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첸 징검다리 동화 23
전경남 지음, 나오미양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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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은 동화, 청소년소설의 독자가 어린이,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들이어야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직접대화가 어렵다면 아주 늦어버리기 전에 문학을 통해서라도 말하고 듣는 일에 게으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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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소녀 - 2017년 우수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2018년 우수환경도서 선정작 출판놀이 삐딱하게 1
정성희 지음, 염예슬 그림 / 출판놀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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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연과 인간의 단절도 마음 아프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의 단절도 아프다. 주고받을 유산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는 일에 휘청거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근원이 가족이라는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희미해져서 거의 잊어버릴뻔한 이야기를 이 동화를 통해 다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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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 가는 길 큰곰자리 32
이승호 지음, 김고은 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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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아이들을 골리거나 놀려먹기 좋은 이유는 어린 아이들이 단순한데다 진지하기 때문일 거다. 아이들은 이기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 아주 조금의 동기 부여가 필요하고 어른들은 그 맥락을 기가 막히게 잘 안다. 그러니 동이나 동순이처럼 울면서도 당하고 무릎이 깨지면서도 당하고 노래를 열 곡 이나 부르면서도 당한다. 단 여기서 어른은 아이들에게 거는 장난의 정도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 휴일을 맞아 내기장기를 두고 싶은 아버지가 있다. 친구는 제법 멀리 떨어져 사는데 전화로 부를 처지가 아닌 모양. 아침밥도 먹기 전부터 막걸리내기 장기를 두고 싶은 걸 보니 여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방법은 아들에게 시키는 것. 가기 싫어도 한 살 아래 여동생이 가겠다는데 오빠 체면에 안 간다 할 수 없다. 여동생과 오빠 사이에 경쟁을 붙여 모종의 계획을 실현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에 오누이가 걸려들었다. 게다가 빚을 받아오라는 분명한 과제가 있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동생한테 방아깨비를 잡아줘야 하고 미꾸용이 사는 냇물 하나를 건너다 업은 동생을 냇물에 빠트리고 개구리가 참견을 하고 개 절뚝이 전생이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놀라는 것은 모름지기 여행-모험-과제 수행에 당연히 조건절들이다. 결정적인 것은 아버지 친구인 최 씨가 무섭다는 것. 아는 길이고 아는 사람에게 빚을 받아오라는 정도의 심부름은 적당하다. 안전한 과정이지만 과제를 수행해야하는 심부름이어서 이야기가 흐트러지지 않았으리라. 짧든 길든 집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행위를 통해 존재는 약간이라도 변하게 되어있다. 그게 길이다. 과제 수행의 최대 고비를 무사히 넘기까지 긴장과 응축의 과정은 이후 해소의 과정으로 즐겁게 풀어지면서 유쾌한 이야기가 되었다. 결과물은 풍성하다. 일단 빚을 받았고, 신선한 달걀을 얻었고, 오누이는 뜨끈한 형제애를 느꼈으며 잃어버린 구슬을 찾았고 폭탄에 가깝게 똥까지 쌌으며 맛있는 아침밥상을 마주했다. 뒤늦은 아침잠은 후식처럼 달콤하다. 게다가 용돈까지! 이 모든 것을 통해 얻는 것은 못 미더워하는 어른에게 자기 존재를 확인 시킨 데서 오는 뿌듯함 혹은 성취감일 것이다.

이야기의 구도는 익숙하다. 심부름을 가는 중에 세상 존재들이 변하는 것 또한 익숙하다. 임무는 훌륭히 해낼 것을 알기에 어떻게가 이 작품을 즐겁게, 새롭게 만들텐데 그게 바로 말이다. 이 작품에서 빛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실감나는 충청도 말이다. 그리고 두 어른과 두 아이. 의뭉스러운 어른들과 맹랑한 동순이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도 팽팽하고 싱싱하다. 동이는 동순이에 비해 덜 빠릿해 보이지만 지고 싶지 않은 고집이 제법 튼튼하다.

이 일요일 아침 잠깐의 소동이 그야말로 장기 놀이에 미친 두 남자 어른이 벌인 별짓이라는 게 가장 큰 재미다. 부인들의 눈총을 피해 좀스럽게 보이는 것도 마다않고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각자의 승리를 다짐하는 두 남자 어른, 그런 줄 까맣게 모르고 제 할 일을 용케 해내고 아침잠에 빠져든 두 꼬마 아이를 담은 그림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아무 것처럼 재미있다.

