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농부 책고래마을 36
의자 지음 / 책고래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고 언젠가 열매를 맺을 그날만을 기다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농부를 본 적 있나요?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꽃피우고 이웃과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짓는 농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직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저기서 뭘 하는 거야?" 다들 농부를 비웃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농업이란 본시 고된 노동입니다. 일은 힘들어도 마냥 그 노동의 강도에 걸맞은 소출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일기도 적합해야 하고 관개시설의 도움도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땅이 비옥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막 한가운데에 씨를 뿌리는 농부라니요. 다들 입을 가리고, 혹은 멀리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만도 합니다. 세상은 본디가 이런 곳입니다. 남을 조롱하고, 교활한 꾀를 내어 가며 이익을 잽싸게 취하는...

"태양이 뜨면 좀 나아지겠지." 농부도 어지간합니다. "씨앗이 움트면 사막도 더 북적북적해질 거야." 그러고 보니 농부가 견딜 수 없어했던 건 고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원래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웃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혼자 사는 사람도 화초를 재배하고, 반려동물을 들이고, 어떤 생물체를 곁에 두는 걸 좋아합니다. 사막은 본디 농부가 살던 곳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 본디 정 붙이고 터잡아 살던 곳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사막을 보고서는, 그 황량함을 참고 보지 못했던 겁니다.

이곳이 이처럼 버려져서는 안 된다. 사람이 안 사는 건, 벗할 나무와 풀과 식량이 없어서이다. 이것이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지 않을까? 네 그렇습니다. 아마 최초의 식물과 작물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겠지만, 사람은 특유의 지혜와 기술로 땅에 식물을 번성시킬 수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중국 고사에 나오던 우공 역시, 삽으로 한 줌 두 줌 퍼 날라 마침내 거대한 산을 옮기고야 말았습니다.

구약성서를 보면, 애를 쓰고 지혜도 충분하건만 악마의 장난으로 항상 시련을 만났던 욥이 나옵니다. 이 책의 농부 역시 "정말 너무해!"를 외치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원래 농업이란, 최적의 조건 하에서 영위하여도 풍년을 매번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사막 한복판에 씨를 뿌리는 사람이면 말할 필요도 없죠.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씨를 뿌린다고 반드시 과실이 거두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밭을 갈고 해충을 잡으며 잡초를 제거합니다. 일 년 간 고생하고 마침내 가을에 추수를 합니다. 이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과실로 보답을 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부단히 노력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 코로나19, 미중 신냉전, 한국의 선택
문정인 지음 / 청림출판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정인 박사는 미국에 인맥도 넓고, 4년 전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 곁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조언해 왔고 사임한 현재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입니다. 그는 취임 초부터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대북 정책, 대미 외교 정책을 주장해 왔는데 이들 중 어떤 것은 현실에서 효과를 보았고 어떤 것은 현실의 벽에 부딛혀 좌초된 느낌도 적지 않습니다.

중국은 현재 러시아와 손 잡고, 미국이나 유럽 식의 모델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며 유럽의 헝가리, 또 며칠 전에는 서아시아의 시아파 대국 이란과 손 잡으며 그 나름 대항 진영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저자는 미국 경제의 불평등 구조, 인종 차별 문제 등과 엮어 전향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미국 경제에서 CEO와 일반 종업원 급여 사이에 큰 격차가 벌어진 건 사실입니다. 반면 미국에서 1960~70년대에는 지금처럼 격차가 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어느 젊은 경제학자(피케티)는 이 불평등을 소재로 삼아 큰 반향을 부른 적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번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대응 태세는 역시 세계가 당황할 만큼 큰 격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여튼 조기에 코로나 확산을 자국 내에서 저지했다고 발표했으며, 미국은 반면 지금도 확진자가 수가 급격히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물론 빼어난 효능의 화이자 백신의 접종 속도가 늘어날수록 이 수는 줄어들 것입니다. 중국은 자국 백신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 보급하는데 한국은 아마 왕이 부장이 내한했을 때 시진핑 방한 문제를 딜하면서 이 문제를 거론했겠지만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바로 이 코로나 대응 태세를 지적하며, 이후에는 코로나 같은 강력한 질병에 어떻게 기민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국력과 국격이 판가름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무작정 친중적 시각으로 해석할 건 아니고, 한국이 효율적이고 모범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 준다면 그만큼 위상이 상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꼭 정치적으로, 외교 노선상의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겠죠.

p260 이하에서 트럼프의 퇴장은 추했다며 저자는 비판합니다. 꼭 저자 같은 분의 입장이 아니라도, 트럼프의 마지막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극우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즈 역시 "유약한 배신자"라며 그를 비난할 정도였으니 그는 누구로부터의 존경도 모두 잃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는 언제나 인류 문명 발달의 요람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말은 자라서 제주로 보내고, 사람을 키우려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일본 속언에는 시골에서 보내는 수십 년보다, 도쿄에서 잠시 꾸는 낮잠의 시간이 더 유익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고 더 생산적인 감정의 표현 방법을 발견하며 더 효율적인 인프라의 도움으로 온갖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도시야말로 인간 문명과 지혜의 총체, 육화라 부를 만합니다.

