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씁쓸하고 쓸쓸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 그래도 걸어야만 하는 삶. 뭐 이런 걸 자꾸 생각하게 하는 시다. ‘밤길에서라는 시 제목이 그렇고, 밤길을 생각하니 그 어두운 골목이 떠오르고, 한겨울 느지막한 시간에 그 골목을 걸어 집으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이 남기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 그렇다.


어떤 일상을 보내든, 어떤 감정을 배우든, 우리는 또 이렇게 걷고 걸어서 삶을 채운다. 온갖 감정을 다 경험하고, 그 감정을 다 감당할 수 없음에 또 이렇게 쏟아낸다. 말하고, 적고, 듣는다. 아마도 그건 아직은 괜찮다는 안도이면서 위로이기도 하고, 어느 날 닿게 될 행복을 생각하는 일일 거다. 시인이 적어간 시들이 세상으로 나와, 우리에게 읽히고 담긴다.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제 그가 쓴 시는 읽는 우리의 것이 되어 마음을 달랜다. 모든 인간에게 날아가 닿을 그 시가 각자의 시간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누구의 가슴속에서나 시가 가득하다고, 그러니 그 가득함 누리면서 꺼내 읽는 맛이 나겠다. 한 번으로는 다 알지 못할, 두 번으로는 더 깊어질 구절들을 새기기에 좋은 만남이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에 대하여, 216페이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277페이지)


담백하게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기 좋은,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담은 구절들에 빠져도 좋은 시간.



#내가사랑하는사람 #정호승 #정호승시선집 #비채 #김영사

##문학 #공감 #한국시 ##책추천 #시집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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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은 시인의 눈처럼 세상을 바라보며 가슴에 남는 시구절을 음미하는 달로! 구단님 9월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ㅅ^

구단씨 2021-09-02 22:32   좋아요 1 | URL
네. ^^
제법 긴(?) 장마가 계속되는 것처럼, 여긴 오늘도 비가 내렸어요.
바람이 달라진 요즘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2021-09-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시인 시인이 되고 쉰해가 됐군요 그렇게 오랫동안 시를 쓰다니 대단합니다 잊지 않아야 할 일을 시로 써서 그 시를 보면 그걸 생각하기도 하겠습니다 여전히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많겠네요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희선

구단씨 2021-09-02 22:33   좋아요 1 | URL
그렇다네요. ^^ 저는 잘 몰랐어요.
이름도 알고 몇몇 시를 읽기도 했지만, 그의 책을 몇 권 읽기도 했지만,
발표된 시가 이렇게 많았다니요.
시로 표현하는 마음, 생각을 만나는 시간 좋았습니다.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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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었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약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온다고. 귀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장악하려고 든다고 말이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는 걸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불안과 걱정이 자는 동안 나를 침범하고 찍어누르는 거라고. 자꾸 그 걱정에 머무는 내가 악몽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안을 내려놔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근심이 사라지면 악몽도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았고, 제법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궁금해진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마음이 약하고 불안한 사람들인 걸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 악령에 씌어 대불호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다가온 게 정말 귀신인 걸까?


액자 구조 형식으로 써진 이 소설에서, 작가 강화길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화자인 <니콜라 유치원>을 집필 중인 소설가다. 어렸을 적부터 씐 악령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소설을 쓸 때마다 악의에 찬 목소리가 공격하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위축된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기에, 그녀는 다짐한다. 더 깊은 악의를 담은 소설로 복수하리라, 이 저주를 끝내리라. 그러던 중에 듣게 된 대불호텔 이야기에 빠져들고, 급기야 대불호텔의 저주에 깊게 관련된 그 여자, 고연주를 보기에 이른다.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악의가 악의를 낳는 과정이 그대로 보였다. 대불호텔의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면서도 무섭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싶어 두려우면서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다. 나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던 건 아닐까 싶어 괴롭기까지 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끊어내고 싶은 간절함이 부풀어 오를 때, 이성은 날아가고 독한 감정만이 남는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힘을 갖고 싶은, 기어코 버티려는 오기 같은 것. 이런 감정은 누가 만드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태어난다. 막으려고 애써도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고통받는 인간에게는 스스로 치유하고 싶은 바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악의야말로 그 치유법으로 생존한다.


이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말할 수 있다. 절대 풀리지 않는 원한.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망치고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마음.

