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밥상에 오른 음식은 제육볶음이다. 어제 마트에서 할인 가격으로 사 온 부드러운 돼지고기에, 온갖 야채를 듬뿍 넣어 얼큰하고 달달하게 볶은 게 내 입맛에 딱 맞는다. 고기보다는 야채를 먼저 집어 먹고 있는데, 엄마가 슬쩍 고기를 집어 나 있는 쪽으로 놓는다. 같이 먹자는 의미다. 어제 같이 사 온 밤맛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면서, 오늘 저녁은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면서 투덜투덜. 그래도 젓가락질을 멈추지는 않는다. 맛있으니까. ^^

 

일상의 많은 날에서 종종 엄마와 이런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집 앞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씩 먹고 오거나, 영화 <겨울왕국>을 보자는 엄마의 말에 더빙판을 예매하거나(엄마는 자막 읽기 힘들다면서 한국 영화나 애니메이션 더빙을 선택한다), 저녁 하기가 귀찮다면서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씩 입에 물고 걸어오거나, 집 근처 기찻길 주변을 돌면서 운동이라고 우기거나... 생각해보면 너무 소소하다. 엄마가 자식에게 바라는 건 참 많을 테지만, 사실 나는 엄마의 기대에 맞는 결과를 내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게 언제나 미안하면서도 너무 익숙하다. 엄마니까, 엄마는 자식의 부족한 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줘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언제나 지켜보면서 또 기다려줄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또 그렇게 믿어왔다.

 

 

그게 언제까지일까? 내가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엄마가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고, 엄마가 우리 형제들 보면서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우리가 사는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아는데도, 자꾸만 착각하게 된다. 현재 상황에 핑계를 대고 안주하면서 기다려주는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미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떤 순간이 다가오고 후회를 하겠지. 그때는 이미 늦을 테지만, 어리석은 나는 또 그걸 모르고 계속 지금만 보고 있겠지... 우와노 소라의 소설에서 단편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읽으면서, 어리석은 자식의 모습을 또 한 번 보게 됐다. 아마도, 어쩌면 나도 가즈키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가즈키의 열 살 생일날, 눈앞에 이상한 숫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어머니의 요리를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들었다. 이상하다. 다른 때는 아닌데,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을 때만 숫자가 줄었다. 가즈키는 숫자가 0이 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눈앞의 그 숫자는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을 때만 줄어드니까, 언젠가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이 그 숫자를 다 채우게 된다면 더는 어머니의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계속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다. 어머니가 안 계시게 되는 상황이 올 거고, 더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지 못하게 된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가즈키는 결심했다. 더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지 않기로, 더는 눈앞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게 하기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안 먹어? 엄마가 얼마나 서운해 하시겠니?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다고 그러는 거야?!’ 한집에 살면서 서로 다른 상차림으로 밥을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말할 수가 없다. 가즈키는 아예 집에서 밥을 먹지 않거나 밖에서 사먹곤 했다. 그러다가 집을 떠나서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을 하고서도 집밥을 절대 먹지 않았다. 숫자는 328에서 줄어들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 다짐이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가즈키에게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이렇게 할 거라고 다짐하면서도, 가까운 곳에서 맡아지는 엄마의 집밥 냄새를 이겨내야만 했다. 그리웠다. 엄마의 집밥도, 엄마의 표정과 따뜻한 말도. 하지만 본가에 갈 수는 없었다. 갈 때마다 음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은 의외의 결말로 후회와 눈물을 만든다. 설마 그런 상황이었을 줄이야. 왜 한 번도 그런 경우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결말은 잔인했다. 가즈키에게 땅을 치고 후회할 상황을 만들어버린 작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왜 우리는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를 아프게 하는지 가슴을 치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것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 영원하지 않은 시간을 조금 더 아껴두고 싶은 마음을 후회하게 하는 거다.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은 안 되니까’가 아니라, ‘형편이 곤란하니까’가 아니라. 오직 지금만이 가능한 것을 눈앞에서 확인한 기분이다. 자꾸만 미루다가는, 조금 더 있다가 할 거라는 핑계가 더는 통하지 않은 거였다. 가슴이 알싸했다. 식상하지만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새기게 한다. 가즈키의 선택의 결과는 후회였지만, 후회 그 후의 일상은 다시 소중함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엄마, 집으로 갈 테니까…… 뭐라도 좀 만들어줘.”