"도시의 심장부에 닿으려면 도시의 위장을 지나가야 한다(p220)." 한국에서도 떡볶이, 어묵, 김말이 등 시대를 대표하는 보편적인 분식류는 길거리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게 정설이며, 그닥 위생이 좋을 것 같지도 않은 이런 싸구려들을 계층, 성별, 나이 불문하고 길거리에서 호호 불어가며 즐기는 게 일반적인 낭만입니다. 책에도 도시인들이 가장 맛있게 즐길 만한 게 길거리 음식이라는 저자의 단정적인 서술이 있습니다. "멜팅 팟"이라는 미국답게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유입된 길거리 음식이 넘쳐나며, 길거리 음식의 유행도 각각의 시기적 특성을 대변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이 물밀 듯 몰려올 무렵에는 그들의 음식이, 요즘처럼 라티노들이 남쪽에서 유입될 때는 또 그들 특유의 음식이 물결처럼 트렌드를 만듭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중 타코에 대해 함부로 언급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적 있습니다.

p126에는 프랑스의 마르세유 그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나옵니다. 본디 그리스인들은 산과 돌이 많은 척박한 본토의 조건을 극복하고자 무진 애를 썼고, 그 결과로 얻은 문명 발전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이를 광범위한 식민 활동의 발판으로 썼습니다. "식민"의 원조는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까지 진출했고, 여기서 몇 걸음 더 건너온 게 남불의 마르세유입니다. 역사책에서 리구리아 족이라는 독특한 문화 단위를 자주 만나는데, 여기서 그 먼 족적 하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시는 결코 폐쇄적인 문명 작용의 산물이 아니며, 적어도 둘 이상의 문화와 종족 들이 만나 발전적인 경쟁과 협력 끝에 이뤄지는 게 보통입니다. 한강 유역만 해도 이를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얼마나 치열한 각축을 벌였습니까.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긴 했으나 중국과 인도의 황제들은 의외로 먼 벽지의 항구 등을 벽안의 침입자들에게 허용하고 제한적인 실리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는 더군다나 델리의 높은 권위가 아대륙 곳곳까지 속속 미친 적이 사실 드물었기 때문에, 책 p286에서 다루듯 캘리컷 등이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경영되던 시절이 꽤나 길었습니다. "캘리컷은 상업도시였고, 그곳의 주권자는 영리에 밝은 왕이었다.(p288)" 책에서 다루는 무렵만 해도, 문명의 발달 수준이나 물산의 정교함 등에 있어 서유럽의 그것이 동양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보유한 항해술, 또한 혁신정신과 탐험에의 열기 등은 세계를 압도할 만했겠죠.

바르샤바는 본디 동유럽의 강국으로서, 고골의 장편 <타라스 불바(대장 불리바)>에도 나오듯 널리 중앙아시아의 초원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던 번영한 폴란드의 중심지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빈을 포위하여 기독교 문화권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을 때 먼 길을 달려와 예니체리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것도 폴란드의 군주였습니다. 이러던 것이 군주와 백성, 귀족 세력의 분열로 인해 국력이 쇠퇴하고, 급기야는 러시아, 합스부르크, 프로이센에 의해 나라가 과분되었으며, 1차 대전 후에야 간신히 자존을 회복했습니다. 허나 필수즈키 원수의 독재는 국가에 부정적 유산만을 남겼으며, 그의 사후 나치의 침략은 특히 수도 바르샤바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책에는 나치가 바르샤바에 가한 반 문명적 폭거가 자세히 묘사되며, 영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행한 동부 독일 공업 도시들에 대한 초토화 공습도 생생하게 서술됩니다.

