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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류정호 지음 / 파람북 / 2021년 1월
평점 :
저자 류정호님은 "성조 님"의 배우자입니다. 성조 님이 남편이고 저자분께서 그 아내죠. 이 책에서 남편 성조님은 줄곧 그 성함으로 불리는데 "남편"이라든가 "그이" 같은 대체의 호칭이 아니라는 게 독자의 마음을 더 울컥하게 만듭니다. 남편은 그저 남편 역할을 하는 분, 혹은 아이 아빠에 머무는 의미가 아니라, 저자의 곁에서 오랜 동안 감정을 나누고 모든 것을 공감하고 먼 곳(가까운 곳이라 해도)을 함께 보는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성조는 환갑을 병실에서 치렀다.(p33)"
"지난 30년간 앓아온 당뇨병이 합병증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문장이 저자가 밝히는 그 모든 사연의 서막을 알리는 문장입니다. 당뇨병은 어떻게 보면 한국인 상당수가 앓는 질환이며, 사람에 따라 당장 급격한, 심각한 징후를 드러내지 않기도 하기에 젊었을 때는 무심히 넘어갈 수도 있죠. "엄지발가락 아래로 손가락보다 굵은 물집이 생겼"는데 이때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터뜨린 후 적당히 빨간 약 바르고 처치를 하셨답니다. 이때부터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시네요.
이때부터 나쁜 신장 기능이 그 병폐를 극적으로 드러내어 혈압이 높아지고 배에는 복수가 차고 기침이 심해지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장 기능 악화가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사람이 견딜 수 없으니까 투석을 하게 되는 겁니다. 투석은 당사자께서도 고통스럽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가족, 특히 배우자의 고통이 이루말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물집 사건은 남편분께서 나이 마흔 때에 생겼고 그 이후로 관리를 하셨을 텐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우리 모두도 젊었을 때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독자인 저도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육식을 즐겼는데 이제는 더욱, 절대 자제하고 채식 위주로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는 뭐 발에 물집이 잡힌다거나 하는 일이 없고, 몇 년 전에 어딜 도보로 다녀 오고 나서 물집이 잡혔을 때도 그냥 손으로 벅벅 긁고 껍질을 툭 떼어내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지금은 건강하니까 별 문제가 없지만 선생님처럼 나이가 들고 알게모르게 병이 진행되어 일정 단계를 넘기거나 하면 뭐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때 친구들은 나를 목련이라고 불렀다. 시간은 급류로 흘러 목련이 하얀 꽃을 틔우던 3월에 손녀가 태어났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p22)"
이 책을 다 읽고, 참 치열하고 아름답고 지독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로렌조 오일>을 보면 의학에 문외한이던 부모가 난치병에 걸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의사들도 모르던 신약 물질 하나를 발견할 만큼 집요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한때 목련꽃처럼 아름다웠고, 그에 어울리는 사랑을 한 남자에게 평생 쏟은 어느 여인이, 적지 않은 연령에 달하여 연인이자 남편이자 손주의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한쪽 신장을 기증하는 이야기. 소설이 아니라 우리 근처의 실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사실 신장 이식은 혈연관계라야 그나마 매칭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 책 중에는 저자분의 지인 며느리와 시어머니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신장을 이식하면 자녀를 못 가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말에 남편은 그래도 좋으니 어머니한테 기증을 해 줄 수 없냐고 부탁하더랍니다. 많은 경우, 며느리가 시모에게 신장 기증을 한다, 이거는 생각이고 뭐고 할 것도 없는 무리한 상황이죠. 그래도 이 사연의 당사자는 한때 그럴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매칭 진단을 받고 나자 남펀의 태도가 그런 데 대해 섭섭함을 느끼고 결국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다 나빠졌다고 합니다.
집안마다 사정이 다 다른 법이므로 자기 기준으로 뭐가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실 평균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무리입니다. 오히려 그런 걸 요구한 시모나 시댁 식구들이 욕을 먹을 겁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런 문제를 평균 판단에 기댈 수는 없습니다. 다 각자만의 절박한 사연이 있겠으니 말입니다. 하나 확실한 건, 이런 걸 보면 꼭 무슨 본인만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단칼에 잘라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경박하고 생각 짧으며 신뢰를 못 할 말이며, 남의 집안에 분란이나 일으키기 좋은 인간이죠.
여튼 혈연관계도 없는 시모와 자부가 매칭이 된다는 것도 공교롭고 드문 일인데, 부부관계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처음에 검사를 했을 때 "성호 님"과 자신이 잘 맞는다는 결과를 받아들고 저자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지난 30년 간 우리는 극심한 성격 차이로 매번 갈등을 빚곤 했다.(p53)"오히려 매번 알콩달콩 닭살 돋는 사이가 아니라 성격 차이를 어느 정도 즐기는 분들이었다고 하니 더 놀랍고 더 가슴이 아파집니다. 사실 진짜 서로 좋아하는 이들은 서로의 개성 차이를 더 재미있어하고 높은 차원에서 갈등을 승화시킵니다.이런 유형이 (영화 대사에서나 나올 법한) "내 빈 곳을 네가 채워주는(완성해주는)구나."라고 할 만한, 진짜 금슬이 좋은 사이죠.