“뭐라도, 라니……. 언제?”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뭐, 뭘 먹고 싶은데?”

“뭐든지 좋아.”

“…… 그래서, 뭘 먹고 싶니, 가즈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 - 42~43페이지)

 

이상한 카운트다운을 마주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들 비슷했다. 비슷한 선택으로 비슷한 상황을 만든다.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벅차서 일상의 소중함 따위는 잊고 지낸 지 오래일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일에 있을 그 끝을 상상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푸근한 냄새를 풍기는 엄마의 집밥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뭉클했다. 만약 우리 인생에서 무언가가 남은 횟수가 보인다면, 그게 엄마에 관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무 잘 알고 있는 답마저 당황해서 제대로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런 감정적인 이야기에 찬물을 끼얹듯 보다 현실적인 엄마의 이야기를 하는 게 케스터 슐렌츠의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이다. 갑자기 쓰러진 엄마 때문에 형제들의 일상은 변한다. 엄마를 모실 병원, 비용을 처리할 보험, 치료 후 돌봐드려야 하는 요양원 등을 거치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거기에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엄마의 변덕과 괴팍한 성격은 덤으로 감당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게 엄마라는 걸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항상 우리를 돌봐주는 엄마였는데, 언제 엄마가 우리가 돌봐드려야 하는 대상이 된 거지? 그게 언제였든, 현실은 현실이다. 저자와 형제들에게는 엄마를 돌봐야 하는 현실만이 남아있었다. 언제나 든든하게 나를 돌봐주고 내 삶의 기둥이었던 엄마가, 이제는 내가 돌봐드려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경험하긴 했지만, 저자가 겪은 시간을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이 글을 마주하니까 막연하게 생각하는 그 순간이 생생해진다. 언젠가 엄마가 거동이 불편해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이 힘들어지고, 병원에 드나들고 요양원에 머물러야 할 시간이 많아진다면, 나는 그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저자 역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을 마주하면서 당황한다.

 

 

케스터 슐렌츠가 엄마를 돌보며 작성한 이 책은 엄마를 떠올리면서 감성적이 되기 쉽고, 부모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 따라오는 일상이 변화를 현실적으로 제시한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기에 앞서 현실에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을 언급한다. 우리가 비켜갈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갑자기 닥친다면 더 당황하겠지만, 언젠가는 닥칠 거라고 생각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일이었던 거다. 혹시나 아프게 되면 병원에 모셔야 할 상황, 그때 간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퇴원 후 돌봄은 어느 시설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후로도 계속되는 돌봄 상황에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복지제도가 한국보다 잘 되어있다는 독일에서도 이런 경우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국가가 해주는 것보다 개인이 준비하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거다. (물론 다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저자의 엄마는 잘 치료 받고 적당한 요양시설을 선택해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 과정을 보고 있자니 적나라한 현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웃프더라. 이미 겪어본 일이라 그런지 저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한국과 독일은 아주 다를 줄 알았다. 각자 독립된 생활을 일찍 시작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간섭보다는 독립된 인격의 관계로 유지되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노년의 부모를 걱정하고 어느 부분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건 비슷했다.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형제들이 모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의논한다. 각자 역할 분담을 하면서 같이 처리해야 할 문제인 거다. 저자는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이나 요양 시설을 알아보거나 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저자의 남동생은 경제 관련 처리와 계산하는 일을 담당했다. 물리적으로 멀리 있는 저자의 누나는 엄마와의 정신적인 교감을 이루려 노력했다. 이상하게도, 엄마가 아프니 형제들이 모이거나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우리 아버지 편찮으셔서 병원에 드나들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겪은 것과 너무 똑같았다. 우리도 그랬다. 문제가 터지니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고,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남동생이나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이런 저런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집안의 우환이 생기는 건 걱정이지만, 이런 일이 생기니 형제들 사이에 관계는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참나...

