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학의 자리 - 경계의 문학, 소통의 문학, 청소년문학을 말하다!
박상률 지음 / 나라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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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청소년은 경계의 존재라고 했다. 아동과 성인의 중간 위치, 이도저도 아닌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실체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청소년 문학 혹은 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는 문학 등이 과연 제대로 청소년의 현실을 다루고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읽었던 청소년 성장 소설이 저자의 걱정대로 몇 가지 주제로 장르화 되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학업, 외모, 장래, 성 등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성장이라는 핵심에 치중하다 보니 모두들 그 과정을 극복하는 결과가 비슷했다.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인물들이 단순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대부분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생각해 보니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빚어진 현상 같기도 하다. 현실의 청소년들은 과연 소설속 아이들처럼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는가 궁금하다. 그들의 삶을 잘 모르는 채 책만 읽는 독자의 한계다.  

문학(성장소설, 청소년 소설)이 위로가 되고 인식의 힘을 키워주는 일을 지금 우리 청소년 문학은 잘 하고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저자는 출판 시장이 청소년 문학으로 상업적 이득을 보고자 덜 된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걱정하는데 공감한다.  

본격적인 청소년 문학 비평을 기대하고 책을 골랐다. 하지만 본격적이리라는 기대에는 못미친다. 비슷한 주제로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이 묶여져 동어 반복의 인상이 짙다.  

하지만 청소년 문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있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책읽는 자세와 책 고르는 일의 중요성, 특히 청소년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기성세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문학은 여전히 현실의 반영이다. 청소년의 현실을 담아야 하는 것이 청소년 문학이다. 앞으로는 좀 더 예민하게 청소년 문학, 혹은 소설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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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6
이홍섭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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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며, 생김새며, 기다란 손가락 까지 알고 있는 사람의 시를 읽는다. 읽는 사람은 나지만 목소리는 시인의 것이다. 그래서 더 잘 들린다. 물론 그 내막을 알 수 없는, 심연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먼 시도 있다. 아는 사람의 시를 읽는 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의 자리를 가늠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이홍섭 선배의 시가 왜 이리 아프고 서럽고 쓸쓸한지 모르겠다. 그 사이 아이를 얻어 그 아이가 '지누아리'를 좋아하는 일곱살배기로 컸구나. 반갑고 기쁘다.  시인을 아비로 둔 아이를 생각해보았다. 곱고, 연하고, 선하고,  툭하면 울것도 같고, 그러다 생각하지도 못한 장난을 치기도 할 것 같다. 만약 아버지를 닮았다면. 그래서 나는 열심히 아이가 등장하는 시를 찾았고 그 시들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좋은 시가 뭔지, 시가 뭔지 이제는 그것도 가물가물해졌지만 이홍섭의 시를 읽는 동안 쓸쓸하고 사랑스럽고, 살아있는 것이 고마운 일이고, 헤어지는 일이 슬프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일이 신기하면서도 아프고, 부모가 늙고 병드는 일이 나 또한 피해갈 수 없고 살아 생명이 다 귀하고 슬프고 애틋하다는 것을 '소름 돋게' 절실하게 느껴 진다면 나는 그런 시를 좋은 시라고 하겠다.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얼굴을 대면하지 못한 채 이렇게 간간이 들려오는 시집으로 소식을 접하겠다고 생각하니 이번에는 너무 오래 걸리지 말고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다.  

내가 떠나온 뒤로 영 너머 강릉이 허전하고 쓸쓸했는데 이제는 주인이 돌아왔으니 그 뜨락에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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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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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강준만 교수는 부지런하다. 그가 듣고 읽은 말, 글들은 그가 자신의 논리를 펴 가는데 요긴한 소재로 쓰인다. 언론학자로서 나는 그의 자세를 배우고 싶고 존경한다.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말에 모두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의 속살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게 그겁니다. 알려주고 깨우쳐 주었다.  

오래된 독자로서 한동안 그의 근황이 궁금했던 것은 그나마 한겨레에서 그의 글들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새 많은 일들이 있었나보다.  

<강남좌파>는 인물을 벗어나야 우리 나라 정치가 발전한다고 하면서도 정치가 인물없이 가능한가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의 정부에서 나는 희망을 찾을 수도 없거니와 더 절망적인 것은 그래도 믿고 따를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식대로는 스승이 없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최빈국의 농민들은 한끼의 식사보다 한 줌의 씨앗에서 삶의 희망을 본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찌됐든 각자 해결할 수 있다고 쳐도 살다가 앞이 캄캄해질 때 물음표하나 해결해 줄 희망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어쨌든 여러가지 불만이 생기는 <강남좌파>다. 생각을 논리적으로 쓸 재주가 없어서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강준만 교수가 박근혜에 대해 쓴 글에 대해서는 영 못마땅하다. 이런것이 그가 책에서 말하는 소통일까. 반대쪽에 있는 사람도 그 쪽에서는 이쪽도 반대라고? 왜 이렇게 무디어졌거나 두루뭉술해졌을까. 쏜 화살처럼 날카로웠다고 생각했던 강준만 교수의 글끝이 당황스럽다. 박근혜의 여성적 매력에 대한 부분은 도대체 박근혜가 정치인인가 싶기도 하다. 조국이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입길에 오른다고 들엇는데 조국의 외모는 마이너스가 되고 결혼도 하지 않은 박근혜의 섹시함은 플러스가 된다니 나는 도무지 어안이 벙벙하다. 박근혜의 정책 부재를 비판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상하게 부드럽다. 혹은 무디다. 강준만 교수가 이상하다. 