악의. (49페이지)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그건 무엇일까요. 원한, 고통, 절망. 그런 것들일까요. 무엇에 원한이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죠. 그렇기에 두렵죠. 실체를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이 왜 원한을 가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존재들. 그래서 오직 원한만 기억하는 존재들. 지우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 (141~142페이지)


고연주는 생존하고 싶었다. 대불호텔이 아니라 그 어디에 머물렀어도 그녀는 생존의 이유가 가장 컸을 테다. 셜리 잭슨도 마찬가지. 오직 쓰려는 마음, 그녀가 애타게 완성하고 싶은 저주에 걸린 저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다. 뢰이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명감처럼 화교의 삶과 자리를 유지하고 싶었겠지. 모두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만은 남아야 했던 이유가 있다. 지영현이라고 다를까. 어렸을 적부터 바랐던 제법 괜찮은 삶을 갖고 싶었을 그녀에게 지영현으로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 네 사람 사이에서도 싹트는 악의는 여전했다. 대불호텔의 수상함을 느끼는 이들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영현은 이들에게 또 다른 악의를 품는다. 왜 이들에게만 악령이 나타나는 걸까? 나는 왜 이들과 같은 삶으로 스며들지 못하는가? 심지어 귀신마저 고연주를 보호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질투하고 흠모하던 고연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 그 벽을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는 다짐은 잔인한 결말을 그린다.


대불호텔은 실존했던, 1888년 인천에서 문을 열고 성업했던 조선 최초의 호텔이라고 한다.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을 보다니 놀라웠지만, 그 성업도 오래가지 못했다. 경인선이 놓이고 숙박객이 줄면서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음식점으로 바뀌었고, 화교의 경제적인 압박 정책으로 곧 문을 닫으면서 1978년 건물이 헐렸다고. 이런 역사 때문인지, 원한이 서린 공간으로 대불호텔은 너무 잘 어울렸다. 한 생애가 끝나가듯 쇠락해가는 그곳은 이들의 음침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죽고 다치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게 일상이 된, 그래서 나쁜 기운이 더 느껴지는 곳. 쫓아내려고 해도 기어코 들러붙어 나가지 않는 고연주의 존재는 이 호텔의 으스스한 생존력과 결을 같이 한다. 오히려 고연주 때문에 이곳의 원한이 배가 되고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고연주의 공간에 셜리 잭슨과 뢰이한, 지영현까지 함께하게 된 걸 보면, 대불호텔은 원한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라는 걸 부정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흠칫하면서도 애써 그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슬픔이 한곳에 모여있는 곳이 대불호텔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대불호텔에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들의 한을 다 불러모았나 보다. 단순히 망해가는 호텔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사건으로 악의를 한곳에 모아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을 쓰는지 모르지만, 대불호텔에 온 지 두 달 만에 피폐해진 셜리 잭슨의 변화는 어떤 악령이 자기를 둘러싼 공포였다. 동양의 억울한 자매가 있다고, 죽은 자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고을의 한 수령이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고, 나쁜 것들을 처단함으로써 자매의 억울함은 풀어졌겠지만, 또 다른 원한이 생긴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도 나름의 억울함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억울한 영혼이 아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원한을 풀어주려는 이가 있다면, 그 원한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원한이 생기기 마련인, 그렇다면 원한은 쳇바퀴 돌 듯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고연주를 동경하던 지영현이 결국 고연주에게조차 마음이 돌아서 버렸던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삶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서럽고 외로운 고아가 되었다. 세상 속에서 약자로 남았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받고 핍박받는 존재였다. 무력한 희생자가 되어 버텨냈을 뿐이다. 공포로 가득한 그들을 견디게 해주었던 게 증오와 원한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도달한 감정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악의의 본질이었다.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린 혐오와 적대감, 감정의 폭력과 이방인을 향한 배척 같은, 약자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소설 속 화자가 찾아낸 것을 여기에서 멈췄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악의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작가는 그들의 파국 같은 결말에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악령에 시달리며 괴로웠던 화자가 <니꼴라 유치원>을 완성함으로써, 매번 달라졌던 박지운(뢰이한의 아내)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그 건물에 남아 있는 원한을, 현재에 사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바꾸려고 한다. 화자가 변했듯이, 그 역사 속 인물들의 마지막을 다르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에게 슬픔과 악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어차피 그 감정은 양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던가. 애정과 증오가 하나일 때가 대부분이듯, 악의와 호의, 원한과 사랑이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고 풀어낸다.


