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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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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었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약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온다고. 귀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장악하려고 든다고 말이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는 걸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불안과 걱정이 자는 동안 나를 침범하고 찍어누르는 거라고. 자꾸 그 걱정에 머무는 내가 악몽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안을 내려놔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근심이 사라지면 악몽도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았고, 제법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궁금해진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마음이 약하고 불안한 사람들인 걸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 악령에 씌어 대불호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다가온 게 정말 귀신인 걸까?
액자 구조 형식으로 써진 이 소설에서, 작가 강화길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화자인 ‘나’는 <니콜라 유치원>을 집필 중인 소설가다. 어렸을 적부터 씐 악령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소설을 쓸 때마다 악의에 찬 목소리가 공격하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위축된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기에, 그녀는 다짐한다. 더 깊은 악의를 담은 소설로 복수하리라, 이 저주를 끝내리라. 그러던 중에 듣게 된 대불호텔 이야기에 빠져들고, 급기야 대불호텔의 저주에 깊게 관련된 그 여자, 고연주를 보기에 이른다.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악의가 악의를 낳는 과정이 그대로 보였다. 대불호텔의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면서도 무섭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싶어 두려우면서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다. 나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던 건 아닐까 싶어 괴롭기까지 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끊어내고 싶은 간절함이 부풀어 오를 때, 이성은 날아가고 독한 감정만이 남는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힘을 갖고 싶은, 기어코 버티려는 오기 같은 것. 이런 감정은 누가 만드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태어난다. 막으려고 애써도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고통받는 인간에게는 스스로 치유하고 싶은 바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악의야말로 그 치유법으로 생존한다.
이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말할 수 있다. 절대 풀리지 않는 원한.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망치고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마음.
악의. (49페이지)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그건 무엇일까요. 원한, 고통, 절망. 그런 것들일까요. 무엇에 원한이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죠. 그렇기에 두렵죠. 실체를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이 왜 원한을 가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존재들. 그래서 오직 원한만 기억하는 존재들. 지우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 (141~142페이지)
고연주는 생존하고 싶었다. 대불호텔이 아니라 그 어디에 머물렀어도 그녀는 생존의 이유가 가장 컸을 테다. 셜리 잭슨도 마찬가지. 오직 쓰려는 마음, 그녀가 애타게 완성하고 싶은 저주에 걸린 저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다. 뢰이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명감처럼 화교의 삶과 자리를 유지하고 싶었겠지. 모두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만은 남아야 했던 이유가 있다. 지영현이라고 다를까. 어렸을 적부터 바랐던 제법 괜찮은 삶을 갖고 싶었을 그녀에게 ‘지영현’으로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 네 사람 사이에서도 싹트는 악의는 여전했다. 대불호텔의 수상함을 느끼는 이들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영현은 이들에게 또 다른 악의를 품는다. 왜 이들에게만 악령이 나타나는 걸까? 나는 왜 이들과 같은 삶으로 스며들지 못하는가? 심지어 귀신마저 고연주를 보호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질투하고 흠모하던 고연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 그 벽을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는 다짐은 잔인한 결말을 그린다.
대불호텔은 실존했던, 1888년 인천에서 문을 열고 성업했던 조선 최초의 호텔이라고 한다.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을 보다니 놀라웠지만, 그 성업도 오래가지 못했다. 경인선이 놓이고 숙박객이 줄면서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음식점으로 바뀌었고, 화교의 경제적인 압박 정책으로 곧 문을 닫으면서 1978년 건물이 헐렸다고. 이런 역사 때문인지, 원한이 서린 공간으로 대불호텔은 너무 잘 어울렸다. 한 생애가 끝나가듯 쇠락해가는 그곳은 이들의 음침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죽고 다치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게 일상이 된, 그래서 나쁜 기운이 더 느껴지는 곳. 쫓아내려고 해도 기어코 들러붙어 나가지 않는 고연주의 존재는 이 호텔의 으스스한 생존력과 결을 같이 한다. 오히려 고연주 때문에 이곳의 원한이 배가 되고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고연주의 공간에 셜리 잭슨과 뢰이한, 지영현까지 함께하게 된 걸 보면, 대불호텔은 원한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라는 걸 부정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흠칫하면서도 애써 그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슬픔이 한곳에 모여있는 곳이 대불호텔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대불호텔에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들의 한을 다 불러모았나 보다. 단순히 망해가는 호텔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사건으로 악의를 한곳에 모아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을 쓰는지 모르지만, 대불호텔에 온 지 두 달 만에 피폐해진 셜리 잭슨의 변화는 어떤 악령이 자기를 둘러싼 공포였다. 동양의 억울한 자매가 있다고, 죽은 자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고을의 한 수령이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고, 나쁜 것들을 처단함으로써 자매의 억울함은 풀어졌겠지만, 또 다른 원한이 생긴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도 나름의 억울함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억울한 영혼이 아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원한을 풀어주려는 이가 있다면, 그 원한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원한이 생기기 마련인, 그렇다면 원한은 쳇바퀴 돌 듯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고연주를 동경하던 지영현이 결국 고연주에게조차 마음이 돌아서 버렸던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삶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서럽고 외로운 고아가 되었다. 세상 속에서 약자로 남았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받고 핍박받는 존재였다. 무력한 희생자가 되어 버텨냈을 뿐이다. 공포로 가득한 그들을 견디게 해주었던 게 증오와 원한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도달한 감정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악의의 본질이었다.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린 혐오와 적대감, 감정의 폭력과 이방인을 향한 배척 같은, 약자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소설 속 화자가 찾아낸 것을 여기에서 멈췄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악의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작가는 그들의 파국 같은 결말에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악령에 시달리며 괴로웠던 화자가 <니꼴라 유치원>을 완성함으로써, 매번 달라졌던 박지운(뢰이한의 아내)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그 건물에 남아 있는 원한을, 현재에 사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바꾸려고 한다. 화자가 변했듯이, 그 역사 속 인물들의 마지막을 다르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에게 슬픔과 악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어차피 그 감정은 양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던가. 애정과 증오가 하나일 때가 대부분이듯, 악의와 호의, 원한과 사랑이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고 풀어낸다.
결국 이야기를 쓴다는 건, 살아가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냥 계속 살아가는 것. 삶을 그런 식으로 지속되는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 마음이 결국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믿는다. (301페이지)
유령 같은 호텔에 갇힌 목소리가 날아가면서 자유로워졌기를, 실체 없는 악의에 계속 빠져 있지 않기를. 내가 버티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원한이나 악의가 아니라 사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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