 

흔히 부모가 나이 들어간다는 서글픔을 언급하면,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말한다. ‘더 늦기 전에...’라는 이유로 감정적인 부분의 해결을 먼저 생각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의미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준비하게 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노부모에 관한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노부모를 돌보는 일은 때로 가혹하고 냉정한 현실이라는 것. 노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게다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24시간 곁에서 돌봐야 하고, 실제로는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다. 그러다가 요양병원을 찾게 되는데, 그렇다고 요양병원이 최고의 답은 아니다. 자식이 있는데 요양 시설에 모셔도 되는지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비용도 발생한다. 그래서 노부모를 돌본다는 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감정적인 것보다, 조금은 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늙고 거동이 힘들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현실적이고 금전적인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두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혼자 남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책보다는 걱정만 앞선다. 어느 정도 예상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닥친 엄마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겁부터 난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노부모에게 일어나는 문제와 그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부딪힘이 그대로 들려왔다.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해결 방법은 다를지 모르지만, 저자의 경험담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내가 이미 경험해서 그런지 공감된 부분이 많다.

 

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유방암, 엄마의 늙음. 이 모든 일을 계기로 나는 나의 늙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 58세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이렇다 할 불만이 없다. 나 역시 중년의 위기를 겪었지만 잘 이겨냈고, 26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건강하고 멋진 아들이 둘이나 있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직업도 만족스럽다. 뭘 더 바라겠는가. 글쎄, 나는 무엇을 더 바랄까?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모든 것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 사진과 지금 거울 속 나를 비교해보면, 시간의 톱니 자국이 확연히 보인다. 주름진 거친 얼굴과 축 처진 눈 밑 지방이 정말 내 것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 203페이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부모의 늙음을 외면하지 말고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의 늙음과 병듦은 점점 비극적인 상황으로 흘러가겠지만, 그렇다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이 책을 통해 그 모든 상황을 한 번씩 시뮬레이션해 보고 언젠가 닥칠지 모를 순간을 준비할 수 있기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해결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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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5 0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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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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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5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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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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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고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을 갈아입고, 벗은 옷은 털어서 걸어놓거나 세탁기에 넣고, 손과 발을 씻는다. 그 후로 바로 샤워를 하거나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씻거나 하는 약간의 순서 차이만 있다. 들어와서 손을 씻는 행위는 개인이 지켜야 하는 기본 위생 중의 하나이며, 어렵지 않게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세균이 우리 몸에 침투하지 않게 위해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세균 감염의 무서움은 이미 여러 가지 사례로 경험했다. 과거 세계사 속에서 활약하던 페스트 같은 거 말이다. 위험한 병이기에 전염을 막을 한계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깨끗한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 전염 확률을 낮췄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과 사람에게 옮겨 다니면서 그 힘을 발휘하는 세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개인이 지켜야 할 기본 위생의 중요성 또한 잘 안다.

 

병을 옮기는 세균이 사람 몸에 침범했을 때 증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을 '무증상 보균자'라고 부르는데, 이 책 <위험한 요리사 메리>에서 말하는 메리 맬런이 그러하다. 아일랜드 태생의 메리는 요리사다. 뉴욕의 상류층 가정에서 일했다. 우연인지 뭔지, 메리가 일하던 집의 사람들에게 단체 장티푸스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의 질병을 조사하던 사람들은 그 집의 환경을 보고 장티푸스 발병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병이 가까이 올 수 없을 정도의 깨끗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원인을 찾지 못한 장티푸스 사건이 희미해질 무렵, 조사관 조지 소퍼는 요리사 메리가 무증상 보균자일 것으로 의심한다. 집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생활한 메리만 장티푸스에 걸리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메리는 소퍼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는 장티푸스에 걸린 적이 없다며 건강하다고 조사관들에게 저항했다. 소퍼의 말을 확실하게 증명하려면 메리에 관한 더 많은 자료 수집이 필요했다. 그렇게 더 많은 조사를 하고 그동안 메리가 일했던 집들을 역으로 추적한 결과, 메리가 일했던 모든 집에서 장티푸스가 생겼고 그들 중에서는 죽은 사람도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소퍼의 말이 사실이 된 순간이다.

