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행운은, 바로 그것. 다른 이의 글을 만나고, 눈과 마음에 담아낼 수 있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만나고 싶어 한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독자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써내려간 글을 통해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공감이란 것을 느꼈을 때의 그 희열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안의 것들을 활자로 자유스럽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나는 독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리는, 나는 그렇게 표현된 활자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목이 길어 슬프다던 사슴이 되는 것도 불사하게 된다.
지난 한 달 동안 책을 많이 구입했다. 평소의 속도나 양을 기준으로 보자면 한 10배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무엇의 빈자리를 그렇게 책으로 채워야 했을까 고민해 봐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선명한 이유는 없었다. 이런 저런 것들이 쌓여져 내 안의 것들을 비우게 만들었기에, 그 자리를 또 채워야만 했던 허한 마음이 커진 이유라고 변명해 보지만, 그것도 맘에 들지는 않는다. 날씨는 추워졌고, 내리는 비와 눈에 온통 젖어서 들어왔던 날, 또 한 번 책으로 비워진 마음을, 엉망인 방안을 채웠다.
단편집을 어려워해서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단편집을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짧은 이야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허둥대고 이렇게 모여진 단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마음에 답답해서 어렵다는 선입견을 아직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순전히 이 책만큼은 나의 의지로 먼저, 선뜻 만나게 된 책이다. <너 없는 그 자리> 제목과 표지에 반해서 골라 들었던 이 책은 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너무나 매력적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하나의 단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짧다. 그래서 단편을 통해 느꼈던 그 ‘이야기하다가 만’ 것 같은 분위기로 찜찜할 것 같은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 짧은 이야기들은 그 토막 난 이야기 같은 그대로를 안고 가게 했다. 뭐랄까, 이 부분만을 내가 담아내도 충분할 것 같은 생각에 뭔가 중지된 느낌 보다는 이대로도 좋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배신과 쓸쓸함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들이 지금 살아가는 우리를 대변해주는 것 같은 생각에 고스란히 흡수되고 있었다. 내 안에...
누군가가 알지 못하게, 내가 선점하고 싶은 욕심에, 나만 알고 싶은 간절함에 내내 가슴에 담아두었던 책. 게다가 나에게 단편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게 만들었던 책. 곧 읽게 될 <그 집 앞>에 대한 편안함을 선사해 준 책이다.
우리가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진 책 같았다. 부모와 형제가 이루어내고 있는 가족, 연인, 친구. 많은 대상들이 그 사랑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관계들이 사랑을 이루어가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 뭐 별건가, 싶었던 생각에 사랑이 별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란 단어가 포함하고 있던 그 넓은 범위를 이제야 재정립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이 따뜻한 이야기를 더 담게 된다. 누군가가 풀어내는 마음, 누군가가 흘려보내는 슬픔, 많은 것들이 그 사랑이란 이름으로 세상 속에 흩어져 있었다.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마음들을 보게 만들어, 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책...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제목이 풍기는 느낌이 너무 슬프고 쓸쓸해서 출간되기도 전에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책이다. 시인이 풀어냈다는 그 글이 궁금한 건 두 번째였고, 저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빨리 찾아내어 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고비사막의 그 흙이 내게 가져올 감정들이 궁금했고, 이야기 하나하나에 따라오는 소제목이 애틋했다. 그 마음이 그대로 바람 타고 날아온 듯했다. 여러 말이 필요 없게 그냥 만나는 그 순간을 즐기게 해줄 책 같았다. 아니, ‘즐기게’라는 말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다. 그저 ‘만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게 했던 것 같다. 만나고 난 후의 감정들은 아직 내가 정의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기다림을 견딜 수 있었나보다. 만나기만 한다면, 그러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떠났고, 그는 돌아온 것 같았다.
아닌가?
그녀는 떠나는 것 같았고, 그는 돌아온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누군가가 풀어내는 책에 대한 이야기, 글에 대한 느낌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그 두 사람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떠날 것 같은 한 장의 페이퍼를 남기고 아무런 말이 없고, 그는 한 편의 리뷰로 잠깐의 등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책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소심한 팬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어진다.
그녀는 떠나지 않기를, 그는 이번 등장으로 계속 보여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