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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라면 유대인처럼 - 유대 5천 년, ‘탈무드 유머 에센스!’
박정례 편역 / 스마트비즈니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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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느 다른 동물 못지 않게 각박한 생존 경쟁에 시달립니다. 자연으로부터의 거센 도전에도 응전해야 하며, 인간이라는 같은 종이 지어낸 사회라는 틀 안에서도 주어진 저마다의 역할을 해 내고 동시에 조직 내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떠맡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인간은 작은 여유를 찾고 낭만을 즐기며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며, 그런 활동이나 사고, 감정 표현은 "유머"라는 형식 안에 집약됩니다.

유대인 하면 대개 근엄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들의 지혜 보고라 불리는 탈무드 안에도 많은 유머가 실려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유머를 빚어낸 건, 아마도 타 종족의 질시와 견제 속에 끈질긴 생명을 유지하려 든 그 치열한 노력 속에서 더 절실하게 반대의 여유가 필요해서였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잘 정리된 유머 중에는 약간의 슬픔, 애잔함, 역설, 혹은 자신을 시니컬하게 성찰한 씁쓸한 교훈 같은 것도 엿보입니다. 어떤 건 몇 번을 거듭해 읽고 그 숨은 뜻을 새겨 봐야 비로소 뜻이 와 닿는 것도 있습니다.

"가장 맛있는 음식(p63)"을 만드는 레시피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이 돌 하나면 가장 맛있는 수프가 완성된다"며 가정 주부에게 건네 줍니다. 짐짓 맛을 보며 감자가 필요하다고 하자, 호기심이 구경 온 어느 부인이 집에 가서 가져오죠. 그 다음에는 야채, 그 다음에는 소금,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각자 조금씩 손을 보탠 재료가 들어가고, 즐거운 대화가 오가며 화목한 분위기가 조성되니 그 정체 모를 수프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오병이어 이야기도 결국은 "나눔으로써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강조했다는 설도 있고, 물리적 영양보다는 모두가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훈훈한 분위기 자체가 음식의 맛을 최대로 돋운다는 결론이겠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도 있듯, 수다를 떨고 이런저런 불편한 감정을 떨쳐 내면 자연히 배도 고프게 마련이지 않을지요.

"'당신이 내게 낫을 빌려 주지 않았는데, 내가 말을 당신에게 빌려 주겠소?' - 이것은 복수다. '당신이 내게 낫을 빌려 주지 않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말을 빌려 주겠소.' - 이것은 증오다." 이 유머(p79)의 펀치라인은 마지막 줄입니다. 말을 빌려 줌으로 해서 이 사람은 상대방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고 명분을 갖추게 됩니다. 그는 상대에 대해 마음 놓고 나쁜 평판을 퍼뜨릴 수도 있고, 마음으로부터 확신하는 어떤 우월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복수는 이런 근원적 증오에 비하면 일차원적 행동이며 위험성도 독소도 덜합니다.

"재산의 1/4을 주면 나를 존경하겠는가? - 대등하지 않은데 왜 그래야 합니까? - 그럼 절반을 주면? - 이미 대등한데 뭐하러 존경하겠습니까? - 그럼 전부를 주면? - 그때쯤 되면 나는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웃자고 만든 이야기겠으나 이것만큼 인간의 자기 중심성, 이기적인 본성을 잘 드러낸 표현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못해서 무시하고, 잘난 사람한테는 당연하다는 듯 시기와 질투를 일삼고... 이 유머의 진짜 교훈은, 타인과 이웃과 세상의 부조리함, 비이성적 감정적 반응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반응하자는 것일 듯합니다. <사기열전>에도 모수가 평원군더러 염량세태에 상심하지 말라고 충언하는 대목이 있죠.

