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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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좀 부담스럽죠?

이렇게 대놓고 물으니 순간 말문이 막힐 것도 같습니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생각하며 읽어야 해요.

그래서 단 한 마디라도 그 대답을 찾았다면 이 책은 내 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오래된 책이죠. 1930년대 후반에 기획되어 출판되었으니 거의 80년이 넘은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아직도 여러 사람들이 읽고 공부하는 책이라면 그만한 비밀이 있는 것이라 믿어요. 일단 믿고 읽어보는 것도 중요해요.

1930년대는 일본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힘을 끝없이 뽐내려했던 시대죠. 거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였죠.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오랜 전쟁으로 힘들었을 때죠.

전쟁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은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글을 쓰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본 청소년들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책을 기획하게 됩니다.

이 책도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죠.

이 책은 구성이 재밌어요. 소설 같은 구성이지만 다루는 주제는 철학입니다.

중학생인 주인공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와 함께 삽니다.

아버지 역할을 삼촌이 대신하는데, 삼촌이 조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 형식의 글로 남기는군요.

코페르가 일상 생활에서 느끼고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궁금해 하는 것들을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고 삼촌은 코페르의 생활을 철학적으로 해석해 줍니다.

삼촌은 조카에게 많은 문제들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우선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경험, 체험, 생각, 깨달음 등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해라

나폴레옹은 영웅일까?

고마움은 무엇일까?

생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공부는 왜 해야하는가? 등등.

어때요? 이 책이 이런 질문을 하고 삼촌이 조언을 한다면 한 번 읽어볼만 하지 않을까요?

어려워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삼촌이 질문만 하고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게 아니라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어요.

대신 독자가 눈여겨 읽어야 삼촌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요.

코페르의 삼촌이 나의 삼촌이라고 상상하고 들어보세요.

나에게도 코페르 삼촌같은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독자가 있을거예요. 저는 그랬어요. 어른도 모르는 게 많거든요.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지도 같은 삼촌이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헤맬 때 큰 도움을 받죠.

저는 생산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을 했어요.

날마다 뭔가를 쓰는(소비) 삶은 살지만 그 소비가 생산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하니까 불만스러워요.

생산을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생산이고, 학원에 가서 열심히 보충하는 것 또한 생산이죠.

친구들과 신나게, 깊게, 아름답게 사귀고 노는 것도 생산이라고 봐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학원비 내고(소비하고) 아무것도 얻는 게(생산하는 게) 없다면 억울하겠죠?

이 책을 읽고 만약 요시노 겐자부로 아저씨가 묻는 말에 하나라도 대답을 찾았다면 그게 바로 생산하는 것이라는 말씀!

그러니까 독서는 생산하기에 딱 좋은 행위가 맞아요.

미처 다 읽지 못한 채 이 책을 들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기를 바래요.

혹시 이 글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다면,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오래전에 세상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읽을만한 책이라고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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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염바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5
이세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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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먹염바다>도 여름 끝무렵에 사놓고는 가을 끝에야 읽는다.

바다 가까이 살았지만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 좋은 곳이지, 생활의 바다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잘 모른다. 태생이 강원도 산골이라 고등어 자반을 생선으로 알고 자랐다.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에도 벅찬 대상이었다.

 

그런데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가 들렸다.

굴봉 쪼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고, 검은 바다 위에 쏟아지는 눈도 보이는 것 같다.

바다 곁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은 낯설지만 몰라도 그만이다.

한반도 서쪽 어느 곳 거기 안도현 시인의 <북항>에 눈이 내리고 있다.

 

시를 읽으니 때가 낀 유리를 빡빡 닦아낸 기분이 들어 좋다.

맑아졌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 보았다.

 

최원식의 해설은 시같다고 생각하며 이런 해설도 있구나 감동하며 읽었다.

최두석 시인과 박영근 시인의 표지 해설은 읽어 본 해설 가운데서도 가장 정확하다.

시인을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과 시를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런 속깊은 글을 쓰지 못하리라.

 

그 맨 처음이 시들이다.

시와 해설과 표지 글이 있어 비로소 <먹염바다>가 되었다.

외우고 싶은 시 한편을 얻었다.