결국 이야기를 쓴다는 건, 살아가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냥 계속 살아가는 것. 삶을 그런 식으로 지속되는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 마음이 결국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믿는다. (301페이지)


유령 같은 호텔에 갇힌 목소리가 날아가면서 자유로워졌기를, 실체 없는 악의에 계속 빠져 있지 않기를. 내가 버티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원한이나 악의가 아니라 사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대불호텔의유령 #강화길 #문학동네 #소설 #한국소설

#역사 #원한 #증오 #애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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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8-27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오는 대불호텔이 제가 아는 곳이 맞다면
대불호텔은 지금도 있는데, 지금은 아마 호텔로 쓰이지는 않고 전시관인 것 같았어요.
구단씨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1-08-31 19:54   좋아요 0 | URL
네. 거기 맞다고 합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저는 그 전시관에 가보고 싶어요.
그 시대의 대불호텔을 재현한 장면 눈에 담고 싶습니다. ^^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를 하네요. 듣기 좋은 빗소리지만, 너무 과한 건 별로... 조심하세요. ^^

scott 2021-08-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왠지 이 리뷰 👌등수 안에 들 것 같은 느낌이 사알짝 ~*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구단씨 2021-08-31 19:55   좋아요 1 | URL
이 책 후기가 다양해서 흥미로웠어요. ^^ 저는 재미있었는데요.

희선 2021-08-2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는 자세가 조금 이상하면 가위 눌리기도 해요 걱정 때문일 때가 많기는 하지만, 걱정을 해서 자는 자세가 조금 굳어서 가위에 눌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힘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기 힘들겠습니다 덜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7   좋아요 1 | URL
저는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잠을 설쳐요. 물론 자는 자세도 안 좋고요.
정말 피곤하지 않으면 깊은 잠을 잘 못 자요.
이 소설의 내용을 제가 완전히 파악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인간의 모습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서 재미있었어요.

오후즈음 2021-08-3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이 그래선지 표지가 참 오묘하네요.

구단씨 2021-08-31 19:56   좋아요 0 | URL
작가의 전작 <화이트 호스>와 자매처럼 보이는 표지입니다. ^^
 



마루야마 마사키의 법정의 수화 통역시리즈를 읽으면서 우리 신체의 일부(혹은 아주 많이)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자주 생각했다. 반년 전에 다리 시술을 받은 엄마는 아직도 편하지 않다고 하면서 살짝 절면서 걷는다. 통증이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런 엄마의 일상이 변했다. 외출을 꺼린다. 본인이 불편하고, 그러다 보니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자기를 챙기느라 불편해질 것을 느껴서 웬만한 일에는 잘 나가지 않는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불편함이 외출을 못 하게 하니 이제는 마음까지 우울해졌다. 갑자기 닥친 불편함이 이 정도인데, 오랜 세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들의 세상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야기 데프 보이스의 시작이다. 구직 활동을 하던 아라이 나오토는 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그렇게도 싫어했던 수화로 새 직업을 찾는다. 그는 농인 부모 밑에서 자란 코다(CODA : Children Of Deaf Adult) 이다. 부모와 형은 농인이었고, 그는 청인으로 살았다. 농인 부모에게 태어난 청인 아이의 삶이 쉽지는 않았다. 자라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뒤로하고 그는 이제 침묵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너무 익숙하게 봐왔던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의 시선에 새로운 건 없었다. 은행 업무를 돕기도 하면서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들던 그때, ‘해마의 집현재 이사장이 공원에서 살해당했다. 범인을 찾지 못했지만, 어느 농인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그런데 이 사건 뭔가 이상하다. 17년 전에도 해마의 집이사장이 살해당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그 아들이다. 혹시 이 부자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같은 상황, 같은 방식으로 살해를? 농인을 위한 해마의 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던 것일까.