양치기 소년의 일화는 평소에 신뢰를 쌓자는 것이겠는데. 이 책에 실린 것은 좀 다른 버전(p142)입니다. 어른들이 의심하자 소년은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칩니다. "이렇게 천천히 오시니 제가 혼자 늑대를 쫓다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는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는데, 소년도 결사적으로 소리를 쳤을 뿐 아니라 어른들도 목숨을 걸고 쫓아와 달려들어 큰 피해를 "진짜로" 막았습니다. 반면 "책임감이 강하고 평소에 어른들에게 모의 훈련도 안 시킨" 정직한 양치기는 오히려 도와 주는 사람도 없어 혼자 사투를 벌이다 크게 다쳤다는.... 히틀러도 얘기한 바처럼 "거짓말을 할 바에는 아예 큰 거짓말을 하라."는 씁쓸한 교훈의 타당성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성실한 사람은 혼자 짐을 지다 허리가 부러집니다.

p219에는 미인을 얻기 위해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행동에 나서다 후궁을 호위하는 내시에게 들켜 목숨을 잃은 뻔한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왕은 오히려 청년의 담대함과 솔직함을 칭찬하고 큰 상을 내리는데, 죄를 저지른 자에게 원칙대로 형벌을 집행하려 했던 내시는 왕에게 크게 실망하고... 반란을 일으키거나 자신 역시 후궁을 취하려 든 게 아니라.... 궁을 나와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촌이 땅이라도 사야 위장병을 고친다"라는데, 예전에 읽었던 <패러독스 이솝우화>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바로 위의 이야기도 그렇구요).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삽니다만, 그 고마움은 그 당연하다는 듯 여겨 온 편의가 사라져 봐야 비로소 절감합니다. p96에는 닭 등 가축을 집에 들였다 내 몬 후 그 평온과 질서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달은 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하루라도 인터넷이 끊기고 그 불편을 절감해 봐야 고마움을 아는 거죠.

촌철살인의 유머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던 진실, 혹은 알았다고 착각했지만 그 오의를 깨닫지 못하던 여러 귀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책 p117에는 "유일하게 자살하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유일하게 유머의 가치를 아는 동물"도 인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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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파올로 코녜티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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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승전국답지 않게 사회가 불경기와 좌절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파시즘이 발호하고 현실의 권력까지 거머쥔 나라가 이탈리아였습니다. 유럽 사회가 앓기 시작한 새로운 병을 그 나름 격렬하게 먼저 앓고 먼저 "괴상한" 처방을 내놓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처방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었고, 이를 세계에 처음으로 증명하다시피하며 온갖 망신도 당하고 사회가 큰 홍역을 치러 냈지만 여튼 이탈리아는 남들보다 앞서(?)갔습니다. 한 세기 가까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직접 민주주의를 일부나마 실험 중인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를 일입니다.

이 연작 소설의 주인공인 소피아는 1978년생입니다. 이탈리아는 따지고 보면 1871년 통일된 이래(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도)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안정된 시절을 못 이뤄낸 나라일 텐데, 소피아가 태어나고 성장한 시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합니다. 뭔가 어디서건 불안하고 다툼이 잦으며 좌건 우건 참 열정적으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합니다. 소피아는 나이 열여섯에 자살을 기도하는데 성향이 너무도 다른 두 부모 사이에서 격심한 정신적 방황을 겪어서였습니다. 마치 소피아는, 장년기를 지났으면서도 여전히 정서와 진로와 정체감이 흔들리는 이탈리아를 의인화한 듯도 보입니다.

"난 엄마와 똑같았어. 그리고 난 엄마와 같은 여자가 되는 걸 배우고 있었어.(p31)" 여자에게 있어 그 어머니는 언제나 롤모델이며 경원의 대상이며 불길한 앞날이고 발목 잡는 운명이며 원수 같은 친구입니다. 이탈리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였지만 의외로 그 나라 사람들은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그들이 반도라는 터전 밖으로 활발히 나간 건 고대 로마 시절이 유일하지 싶습니다.