목차만 보면 이 책에 아시아 여러 도시에 대한, 특히 21세기 들어 새로이 부상한 여러 활기찬 도시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질 않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꼼꼼히 읽어 보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어 혁신적 방식으로 번영하는, 또 스마트 도시의 미래상을 꼼꼼히 준비하는 여러 신흥 도시들의 모범이 꾸준히 분석되고 언급됨을 쉽게 찾겠습니다. 또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는 한국의 예를 특별히 거론하며, 스마트 시티의 비전을 다이내믹하게 구현하는 송도국제도시가 특별한 경의와 함께 거론됩니다. 도시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사의 요약판이자 예언록임을, 방대하고 정확하며 재미있는 사례로 증명하는 저자의 놀라운 필력에 홀딱 반할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강공주 1
최사규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에 기록이 충분치 않아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평강공주와 온달 사이에 벌어진 속 깊은 로맨스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흥미로운 예임에 분명합니다. 좀 부족한 남자가 영민하고 현명한 여성 반려자의 도움을 받아 일약 출세한다는 모티브는 외국의 예에서 비슷한 줄거리를 찾기 힘든데, 은근히 여성에 기대는 성향이 강한 한국 남성의 멘탈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최사규님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교가 안 된다. 햄릿에 이런 사랑과 비장함이 어디 있었던가?(p8)"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연을 읽고 자랐습니다만 사실 그렇게까지 절절한 느낌을 받지는 못한 듯합니다. 소설 1, 2권을 다 읽고 나서 느낀 바이지만, 만약에 정말로 두 인물 사이에 이런 장대하고도 낭만 넘치는 사연이 있었다면 ㅎㅎ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정사(正史)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이 온달과 평강 이야기가 매우 긴 분량을 차지하며 서술됩니다. 다른 사연에 비해 상세하고 문장(원문인 한문)도 정성들였을 뿐 아니라, 김부식 개인 성향에 비추어 이런 이야기에 그리 관심이 있었을 법하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왜 평강공주는 울보가 되었을까?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도 올케에게 모함을 받아 아버지(물론 낳아 주신 친아버지)에게 쫓겨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또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도 그 가진 진정성만큼 이해를 받지 못하는 효녀 코딜리어의 사연이 나오지만, 이 소설(작가님의 성격 규정상 "팩션") 속에서 평강은 계모와 그의 자녀(의붓 남동생)에게 모해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궁정에서도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만, 즉위 후 이성계에게 신덕왕후가 그러했듯, 침소에서 베갯머리 상소를 일 삼는 현재의 배우자(...)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왕실의 정통성과 자신의 안위, 가정의 참된 평화, 국가의 미래 등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밖에요.

이처럼 배포 크고 사려 깊은 멋진 여성이고, 어지간한 남자를 능가하는(어지간한 남자뿐 아니라 아주 뛰어난 ㅎㅎ 남자들까지도) 여장부(작가 최사규님이 그리 캐릭터 방향성을 잡았습니다)인 평강공주는, 아예 자신이 제대로 왕재(王材)를 발굴하여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고 기백도 불어넣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으려 듭니다. 역사상으로 여계 상속은 드뭅니다만 고대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프랑스의 발루아, 부르봉 왕조 등이 사위가 물려받은 경우였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고대국가가 국운의 상승을 멈추고 휘청거릴 때는, 대개 왕실을 위협할 만한 권위의 귀족 가문들이 발호할 무렵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절노부, 소노부 등이 그런 포지션이네요.

잔혹한 폭력도 등장하고, 한 사람을 넘어 한 가문, 핏줄에 두루두루 원한을 새길 만한 몹쓸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못된 인간들도 나옵니다. 고대이므로 이런 미개한 유형이 있었겠거니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이런 간악한 자들의 악행이 먼 그림자일망정 몸에 닿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1권에서 평강은 드디어 집을 떠납니다. 그녀는 구차한 아귀다툼을 마다한 채, 척박한 벌판에서 야인으로 살아가는 누군가를 만나 그를 환골탈태시킬 것입니다. 미완의 대기를 품어 썩은 누리를 뒤집고 바로세울 큰 인물로 거듭나게 할 그녀는 다름 아닌 여성 구세주인 파티마일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다
신윤창 지음 / 행복에너지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품 자체의 가치와 효용보다 마케팅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얼핏은 드는지라 기분이 씁쓸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케팅은 단순히 판매의 테크닉이라든가 광고의 기법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소비자와의 진정한 소통에의 노력이라고 봐야 하겠죠. 또 요즘처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고, 코비드 19 때문에 시장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가는 요즘, 어떻게 나의 물건을 팔 것인가, 어떻게 해야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의 상품을 부각할 것인가의 고민은 그 무엇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합니다. 마케팅에 대해 고민을 등한시하는 기업이나 의사 결정자라면, 애초에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관심이 그닥 많지 않았다고 봐도 억울할 게 없지 싶습니다.

