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조카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고민할 때, 나는 그 아이에게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등학교를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고, 꼭 대학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면 그 아이가 관심 있는 것을 조금 더 빨리 전문적으로 배워서 사회에 나가는 게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대학에 갔으면 하는 바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학졸업장이 대한민국의 교육에서 당연히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의무교육처럼 느껴져서다. 졸업 후 오랜 세월 취업준비생이 되더라도,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더라도, 대학졸업장은 필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조카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대학에 입학했다.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다시 여러 가지 고민에 빠졌다는 게 돌고 도는 모순적인 상황인 것 같다. 이 전공을 계속해서 졸업을 해야 하는지, 대학교를 그만두고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에 매달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 아이를 보면서 마음 아픈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큰조카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만약 그 아이가 특성화고에 진학했다면 지금과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혹시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한 인생 계획에 후회는 하고 있지 않을까? 일찍 진로를 정하고 취업을 목표로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동준이는 대기업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던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직장인이 아니라 학생이었다. 그 회사의 근로자가 아니라 고등학교 3학년 현장 실습생이었다. 전문적으로 일을 해내는 게 아니라 현장의 일을 배우는 게 그 아이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현장 실습생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동준이 혼자 책임지고 해내야 했다. 오랜 시간의 노동을 해야 했고, 사내 폭력을 견뎌야만 했다. 회사의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다들 그렇게 배운다고, 다들 그렇게 사회생활 한다고. 더는 버티지 못한 동준이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순간의 고통을 끝냈다.

 

혹자는 물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힘든데 왜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고. 부모님이나 담임선생님에게 말하지. 아직은 학생이고 미성년자인데 당연히 어른의 도움을 받는 거라고 말이다. 동준이라고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이는 열심히 신호를 보냈다. 힘들다고, 폭력이 있었다고,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할 게 너무 많다고, 고통스럽다고. 부모님에게 말했고, 선생님에게 의논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사회생활이 어디 쉽겠냐, 조금만 더 견뎌봐라, 한번 확인해보겠다는 식의 답을 들려줄 뿐이었다. 어쩌면 아이는 알았을 것이다. 어른들에게 말해봤자 변하는 게 없을 거라는 것을. 회사의 시스템은 노동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대물림하듯 가르쳐온 방식이었을 것이고, 학교 측의 몇 마디로 실습 나간 회사의 어떤 게 쉽게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는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신호를 보내고 구조요청을 했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면, 이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거나, 아예 말하지 못 하기도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계속 말한다고 달라질 게 없을까 봐. 동준이가 선택한 해결 방식은 이 고통의 시간을 멈추는 것뿐이었다.

 

이런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어디 동준이뿐일까. 동준이와 비슷한 죽음은 너무도 많았다. 생수 회사에서 일하다가 현장에서 숨진 이민호 군, 통신사 콜센터의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한 홍수연 양 등. 모두 현장 실습생이었다. 교과 과정처럼 당연하게 이수해야 한다고 여기며 학교 지침에 따랐을 아이들이 현장 실습으로 잃은 것은 무엇일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힘든 노동 현장의 경험이 배우게 하는 게 분명 있을 테지만, 현장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은 많은 것이 그 경험마저 잊게 한다. 어쩌면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의 과정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기업에서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더 뽑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해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을 고용하는 게 기업으로서는 조금은 쉬운 길일 것이다. 취업을 목표로 운영되는 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들이 기업의 현장을 보고 배우는 게 맞는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현장 실습이란 과정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바탕이 되어야 할 환경이 있다. 강압적인 업무나 과한 노동시간이 아니라, 선배들의 폭언과 폭행이 아니라, 제대로 일을 가르쳐주고 작업 환경의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현장 실습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빠진 상태로 일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계속되어 온 것이다.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규명하며 애도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죽음들과 그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가족의 슬픔, 반복되는 사고와 죽음에 사회가 준비하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특성화고에 진학하고자 결정한 이들의 몰랐던 진심을 들려준다. 동준이의 꿈은 프로그래머다. 특성화고에 진학해서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을 배우고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3학년 졸업반이 되어 나가게 된 현장 실습은 동준이의 꿈과 관계가 없었다. 대기업의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동준이가 현장 실습을 통해 프로그래머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인간의 잔인함과 세상의 불공정을 배우지 않았을까? 현장에서 사고로 죽거나 현장 실습의 고통으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의 가족에게 회사가 처리하는 방식도 너무 닮아서 놀랐다. 산업재해가 아니라 아이의 잘못인 것처럼, 회사 내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니 발설하지 말라고, 적당한 합의금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회유와 협박. 어린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게 익숙한 그들의 방식으로 이 아이들의 죽음을 정리했다. 아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세상과 회사에 분노를 키워야만 했던 가족들의 마음은 어디서 치유 받을 수 있을까? 아이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남은 가족의 마음은 겨우 버티듯이 시간이 흐르고, 세상에 남은 부모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그들의 아이가, 오늘도 어디선가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위험에 노출된 이들의 노동 환경을 바꿔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남겨진 일기를 바탕으로 엮은 동준이의 일상과 동준이를 기억하는 엄마의 회상에, 여러 분야의 관련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실어놓은 이 책이 노동자의 인권과 근로 환경,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의 역할을 변화시켜주길 바란다. 한번 일어난 산업재해가 더는 같은 원인으로 생기지 않기를, 이 아이들의 죽음이 말하는 이유와 의미를 잊지 말기를, 무엇보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꿈이 사라진 슬픔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 아이들은 바로 나이고, 나의 가족이고, 꿈을 꾸며 살아가고 싶었던 한 사람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내가 아주 잘 아는 아이의 죽음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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