소피아는 또래 남자애들과 함께 해적 놀이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는 보편적인 이탈리아 어린이들의 정서라기보다 그 무렵 유행했던 영화의 소재가 해적이라서 그런 듯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은 미국 대중 문화와 긴밀히 교류하며 자국 영화사보다는 미국 헐리웃 영화사에 더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는데, 서부극 장르에서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으며 해적 장르에서도 테렌스 힐(이름은 이렇지만 이탈리아인입니다) 주연의 이름난 흥행작들이 있습니다. 꼬마 이름이 오스카라서 더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고모 마르타는 거의 밀라노를 떠나 본 적이 없는 토박이입니다. 올케(즉 소피아의 엄마)인 로사나처럼 격정적이기도 하며, 소피아가 태어나기 전부터 소피아 같은 불안정한 아이의 삶을 자신이 미리 살기라도 하듯(독자의 눈에는 그리도 보입니다), 이런저런 방황을 합니다. 이미 죽음이 예견되지만 자유를 향해 필사의 도주극을 벌이는 <대탈주>의 스티브 매퀸(p86)처럼 마르타는 자신의 일상 루틴에 흠뻑 젖어 무아지경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유난히도 이 작품들에는 마치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천국>처럼 맥락에 따라 갖가지 미국 상업 영화들이 자주 언급되며 아득한 추억을 환기합니다.

"무정부 상태가 언제 올까" 19세기 독일이나 프랑스, 혹은 멀리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가 진보진영의 주류로 자리했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는 무정부주의도 큰 세를 얻었습니다. p166에서 크로포트킨 책이 언급되는 것도 아마 그런 맥락일 것입니다. 반면 1960년대 후반 프랑스(마르타가 마치 유학생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에서는 온갖 사상의 혼동 속에 치기어린 마오이즘이 일각에서 한때 큰 호응을 얻기도 했죠(영화 <몽상가들>에 나오듯).  이 부근에서 서사는 마치 2인칭 시점처럼 펼쳐집니다. 때로는 누가 지금 누구의 삶을 언제 살고 있는지도 서로 헷갈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무정부는절대 자유이며 일체의 억압이 제거된 정직한 이상향입니다.

미스터 바탈리아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3세(p255)입니다. 이탈리야계 이민자들은 미국 현대사에서 갖가지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며 다양한 족적을 남겼기에 애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소피아는 거의 내내 밀라노에서 성장하지만 그녀와 그 친구들, 친지들은 한쪽 시선이 항상 미국을 향해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미국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그러면서도 격렬히, 열정적으로 이탈리아이고 싶어하는 모순된 감정이 이 연작들 중 소피아를 통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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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지만 왠지 귀여운 생물도감 - 생물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깜짝 반전 매력!
로 지음, 가와사키 사토시 외 그림, 이유라 옮김, 사네요시 다쓰오 감수 / 키즈프렌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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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려서부터 각종 생물, 즉 동식물을 두루 책 한 권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각종 도감류들을 많이 접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책의 포맷이 꼭 아니라 해도, 즉 유튜브 같은 비디오 플랫폼을 통해서도 각종 동식물의 생태를 학습, 혹은 그냥 재미로 구경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6SEj6I-vKEL9tL5aAHHyZg 이 주소로 들어가면 "로"라는 일본 분이 운영하는 채널이 있는데 구독자가 25만 5천명에 달하는 큰 곳이더군요. 여기서 갖가지 징그러운 동물, ㅎㅎ 신기하게 생긴 녀석들을 자세히 살피고 어린 독자들에게 더 친근한 방법으로 소개해 줍니다. 사실 저희가 어렸을 때에도 솜씨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활약했던 터라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매우 실감나게, 멋진 솜씨로 지면에 옮겨 비주얼 어필을 했습니다만 아무리 붓 끝의 솜씨가 좋아도 동영상에는 미칠 바가 못 되죠.

이 책에는 모두 70종이 넘는, 정말 신기하고 기괴하게 생긴 동물들이 나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사람은 깔끔하고 흠이 덜 난 매끈한 외관을 지닌 편이 아름답다고들 여기지만, 이들 동물들은 아마 갖가지 기묘한 주름, 뒤틀림, 혹은 독특한 냄새 등을 지녀야 자기 종 안에서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혹은, 그렇게 괴이한 외양을 갖추어야 생존에 더 유리할 수도 있겠죠.