이 책은 일단 그 체제가,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마케팅 원론 교과서의 그것을 매우 빼닮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부제에 "BACK TO THE BAICS"라는 말이 붙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교과서처럼 다소 딱딱하고 원론적인 설명으로 일관하느냐. 그렇지는 또 않습니다. 교과서처럼 꼼꼼하고 깔끔한 편집이지만, 저자가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체험한 시장의 현실을, 쉽고 실감 나는 언어로 재구성한 느낌도 물씬 풍깁니다.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저자분들만의 현장감 넘치는 감상과 설명, 회고담이 들어 있는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장점도 동시에 갖추었습니다.

저자분은 1988년에 "금성사"에 입사하셨다고 합니다. 당시라면 아마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기술의 상징 금성!" 같은 유명한 광고 문구가, 성우 조명남씨의 중후한 목소리로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시절일 겁니다. 저자분의 회고는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무섭게 추격해 오고" "(지금은 없어진) 가전제품 대리점을 방문해 수금 매출을 관리하던" 업무에 종사했다는 요지입니다. 그 즈음만해도 전자제품은 "대리점"을 통해 구입하던 게 일반적이었겠죠. 지금은 하x마트 등 대형 양판점이 유통의 이 섹터를 완전히 대체했지만 말입니다.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1989년이나 그 즈음은 노사분규가 극심하던 무렵으로, 1992년까지 한국의 중소기업 어음 부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통째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전국을 감쌀 지경이었습니다. 금성사 역시 이 기간에 삼성전자에게 1위를 내어주고, 다시 1위를 탈환하기 위해 현장의 대리점들을 무섭게 쪼아붙이며 이른바 "밀어내기"를 강행했는데, 30년이 지난 요즘도 전혀 다른 산업과 업종에서 대리점에의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는 대기업(분유, 우유, 편의점 등)의 대표적인 갑질로서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폭거를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급기야 회사를 그만두셨다는 저자의 회고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기까지 합니다.

이어지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다른 방향에서의 영업을 물색하던 중 "안 읽어 본 마케팅 서적이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섭렵했다고 합니다. 공부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퇴직 후에 지인이나 다양한 경로로 인맥을 파고 들 궁리를 할망정 "책을 파고 드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백 투 더 베이식스"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듯, 난국을 타개하려면 잔머리나 요령보다는 원칙에의 천착을 택해야 오히려 해법이 더 잘 찾아질 것입니다.

책은 모두 6개의 챕터로 이뤄졌습니다. 특히 STP 전략과 4P 믹스가 각각 한 개씩의 장(章)을 차지하는 게 눈에 띕니다. 물론 이 두 개념은 기존의 어느 교과서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만, 이 책에서는 저자의 개인적 연구와 변화한 트렌드에 부응한 업데이트 사항이 특히 강조되어 비중이 늘어난 게 특징이라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마케팅이란, 교환의 과정을 통해 원츠와 니즈를 만족시키는 인간의 활동(p16)." 이 문구는 우리들 독자들도 잘 아는 이 시대의 마케팅 구루 필립 코틀러의 책에서 재인용했다고 저자는 밝힙니다. "영어 문법상 ~ing을 통해 동사가 동명사로 바뀔 수도 있지만, 나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비단 마케팅이라는 단어뿐이 아니라, 영단어 중 동명사에서 파생하여 현재 그 품사가 명사로 굳은 모든 경우에 이 설명을 적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기업은 본연의 사명인 "이익 내기"에만 충실하던 1970년대적 사고를 벗어나, 이른바 CSR, 즉 사회적 책임까지도 고려해야 사회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필립 코틀러 역시 이러한 시대의 조류를 가장 먼저 통찰하여, 근래 내는 거의 모든 저서에 CSR을 반영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마케터는 니즈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니즈를 찾아 소비자도 몰랐던 것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것(p31)." 없는 니즈를 만들어낼 수까지 있다면 마케팅 궁극의 경지이겠으나, 윤리적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그에 이르기까지의 노력과 비용이 과다하여 이미 실패라는 결과가 예정된, 부질없고 비효율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unmet needs를 맨 먼저 발견하려면 사회의 변화와 유행의 추세를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모두가 무의식 중에 욕구하였으나 미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것, 그것을 발견하여 맨 먼저 일깨우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가 시장 전체를 차지합니다.