 

메리의 흔적을 따라다니는 장티푸스. 위험하고 전염이 되는 이 질병을 어떻게 치료하고 단속해야 하는가? 사실 치료 방법을 찾아내고 환자를 돌봐야 하는 건 의학의 문제다. 중요한 건 무증상 보균자인 메리를 대하는 보건 당국과 사람들의 방식이다. 메리는 자기가 병을 옮기지 않는다면서 보건 당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이는 보건 당국은 장티푸스 제공자 메리를 체포하고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메리의 대소변과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해보니 그녀는 장티푸스 보균자였다. 메리가 요리사로 일하던 190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에서는 장티푸스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장티푸스에 관한 공포로 벌벌 떨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그녀는 두려운 대상이었을 터, 언론에서도 그녀를 '인간 장티푸스균'이라고 부르며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얼마 후에는 메리의 실명까지 공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누군가 학회에서 그녀의 사건을 '장티푸스 메리'라고 부르면서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보건 당국은 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메리를 단속해야 했고, 메리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유를 외칠 수 없이 보건 당국의 강제 집행으로 병원에 감금되듯 입원했고, 섬에 있던 병원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한쪽에서는 장티푸스를 퍼지게 하는 그녀의 감금 같은 입원을 당연하다고 여겼고, 한쪽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그녀에게 주어진 인권을 강탈당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불행은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했고, 누구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중 보건이냐,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냐 하는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없었다.

 

메리는 섬에 있는 병원에서 3년을 갇혀 살았다. 전국에 본명과 사진도 공개되었다. 그녀는 자유를 위해 보건 당국과 서약을 한다. 요리사 일을 그만둘 것과 그녀의 거취를 항상 보건 당국에 보고할 것. 그렇게 3년 만에 섬에서 나온 메리는 그녀의 천직인 요리사 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보건 당국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면서 검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메리가 보건 당국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보건 당국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것도 멈췄고 자취를 감추기까지 했다. 보건 당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병원에서 단체로 발생한 장티푸스 때문에 또 한 번 그녀의 인생은 감금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었던 메리는 가명으로 다시 요리사 일을 시작했고, 그녀가 일했던 병원의 사람들이 단체로 장티푸스에 걸렸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섬에 있는 병원에 수감된 메리는 23년 동안, 그녀가 죽을 때까지 섬에서 나오지 못했다.

 

1900년대 초반의 의학은 그 전보다 훨씬 발전했고, 현대 의학이라고 불러도 좋은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의학이 질병이나 의학에 관해 지금보다는 무지했던 시대였을 것이다. 메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와 그녀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그녀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것이 증명되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녀가 무증상 보균자라는 이유로 평생 섬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 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녀가 공중의 보건을 이유로 격리당해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신상 정보가 만천하에 공개될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메리 이후에 드러난 무증상 보균자들은 자유를 억압당하지도 않았고, 병원에 감금되지도 않았다. 메리처럼 수십 명의 장티푸스를 일으킨 건강한 남자 보균자들은 보호관찰 처분으로 그만이었다. 그들의 신상정보가 신문에 나지도 않았다. 메리가 '최초의 여자 무증상 보균자'였다는 이유로 그녀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 의해 이렇게 파괴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그녀에게 '장티푸스 메리'라고, 마녀라고 불렀다. 언론이 씌운 마녀 이미지와 공포에 한 사람의 인생이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망가졌다. 타인에 의해 불행한 삶을 이어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저자는 단순하게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였던 메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전염병의 공포를 말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전염병의 보균자였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의학과 인권 중에서 무엇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문제를 꺼내놓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메리는 모두가 자기를 몰래 훔쳐보는 구경거리였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의 조사관 조지 소퍼는 그녀를 살아있는 배양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질병의 관리와 개인의 인권이 마주하는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할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전히 의학이냐 인권이냐 하는 문제의 답을 꺼내놓을 수가 없다. 질병의 공포를 없애주는(유배시키는) 것을 찬성하면서도, 한 개인의 삶이 공중 보건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야 하는지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메리의 인생을 힘들게 했던 이들, 조사관 조지 소퍼와 조지핀 베이커 박사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었다. 메리를 생각하면 그녀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을 만든 이들 중 한 사람일 테지만, 공중 보건의 발전과 전염병의 치료에 업적을 쌓은 이들이었다고 생각하면 현대 의학을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이니까 말이다.

