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고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을 갈아입고, 벗은 옷은 털어서 걸어놓거나 세탁기에 넣고, 손과 발을 씻는다. 그 후로 바로 샤워를 하거나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씻거나 하는 약간의 순서 차이만 있다. 들어와서 손을 씻는 행위는 개인이 지켜야 하는 기본 위생 중의 하나이며, 어렵지 않게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세균이 우리 몸에 침투하지 않게 위해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세균 감염의 무서움은 이미 여러 가지 사례로 경험했다. 과거 세계사 속에서 활약하던 페스트 같은 거 말이다. 위험한 병이기에 전염을 막을 한계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깨끗한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 전염 확률을 낮췄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과 사람에게 옮겨 다니면서 그 힘을 발휘하는 세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개인이 지켜야 할 기본 위생의 중요성 또한 잘 안다.

 

병을 옮기는 세균이 사람 몸에 침범했을 때 증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을 '무증상 보균자'라고 부르는데, 이 책 <위험한 요리사 메리>에서 말하는 메리 맬런이 그러하다. 아일랜드 태생의 메리는 요리사다. 뉴욕의 상류층 가정에서 일했다. 우연인지 뭔지, 메리가 일하던 집의 사람들에게 단체 장티푸스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의 질병을 조사하던 사람들은 그 집의 환경을 보고 장티푸스 발병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병이 가까이 올 수 없을 정도의 깨끗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원인을 찾지 못한 장티푸스 사건이 희미해질 무렵, 조사관 조지 소퍼는 요리사 메리가 무증상 보균자일 것으로 의심한다. 집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생활한 메리만 장티푸스에 걸리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메리는 소퍼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는 장티푸스에 걸린 적이 없다며 건강하다고 조사관들에게 저항했다. 소퍼의 말을 확실하게 증명하려면 메리에 관한 더 많은 자료 수집이 필요했다. 그렇게 더 많은 조사를 하고 그동안 메리가 일했던 집들을 역으로 추적한 결과, 메리가 일했던 모든 집에서 장티푸스가 생겼고 그들 중에서는 죽은 사람도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소퍼의 말이 사실이 된 순간이다.

 

메리의 흔적을 따라다니는 장티푸스. 위험하고 전염이 되는 이 질병을 어떻게 치료하고 단속해야 하는가? 사실 치료 방법을 찾아내고 환자를 돌봐야 하는 건 의학의 문제다. 중요한 건 무증상 보균자인 메리를 대하는 보건 당국과 사람들의 방식이다. 메리는 자기가 병을 옮기지 않는다면서 보건 당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이는 보건 당국은 장티푸스 제공자 메리를 체포하고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메리의 대소변과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해보니 그녀는 장티푸스 보균자였다. 메리가 요리사로 일하던 190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에서는 장티푸스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장티푸스에 관한 공포로 벌벌 떨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그녀는 두려운 대상이었을 터, 언론에서도 그녀를 '인간 장티푸스균'이라고 부르며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얼마 후에는 메리의 실명까지 공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누군가 학회에서 그녀의 사건을 '장티푸스 메리'라고 부르면서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보건 당국은 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메리를 단속해야 했고, 메리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유를 외칠 수 없이 보건 당국의 강제 집행으로 병원에 감금되듯 입원했고, 섬에 있던 병원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한쪽에서는 장티푸스를 퍼지게 하는 그녀의 감금 같은 입원을 당연하다고 여겼고, 한쪽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그녀에게 주어진 인권을 강탈당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불행은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했고, 누구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중 보건이냐,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냐 하는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없었다.

 

메리는 섬에 있는 병원에서 3년을 갇혀 살았다. 전국에 본명과 사진도 공개되었다. 그녀는 자유를 위해 보건 당국과 서약을 한다. 요리사 일을 그만둘 것과 그녀의 거취를 항상 보건 당국에 보고할 것. 그렇게 3년 만에 섬에서 나온 메리는 그녀의 천직인 요리사 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보건 당국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면서 검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메리가 보건 당국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보건 당국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것도 멈췄고 자취를 감추기까지 했다. 보건 당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병원에서 단체로 발생한 장티푸스 때문에 또 한 번 그녀의 인생은 감금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었던 메리는 가명으로 다시 요리사 일을 시작했고, 그녀가 일했던 병원의 사람들이 단체로 장티푸스에 걸렸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섬에 있는 병원에 수감된 메리는 23년 동안, 그녀가 죽을 때까지 섬에서 나오지 못했다.

 

1900년대 초반의 의학은 그 전보다 훨씬 발전했고, 현대 의학이라고 불러도 좋은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의학이 질병이나 의학에 관해 지금보다는 무지했던 시대였을 것이다. 메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와 그녀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그녀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것이 증명되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녀가 무증상 보균자라는 이유로 평생 섬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 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녀가 공중의 보건을 이유로 격리당해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신상 정보가 만천하에 공개될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메리 이후에 드러난 무증상 보균자들은 자유를 억압당하지도 않았고, 병원에 감금되지도 않았다. 메리처럼 수십 명의 장티푸스를 일으킨 건강한 남자 보균자들은 보호관찰 처분으로 그만이었다. 그들의 신상정보가 신문에 나지도 않았다. 메리가 '최초의 여자 무증상 보균자'였다는 이유로 그녀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 의해 이렇게 파괴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그녀에게 '장티푸스 메리'라고, 마녀라고 불렀다. 언론이 씌운 마녀 이미지와 공포에 한 사람의 인생이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망가졌다. 타인에 의해 불행한 삶을 이어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저자는 단순하게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였던 메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전염병의 공포를 말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전염병의 보균자였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의학과 인권 중에서 무엇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문제를 꺼내놓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메리는 모두가 자기를 몰래 훔쳐보는 구경거리였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의 조사관 조지 소퍼는 그녀를 살아있는 배양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질병의 관리와 개인의 인권이 마주하는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할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전히 의학이냐 인권이냐 하는 문제의 답을 꺼내놓을 수가 없다. 질병의 공포를 없애주는(유배시키는) 것을 찬성하면서도, 한 개인의 삶이 공중 보건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야 하는지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메리의 인생을 힘들게 했던 이들, 조사관 조지 소퍼와 조지핀 베이커 박사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이었다. 메리를 생각하면 그녀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을 만든 이들 중 한 사람일 테지만, 공중 보건의 발전과 전염병의 치료에 업적을 쌓은 이들이었다고 생각하면 현대 의학을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이니까 말이다.

 

'장티푸스 메리'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간 게 누구였는지 무엇이었는지 계속 물으면서도, 공중 보건과 개인의 인권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메리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비극 뒤에서 배경처럼 자리한 여러 가지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회적 약자인 메리에게 씌워진 굴레는 여기저기서 손을 뻗어 합세하고 만들어낸 거다. 전염병에 관한 공포와 하층 계급에 대한 혐오, 거기에 인간이 빚어내는 온갖 반감까지 맞물려 일으킨 재앙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의 무지와 혐오에서 비롯된 이 비극은, 조용히 숨어 있다가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메리의 이야기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격리된 병원에서조차 자기 일을 찾아서 했고, 억압된 자유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그녀의 노력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