요즘은 어린이 책에 곰벌레 같은,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동물이 부쩍 자주 등장합니다. 저는 작년 11월에 <아르마딜로와 산토끼②>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소설에도 눈에 안 보이는 대벌레가 나와서 우리 인간처럼 덩치 큰 동물들과 친구로 어울리며 대화도 나누는 판타지가 나옵니다. 이를 확대해서 본 모습이 책에 나오는데 뭐 그냥 안 보고 그런 애가 있더라는 정도로 넘어가는 게 좋았다는 후회가 들 만큼 애가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ㅎㅎ 하지만 이는 어른인 제 생각일 뿐이고, 저희 때와는 달리 눈에 안 보이는 작은 생명체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질 만한 어린이들은 이런 괴기한 모습을 보고도 좀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죠? 책에는 QR 코드가 따로 나와서 앱을 써서 찍으면 자동으로 해당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배려합니다. 유튜브 채널이 먼저고 북 버전이 이렇게 뒤에 나온 거라서 동영상 (도감)이 사실 메인입니다.

열두줄극락조는 영어 이름으로도 그대로입니다. 우리말 이름이 영어를 직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사실 이 아이는 징그럽다기보다는 우아합니다. 블로브피시는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자바 허트처럼 생겼는데 생겼다기보다는 생기다 만 애 같습니다. 바다달팽이는 달팽이라기보다 어떤 예술가가 젤리를 소재로 삼아 인위적으로 만든 조각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슬라임처럼도 보입니다.

생긴 것만 보면 정말 희한합니다. 어떤 동물은 너무도 아름다운 곡선과 색채를 지녔기에 자연이 아닌 인공물 같으며, 어떤 동물은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에 나오는 갖가지 미술품이나 영화 <프레데터>에 나오는 빌런과도 닮았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각자의 이유로 절실한 투쟁 끝에 그런 모양으로 진화했거늘, 우리 인간이 그 모습을 두고 편협한 느낌이나 즉흥적인 인상을 함부로 논할 게 아닙니다. 이런 도감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뭘 판단하기보다, 자연의 신비 앞에 보다 겸손해지고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소중한 공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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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병맛 챌린지
마들렌북 편집부 지음 / 마들렌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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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병맛" 넘치는 행동을 해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는 말도 있지만, 천성이 자유로운데 이처럼이나 각종 속박과 제약에 시달리니, 가끔이라도 한 번쯤은 반대편으로 핸들을 확 꺾기도 해야 사람이 제정신이 유지될지도 모릅니다. "워라밸"이란 말도 있지만, 병맛이라고 하면 워크보다는 라이프에 원래 그 함량이 더 듬뿍 담겨야 제맛인 것도 같네요. 라이프에 병맛의 농도가 진해지면 진해질수록 사는 게 사는 것 같을 수도 있고요.

책 맨처음에 제안되는 챌린지는 "책꽂이에서 아직 읽지 않은 책 꺼내읽기"입니다. 이것은 병맛 넘치는 행동(도전)이라기보다, 원래 같으면 "미뤄둔 숙제 마저하기"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한가하게 책 꺼내 읽는 정도를 놓고 "일"이라고는 못하겠으니 이것은 워크보다는 라이프 쪽입니다. 이걸 병맛 챌린지로 처음 시도하는 건 두 가지 장점이 있겠는데, 허나는 같은 숙제(?)라도 숙제가 이닌 마구하는 일탈 정도로 생각하면 오히려 책장이 잘 넘어간다는 겁니다. 또다른 이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튀는 병맛 챌린지를 맨 첫날에 하면 너무 부담이 되어서 나머지 일정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죠. 고립된 탄광 등에서 구조된 사람이 급하게 음식을 섭취하면 안 되듯, 병맛 챌린지도 서서히 그 강도를 높여 가야 일상 자체가 완전히 맛이 가는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을 듯합니다.ㅋ

p34에는 또 "아무 책이나 장르 무관 하루 한 페이지 독서하기"라고 해서 책 관련 미션이 나옵니다. 이 역시 챌린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온건합니다. 또 저는 은연 중 얍삽하게 이런 마일드한 챌린지만 골라서 도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 실린 갖가지 과격한(?) 병맛 챌린지 제안을 보면, 역시 병맛도 아무나 풍기는 게 아니구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쟁취하듯 과격한 병맛 챌린지를 시도할 줄 알아야 인생에 진짜 자유가 생기겠구나 싶기만 합니다. 사실 루틴의 노예로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별로 없으니 말이죠.