 학벌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생각이 가장 궁금했는데 그 또한 새로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김규항의 전언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부르디외의 주장을 요약한 부분이 있는데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의 유지와 강화에 기여한다." 같은 부분을 강준만 식으로 더 강화해서 비판할 줄 알았는데 그저 현상만 나열할 뿐이어서 애 키우는 엄마로서 가장 김빠지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책은 유행같은 거라고 하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깨우침 혹은 앎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강남좌파>는 깨우침보다는 확인의 과정이고 카타르시스 없이 피곤한 책읽기였다.  그래서 나는 별을 세 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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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싱 마이 라이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9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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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수의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을 읽으면서 작가가 굉장히 냉정한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 냉정하다는 것은 현실을 담되 감정에 치우치거나 손을 대지 않고 잘 담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니 답답한 현실을 가장 내밀하게 겪으면서 작가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지금 <키싱 마이라이프>를 늦게 읽으면서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두 남녀 아이가 좋아해서(사랑?!) 호르몬에 못이겨 서로 만지게 되고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고 결국 아이를 낳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하연이는 부모의 도움을 비롯해 어른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 미혼모가 되는 과정에서 기성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모습인가 싶어서 화가 났다. 하연이의 남자친구이자 아이 아빠인 채강이는 알바로 돈을 마련하고 여자친구 진아와 진아의 남자친구 현규 또한 미혼모 친구를 위해 학원을 가지 않고 알바로 돈을 마련한다. 끝까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연이는 미혼모를 도와주는 시설을 찾게 되고 출산을 한다. 소설은 여기서 끝이다. 정말? 정말이다. 여기서 끝이다. 그 사이 엄마가 알게 되지만 입양을 놓고 고민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입양을 할 지 말지, 학교문제, 채강이와 채강이 부모와의 문제 등 출산을 하기까지도 어려웠지만 출산 후의 문제를 열어 둔채 소설은 끝났다.  

그 많은 일들을 어찌하라고 이렇게 끝을 맺고 제목은 또 <키싱 마이 라이프>란 말인지.  내가 왜 결말을 꼬투리 잡고 싶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 소설을 어른을 대상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면 독자를 좀 더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한순간의 실수로 임신을 하고 가출하고 친구들의 알바 도움을 받으며 미혼모 시설에 의탁하여 아이를 낳고 입양하거나 직접 기르다가 또 어려워 다시 시설에 맡기는 현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 다음에 들이닥칠 어마어마한(좀 과장을 해야겠다. 양육은 이렇게 큰 문제다) 일들에 대해서는 어쩌라는 말인가. 공감을 끌어내고 이것이 우리 청소년의 현실이라면 이 소설은 누군가에게는 자기의 문제일 수도 있다. 청소년의 고민과 성장을 다루는 소설이라면 이런 식의 결말은 무책임하다는 판단이다. 일단은 출산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부터 진지한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혹은 지금은 그 순간에 좀더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해가 간다. 많은 미혼모들이 출산을 할 지 말 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 순간을 갖지 못한 채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시간을 보냈음을.  

아이를 낳고 기른 사람조차 이런 결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청소년들에게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책을 덮으며 그것이 나는 먼저 고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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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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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9학번이다. 80년대 맨 가장자리, 변두리에서 나는 그마마도 발 한짝 안으로 들여놓지 못한 존재다. 전교조 세대로 시작하는 90년대와는 질투로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지금은 그 무엇도 아닌 존재다. 지금 이 시간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있을가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걸로 봐서는 아마 소박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표백>을 읽으면서 아, 내가 결국 기성세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표백 세대들을 좌절과 절망, 혹은 완성된 사회를 유지하하는데 필요한 부품으로 그들을 이용하는 비정한 기성세대 축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가 청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면 <표백>은 현실의 개인들이 겪는 문제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말보다 힘이 있어서 좀더 진지하게 듣게 된다.  추리 소설의 형식까지 띄고 있어서 더 흥미롭다. 현역 기자의 글이라 군더더기도 없고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공간의 묘사는 리얼하다.

완성된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자살을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저항, 혹은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는 자살 선언의 요지는 분신이나 타살 보다 세련되었지만 그래서 더 모른척 하고 싶어지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어보여서 더 그렇다.  그렇게 까지 자신을 내세워야 하는 그들 세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을 그렇게 만든 기성세대 축에 끼어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완성된 사회에 끼어있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적이 없다.  

그들을 자살까지 하게 만든 원인이 해결 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7급 공무원 '나'의 삶도 눈물겨운 투쟁의 연속이라는 것도 아는 독자는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대로 그냥 계속 쭉 살아야하는 것인가, 한쪽에서는 스스로 사라지고 한쪽에서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들이 갔던 그 곳을 향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뭔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은 시간들,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널부러져 있는 사이 모든 일이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좀 체 따라주지 않는 행동이 엇박을 내면서 내 삶도 꼬이는 일이 태반이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가 보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흔 두살 전업주부가 할 수있는일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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