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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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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귓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 <폭> 전문

 

 

주부로 살면서 절실한 것은 내 말을 하고 싶은 상대다.

남편 흉 말고, 아이 비교 말고, 시댁 갈등 말고 오로지 지금의 나와 너 얘기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 주부의 사회적 관계망은 학교와 같은 반 엄마들, 혹은 학원에서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 그 핵심에는 아이와 엄마 혹은 학(부)모가 있을 뿐, '나'는 늘 흐릿하다.

 

그래서 '등대 연필'로 수십억 년이나  팽팽하게 바다의 폭을 재고 있는 수평선의 시적 허용을 공감할 상대를 만난다는 일이 더없이 감사할 일이 되는 것이다.  이 시집은 내가 한없이 흐릿해져 가던 시절, 그야말로 우연히 내게 온 그녀가 선물로 주었다. 안도현의 목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이중주로 들려오는 책읽기가 되었다.  

 

 이 시집을 내게 준 그녀와 아직 이 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을 갖지 못하였다. 아줌마의 무딤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녀를 만나면서 내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녀를 통해 늘어진 내 삶의 고무줄이 한줌은 당겨졌음을,  안도현의 시집을 함께 읽을 책 동무로 나를 초대해 준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이글을 쓴다.

 

 손으로 만든 것 같다는 안도현의 이번 시집은 그래서 조금 힘주어 펼치면 책장이 후루룩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다. 하여 더 조심하게되는데, 투박한 느낌이 말만큼이나 새롭다. 20년 전, 열심히 시집을 사보던 젊은 시절의 책을 다시 만나는 것 같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여러번 웃었다. 여러번 눈을 비볐고, 여러번 놀랐고, 여러번 기뻤고, 여러번 미안했고, 여러번 민망했고,  여러번 좋았다. 잠시 결별했던 것 같은 시를 다시 만난 것이 가장 크게 기뻤다.

 

눈이 밝지 못한 나같은 독자에게 시는 좋은 것과 모르는 것 두 가지다. 시인이 하는 말을 알것 같으면 좋은 것이고, 도무지 잡히지 않는 시는 모르는 것이다. 표제작인 <북항>은 그래서 여러번 읽어야했으나 여전히 '부강'이라고 말하는 '너'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 시의 속살을 전혀 보지못해서 시집을 덮고 나서 가장 낯선 시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을 읽고 나서 감히 한동안 다른 시들은 좀 싱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시적 상상의 폭이 넓고 깊었다.  크고 작은 것 사이의 넒나듦은 자유롭고 날카로웠다.

 

바다의 폭과 너와 나 사이의 폭을 가늠해 보거나(<폭>), 옥수수 한 알을 심는 행위에서 시작해 드디어 옥수수 그림자를 경작하는 사람으로의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파종의 힘>), 얼갈이배추 씨에서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안쪽까지 내 소유로 만드는 발견(<재테크)>, 박쥐똥을 쓸면서 박쥐의 배변주기를 생각하는 서생의 양심(<박쥐똥을 쓸며>)을 따라가다 보면 시 읽기는 재미와 함께 발견의 기쁨까지 얻게 된다.

 

이번 시집에서 비교적 짧은 시들(<등> <폭> <찔레꽃> <비켜준다는 것> <문경옛길> 등)의 시적  표현들은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이 어디까지 기쁨을 줄 수 있는지도 함께. 응축된 몸집 안에 담긴 사유의 힘이 시의 외형임을 잘 보여주는 시들이었다.

 

이미지 보다는 이야기의 기능이 강한 긴 시들은 그만큼 사유가 더 확장된 시들이다. 시인의 목소리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고 느껴지는데, 역시 더 큰 힘이 느껴진다. (<설국><말뚝> <연륜><영산홍>) 

 팽팽해진 긴장을 나긋나긋하게 풀어주는 것 또한 이번 시집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다. 유머나 위트가 아니라 연륜이 느껴지는 여유라고 말하고 싶다.

 

 시는 시인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발견이고 깨달음이다. 당연히 사적일 수 있는데, 그의 사생활을 살짝 엿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송찬호 형네 풀밭에서>나 <백석학교>가 특히 드러나게 사생활을 보여주는 시들이다. 시인 송찬호의 풀밭을 독자가 언제 볼 수 있겠는가 싶으니 그의 집에 마실을 가서 한나절 놀다 왔을 시인의 모습 또한 시만큼 발랄하고 좋을 뿐이다.

 백석을 좋아하는 시인들을 모아 백석학교라 이름지을 만하니, 올해 100주년 기념 동창회에 모인 그들의 수다가 궁금하다.