p59에는 "불의를 외면하기" 미션이 제안됩니다. 예를 들면 전철에서 자리 양보 안 하는 젊은이에게 눈치를 준다거나 하는 게 "불의를 외면 안 하는 정의로운 행동"이라면, 저는 거의 매일 불의를 외면해 왔던 셈입니다. 그러니 병맛은 본인만 모르고 있었을 뿐 나의 일상에 언제나 원치 않는 동반자로서 함깨 했던! 매일매일에 거의 병맛 양념이 빠지지 않았던 나의 인생! 새삼 뭘 챌린지하고 뭐하고 할 것도 없었던! ㅠ

p73에는 "헤어진 연인에게 맨정신에 연락해보기"가 있습니다. 이거는 맨정신뿐 아니라 술김에 해도 여전히 병맛이겠으며, 아니 음주라는 극한 병맛짓이 결들여져 아예 병맛의 완성을 보여 줄 것 같습니다. ㅎㅎ 맨정신에 이걸 하라니 챌린지 한 번에 평판을 종칠 수도 없고... 근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이런 걸 해야 어쩌면 이 책을 펼쳐 들고 챌린지를 하는 보람이 있는 거겠고... 아무튼 이거는 진짜 겁이 나서 못하겠으니 좀 순한 맛으로 더 골라 보겠습니다.

p170에는 애인과 내기해서 꿀밤 때리기가 나오는데 현재 없으므로 이것도 역시 제겐 불가능합니다. 드라마 <셜록>에 보면 마그누센이라는 방송사 사주가 왓슨의 눈두덩에 딱밤 치는 장면이 있는데 물론 서로 모르는 사이이므로 엄청난 모욕입니다. 그런데 사정을 모르면 다 큰 어른들, 아니 중늙은이들이 저러고 놀고 있으므로 되게 웃긴 병맛짓입니다. 애인 말고 친구하고 저기 탑골 공원 같은 데 가서 저러고 놀면 진짜 완성도 높은 챌린지가 될 것 같습니다.

인스타에다 나흘 치 미션을 올렸습니다. 아직 좀 서투른데 감정을 정리하고 나서 한 달쯤 뒤 다시 새로운 병맛 챌린지를 해 볼 생각입니다. 예쁘고 귀여운 이 책이 많이 도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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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류정호 지음 / 파람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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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류정호님은 "성조 님"의 배우자입니다. 성조 님이 남편이고 저자분께서 그 아내죠. 이 책에서 남편 성조님은 줄곧 그 성함으로 불리는데 "남편"이라든가 "그이" 같은 대체의 호칭이 아니라는 게 독자의 마음을 더 울컥하게 만듭니다. 남편은 그저 남편 역할을 하는 분, 혹은 아이 아빠에 머무는 의미가 아니라, 저자의 곁에서 오랜 동안 감정을 나누고 모든 것을 공감하고 먼 곳(가까운 곳이라 해도)을 함께 보는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성조는 환갑을 병실에서 치렀다.(p33)"

"지난 30년간 앓아온 당뇨병이 합병증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문장이 저자가 밝히는 그 모든 사연의 서막을 알리는 문장입니다. 당뇨병은 어떻게 보면 한국인 상당수가 앓는 질환이며, 사람에 따라 당장 급격한, 심각한 징후를 드러내지 않기도 하기에 젊었을 때는 무심히 넘어갈 수도 있죠. "엄지발가락 아래로 손가락보다 굵은 물집이 생겼"는데 이때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터뜨린 후 적당히 빨간 약 바르고 처치를 하셨답니다. 이때부터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시네요.