읽으면서 순간순간 그의 지나온 삶을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가 너무 쉽게 말했던 정상의 의미를 생각했다. 부모와 형은 들리지 않는 사람,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정체성의 혼란이 전해졌다. 밖에서는 농인의 가족이라고 시선을 받고, 집안에서는 그보다 형을 더 챙기는 부모님에게 서운하고. 그가 듣고 말할 수 있으니 걱정을 덜었다고, 오히려 형이 살아갈 인생을 더 걱정하던 부모님의 태도를 그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부모님의 걱정을 모를 것도 아주 아니지만, 평범한 아이였던 그가 받은 상처는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그러니 그가 밥벌이를 위해 농인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점점 더 보이는 그들의 상처와 고충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이제 그의 업무 이상의 것에 다가간다. 그들이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진실의 장면을 찾아다닌다. 농인의 가족으로 살면서 청인이었던, 농인의 세계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의 시간에 새로운 세계를 쌓는다. 그가 살아간 진짜 세상을 이제야 열었다.


처음 나오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외면하고 싶었던 삶에 다가간 기분이 어떨까, 였다. 그가 택한 직업으로 그동안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그가 점점 미궁에 빠진 사건에 관심을 두고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에 접근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의 삶이 점점 변해가는, 그 변화의 의미와 깊이가 앞으로의 그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줄지 기대되는 마음. 나오토를 앞세워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안 들리는 척, 모르는 척했던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읽는 이의 시선 역시 변하게 된다. 나오토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의 언어를 그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래서 법 아래에서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 그들의 침묵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데프 보이스, 318페이지)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용의 귀를 너에게는 통역 수화를 하게 된 아라이 나오토의 2년 후를 이야기한다. 여전히 그는 통역 수화를 하고 있으며, 지금은 애인 미유키, 미와와 한집에서 살고 있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인 그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고,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 여전히 법정에 선 농인을 대변하며 법정 통역도 하고 있지만, 혼란의 순간은 찾아온다. 그의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걸까.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농인이 강도 사건의 피의자가 되어 기소된 사건, 농인이 농인에게 사기 치고 기소된 사건, 어느 주택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미와의 같은 반 친구에게 찾아온 선택적 함묵증까지.


농인이라고 해서 말을 아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농인의 말이 청인의 말과 똑같이 들리는 것도 아니다. 피의자로 기소된 농인을 만난 나오토는 그가 말을 못 하는 농인이라고 하지만, 그가 내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말이라고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의 경험상, 그의 어머니가 큰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고 목소리를 낸 기억을 꺼낸다. 농인이 사용하는 말은, 말일까 소리일까. 이 사건을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들에게 언어가 어떤 역할인지 새삼 생각하게 되고, 농인을 위한 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많은 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농인 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통역을 동반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즈모리의 부탁을 받은 나오토는 피의자 진술 자리에 참석한다. 수화가 다 똑같은 거로 여겼는데, 수화도 소리를 내 하는 말처럼 거친 언어가 있다는 걸 알았다. 피의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나오토의 역할이 이 사건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미와는 같은 반 친구 에이치가 등교하지 않는 일을 알게 되고 나오토에게 도움을 청한다. 에이치는 점점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어린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동시에 이 이야기는 어린아이의 말이 얼마나 신뢰성을 가지며 법정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되물으면서, 정신적 질환을 앓는 아이가 하는 말의 깊이를 생각한다. 우연히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 소년은 점점 더 깊이 자기 방으로 숨어든다. 나오토와 미와, 루미 씨는 소년이 방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어루만진다. 소년의 특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증명하며, 이들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다. 특히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함묵증(緘默症)이 있는 에이치에게 수화를 알려주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바보 취급할 때 반드시 그 신체적 특징을 모방한다. 뇌성마비를 앓는 사람, 하지에 장애가 있는 사람,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 그 동작과 표정을 과장스럽게 흉내 내는 것이다. 농인의 경우는 수화가 그 대상이 된다. 아라이의 어린 시절에는 원숭이 흉내를 내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농인의 빠른 손동작이나 때때로 발성하는 목소리가 원숭이와 비슷하다고 여겼다. 얼굴까지 원숭이의 흉내를 내며 바보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까운 곳까지 와서 노골적으로. 어차피 저들은 모른다며.

모를 리 없다. (용의 귀를 너에게, 173페이지)


이번 책에서는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특히 정육학을 부르짖으며 장애가 있는 아이가 부모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생겨났다는 이상한 논리를 사람들이 제법 신뢰했다는 것. 심지어 법으로 지정까지 하면서 부모의 책임을 설파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더 고립시키려는 나쁜 의도로까지 보였다. 전작에서 문제가 많았던 해마의 집이 폐쇄되었기에, 더 나은 농인 교육 시설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새로운 시설을 만들기 위해 기부를 받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더 위기에 빠질 것 같았는데 많은 이의 노력으로 다행히 무마됐지만 끝난 건 아니다. 이들에게는 아직 새로운 농인 교육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숙제로 남았다.