 

'장티푸스 메리'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간 게 누구였는지 무엇이었는지 계속 물으면서도, 공중 보건과 개인의 인권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메리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비극 뒤에서 배경처럼 자리한 여러 가지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회적 약자인 메리에게 씌워진 굴레는 여기저기서 손을 뻗어 합세하고 만들어낸 거다. 전염병에 관한 공포와 하층 계급에 대한 혐오, 거기에 인간이 빚어내는 온갖 반감까지 맞물려 일으킨 재앙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의 무지와 혐오에서 비롯된 이 비극은, 조용히 숨어 있다가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메리의 이야기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격리된 병원에서조차 자기 일을 찾아서 했고, 억압된 자유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그녀의 노력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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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조카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고민할 때, 나는 그 아이에게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등학교를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고, 꼭 대학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면 그 아이가 관심 있는 것을 조금 더 빨리 전문적으로 배워서 사회에 나가는 게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대학에 갔으면 하는 바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학졸업장이 대한민국의 교육에서 당연히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의무교육처럼 느껴져서다. 졸업 후 오랜 세월 취업준비생이 되더라도,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더라도, 대학졸업장은 필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조카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대학에 입학했다.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다시 여러 가지 고민에 빠졌다는 게 돌고 도는 모순적인 상황인 것 같다. 이 전공을 계속해서 졸업을 해야 하는지, 대학교를 그만두고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에 매달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 아이를 보면서 마음 아픈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큰조카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만약 그 아이가 특성화고에 진학했다면 지금과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혹시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한 인생 계획에 후회는 하고 있지 않을까? 일찍 진로를 정하고 취업을 목표로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동준이는 대기업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던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직장인이 아니라 학생이었다. 그 회사의 근로자가 아니라 고등학교 3학년 현장 실습생이었다. 전문적으로 일을 해내는 게 아니라 현장의 일을 배우는 게 그 아이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현장 실습생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동준이 혼자 책임지고 해내야 했다. 오랜 시간의 노동을 해야 했고, 사내 폭력을 견뎌야만 했다. 회사의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다들 그렇게 배운다고, 다들 그렇게 사회생활 한다고. 더는 버티지 못한 동준이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순간의 고통을 끝냈다.

 

혹자는 물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힘든데 왜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고. 부모님이나 담임선생님에게 말하지. 아직은 학생이고 미성년자인데 당연히 어른의 도움을 받는 거라고 말이다. 동준이라고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이는 열심히 신호를 보냈다. 힘들다고, 폭력이 있었다고,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할 게 너무 많다고, 고통스럽다고. 부모님에게 말했고, 선생님에게 의논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사회생활이 어디 쉽겠냐, 조금만 더 견뎌봐라, 한번 확인해보겠다는 식의 답을 들려줄 뿐이었다. 어쩌면 아이는 알았을 것이다. 어른들에게 말해봤자 변하는 게 없을 거라는 것을. 회사의 시스템은 노동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대물림하듯 가르쳐온 방식이었을 것이고, 학교 측의 몇 마디로 실습 나간 회사의 어떤 게 쉽게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는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신호를 보내고 구조요청을 했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면, 이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거나, 아예 말하지 못 하기도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계속 말한다고 달라질 게 없을까 봐. 동준이가 선택한 해결 방식은 이 고통의 시간을 멈추는 것뿐이었다.

 