잘 들여다보면 그게 다 충청도 지역말이 꼬이고 풀리면서 빚어내는 풍경들이다. 여기 쓰인 말들을 교과서적 표준어로 바꿔보면 말맛이 확실히 다르고 나아가 이야기 맛도 다르다. 왜 교과서적 표준어는 재미가 덜할까. 말에는 그 사회의 정서가 담기는 것이고 그래서 말은 한 사회의 세계관을 담는다고 했겠다. 충청도 지역의 느긋함, 의뭉스러움, 눙치듯 느릿하지만 할 말을 다 하는 고집 같은 것들의 주체가 아이들이어서 즐겁다. 얼핏 어른들이 제 목적을 다 이룬 것 같으나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이 든 아이들이 어른들을 이겨먹었다는 것도 신난다. 텍스트 사이사이를 누비며 웃고 또 웃기는 그림들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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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달 문학동네 청소년 38
최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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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판타지와 다른 매력 중 하나는 합리적인 인과 관계로 독자를 설득한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 구달이 살고 있는 재개발 지역에 인체실험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인데 그것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적 사건이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 혹은 사람들이 들이미는 알리바이는 믿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알리바이와 충돌하고 그럴수록 이야기는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나아가며 긴장하고 쫀쫀해진다.

인체 실험 설계자와 가담자로 분류할 가해자가 한 축, 인체 실험 대상이 된 감염자와 피해자가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 그들의 비밀을 폭로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공직구와 구달이 다른 한 축이다. 감염자와 폭로자는 이웃, 연인, 친구라는 밀접한 관계로 얽혀있으므로 피해자는 폭로자를 돕고 폭로자는 피해자를 위해 목숨을 건다. 피해자와 폭로자들은 구체적이지만 가해자의 정체는 당연히 모호하고 가해자의 대리인 격인 의사만 겨우 등장하여 피해자와 폭로자 편에 서면서 끝내 가해자의 실체, 그들의 목적 등은 미해결로 남았다. 그 과정에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미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주 연민의 대상처럼 다가온다.

음모 혹은 비밀이 있고 폭로자가 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상들과 소홀하기 쉬운 세부까지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최영희의 장기가 아닌가. 사이사이 박혀있는 웃음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가볍게 띄우는 것도 마찬가지.

재개발로 곧 사라질 흔전동은 연결도로없음, 막다른 골목의 현실태로서 비정상적이거나 옳지 못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기에 적당하다. 대부분 빠져나간 그곳에서 최후까지 남아 사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예의는 필요치 않으니까.

노름빚에 떠밀려 딸을 버리고 사라진 구종대를 아빠로 둔 구달이나, 소모품으로 쓰이고 마는 구직자 공직구가 폭로자로서 한 팀이 되는 건 그들이 최후의 사람들이기에 자연스럽다. 문학의 감동은 여기에서 생겨나기 시작한다. 끝이라고 생각한 것들에서 새롭게 싹트는 무언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연결도로 없음의 골목 그 자체로 보인다. 그들이 피해자와 조력자, 폭로자로 뭉치면서 빚어내는 소리가 구달을 통해 드러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을 짝 지워 놓음으로써 생겨나는 불협화음의 즐거운 맛을 아는 작가답게 구달을 중심으로 박 집사와 은혜 점집 보살, 공직구와 구달, 공직구와 최주아, 구달과 강문, 보름내과 원장 등 흔전동 남은 사람들을 모두 불러낸다.

그들 모두는 곧 헤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관계지만 끝내 그들을 그러잡는 건 구달이 갖고 있는 한때의 기억들이다. 그 기억의 힘으로 구달은 흔전동 연결도로 없음을 연결하며 끝내 그들을 구해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막막할수록 한때의 기억은 눈물겹도록 소중한 것이고 그 기억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의 관계는 막다른 골목에서도 돌아 나올 수 있다.

구달 또한 실험 대상자였으나 감염을 이겨내고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구달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하나를 제시하는데 그것이 청각이다. 특별한 능력은 때로는 그 자신을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구달은 드디어 그 능력을 제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누군가를 구하고 돕는 일에만 자신의 능력을 쓰려고 하는 구달이어서 기특하고 끝내 서로를 향한 관계의 기억을 놓지 않는 인물들이어서 갸륵하다.

실험자들이 또 하나의 심장을 키우고 수거해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유를 감춘 실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은밀히 진행 중일 것이라는 상상은 재밌다.

이 작품은 글을 쓰는 작가의 감각, 그 감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문장, 그 문장을 읽고 작가의 감각을 전달받을 수 있는 글 읽는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삼각관계가 원활할수록 작품 몰입도의 즐거움은 커질 것이다.

