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밥상에 오른 음식은 제육볶음이다. 어제 마트에서 할인 가격으로 사 온 부드러운 돼지고기에, 온갖 야채를 듬뿍 넣어 얼큰하고 달달하게 볶은 게 내 입맛에 딱 맞는다. 고기보다는 야채를 먼저 집어 먹고 있는데, 엄마가 슬쩍 고기를 집어 나 있는 쪽으로 놓는다. 같이 먹자는 의미다. 어제 같이 사 온 밤맛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면서, 오늘 저녁은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면서 투덜투덜. 그래도 젓가락질을 멈추지는 않는다. 맛있으니까. ^^

 

일상의 많은 날에서 종종 엄마와 이런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집 앞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씩 먹고 오거나, 영화 <겨울왕국>을 보자는 엄마의 말에 더빙판을 예매하거나(엄마는 자막 읽기 힘들다면서 한국 영화나 애니메이션 더빙을 선택한다), 저녁 하기가 귀찮다면서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씩 입에 물고 걸어오거나, 집 근처 기찻길 주변을 돌면서 운동이라고 우기거나... 생각해보면 너무 소소하다. 엄마가 자식에게 바라는 건 참 많을 테지만, 사실 나는 엄마의 기대에 맞는 결과를 내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게 언제나 미안하면서도 너무 익숙하다. 엄마니까, 엄마는 자식의 부족한 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줘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언제나 지켜보면서 또 기다려줄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또 그렇게 믿어왔다.

 

 

그게 언제까지일까? 내가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엄마가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고, 엄마가 우리 형제들 보면서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우리가 사는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아는데도, 자꾸만 착각하게 된다. 현재 상황에 핑계를 대고 안주하면서 기다려주는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미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떤 순간이 다가오고 후회를 하겠지. 그때는 이미 늦을 테지만, 어리석은 나는 또 그걸 모르고 계속 지금만 보고 있겠지... 우와노 소라의 소설에서 단편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읽으면서, 어리석은 자식의 모습을 또 한 번 보게 됐다. 아마도, 어쩌면 나도 가즈키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가즈키의 열 살 생일날, 눈앞에 이상한 숫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어머니의 요리를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들었다. 이상하다. 다른 때는 아닌데,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을 때만 숫자가 줄었다. 가즈키는 숫자가 0이 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눈앞의 그 숫자는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을 때만 줄어드니까, 언젠가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이 그 숫자를 다 채우게 된다면 더는 어머니의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계속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다. 어머니가 안 계시게 되는 상황이 올 거고, 더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지 못하게 된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가즈키는 결심했다. 더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지 않기로, 더는 눈앞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게 하기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안 먹어? 엄마가 얼마나 서운해 하시겠니?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다고 그러는 거야?!’ 한집에 살면서 서로 다른 상차림으로 밥을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말할 수가 없다. 가즈키는 아예 집에서 밥을 먹지 않거나 밖에서 사먹곤 했다. 그러다가 집을 떠나서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을 하고서도 집밥을 절대 먹지 않았다. 숫자는 328에서 줄어들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 다짐이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가즈키에게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이렇게 할 거라고 다짐하면서도, 가까운 곳에서 맡아지는 엄마의 집밥 냄새를 이겨내야만 했다. 그리웠다. 엄마의 집밥도, 엄마의 표정과 따뜻한 말도. 하지만 본가에 갈 수는 없었다. 갈 때마다 음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은 의외의 결말로 후회와 눈물을 만든다. 설마 그런 상황이었을 줄이야. 왜 한 번도 그런 경우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결말은 잔인했다. 가즈키에게 땅을 치고 후회할 상황을 만들어버린 작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왜 우리는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를 아프게 하는지 가슴을 치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것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 영원하지 않은 시간을 조금 더 아껴두고 싶은 마음을 후회하게 하는 거다.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은 안 되니까’가 아니라, ‘형편이 곤란하니까’가 아니라. 오직 지금만이 가능한 것을 눈앞에서 확인한 기분이다. 자꾸만 미루다가는, 조금 더 있다가 할 거라는 핑계가 더는 통하지 않은 거였다. 가슴이 알싸했다. 식상하지만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새기게 한다. 가즈키의 선택의 결과는 후회였지만, 후회 그 후의 일상은 다시 소중함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엄마, 집으로 갈 테니까…… 뭐라도 좀 만들어줘.”

“뭐라도, 라니……. 언제?”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뭐, 뭘 먹고 싶은데?”

“뭐든지 좋아.”