이런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어디 동준이뿐일까. 동준이와 비슷한 죽음은 너무도 많았다. 생수 회사에서 일하다가 현장에서 숨진 이민호 군, 통신사 콜센터의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한 홍수연 양 등. 모두 현장 실습생이었다. 교과 과정처럼 당연하게 이수해야 한다고 여기며 학교 지침에 따랐을 아이들이 현장 실습으로 잃은 것은 무엇일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힘든 노동 현장의 경험이 배우게 하는 게 분명 있을 테지만, 현장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은 많은 것이 그 경험마저 잊게 한다. 어쩌면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의 과정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기업에서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더 뽑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해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을 고용하는 게 기업으로서는 조금은 쉬운 길일 것이다. 취업을 목표로 운영되는 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들이 기업의 현장을 보고 배우는 게 맞는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현장 실습이란 과정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바탕이 되어야 할 환경이 있다. 강압적인 업무나 과한 노동시간이 아니라, 선배들의 폭언과 폭행이 아니라, 제대로 일을 가르쳐주고 작업 환경의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현장 실습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빠진 상태로 일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계속되어 온 것이다.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규명하며 애도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죽음들과 그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가족의 슬픔, 반복되는 사고와 죽음에 사회가 준비하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특성화고에 진학하고자 결정한 이들의 몰랐던 진심을 들려준다. 동준이의 꿈은 프로그래머다. 특성화고에 진학해서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을 배우고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3학년 졸업반이 되어 나가게 된 현장 실습은 동준이의 꿈과 관계가 없었다. 대기업의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동준이가 현장 실습을 통해 프로그래머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인간의 잔인함과 세상의 불공정을 배우지 않았을까? 현장에서 사고로 죽거나 현장 실습의 고통으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의 가족에게 회사가 처리하는 방식도 너무 닮아서 놀랐다. 산업재해가 아니라 아이의 잘못인 것처럼, 회사 내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니 발설하지 말라고, 적당한 합의금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회유와 협박. 어린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게 익숙한 그들의 방식으로 이 아이들의 죽음을 정리했다. 아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세상과 회사에 분노를 키워야만 했던 가족들의 마음은 어디서 치유 받을 수 있을까? 아이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남은 가족의 마음은 겨우 버티듯이 시간이 흐르고, 세상에 남은 부모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그들의 아이가, 오늘도 어디선가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위험에 노출된 이들의 노동 환경을 바꿔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남겨진 일기를 바탕으로 엮은 동준이의 일상과 동준이를 기억하는 엄마의 회상에, 여러 분야의 관련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실어놓은 이 책이 노동자의 인권과 근로 환경,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의 역할을 변화시켜주길 바란다. 한번 일어난 산업재해가 더는 같은 원인으로 생기지 않기를, 이 아이들의 죽음이 말하는 이유와 의미를 잊지 말기를, 무엇보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꿈이 사라진 슬픔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 아이들은 바로 나이고, 나의 가족이고, 꿈을 꾸며 살아가고 싶었던 한 사람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내가 아주 잘 아는 아이의 죽음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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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나는 이 사실을 대학원을 다닐때 배웠다. 
"환자랑 몇 년을 알고 지내도, 그들은 자넬 또다시 놀래킬걸세." 
우리가 첫 번째로 악수를 나눈 날, 웨즐리 교수가 한 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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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9-1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댓글은 처음 드리는 것 같아여 :-)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되세요~

구단씨 2019-09-17 20:55   좋아요 0 | URL
아이고, 추석이 이미 지나버린 다음에 봤네요.
명절 연휴 잘 지내셨나요? ^^
일교차 심해지는 날들이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가을 지내세요~
 

 

죽음에도 격차가 있다는 말이 씁쓸하게 들렸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온갖 차별과 부조리를 겪으면서 사는 우리인데, 죽음에도 차이가 있다는 게 아프게 들리는 건 당연하다. 이 세상에서 차별받으며 살아왔더라도, 죽는 그 순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죽은 후에 우리는 하나의 시신으로 존재할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죽은 자들의 말은 그 평등을 한참 비껴가 있다.

 

법의학 현장에 있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현실"이 있다.

같은 의사의 길을 가지만, 법의학자는 직접 사람을 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임상의들과 거리를 좁혀, 법의학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공유할 필요성을 지금 느끼고 있다. (죽음의 격차 236페이지)

 

법의학자인 저자는 시신을 부검한다. 부검을 통해서 죽음의 원인을 알아낸다. 그 시신은 자살, 타살, 혹은 사고사로 죽음을 맞이했다. 부검의 결과는 때로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일은 부검으로 사건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사건과 연관 짓지 않고, 오직 시신이 자기 몸으로 하는 말을 듣는 것뿐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몸 안에서 발생한 문제로 죽음에 이른다던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단서를 몸 안에서 발견하여 죽음의 원인을 밝혀낸다던가. 딱 거기까지다. 그 이외의 일은 경찰이나 부검을 의뢰한 이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죽은 이들의 몸에서 죽음의 원인 그 이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고사, 교통사고, 살해. 죽음의 양상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안타까운 죽음이 저자의 눈에 많이 담겼던 듯하다. 아무리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눈앞의 시신을 봐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어디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간단하던가. 저자는 객관적으로 자기 일을 하면서, 서류에 기록해야 할 것들 이외의 것은 가슴에 담았다. 그가 지켜본 죽음의 모습. 자살이나 고독사,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죽음에 이르는, 화장실에 버려진 신생아 등등. 돈이 돈을 낳는다고 하는 금수저의 인생이 아닌 보통의 삶은 흙수저에 가깝다. 살면서 겪는 환경의 차이가 있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까이에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했다. 살아있는 동안 겪는 그 차이를 죽음에서도 뚜렷하게 전하는 시신들이다.