 

 이번 겨울만큼은 부디 사그라들지 말거라 개오동나무야 하니

 

 그러마 한다.

 

 할머니 감자탕집 뒷간 지키는 강아지도 그러마 하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그러마 한다

 

 꾸벅꾸벅 조는 할매야 미안타 영하까지 내려온 이 한밤 녹아내리는 한밤인데

 

 한 잔 더 묵자 할매야 하니

 

 그러마 한다

 

 흐릿한 유리창 밖 네거리 싸락눈만 내리고

 

<싸락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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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 -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이재복의 옛이야기 교육서
이재복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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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혹은 옛이야기가 아동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원종찬의 말을 기억한다. 그가 내세운 근거는 근대 이전에는 아동기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당연히 그들을 위한 문학, 혹은 이야기가 따로 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이 책은 옛이야기, 혹은 신화가 아이들에게 유용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옛이야기나 신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상징하는 것이다.

옛이야기나 신화가 지금도 읽히는 것은 이야기나 신화가 담고 있는 상징 때문이다. 그 상징은 한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힘과 같다.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통해 감성을 배우고, 옳고 그름을 알며 지혜를 배운다.

 

저자가 옛이야기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꿈이다. 꿈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꿈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해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꿈이 옛이야기가 되고, 옛이야기는 꿈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대신 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아이들이 꾸는 꿈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다. 꿈이 그 아이의 심리상태나 현재 상태를 알려주는 메시지라는 것. 독자가 무의식이나 꿈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옛이야기나 신화는 옛 사람들의 내면을 드러내 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일종의 경전과 같은 의미가 있다(134).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말문학이기 때문이다. 말문학이 갖고 있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 가능하다.

옛이야기나 신화가 글문학이 아니라 말문학이라는 것은 중요한 차이다. 지금 다시 만들어 지는 이야기가 글문학이 아니라 말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책이 현실적으로 나에게 유용했던 것은 을 적어보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꿈을 적어보고 앞뒤 문맥이 통하지 않는 미완성 꿈이 갖는 의미를 해석해 보는 일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이렇게 꿈을 적어보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다보니 옛이야기의 환상성이나 신화의 비현실성이 이해가 된다. 나처럼 판타지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 작업이 효과가 있다.

판타지는 상징이라고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꿈을 적어보고 해석하고 생각하다보면 그 말에 동의하게 된다. 나로서는 판타지에 대해 갖고 있던 이질감을 약간이나마 벗어낼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다.

 

옛이야기는 그것이 담고 있는 상징, 혹은 의미 해석이 중요하다. 옛이야기를 즐겼던 층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유통시키고 얻고자 했던 것이 이야기를 즐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이야기 하나가 단순히 재미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유통 된 것이 아니라는 것.

옛이야기와 같은 내면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진실의 세계를 드러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인과관계의 합리적인 사실성보다는 인물들이 드러내는 욕망(행동의 세계관)의 진실성에 더 무게 중심이 두어질 수 밖에 없는 거지요.”(206)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덮었다 벗었다 하면서 보았던 전설의 고향이 떠오른다. 마지막 해설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 이야기가 하고자 했던 뜻이 정리되고는 했다.

그렇게라도 이야기가 전승되었는데, 지금은 말문학으로서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무릎 배고 옛날 얘기해달라고 할 할머니도 없다. 글은 많아졌는데 이야기로서의 말은 부쩍부쩍 줄어들고 있다.

앞 세대가 뒷 세대에게 전해 줄 말이 없다는 것이다. 해줄 말이 없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문제구나 싶다. 줄어든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을 무엇이 채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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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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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이라고는 하지만 실린 글들은 이미 20여 년 전에 발표되었던 글들이다.

오래된 글이다. 그러나 권정생의 문제의식이나 그가 안타까워했던 농촌 현실은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 쓴 글인가 다시 들여다 본 것도 아마 바로 오늘 쓴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권정생이 안타까워 하고 속상해 하고 불쌍해 하는 모든 일들이 지금도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접하고 있는 일들인 까닭이다.