학교 다닐 때 많이들 배우셨을 SWOT 분석이 p53이하에서 저자의 버전으로 쉽고 선명하게 설명됩니다. 외부환경을 설명할 때 STEP 모델이라고 간추리는 태도도 널리 지지받는 이론 사항인데 이를 잠시 요약하자면 1) 사회문화 2) 기술 3) 거시경제 4) 정책규제 입니다. 저자는 특히 "SWOT 분석은 환경에 근거해야 하며, 전략은 다시SWOT 분석에 근거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각각이 따로 노는 분석과 전략은 이미 존재 근거를 상실했다는 뜻이죠. 다시 책의 부제로 돌아가 봅시다. "백 투 더 베이식스" 우리는 흔히 교과서는 교과서, 현실은 현실, 이런 식으로 원칙과 실전을 전혀 별개로 파악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론의 학습과 이해가 불충분한 전략가의 서투른 변명에 불과합니다. 저자의 강조처럼, 개념에 근거한 이론, 이론에 근거한 전략, 전략에 근거한 실행, 이런 식으로 기초와 응용이 혼연일체가 된 마케팅만이 필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시장세분화야말로 개성 있는 나의 상품에 제자리를 확실히 마련해 주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 되는 모색의 단계입니다. 저자는 이 이론을 설명하면서, 금성사에서 나와 애경산업에서 마리끌레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때의 경험(p95)을 들려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마리끌레르가 한국에서는 이 저자분의 작품이었던 거죠(원 브랜드는 프랑스의 그 저널이 시초입니다만).

무엇이든 최초가 되는 게 유리합니다. 저자는 그 예로 한국에서 자양강장제 드링크로 아직까지도 동아제약의 "박카스"만한 게 없음을 지적하며, 심지어 경쟁 제품들조차 그저 박카스로 통칭되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설명합니다. p109에서는 "결국 모든 시장은, 단 두 마리의 말만이 달리는 경주"라고도 요약하며 "이원성의 법칙"을 거론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아마 학창 시절 본인이 속한 세대가 많이도 듣고 자랐을, 세계적인 팝 아이콘 아바의 어느 노래 제목을 환기합니다. "Winner takes it all" 승자독식의 법칙이란 뜻인데이 표현의 묘미는 it과 동격 관계에 놓인 all의 쓰임이죠. 물론 it이 없어도 문법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

마케팅이란 참 오묘합니다. 때로는 저런 소문이 나면 브랜드 가치에 더 큰 손상을 입지 싶은 사건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재부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걸 두고 요즘은 "보도 효과"라 부른다는데, 모 정당의 모 후보가 특정 알파벳의 쓰임새를 알지 못해 엉뚱한 해석을 하여 "회사에서 문서 작업도 한번 안 해 본 사람"이라는 빈축을 샀으나 오히려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 현재 지지도가 더 올라간 일 등이 그러한 좋은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 선수의 학폭 논란 때문에 오히려 여자배구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팬이 늘어난 예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단맛을 가미하여 뉴코크를 출시하고선 기존 제품을 대체했다가 오히려 고정 팬들의 큰 항의를 받고 전략을 번복한 소동을 겪은 코카콜라의 예를 듭니다. 괜히 후발주자인 펩시의 전략을 모방했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칠 뻔했는데, 이 과정에서 겪은 소동이 오히려 코카콜라에 대한 관심을 높여 결과적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경제학자 거셴크론은 "후발자의 이익"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만 경영학의 마케팅이론에서 후발주자는 오히려 선두주자보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어 유리하기도 합니다. 더페이스샵은 초저가 시장을 먼저 개척한 미샤와는 또 차별화한 전략("자연주의")을 구사하여 오히려 1인자인 미샤를 뛰어넘었는가 하면, 본래 대여 시장의 1위였던 블록버스터는 온라인 시장을 무시하는 바람에 넷플릭스에게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는 예들도 이 책에 나옵니다. LG생건의 "팩티브"는 효능이 너무 뛰어나 오히려 3차 처방 시장으로 밀림으로써 제품의 성취가 마케팅상의 우위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증명하는 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책에는 이처럼 한국내 혹은 해외의 매우 재미있는 사례가 많이 실려 있기에, 독자들이 자신의 영업에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집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가격은 과연 어떻게 책정이 될까요? 물론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누구나 가격의 수용자이며 결코 어느 한 당사자가 가격을 책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제품을 최초 출시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여태 없던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나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면밀히 시장 조사를 행한 후에야 구체적인 가격 전략을 만들 수 있습니다. p191에는 유보가격, 최저수용가격 등 다양한 개념이 나오는데, 동네에서 피자나 떡볶이 장사를 해도 이처럼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야 소비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가격을 정하거나, 반대로 더 많이 올릴 수도 있었던 수익을 허공에 날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