 

출발선이 달라서, 사회적 도움이 부족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들려준다. 저자는 죽음으로부터 그 고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의 차별에 살기는 점점 힘들고, 그 차별에 도전하고 열심히 살아가려 하지만 자꾸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그러다 겪는 죽음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쓰라리다.

 

치매를 앓는 아내는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고 그 집에서 일주일 넘게 생활했다. 방문 도우미가 방문했을 때 방치된 시신을 보게 됐지만, 그때까지도 아내는 남편의 사망을 모른 채로 TV를 보고 있었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시대. 고령화가 이유이기도 하지만, 시설이나 자녀의 도움을 제대로 받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크다. 그래서 단 둘뿐인 노인의 가정에서 치매 아내를 돌보던 남편은 집안에서 사망했어도 자기 죽음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귀가한 여인은 며칠 후 죽은 채로 발견됐다. 뺑소니는 아니다. 가해자는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피해자가 거부해서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런 여인이 며칠 후 사망했다. 외상은 없었다. 부검 결과 교통사고로 내상이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해서 죽은 거였다. 그녀는 왜 가해자의 치료를 거부했을까? 그녀는 술을 사 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함께 사는 엄마가 자기가 술을 사 오다가 사고가 난 걸 알게 될까 봐 치료를 거부했다. 멀쩡하게 걸을 만했고 다친 데도 없었다. 인생의 실패 후 우울하고 술에 의존하며 살던 그녀는 술 좀 그만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간 거다. 그녀가 술에 의존해야만 했던 상황이 온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술에 의지하면서 버텨야만 했던 그녀의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저자의 말을 듣다가 놀랐던 건, 의외로 동사가 많았다는 거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동사가 많았다. 동사의 대부분은 노숙자나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생활이 여유롭지 못하거나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혼자 사는 이들이라는 거. 거리를 헤매며 살다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거나, 집안에서 혼자 있다가 죽어서 사망한 경우였다. 특히 집안에서 사망했는데 왜 동사가 발생하는가 하는 의문점이 생기는데, 그건 의외로 간단했다. 혼자 있다가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나지 못해서 추위에 난방을 켜지도 못한 상태로 얼어 죽은 거였다. 만약 그때 집안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금방 연락이라도 할 상황이었다면 그는 동사했을까? 아마도 옆에서 부축을 해주고, 구급차를 불러주고, 병의 치유를 도울 수도 있었겠지.

 

고독사가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상황이 공감이 되지만, 공감이 된다고 해서 그 모든 고독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건 개인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기에 말이다. 저자도 이 부분에 많이 마음을 쓰는 듯했다. 세상을 살면서 겪는 격차가 죽음에게까지 이어지는 걸 많이 아파했다. 저자가 부검한 전체 주검의 약 50%가 독거자였다고 한다. 약 20%가 생활보호 수급자였고, 10% 조금 안 되는 사람이 자살자였단다. 지역마다 차이가 조금 있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 수치라면 보편적인 상황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들이 독거자가 되기도 하고 삶을 비관해 자살을 하기도 하는 현실 그대로를 목격한 거다. 저자는 죽은 자의 몸에서 발견한 신호, 구조 요청을 하는 것 대신 침묵을 선택하여 죽음에 이른 이들의 간절함을 읽고 우리에게 전한다. 그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그리게 한다. 행복한 죽음이 아니라 변사체가 되어 세상에 드러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보여주는 건 사회의 음지 모습이었다.

 

'빈곤에 의한 죽음'이란,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그 죽음이 참으로 제각각이다. 빈곤 때문에 병이 생겨 사망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공통된 점은 이것이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죽음의 격차 52페이지)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저자가 들려주는 많은 죽음이 무겁게 다가왔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이 책으로 본 현실은 일본과 다르지 않은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기에 말이다. 빛이 없는 이들의 삶 면면을 보면서 저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부검 사이사이에 들려오는 저자의 말을 듣다 보면 저절로 알 수 있다. 그가 목격한 죽음의 격차가 삶의 격차와 다르지 않음을, 그 격차를 줄이는 일에 개인을 넘어서서 사회가, 국가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많은 사회적 제도가 구제할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는 계속 발생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많은 문제가 우리 삶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파고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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