권정생이 생전에 그토록 염원했던 것이 나라의 통일인데, 요며칠 NLL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모든 일들이 잊혀질 새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도 남북이 갈라져 사는 까닭이리라.

 

권정생 글이 재미있는 것은 그가 더러 고스란히 옮겨 놓는 안동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거나 거기 담긴 입담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시골 할머니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말하는 지 알고 있다. 그 할머니들과 한나절만 밭에서 함께 김을 매보면 안다.

고등학생일 때, 엄마 품앗이로 동네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 김을 매던 때가 있다. 일은 서툴고 도저히 그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엉덩이를 쳐들고 김을 매는데, 그 아주머니들이 주고 받는 말에 웃느라 내 밭고랑만 저만치 뒤쳐졌다. 그래도 누구하나 왜 일을 그렇게 못하는가 타박하지 않았다.

 

했니더혹은 했니껴와 같은 독특한 끝말은 내 아버지도 살아 생전에 더러 썼던 말이다. 그것이 안동 지역말이라는 것을 권정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강원도 산골에 살던 아버지가 어찌 그 말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염무웅도 발문에서 썼듯이 권정생은 사상가가 아니다. 사상가가 아니라서 그가 속상해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쉽다.

책상 앞에 앉아서 터득한 것이 아니고 온 몸으로 겪어내고 깨달은 일이라 그가 전하고 싶은 말을 좀 더 잘 알아 듣는 것이다.

 

개발 논리로 망가지는 농촌과 자연, 돈의 노예가 되는 현실, 망가져 가는 교회, 비극적인 개인사, 전쟁 체험, 육체적 병이 주는 고통, 가난 등은 고스란히 우리 현대사다. 권정생 개인이 체험한 인생 역정이 그 세월을 겪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본 일이다. 그 모든 것을 다 체험한 사람이 권정생이고, 그래서 그가 보여준 삶이 감동인 것이다.

 

그가 어떻게 동화와 동시를 쓰게 되었을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오래 전부터 책을 읽어왔고 글을 써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썼던 글 때문이다.

이름을 얻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살고자 했던 일이다.

 

더러 들은 이야기가 비극적이고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과한 일인 듯하여 머뭇거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권정생이 그런 사람이다. 나하고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그가 여전히 올려다보기 쉽지 않은 이유는 그가 살아낸 삶이 감히 따라할 수 없을 만큼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낮고, 가난하고, 목숨 있는 것은 1cm 벌레도 죽일 수 없고, 골무만한 쥐도 제 방에 들어오면 함께 뒹굴고, 망가지고 파헤쳐지는 것을 못견뎌하고, 가난하여 굶어 죽는 것을 못견뎌하고, 나라가 갈라져서 할아버지가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사치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교회가 부자가 되는 것을 못견뎌하도록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과 전혀 다르게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에 눌리고 눌려 숨이 막히고 답답해도 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비겁한 말이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빌뱅이 언덕>을 내려오면서 내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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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사냥꾼 - 박물학자를 꿈꾸었던 국문학박사의 자연이야기
기태완 지음, 기성재 그림 / 보고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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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수줍은 곤충 사냥꾼!

지금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이 되어있겠지만 책 속이니까 나도 나이를 바꿔 네 나이가 되어보고 싶어. 친구 먹자는 얘기야. 괜찮지?

 

봄부터 겨울까지 일년 내내 너는 참 재미나게 지내는군.

별 놀이거리가 없었겠지. 그래도 사냥꾼은 좀 달랐던 것 같아. 전문가의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공부도 많이 한 것 같고. 남다른 눈을 가진 것 같아 부럽더군.

이 책을 읽으면 곤충 사냥꾼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너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 할 것 같아. 만약 어른들이 읽는다면 어린 시절 자기를 닮았다고 오랜만에 추억에 잠길거야. 아이들이 읽으면 당장 잠자리채를 들고 참나무 숲으로 가자고 할지도 모르지. 가까이 참나무 숲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 아이가 도시에 산다면 맥 빠질거야.

그만큼 곤충 사냥꾼의 생활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더군.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사냥꾼의 놀이였잖아. 놀이 같은 삶!

 

벌집을 건드렸을 때는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 했어. 황구렁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나도 소름이 돋았지. 나도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뱀이거든.

