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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서다 -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 ㅣ 아름다운 청소년 15
김소연 외 지음 / 별숲 / 2017년 5월
평점 :
사건들의 시간적 나열인 역사가 문학이 되려면 자연적 시간을 해체해야할 것이다. 일반화되기 이전의 개별성을 회복하는 것. 역사로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빼앗긴 개별성과 구체성을 되살려놓아야 비로소 문학이다.
『광장에 서다』는 해방 공간부터 2016년 촛불 광장에 이르는 7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아우른다.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뜨끈한 시간인 것은 이 시기가 불가역적인 자연 즉 역사로 확정되었다기보다 복원하고 보완해야 할 살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은 당대 사람들이다. 기록되었거나 기록되려는 시간을 무너뜨리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별과 구체를 더 많이 시간의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시간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집에서 특히 개별과 구체만이 문학의 일이라고 말함으로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들은 이렇다.
해방 이후 이념 대립으로 시계제로였던 서울 풍경을 그린 김소연의 「손거울」은 어제까지 제국의 아들이었던 일본인 소년의 시선이라는 개별, 90년대 대한민국을 심장마비 상태로 몰고 간 외환 경제 위기를 다룬 주원규의 「내 친구 종현」은 그야말로 무수한 개별 중의 개별, 동학농민혁명, 4.19 학생 혁명, 5.18 광주시민혁명을 이을 민중혁명으로서의 촛불시민혁명을 다룬 「점 하나」는 지리적(창원), 신체적(여고생), 사회적(대학포기자)으로 비주류 혹은 주변 인물인 여고생이라는 개별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쪽자리 독립이라는 정치적 한계와 그에 따른 극심한 혼란, 이후 이어질 분단비극과 친일파청산의 실패를 하필이면 어제까지 제국이었던 (일본은 대신하는) 겐타로의 시선은 낯설지만 감정을 걷어내고 사건을 들여다보는 데 효과적인 설정이다.
외환 경제 위기는 더 많은 개별들이 수집 될 필요가 있으며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뻔한 실패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종현이와 친구들이 멈춘 기계를 돌린다는 것은 아버지들의 자명한 좌절에 그의 아들들이 보내는 응원일 것이다. 낭만적이지만 어떻게든 절망에서 돌아오려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인간만의 생래적 특성이다. 역사적 시간의 바탕은 개별적 존재들의 구체적 실천들일 것이다.
촛불 광장의 이야기는 아직 그 날들의 열기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고 그 결과를 목격하고 체험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개별의 순간들이고 더 많은 개별들이 수집될 필요가 있다. 「점 하나」의 생동감과 감동은 동시대적 감각에 우리가 거의 무방비로 동일화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영희는 특유의 지방 언어적 감각과 유머로 가장 외부 혹은 가장 먼 바깥에 오하나라는 강력한 개별 중심을 만들었다.
서울 광화문은 다만 표면적 중심이었을 뿐이다. 그곳은 무수한 중심들의 집합소였고 중심들로 인해 더 큰 중심이 되었다. 그날 거기 모인 우리들은 모두 개별적인 중심들이었고 그 경험이야말로 중요하다. 노동자, 비정규직, 대학포기 여고생, 늙다리 할아버지가 ‘희미한 점이 아니라 저리도 밝은 빛’이었다는 자각은 촛불 광장이 낳은 소중한 유산이다. 시간(역사)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중심들의 다짐도 의미심장하다.
개별과 구체로 시간을 해체한다는 것은 부분으로 전체를 보게 한다는 문학의 전략이다. 이미 드러난 것을 개별과 구체로 다시 보게 하는 것, 달의 뒤편을 봐야 달이 온전해지는 것처럼. 시간을 따라 달리지 말고 시간을 멈춰 세우는 것, 역사소설의 윤리적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