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김민경 외 지음 / 북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마다 발간되는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작품집입니다. 비록 "스토리대상"이라고는 하지만 작품들은 단편소설로서 다들 완성도를 갖추었으며 책 뒤에 나오는 심사위원평들도 이 작품들이 장르물로서 이미 완성된 수준임을 전제로 하고 논평을 전개합니다. 우리 독자들은 재미있게 이들 작품들을 읽고 스토리의 경쾌한 진행과 플롯의 기발함이 주는 쾌감을 마음껏 맛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편의점 같은 데를 갔을 때 언제나 점원들이 빠릿빠릿하게 응대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p30(<그 많던 마법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김민경 作)에서처럼 좀 버벅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진상짓을 떨 것 같던 남성에 대해, 송하나는 그의 기를 팍 누르고 궁지에 몰릴 뻔하던 점원을 돕습니다. 음... 학교 후배였던 마법소녀 소희를 겨우 따라간 하나는 마법에 대해 몇 가지를 다 알게 됩니다. 남을 돕는 게 핵심이며, "정화(淨化)"라는 과정이 또 중요합니다. 알고 보니 그랬던 겁니다. 세상 이치에는 역시 공짜라는 게 없으며, 착한 일은 대개는 그 보상이 따릅니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경기가 잘 풀리면 쓰레기를 잘 주운 덕이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어느 야구 감독도 생각이 나더군요. 

대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면 목소리가 밝고 경쾌한 여성들이 전화를 받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그 일에 종사하거나 인접 직역 근무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주인공 송하나의 직업을 상담사로 설정하고 그에 마법을 연관시킨 작가의 마음씀씀이 같은 게 느껴지는 단편이었습니다. 상담사가 아니라 마법사가 되어버린 송하나의 마지막 대사에서 뭔가 불꽃이 터지는 느낌도 저는 받았습니다. 마음이 다 후련해졌다고나 할까요. 

지방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요즘입니다. "영롱농장도 폐업 신고했고...(p48)" 그런데 이 작품 <내림마단조 좀비(김호야 作)>에서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무슨 드론 폭격을 당하고, 일꾼들이 곤죽이 되어 할멈의 연구소로 끌려오고, 좀비 액화 비료가 생산성 향상에 극적인 효과를 내는 등 초현실의 배경입니다. 농업은 수천 년 동안 발전을 거듭했으나 그에 상응하여, 아니 그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바람에 역사의 상당 기간 인간은 굶주림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던 게 질소비료의 발명으로 수확량이 개선되어 기아선상의 공포는 면했으나, 대신 화학물질의 섭취에서 비롯한 부작용을 걱정하게 되는데... 이제 이 소설에서는 좀비액비라는 혁신이 등장했으니... 

다크투어라는 게 있습니다. 바람직하고 자랑스럽거나 밝은 기억, 추억이 담긴 명소를 방문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의의를 가진 곳을 찾아 색다른 기분을 맛보는 건데...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치유 대상이 아닌 처리 대상인" 좀비가 비참한 상태에 처한 농장을 구경하며 묘한 쾌감을 맛보는 것입니다. JFK라는 약칭은 들어 봤어도 ZFK는 처음 듣는데, 이게 좀비 해방 단체의 두문자라고 합니다. 인간은 참 복잡한 동물입니다. 어느 하나로 태도가 수렴하여 의견이 일치할 것 같은 문제에서도 누군가는 반드시 반대 스탠스를 취해서 기어이 분란을 빚고야 말죠. 변함없는 것은 높이 떠 누리를 환히 비추는 보름달(p75)입니다. 

어느날 자고일어나 보니 일개 벌레로 추락해있던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지만, <슬롯파더(이리애 作)>에서 아빠는 처량하게도 건조대 신세로 떨어집니다. 슬롯은 슬롯머신이라고 할 때의 그 슬롯인데, p91 같은 데에서 슬롯이 팽팽 돌다 7에서 멈춘다는 서술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게 뭐라고 기계인 채로 있어요.(p98)" 너무도 슬픈 대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에서 수행하는 직분이나 지위, 재산에 불구하고 가족으로부터, 혹은 누구한테라도 고유의 인격을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가족 앞에서 한갖 건조대 취급을 받는 처지라니...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나 이쁠 때지 조금민 지나면..." 결국 플러그가 뽑혀 봐야 우리는 진짜 자신과 알몸으로 대면할 수 있습니다. 

<수호전>에서 인육으로 만두를 빚어파는 무서운 부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p122(<인형 철거>, 임규리 作)에서는 등산객들을 죽이고 금품을 가로채온 무서운 부부가 운영해 온 식당 이야기가 있습니다. 봉제인형이라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으스스한 effigy로 탈바꿈할 수도 있는데 모든 게 다 결국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인간만 인형에게 애착을 갖는 게 아닙니다. 인형도 마찬가지이죠(p132)." 우리는 간혹, 누군가로부터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만 불리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럴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느낍니다. "날 수호라고 불러 주세요." 제대로 이름이 불렸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섭고 오래된 숨바꼭질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안도합니다. 

사람이란 때때로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죽는 건 또 아닙니다. 사람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몸 곳곳에 지방을 저장해 놓는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뚱보들은 미래에대한 준비성이 철저하다며 칭찬을 들어야 마땅합니다. "그래도 제가 생각보다 날렵하다는 걸 알았죠(p191)." 엄마 품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그립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할 항구와도 같습니다. 유류품, 유류품... 세상에는 망자가 있고 그 망자의 소유물은 어떻게든 처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끝내 누군가에게도 귀속되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되는 우리의 미소와 기도, 눈빛... 이단에게 수현은 이제 어디도 갈 수 있다며 자신하지만 과연 그럴까요.(<문을 나서며, 이단에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