그러니까 청각에 집중했을 때, 온 몸이 청각의 기능체가 되는 과정과 소리가 육화되는 상황 묘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가가 분명 또 다른 감각이 열리는 체험을 직접 겪어봤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만큼 치밀한 묘사를 가능케 한 문장은 인상적이다.

관계를 지탱하게 만드는 한 때의 추억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함께 넘어 준 사람들과 그들에 관한 기억이기에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하다. 그런 기억의 소환이 이 작품에 온기를 더한다. 그것은 수많은 소리 중 달이가 선별해서 듣는 소리일테고 온 몸으로 듣는 소리일 것이다. 온 몸으로 소리를 듣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극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고 제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조금은 편안하게 덮을 수 있는 것은 사건이 일단락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가능성의 존재들이기에 습관적인 희망 같은 낭만적 결말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곳까지 몰려버린 존재들이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나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약간의 해방감이 달콤하고 그 기억으로 또 얼마간 살아갈 힘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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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서다 -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 아름다운 청소년 15
김소연 외 지음 / 별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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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의 시간적 나열인 역사가 문학이 되려면 자연적 시간을 해체해야할 것이다. 일반화되기 이전의 개별성을 회복하는 것. 역사로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빼앗긴 개별성과 구체성을 되살려놓아야 비로소 문학이다.

광장에 서다는 해방 공간부터 2016년 촛불 광장에 이르는 7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아우른다.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뜨끈한 시간인 것은 이 시기가 불가역적인 자연 즉 역사로 확정되었다기보다 복원하고 보완해야 할 살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은 당대 사람들이다. 기록되었거나 기록되려는 시간을 무너뜨리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별과 구체를 더 많이 시간의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시간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집에서 특히 개별과 구체만이 문학의 일이라고 말함으로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들은 이렇다.

해방 이후 이념 대립으로 시계제로였던 서울 풍경을 그린 김소연의 손거울은 어제까지 제국의 아들이었던 일본인 소년의 시선이라는 개별, 90년대 대한민국을 심장마비 상태로 몰고 간 외환 경제 위기를 다룬 주원규의 내 친구 종현은 그야말로 무수한 개별 중의 개별, 동학농민혁명, 4.19 학생 혁명, 5.18 광주시민혁명을 이을 민중혁명으로서의 촛불시민혁명을 다룬 점 하나는 지리적(창원), 신체적(여고생), 사회적(대학포기자)으로 비주류 혹은 주변 인물인 여고생이라는 개별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쪽자리 독립이라는 정치적 한계와 그에 따른 극심한 혼란, 이후 이어질 분단비극과 친일파청산의 실패를 하필이면 어제까지 제국이었던 (일본은 대신하는) 겐타로의 시선은 낯설지만 감정을 걷어내고 사건을 들여다보는 데 효과적인 설정이다.

외환 경제 위기는 더 많은 개별들이 수집 될 필요가 있으며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뻔한 실패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종현이와 친구들이 멈춘 기계를 돌린다는 것은 아버지들의 자명한 좌절에 그의 아들들이 보내는 응원일 것이다. 낭만적이지만 어떻게든 절망에서 돌아오려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인간만의 생래적 특성이다. 역사적 시간의 바탕은 개별적 존재들의 구체적 실천들일 것이다.

촛불 광장의 이야기는 아직 그 날들의 열기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고 그 결과를 목격하고 체험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개별의 순간들이고 더 많은 개별들이 수집될 필요가 있다. 점 하나의 생동감과 감동은 동시대적 감각에 우리가 거의 무방비로 동일화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영희는 특유의 지방 언어적 감각과 유머로 가장 외부 혹은 가장 먼 바깥에 오하나라는 강력한 개별 중심을 만들었다.

서울 광화문은 다만 표면적 중심이었을 뿐이다. 그곳은 무수한 중심들의 집합소였고 중심들로 인해 더 큰 중심이 되었다. 그날 거기 모인 우리들은 모두 개별적인 중심들이었고 그 경험이야말로 중요하다. 노동자, 비정규직, 대학포기 여고생, 늙다리 할아버지가 희미한 점이 아니라 저리도 밝은 빛이었다는 자각은 촛불 광장이 낳은 소중한 유산이다. 시간(역사)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중심들의 다짐도 의미심장하다.

개별과 구체로 시간을 해체한다는 것은 부분으로 전체를 보게 한다는 문학의 전략이다. 이미 드러난 것을 개별과 구체로 다시 보게 하는 것, 달의 뒤편을 봐야 달이 온전해지는 것처럼. 시간을 따라 달리지 말고 시간을 멈춰 세우는 것, 역사소설의 윤리적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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