이때부터 나쁜 신장 기능이 그 병폐를 극적으로 드러내어 혈압이 높아지고 배에는 복수가 차고 기침이 심해지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장 기능 악화가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사람이 견딜 수 없으니까 투석을 하게 되는 겁니다. 투석은 당사자께서도 고통스럽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가족, 특히 배우자의 고통이 이루말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물집 사건은 남편분께서 나이 마흔 때에 생겼고 그 이후로 관리를 하셨을 텐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우리 모두도 젊었을 때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독자인 저도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육식을 즐겼는데 이제는 더욱, 절대 자제하고 채식 위주로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는 뭐 발에 물집이 잡힌다거나 하는 일이 없고, 몇 년 전에 어딜 도보로 다녀 오고 나서 물집이 잡혔을 때도 그냥 손으로 벅벅 긁고 껍질을 툭 떼어내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지금은 건강하니까 별 문제가 없지만 선생님처럼 나이가 들고 알게모르게 병이 진행되어 일정 단계를 넘기거나 하면 뭐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때 친구들은 나를 목련이라고 불렀다. 시간은 급류로 흘러 목련이 하얀 꽃을 틔우던 3월에 손녀가 태어났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p22)"

이 책을 다 읽고, 참 치열하고 아름답고 지독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로렌조 오일>을 보면 의학에 문외한이던 부모가 난치병에 걸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의사들도 모르던 신약 물질 하나를 발견할 만큼 집요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한때 목련꽃처럼 아름다웠고, 그에 어울리는 사랑을 한 남자에게 평생 쏟은 어느 여인이, 적지 않은 연령에 달하여 연인이자 남편이자 손주의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한쪽 신장을 기증하는 이야기. 소설이 아니라 우리 근처의 실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사실 신장 이식은 혈연관계라야 그나마 매칭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 책 중에는 저자분의 지인 며느리와 시어머니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신장을 이식하면 자녀를 못 가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말에 남편은 그래도 좋으니 어머니한테 기증을 해 줄 수 없냐고 부탁하더랍니다. 많은 경우, 며느리가 시모에게 신장 기증을 한다, 이거는 생각이고 뭐고 할 것도 없는 무리한 상황이죠. 그래도 이 사연의 당사자는 한때 그럴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매칭 진단을 받고 나자 남펀의 태도가 그런 데 대해 섭섭함을 느끼고 결국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다 나빠졌다고 합니다.

집안마다 사정이 다 다른 법이므로 자기 기준으로 뭐가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실 평균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무리입니다. 오히려 그런 걸 요구한 시모나 시댁 식구들이 욕을 먹을 겁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런 문제를 평균 판단에 기댈 수는 없습니다. 다 각자만의 절박한 사연이 있겠으니 말입니다. 하나 확실한 건, 이런 걸 보면 꼭 무슨 본인만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단칼에 잘라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경박하고 생각 짧으며 신뢰를 못 할 말이며, 남의 집안에 분란이나 일으키기 좋은 인간이죠.

여튼 혈연관계도 없는 시모와 자부가 매칭이 된다는 것도 공교롭고 드문 일인데, 부부관계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처음에 검사를 했을 때 "성호 님"과 자신이 잘 맞는다는 결과를 받아들고 저자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지난 30년 간 우리는 극심한 성격 차이로 매번 갈등을 빚곤 했다.(p53)"오히려 매번 알콩달콩 닭살 돋는 사이가 아니라 성격 차이를 어느 정도 즐기는 분들이었다고 하니 더 놀랍고 더 가슴이 아파집니다. 사실 진짜 서로 좋아하는 이들은 서로의 개성 차이를 더 재미있어하고 높은 차원에서 갈등을 승화시킵니다.이런 유형이 (영화 대사에서나 나올 법한) "내 빈 곳을 네가 채워주는(완성해주는)구나."라고 할 만한, 진짜 금슬이 좋은 사이죠.

"결혼이란 감정이나 본능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해야 한다... 성조는 요란한 말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아는 사나이다.(p73)"

막상 남편이 되자 자신의 감정을 일일이 살펴 주지 않아 서러웠다고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모든 남자들이 이 점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원하는 건 알고 보면 단순한 게 아닐까요.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아는 사나이"가 되는 건 사실 쉬운 게 아니며 어떻게 보면 그렇게 타고난 분이 따로 있는 겁니다. 그렇게 못할 바에는 일단 말로라도 여자를 잘 달래 줄 줄 알아야 할 듯합니다.