전작에서부터 등장하는 농인 교육 시설 해마의 집이름이 궁금했는데, 이번 책에서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용은 뿔로 소리를 감지하기 때문에 귀가 필요 없고, 쓸모가 없어진 귀는 바다로 떨어져 해마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용의 귀가 된다. 이렇게 또 한 가지 배워간다.



<장애인 차별 해소법이 생기고, 장애인 고용 촉진법으로 합리적 배려는 법적 의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런 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244페이지)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더 이어질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이 책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오토는 미유키와 결혼하고 미와까지 새로운 가족으로 살아가던 중 딸 히토미가 태어난다. 혹시나 아이가 태어나면 귀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나오토는, 미유키를 만나고 함께 살면서 그 걱정은 뒤로하기로 한다. 만약 농인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건 또 그대로 살아갈 방향을 잡으면 되니까. 이 모든 변화는 미유키를 만나면서였다. 그리고 그가 수화 통역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겪고 느끼는 게 많아져서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환경도, 생각도.


이 책에는 4가지 이야기가 연작소설처럼 이어진다. 모두 농인의 등장이고, 청인 세계에서 농인으로 살아가는 불편함과 고통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이야기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에서는 의료 시설 이용 중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해서 겪는 슬픔이 표현된다. 농인 부부가 임신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면서, 정확한 의료 정보는 소통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이 부부에게는 불행이 닥친다. 진료받는데 필담만으로 모든 궁금증이 해소될 수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을 말할 수도 없었다. 의료 전문 통역도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정보를 주고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예를 들면 좌약<앉다>,<>이라고 통역해서 잘못 이해한 농인이 약을 앉아서 먹으려 한 일은 통역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일들을 청인이 들으면 설마 좌약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농인의 이해 부족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사람들리는 사람사이에 예전부터 자리하고 있는 정보의 격차를 유념하지 않으면 자칫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아라이는 항상 이러한 우려를 품고 있었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47~48페이지)


농인이 아니어도 어렵기만 한 병원 진료가, 농인에게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그런데도 농인이 더 세상 속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방향의 활동을 보여주는 이가 있다. 쿨 사일런트에서는 청인 부모에게 태어난 농인인 젊은 청년이 나오토에게 통역을 부탁하면서 농인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어려움을 보여준다. 독화도 발음도 좋은 청년. 제대로 된 수화를 배우려고 나오토와 친해지지만, 그의 연예계 관계자는 청년에게 다른 것을 요구한다. ‘쿨한수화란 무엇일까. 그들에게 농인의 수화는 언어라는 생각이 없는 걸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손짓,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듯한 신기함, 쟁점이 될만한 소재로만 여기는 건 아니었을까? 정작 그 수화를 사용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만큼, 청인들이 바라보는 농인의 세상은 너무 단편적이었다. 그 단편적인 마음을 증명하듯 보여주는 게 법정의 웅성거림이다.


회사에 취직한 농인 여성이, 근무 조건을 지켜주지 않는 회사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의뢰가 들어온다. 쉽지 않은 재판이 될 것이고, 의뢰인이 받을 상처가 걱정되기도 했다. 일할 때 수화 통역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필담 역시 상대가 귀찮아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점점 회사에서 외면당하는 의뢰인의 마음이 저절로 읽혔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자기의 고충이 다른 이에게 전달되지 않음이 상처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 역시 회사 일에 적극적이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모든 내용과 공지가 전달되지 않았다. 재판 중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은 말한다. 알고 있는 줄 알았다고, 이 정도는 들리는 줄 알았다고, 본인이 싫어서 안 하는 줄 알았다고. 그들이 알게 모르게 외면했기에 의뢰인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그들에게 섞이지 못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소리가 들리는 청인중심 사회에서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요된 불편함은 비단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생명에 관해서만큼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재해시 송출되는 긴급방송이나 사고시 교통기관의 안내 방송도 그들에게는 가 닿지 않는다. ‘그 지진당시 많은 장애인의 피난이 늦어지고 지원을 못 받는 현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 그중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재무선 방송을 듣지 못할 뿐 아니라 피난 생활 중에 커뮤니케이션도 충분하지 못하여 고생했다고 들었다. 큰 재해만이 아니다. 앞서 말한 휴대전화의 표현을 빌려 갈라파고스상태에 놓은 상황이 여전히 그들 일상 속에 만연한 것은 아닐까.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41페이지)


