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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연습
진소라 지음 / 로크미디어 / 2013년 1월
평점 :
오랜만에 보는 햇살은 반갑고, 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칼 같고, 회오리바람처럼 휘날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시간 같았다. 오늘은, 그랬다.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에 칼같이 잘라내는 여자에게 남자는 연애를 해보자고 말한다.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 출몰해서 ‘준비’라는 시간을 갖게 하는 많은 일들처럼 연애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떡밥(?)을 던지고, 여자는 이미 반해버린 남자에게 아닌 척 연습인 척 다가가 본다. ‘아니면 늘 그래왔듯이 잘라내면 그만이니까.’라고 우습게 본 탓에 여자의 연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연애가 되고, ‘진짜’ 인생이 된다. 물론 그건 남자에게도 마찬가지. 이 와중에 서로가 겪게 되는 진심의 순간들과 오해의 시간들이 당연한 수순처럼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이들의 이야기에서 그리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이런 시간을 통해서 여자에게 보이던 자기 자신이란 인물이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기의 이기심 때문에 무얼 놓치면서 달려왔는지, 자기가 가로막았던 ‘연애’가 무엇이었는지를 남자를 통해서, 남자와의 연애를 통해서 보게 된다.
뭐 결론은 늘 그렇듯 해피엔딩인데, 그렇게 마무리까지 끌어가는 과정과 읽는 이에게 던져주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읽는 내내 생각했다. 좋지 않은 갖은 별명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곧 자신이 되어버린 여자 반소은, 이 여자와의 연애를 위해서 한발 양보했지만 역시 그도 자신의 이기심을 먼저 챙겼던 남자 오세준. 반소은의 옆에서 구미호 같은 반소은이 되어가게 만들었던 박볶음, 이십년 지기가 사실은 많은 것들을 누르고 살아왔다는 증거 아닌 증거로 반전을 일으켰던 반소은의 친구 신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읽은 진소라의 작품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란 캐릭터의 구성들. 아마도 그건 ‘이해불가’ 머리띠를 두르고서야만 볼 수 있는 묘사들이었다. 우습게도 그런 이해불가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모습들이어서 더더욱 부정할 수 없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런 캐릭터들 안에서 또 다른 진심들을 꺼내는 모습들이 불러올 감정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 그런 감정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한다.
무언가 망친 기분이 들 때, 그걸 빨리 잊으려면 남의 탓을 하면 된다. (83페이지)
우리가 잘(?)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남의 탓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고도 웃음이 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의 탓을 하기도 하는 찌질한 인간이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넘기고 싶은 순간들, 잊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을 때, 내 잘못인 것 알고 쿨하게 인정하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남의 탓으로 돌리면 조금 더 빨리 그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아니라고?!) 주로 그런 경우는 자신이 잘못 했을 때 떠올리기 쉬운데, 이들이 말하고 있던 것은 ‘연애’라는 카테고리 안에서의 일들을 주제로 그렇게 해석한다. 그게 연애여서이기도 하고, 조금 더 넓게는 인간관계로 보아서도 마찬가지고. 반소은이 간만 보다가 버리는 것도, 연실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연애를 싫어한다고 해서 연실이), 박볶음과의 계속되는 싸움에서도. 모든 것에서 웅덩이 하나를 건너갈 구실이 되는 것이다, 남의 탓은. 그런데 그 남의 탓이 다시 ‘나의 탓’이라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온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해도,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아도, 우리의 의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라도.
반소은이 오세준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변해가는 과정, 다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볼만하다. 남자는 그래도 연애는 할 만한 것이라고, 그 연애가 비록 실패할지라도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끝에 상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처를 상쇄시킬 만한 기쁨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자는 그에 반박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상처를 갖기 싫어서 연애를 안 하는 수도 있다는 듯이, 뜨뜻미지근한 게 살아가는데 편리하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게 전쟁인 것처럼 연애도 싸워서 이겨야할 것들 중의 하나라고 여자는 생각했던 것일까. 그게 서른을 바라보는, 이십대가 아닌 삼십대가 가져야 할 연애의 자세일까. 분명한 것은 스물의 연애와 서른의 연애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인지 이 여자 반소은이 이 책을 통해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미지근한 게 좋아서는 아니겠죠. 뜨거워질 용기가 없고 차가워질 각오는 안 되어 있으니 이렇게 가는 거죠.” (182페이지)
언젠가부터 우리는 몸을 사리고, 상처가 두려워 손을 내밀지 않고, 내 자존심을 보호해야 하고, 어느 정도 나를 감싸줄 수 있는 중간의 자리에서의 삶을 ‘안정’이란 이름으로 지켜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겁내하지 말라는 것은 교만한 오지랖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함을 선택해야만 했던 시간들을 인생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다. 내가 반소은에게 보았던 것은 그녀가 가족을 보면서 키웠을 차가움, 연애인 듯 아닌 듯 흘러간 시간들에게서 배운 처세술 같은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미지근함 같은 것. 그런데 그게 연애에서도 같은 흐름으로 보이니, 인생이란 우주에서 연애라는 지구는 참 작은 것 같으면서도 가끔은 전부일지도…….
그런 그녀가 연습 혹은 계약이란 이름으로 했던 세준과의 연애는 뜨거워질 용기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지근함이나 차가워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열정이 식을 때도, 얼음이 녹을 때도 있는 것이 인생이자 연애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 역시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흡수될 터이니 ‘그런 것이다.’하고 단정 지어 말하지는 않겠다. 책 속의 구절처럼 ‘어떤 일이든 알아야 할 시기를 지나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연습 연애라니, 계약 연애라니. 제목과 이런 저런(내가 읽기 전에 생각했던) 것들이 안타까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이야기였다. 반소은의 인생과 연애에 오세준이라는 적군의 침투는 스스로 걸어 들어온 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인질의 처리문제는 오직 반소은이라는 아군의 마음이다. 행복한 인질로 만들어주었을지 괴로운 포로수용소로 느끼게 해주었을지…….
식상한 소재에서 내가 건져내고 싶은 것은 나에게만 주는 어떤 ‘느낌’이었다. 가슴이 따끔따끔하게 만들어주는 상황들과 툭툭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어떤 문장들 앞에서 이 책의 매력을 발견한 것 같다고. 주인공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도, 그런 배경들이 같이 가져오는 가슴 울림-슬프다는 울림이 아님-은 이들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게 했다. 얼굴이 찢어질 것 같은 이 추위도,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겨울의 모습이니까.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닌 인정하는 것, 조금씩이지만 변해가고 배려하는 것, 그게 이들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자 행복의 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