확실히 엘리트 출신 답게 책에는 다양한 고전, 전거에서 인용한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p94에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이런저런 환자에 대해 논평하는 대목이 재인용되는데 이 와중에도 환자로서 자신의 마음가짐에 대해 반성을 하는 인격적 여유가 놀라웠습니다. 남편을 치료하는 이 교수님터러 "인술(仁術)을 베푸는 분"이란 평가도 있습니다.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이 예전에는 일상처럼 흔했는데 현재는 워낙 그런 풍토와 멀어지다 보니 말 자체도 낯설어진 듯합니다.

"과거에는 당뇨병이란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이나 걸리는 부자병이었다(p87)." 확실히 저런 말이 있었던 듯도 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한국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극적으로 나아진 것도 있고 당뇨병이 그만큼 보편화하여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도 있겠습니다. 못 먹고 못 살아도 당뇨를 안 앓는 편이 당연히 낫지 않겠습니까? 책에 보면 가족력도 있고, "청량음료를 물처럼 달고 산" 습관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정말 조심해야 하며, 담배 광고 금지하는 것처럼 탄산이나 이런저런 음료 광고도 좀 규제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 와중에도 저자는 요 1년 사이에 우리 일상을 위협하는 대 질병이 되어버린 코로나 19에 대해서도 짧은 경각의 한 마디(p43)를 추가하시네요.

"아인, 아프게 하여 진심으로 미안하오. 나 자신이 죄인이오..(p139)."

"수술이 끝나고 나흘째 되는 날에야 성조가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 무슨 수술이고 메시지인고 하니 저자님이 남편분께 드디어 신장 이식 수술을 해 드리고 난 후란 뜻입니다. 세상에는 목숨을 바쳐 사랑해도 조직이 맞지 않아 이식을 못하는 경우도 많겠고(대부분이죠), 다른 건강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여를 못하는 경우도 많겠습니다. 여튼 자신의 신장을, 사랑하는 사람 그 누구를 위해 떼어준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을 못 할 경지입니다. 솔직히 상상만 해도 기절할 것 같습니다. 과거에 부모님을 위해 허벅지 살을 잘라 먹였다는 일화가 많았으나 그런 일과도 비교할 게 아닙니다. 허벅지 살 자르는 게 쉽다는 게 아니라, flesh wounds는 여튼 낫기는 하지 않습니까? 장기 공여와 비교 대상이 못 되죠.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다.(p14)"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유명한 아담의 말입니다. 저 말만 들어도 배우자를 처음으로 곁에 둔 기쁨과 흥겨움이 어느 정도였을지 절로 지면 밖으로 전해 오는 듯만 합니다. 이상적인 배우자와 배우자 사이란 이처럼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라야 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장기를 떼어 주는 건 또 완전히,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럴 엄두가 나는 나지 않는다고 고백해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입니다.

"지난주 오실 때 72kg이었던 게 오늘 60.8kg이니 그동안 몸에 쌓였던 노폐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이식된 신장의 상태가 워낙 좋아서요.(p181)"

이렇게까지 상태가 좋아질 수 있다니 명의의 집도도 집도이지만 두 분의 연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맺어준 바라 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 독자들이 책 펼 때부터 알게 된 (기막힌) 이후 사연이지만 류정호 선생님은 남편분께 신장 공여를 해 주신 후 급성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십니다.

"한 쪽 문이 열리니 다른 쪽 문이 닫혔다"

보통 이 말은 반대로 쓰이죠. 어느 희망이 없어진 듯하니 신이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 듯 다른 쪽으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저자 류정호 선생님께 닥친 비극의 운명은 정반대입니다. 남편분이 급한 고비를 넘기시니 이제는 본인이 위중해진 거죠. 사람은 이럴 때,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어떤 방도를 취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신께 의지하게 되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자님의 의연한 태도는 막다른 구석에 몰려 비로소 기복을 시도하는 천박하고 이기적인 신앙이 절대 아닙니다. 나와 나의 배우자 건강이 위급지경인데 이처럼이나 다양한 방면으로 사색의 방향을 틀 줄 알고 주변까지 두루 챙기신다는 게 예사 인격의 성숙됨이 아니며, 수양의 결과물이라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인간은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야 그 진짜 품격이 드러난다고 하죠. 이야말로 신이 예비한 섭리라 하겠습니다. 꼭 현세에서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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