나도 밭에 가려면 산길을 걸어가야 했어. 그런데 그 길에는 뱀이 꼭 나타났지. 산 입구에 들어서면 돌맹이를 하나 보지 않고 뒤집어. 속으로 비는 거지. 오늘은 뱀을 보지 말게 해주세요. 효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뱀을 보지 않았지.

누가 뱀을 잡아 나뭇가지에 걸어놓으면 그게 말라 쪼그라질때까지 매달려 있어. 그 밑을 지나가려고 하면 그게 내 머리꼭지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후다닥 지나가야 했지.

아무튼 나는 뱀이 무섭고 싫어.

 

그나저나 너는 정말 곤충을 좋아했나봐!

나 같으면 좀이 쑤셔서 몇 시간 씩 개미 군대의 싸움을 들여다 보지 못할 거야. 사슴벌레를 사냥하는 법도 모르지.

사슴벌레를 사냥하고 기르면서 이것 저것 먹을 것을 갖다 바치는 사냥꾼 모습이 웃겼어. 사냥꾼 말처럼 처지가 바뀌었더군. 가재 잡는 데 개구리 뒷다리를 미끼로 쓰는 건 처음 알았어.

 

삼촌이 좋은 분이셨나 봐. 나는 삼촌이라고 부른 사람이 없어서 잘 몰라. 함께 토끼를 잡고 연을 만들어 날리는 삼촌이 있는 사냥꾼이 부러워지더군.

 

설마 곤충 사냥꾼의 이야기를 곤충 과학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절대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래. 이건 과학책이 아니라 이야기니까 말이야. 곤충을 지독히 사랑한 소년의 이야기. 그래서 곤충사냥꾼을 통해 자연의 이야기를 듣기를 바래. 소년과 자연이 어떻게 사랑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고 풍요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지.

나는 오랫동안 곤충 사냥꾼을 기억할 것 같군. 언젠가 참나무 숲에 갈 일이 있으면 저녁때를 기다려 나무를 한 번 흔들어 볼 생각이야. 도토리가 떨어져 있으면 그 주변도 한 번 둘러봐야겠지? 혹시 거위벌레가 드릴로 구멍 내는 걸 보는 행운이 올지도 몰라. 돋보기가 없어서 힘들까?

곤충사냥꾼이 나비잠자리라고 부르는 잠자리 있잖아. 책 표지를 꾸미고 있는. 어쩌면 그리도 매혹적인 날개를 가진 잠자리가 있을까!

우리 동네에는 나비 잠자리와 아주 조금 닮은 물잠자리가 있었어. 그 잠자리도 너무나 가볍고 재빨라서 손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지. 나도 잠자리를 제법 잡는데, 그 잠자리는 어찌나 도도한지 쉽게 잡히지 않아서 애 좀 탔어. 어쩌다 잡으면 전혀 느낄 수 없는 날개의 가벼움에 분명 손에 잠자리가 있어도 없는 듯. 까만 날개의 물이 손에 들까봐 약간 겁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

 

사실은 내가 살던 동네를 떠나 온지 오래 되었어. 잠자리를 잡으러 돌아다니는 꼬마들이 있기나 할까? 멱 감던 아담한 도랑도 진즉 없어졌지.

그래서 더욱 사냥꾼 이야기가 나를 안달나게 하는가봐.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놀이들이, 그 호기심이, 영영 추억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아무튼 곤충사냥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무척 행복했어. 수줍은 것 같으면서도 완전 날쌔고 치밀한 사냥꾼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모습도 놀라웠지. 넌 좀 멋있었어!

 

뭐니 뭐니 해도 곤충 사냥꾼이 말한 그 많은 곤충을 사진이 아닌 손그림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 사진보다도 훨씬 생동감이 느껴지더군. 멋진 동무를 두었나봐.

 

더 긴 이야기를 나눌려면 아마 너를 만나야겠지? 그럴 수 없으니까 이쯤에서 마음을 접고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 생각나면 책을 들쳐보면서 사냥꾼을 불러볼게.

수줍은 곤충사냥꾼! 널 만나서 반가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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