“…… 그래서, 뭘 먹고 싶니, 가즈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 - 42~43페이지)

 

이상한 카운트다운을 마주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들 비슷했다. 비슷한 선택으로 비슷한 상황을 만든다.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벅차서 일상의 소중함 따위는 잊고 지낸 지 오래일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일에 있을 그 끝을 상상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푸근한 냄새를 풍기는 엄마의 집밥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뭉클했다. 만약 우리 인생에서 무언가가 남은 횟수가 보인다면, 그게 엄마에 관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무 잘 알고 있는 답마저 당황해서 제대로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런 감정적인 이야기에 찬물을 끼얹듯 보다 현실적인 엄마의 이야기를 하는 게 케스터 슐렌츠의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이다. 갑자기 쓰러진 엄마 때문에 형제들의 일상은 변한다. 엄마를 모실 병원, 비용을 처리할 보험, 치료 후 돌봐드려야 하는 요양원 등을 거치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거기에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엄마의 변덕과 괴팍한 성격은 덤으로 감당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게 엄마라는 걸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항상 우리를 돌봐주는 엄마였는데, 언제 엄마가 우리가 돌봐드려야 하는 대상이 된 거지? 그게 언제였든, 현실은 현실이다. 저자와 형제들에게는 엄마를 돌봐야 하는 현실만이 남아있었다. 언제나 든든하게 나를 돌봐주고 내 삶의 기둥이었던 엄마가, 이제는 내가 돌봐드려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경험하긴 했지만, 저자가 겪은 시간을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이 글을 마주하니까 막연하게 생각하는 그 순간이 생생해진다. 언젠가 엄마가 거동이 불편해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이 힘들어지고, 병원에 드나들고 요양원에 머물러야 할 시간이 많아진다면, 나는 그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저자 역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을 마주하면서 당황한다.

 

 

케스터 슐렌츠가 엄마를 돌보며 작성한 이 책은 엄마를 떠올리면서 감성적이 되기 쉽고, 부모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 따라오는 일상이 변화를 현실적으로 제시한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기에 앞서 현실에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을 언급한다. 우리가 비켜갈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갑자기 닥친다면 더 당황하겠지만, 언젠가는 닥칠 거라고 생각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일이었던 거다. 혹시나 아프게 되면 병원에 모셔야 할 상황, 그때 간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퇴원 후 돌봄은 어느 시설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후로도 계속되는 돌봄 상황에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복지제도가 한국보다 잘 되어있다는 독일에서도 이런 경우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국가가 해주는 것보다 개인이 준비하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거다. (물론 다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저자의 엄마는 잘 치료 받고 적당한 요양시설을 선택해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 과정을 보고 있자니 적나라한 현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웃프더라. 이미 겪어본 일이라 그런지 저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한국과 독일은 아주 다를 줄 알았다. 각자 독립된 생활을 일찍 시작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간섭보다는 독립된 인격의 관계로 유지되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노년의 부모를 걱정하고 어느 부분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건 비슷했다.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형제들이 모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의논한다. 각자 역할 분담을 하면서 같이 처리해야 할 문제인 거다. 저자는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이나 요양 시설을 알아보거나 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저자의 남동생은 경제 관련 처리와 계산하는 일을 담당했다. 물리적으로 멀리 있는 저자의 누나는 엄마와의 정신적인 교감을 이루려 노력했다. 이상하게도, 엄마가 아프니 형제들이 모이거나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우리 아버지 편찮으셔서 병원에 드나들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겪은 것과 너무 똑같았다. 우리도 그랬다. 문제가 터지니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고,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남동생이나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이런 저런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집안의 우환이 생기는 건 걱정이지만, 이런 일이 생기니 형제들 사이에 관계는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참나...

 

흔히 부모가 나이 들어간다는 서글픔을 언급하면,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말한다. ‘더 늦기 전에...’라는 이유로 감정적인 부분의 해결을 먼저 생각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의미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준비하게 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노부모에 관한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노부모를 돌보는 일은 때로 가혹하고 냉정한 현실이라는 것. 노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게다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24시간 곁에서 돌봐야 하고, 실제로는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다. 그러다가 요양병원을 찾게 되는데, 그렇다고 요양병원이 최고의 답은 아니다. 자식이 있는데 요양 시설에 모셔도 되는지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비용도 발생한다. 그래서 노부모를 돌본다는 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감정적인 것보다, 조금은 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늙고 거동이 힘들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현실적이고 금전적인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두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혼자 남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책보다는 걱정만 앞선다. 어느 정도 예상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닥친 엄마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겁부터 난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노부모에게 일어나는 문제와 그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부딪힘이 그대로 들려왔다.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해결 방법은 다를지 모르지만, 저자의 경험담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내가 이미 경험해서 그런지 공감된 부분이 많다.

 

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유방암, 엄마의 늙음. 이 모든 일을 계기로 나는 나의 늙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 58세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이렇다 할 불만이 없다. 나 역시 중년의 위기를 겪었지만 잘 이겨냈고, 26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건강하고 멋진 아들이 둘이나 있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직업도 만족스럽다. 뭘 더 바라겠는가. 글쎄, 나는 무엇을 더 바랄까?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모든 것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 사진과 지금 거울 속 나를 비교해보면, 시간의 톱니 자국이 확연히 보인다. 주름진 거친 얼굴과 축 처진 눈 밑 지방이 정말 내 것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 203페이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부모의 늙음을 외면하지 말고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의 늙음과 병듦은 점점 비극적인 상황으로 흘러가겠지만, 그렇다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이 책을 통해 그 모든 상황을 한 번씩 시뮬레이션해 보고 언젠가 닥칠지 모를 순간을 준비할 수 있기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해결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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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5 0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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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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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5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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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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