조용한 남자사건에서는 수화 역시 사투리처럼 그 지역 특유의 언어로 자리 잡는 경우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망 사건 해결과 동시에 새로운 언어를 향한 나오토의 열정도 의아했지만, 이즈모리가 그 열정과 타인의 일에 직접 나서는 모습이 따뜻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 하는 일이 그냥 신체의 불편함 정도가 아니었다. 농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의료, 복지, 노동 현장의 거대한 장벽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이 장벽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너무 선명하게 우리 앞에 보이는 게 아이러니다. 나오토에게 태어난 딸 히토미 역시 청각장애가 있다. 농인 가정에서 청인으로 살아온 그가, 이제는 청인 부모에게 태어난 청각장애 아이를 키운다.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농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울 것이다. 그가 겪어오고, 지금도 배워가는 중이다. 전혀 쉽지 않을 일이 그에게 닥쳐왔다. 하지만 과거의 그가 힘들었던 때와 다를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그의 옆에 미유키와 미와, 센터의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 그 모든 상황을 감당하던 때와는 다르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 역시 스스로 느끼고 있을 테지. 그의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눌 이들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고 든든한지.


읽다가 정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미유키가 딸 히토미의 청각장애를 알고 고군분투하다가, 이제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하던 장면이다. 수술만이 이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으로 알았던 미유키의 마음이 변하는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 당연하게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들릴 수 있게,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지 않게 하려면 그것만이 답이라고. 하지만 청인으로 살면서 청각장애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전문가의 시선을 알게 된 후 그녀는 딸에게 속삭인다. ‘있는 그대로의 너로 괜찮다는 말이 그렇게 포근하게 들릴 수 없었다. 아마 그녀 마음에 큰 변화가 있었겠지. 혹시 들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날까 봐 주저하던 나오토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들리지 않으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자신만만했던 그녀가, 막상 들리지 않는 아이가 태어나니 감당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터.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들리게 노력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전혀 들리지 않는 삶을 조금은 알고 있었으니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그러기에 미유키의 선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보인다. 그런데도 따뜻하게만 들렸던 그 한 마디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서로 섞이고 이해해야 한다고. 그렇다고 서로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 그것도 안다. 하지만 나오토의 시선이 변하는 걸 계속 지켜보면서 농인의 세계를 알아가는 게 마냥 어려운 일은 아니며,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겠다. 이 시리즈가 많이 읽혀서 우리가 다른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더 넓은 시야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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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5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프 보이스 일드로 먼저 보고 나서 원작 까지 읽어 봤습니다
법정 수화 통역 이야기도 생소 했지만 일상 생활은 물론 의료 복지 일반 교통 이용 하는 것도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

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장벽이 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가 이렇게 많이 나온거 구단님때문에 알게 되었네요 ^ㅅ^

구단씨 2021-08-25 00:58   좋아요 2 | URL
저는 데프 보이스를 좀 늦게 알았어요. ^^ 최근작 읽으려고 하다가 시리즈 마지막 책인 걸 알고 처음부터 찾아서 읽어봤네요.
진짜 일반적인 생활 거의 모든 게 어려울 거라는 걸 이렇게 듣고 알게 되었어요.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것과 너무 달라서 놀랐습니다.

희선 2021-08-2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도 나왔군요 본래는 한권만 쓰려다가 한권 더 썼다고 하던데, 다음 이야기도 있군요 아라이 나오토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다니...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낳을까봐 처음에는 아이도 낳지 않았는데, 많이 달라졌네요 세상은 장애인이 살기에 힘듭니다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지 않았나 싶어요 더 생각하고 도움이 주면 좋겠습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3   좋아요 1 | URL
네. 첫번째 이야기 끝의 작가의 말에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도움과 작가의 노력으로 출간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변화와 나아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한 농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

희선 2021-09-02 00:17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코다>라는 영화 이야기를 하더군요 예전에 그 영화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했더니, 코다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벨리에>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거였어요 부모님이 듣지 못하는 것과 딸이 가운데서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은 같지만, 조금 다르기도 하답니다 <코다>는 음악 용어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 영화 이야기 들으니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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