 

 시는 언어가 빚어내는 '잘 만들어진 그릇'이다. 그의 진면목을 보는 것은 보는 이의 내공에 따라 다를 것이다. 결국 발견하고 읽어야 그것이 나에게 시로 다가오는 것일터.

 온전하지는 못해도 어쩌다 '화안하게' 내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만나는 일이 즐거워서 아마 나는 시를 읽는 모양이다. 가령 이런 시!

 

         어제 저녁 영하 이십 도의 혹한을 도끼로 찍어 처마 끝에

      걸어두었소

         꾸덕꾸덕하게 마를 때쯤 와서 화롯불에 구워 먹읍시다

      구부러지지 않고 요동 없는 아침 공기가 심히 꼿꼿한 수

     염 같소

        당신이 오는 길을 내려고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고 적설

     량을 재보았더니 세 뼘 반이 조금 넘었소

       간밤에 저 앞산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가 숨깨나 찼을 것

    이오

     좁쌀 한줌 마당에 뿌려놓았으니 당신이 기르는 붉은가슴

   딱새 몇 마리 먼저 이리로 날려 보내주시오

     또 기별 전하리다, 총총

                                             <일월의 서한(書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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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6
이홍섭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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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며, 생김새며, 기다란 손가락 까지 알고 있는 사람의 시를 읽는다. 읽는 사람은 나지만 목소리는 시인의 것이다. 그래서 더 잘 들린다. 물론 그 내막을 알 수 없는, 심연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먼 시도 있다. 아는 사람의 시를 읽는 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의 자리를 가늠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이홍섭 선배의 시가 왜 이리 아프고 서럽고 쓸쓸한지 모르겠다. 그 사이 아이를 얻어 그 아이가 '지누아리'를 좋아하는 일곱살배기로 컸구나. 반갑고 기쁘다.  시인을 아비로 둔 아이를 생각해보았다. 곱고, 연하고, 선하고,  툭하면 울것도 같고, 그러다 생각하지도 못한 장난을 치기도 할 것 같다. 만약 아버지를 닮았다면. 그래서 나는 열심히 아이가 등장하는 시를 찾았고 그 시들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좋은 시가 뭔지, 시가 뭔지 이제는 그것도 가물가물해졌지만 이홍섭의 시를 읽는 동안 쓸쓸하고 사랑스럽고, 살아있는 것이 고마운 일이고, 헤어지는 일이 슬프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일이 신기하면서도 아프고, 부모가 늙고 병드는 일이 나 또한 피해갈 수 없고 살아 생명이 다 귀하고 슬프고 애틋하다는 것을 '소름 돋게' 절실하게 느껴 진다면 나는 그런 시를 좋은 시라고 하겠다.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얼굴을 대면하지 못한 채 이렇게 간간이 들려오는 시집으로 소식을 접하겠다고 생각하니 이번에는 너무 오래 걸리지 말고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다.  

내가 떠나온 뒤로 영 너머 강릉이 허전하고 쓸쓸했는데 이제는 주인이 돌아왔으니 그 뜨락에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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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다 그만둔 날 - 김사이 시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8
김사이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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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보니 내 연배 쯤 된다. 그래서 더 편하다. 아무래도 공감하기가 가까운 거리기 때문이다. 시인 이름이 참 좋았다. 본명도 나는 좋지만 사이라는 필명이 참 좋다. 구로 얘기를 한다기에 심각한가 했더니 세월이 변하긴 했나보다. 지금 구로에 가면 십여 년 전 구로 모습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시도 세월을 타는가, 당연한 것이겠다. 하지만 그래도 구로는 구로다. 시인을 통해보는 구로는 변한듯 변하지 않고. 개인사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이 참 좋다. 과하게 감정을 보이지도 않고 능청스럽게, 그래서 그 속살이 뽀얗게 언뜻 보인다. 그게 또 참 좋다. 부드러운 속살이 단단한 껍질 속에서 또다시 단단해지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말을 다루는 솜씨가 참 좋다. 어렵지 않아서 더 좋다. 사이 씨 시가 사람들 사이에 많이 오고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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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창비시선 307
최두석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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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작지만 듣는 사람이 온몸으로 듣게하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안다. <투구꽃>을 읽었다. 오래 기다린 시집이라 아껴 읽어도 금방 비어버린다. 왜 그리 꽃에 집착을 할까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건 말그대로 아주 잠깐이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시들이다.  전보다 조금은 유머가 섞인(산벚나무 같은) 시들이보이는데 여유가 있으면서도 날카롭기는 더해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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