"결혼이란 감정이나 본능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해야 한다... 성조는 요란한 말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아는 사나이다.(p73)"
막상 남편이 되자 자신의 감정을 일일이 살펴 주지 않아 서러웠다고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모든 남자들이 이 점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원하는 건 알고 보면 단순한 게 아닐까요.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아는 사나이"가 되는 건 사실 쉬운 게 아니며 어떻게 보면 그렇게 타고난 분이 따로 있는 겁니다. 그렇게 못할 바에는 일단 말로라도 여자를 잘 달래 줄 줄 알아야 할 듯합니다.
확실히 엘리트 출신 답게 책에는 다양한 고전, 전거에서 인용한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p94에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이런저런 환자에 대해 논평하는 대목이 재인용되는데 이 와중에도 환자로서 자신의 마음가짐에 대해 반성을 하는 인격적 여유가 놀라웠습니다. 남편을 치료하는 이 교수님터러 "인술(仁術)을 베푸는 분"이란 평가도 있습니다.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이 예전에는 일상처럼 흔했는데 현재는 워낙 그런 풍토와 멀어지다 보니 말 자체도 낯설어진 듯합니다.
"과거에는 당뇨병이란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이나 걸리는 부자병이었다(p87)." 확실히 저런 말이 있었던 듯도 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한국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극적으로 나아진 것도 있고 당뇨병이 그만큼 보편화하여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도 있겠습니다. 못 먹고 못 살아도 당뇨를 안 앓는 편이 당연히 낫지 않겠습니까? 책에 보면 가족력도 있고, "청량음료를 물처럼 달고 산" 습관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정말 조심해야 하며, 담배 광고 금지하는 것처럼 탄산이나 이런저런 음료 광고도 좀 규제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 와중에도 저자는 요 1년 사이에 우리 일상을 위협하는 대 질병이 되어버린 코로나 19에 대해서도 짧은 경각의 한 마디(p43)를 추가하시네요.
"아인, 아프게 하여 진심으로 미안하오. 나 자신이 죄인이오..(p139)."
"수술이 끝나고 나흘째 되는 날에야 성조가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 무슨 수술이고 메시지인고 하니 저자님이 남편분께 드디어 신장 이식 수술을 해 드리고 난 후란 뜻입니다. 세상에는 목숨을 바쳐 사랑해도 조직이 맞지 않아 이식을 못하는 경우도 많겠고(대부분이죠), 다른 건강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여를 못하는 경우도 많겠습니다. 여튼 자신의 신장을, 사랑하는 사람 그 누구를 위해 떼어준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을 못 할 경지입니다. 솔직히 상상만 해도 기절할 것 같습니다. 과거에 부모님을 위해 허벅지 살을 잘라 먹였다는 일화가 많았으나 그런 일과도 비교할 게 아닙니다. 허벅지 살 자르는 게 쉽다는 게 아니라, flesh wounds는 여튼 낫기는 하지 않습니까? 장기 공여와 비교 대상이 못 되죠.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다.(p14)"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유명한 아담의 말입니다. 저 말만 들어도 배우자를 처음으로 곁에 둔 기쁨과 흥겨움이 어느 정도였을지 절로 지면 밖으로 전해 오는 듯만 합니다. 이상적인 배우자와 배우자 사이란 이처럼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라야 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장기를 떼어 주는 건 또 완전히,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럴 엄두가 나는 나지 않는다고 고백해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입니다.
"지난주 오실 때 72kg이었던 게 오늘 60.8kg이니 그동안 몸에 쌓였던 노폐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이식된 신장의 상태가 워낙 좋아서요.(p181)"
이렇게까지 상태가 좋아질 수 있다니 명의의 집도도 집도이지만 두 분의 연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맺어준 바라 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 독자들이 책 펼 때부터 알게 된 (기막힌) 이후 사연이지만 류정호 선생님은 남편분께 신장 공여를 해 주신 후 급성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십니다.
"한 쪽 문이 열리니 다른 쪽 문이 닫혔다"
보통 이 말은 반대로 쓰이죠. 어느 희망이 없어진 듯하니 신이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 듯 다른 쪽으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저자 류정호 선생님께 닥친 비극의 운명은 정반대입니다. 남편분이 급한 고비를 넘기시니 이제는 본인이 위중해진 거죠. 사람은 이럴 때,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어떤 방도를 취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신께 의지하게 되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자님의 의연한 태도는 막다른 구석에 몰려 비로소 기복을 시도하는 천박하고 이기적인 신앙이 절대 아닙니다. 나와 나의 배우자 건강이 위급지경인데 이처럼이나 다양한 방면으로 사색의 방향을 틀 줄 알고 주변까지 두루 챙기신다는 게 예사 인격의 성숙됨이 아니며, 수양의 결과물이라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인간은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야 그 진짜 품격이 드러난다고 하죠. 이야말로 신이 예비한 섭리라 하겠습니다. 꼭 현세에서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