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 싱긋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모 대통령은 육사 문지기 출신"이라는 말이, 그를 몹시 싫어했던 대중 사이에서 희화화의 수단으로 유행하곤 했다고 전합니다. 육군사관학교의 방호원이 아니라, 그 학교의 축구부에서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맡은 게 팩트인데도 말입니다. 저 농담 속에는 은근 문지기라는 직종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사실은 들어 있으며, 백범께서 청년 시절 상해의 임정을 찾아갔을 때도 "문지기 역할이라도 맡겨 주십사" 요청했던 걸 보면 그 시절에도 해당 직역에 높은 평가가 이뤄지지는 않았던 사정이 약간은 짐작됩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겠습니까? 서양 관용어구에는 "야만족이 문 앞까지 침략해 들어왔다"는 게 있는데, 문 앞이 아니라 원래 적은 먼 발치에서 미리 격퇴를 해야 나와 내 재산,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 안전해집니다. 문 앞까지 적이 밀려왔다면 벌써 위험의 8,9 할은 현실이 된 셈인데, 만약 문에서도 적을 못 쫓아낸다면 이미 운명은 끝난 것입니다. 문지기라는 소중한 직책의 중요성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 우리가 실감을 그저 못하는 중일 뿐입니다.

저자 권문현 선생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6년 근무하고 이미 정년을 마친 분입니다. 그런데도 현업에서 은퇴 않으시고 다시 콘래드로 옮겨 이번에는 지배인으로 근무 중이라고 합니다. 가히 한국 호텔업계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하며, 호텔리어의 모범이자 스승이라고 하겠습니다. 호텔의 "문지기"라면 사실 말이 문지기이지, 이모저모로 돌보아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죠. 또, 우리가 저기 강터의 JW 맬메리어트 같은 곳에 가 봐도 알 수 있듯, 호텔의 얼굴과도 같은 직역이 바로 권 선생 같은 분들입니다. 도어맨은 그저 문 열고 닫는 사람이 아니라, 초특급 호텔의 최전선에 서서 "우리 호텔은 이러한 곳입니다"를 간단한 표정, 제스처, 기품, 위엄, 친절함 등으로 표상하는 직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면 저절로 달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네요. "어떤 이들은 이 직업을 감정 노동자라고 하지만 항상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항상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한 분이라면, 그 웃음이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웃음이란 뜻입니다. 자신의 일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일의 파급 효과가 또한 어떠하며, 그 일이 어떠어떠한 이들에게 긍정 부정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 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이런 반응이 가능합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웃음을 짓는다는 건 그저 허공에 대고 웃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직역상 사람들에 대고 그 눈을 보고 웃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즉 그 순간에 (위에서 말한 대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웃음이 되려면, 사람 사람의 특징과 내심과 수양의 정도와 그 사람의 행복한 정도가 가늠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숱한 사람들을 접하고 또 접한 분이라면, 사람을 한번 보기만 해도 그 내공과 선함과 직분과 사회적 위상이 바로 감 잡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달인의 경지라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김민희 지음, 이어령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청난 책입니다. 설령 아주 평범한 이웃집 노인분이라고 해도 80년 생애를 살아 오셨다면 얼마나 깨우치신 바가 많고 그 삶에 배울 대목이 많겠습니까. 하물며 이어령 교수님은 꽤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을 날리신 분이기에, "80년 생애"라는 타이틀만 봐도 가슴이 철령 내려앉는 듯합니다. 아주 젊은 편이라면 차라리 별 감각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제 나이를 좀 먹었다면, "80년은 고사하고 저분의 20대와 비교해도, 지금 이 나이를 먹은 내가 과연 무슨 사유의 성숙함을 갖췄을까?"하며 자괴감에 빠질 만합니다. 하물며 80년이라. 그런데 이러면 차라리 "아 80년이시니까" 하며 나 자신을 좀 너그럽게 보는 마음이 들 만합니다. 아무리 부실한 인생이라 해도 80년을 산 현자의 지혜 앞에서야 그리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p128에는 <축소지향의 일본인> 탄생에 얽힌 배경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처럼이나 젊은 나이에 그런 노작을 쓰시고 일본 현지에서도 극찬을 받았으니 이어령 선생님은 과연 천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나루호도!" 이후에도 선생은 일본에 자주 방문도 하고 체류도 하셨는데 그 무렵을 담은 회고는 사실 선생의 생애에 여러 굴곡 많은 사건들이 겹쳐서인지 그리 밝은 분위기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p212에는 한예종 설립에 관한 사연이 나옵니다. 밀가루 봉변으로 유명한 정원식 씨가 당시 국무총리이셨나 봅니다. 이어령 장관님은 당시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는데(그 전에는 문화공보부 등 다른 명칭이었습니다) 이처럼 한예종 같은 한국의 명문교 수립에도 크게 간여하셨다는 점 우리 독자들이 염두에 둬야 맞겠습니다.

p264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루지 못한 두개의 프로젝트가 나옵니다. 세계의 길이라는 프로젝트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우리 한국은 (일본도 그렇지만) 국토의 70~80%가 산지입니다. 당연히 이런 국토에 얽힌 사연도 많고 길과 길을 연결하면 그 스토리가 무한정으로 길어지며 그윽한 감성을 풍길 것입니다.

"무지개 색은 셀 수 없는 불가산 명사야(p330)."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봐고 해서 어떤 구획을 정합니다만, 실제로 비가 갠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면 그렇게 띠가 명확히 나눠지는 게 결코 아니죠. 결국 말과 말이 (다 부질없는) 경계를 낳고 다툼을 낳고 소모적인 대립을 양산합니다. 정작 고승들은 예로부터 "색즉시공"이라는 궁극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겼는데도 말입니다.

p348에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남은 건 오로지 문화의 힘"이라고 합니다 .하긴 백범께서도 그의 노작 중에 그런 말씀을 남긴 적 있습니다. 한국인은 문화 아이큐가 높고, 이 문화 아이큐를 통해 강한 군사력 없이도 기나긴 생존을 이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생존은 그리 비루하지 않았고, 약간의 지혜 발휘를 통해서도 주변 민족에 비해 무척 풍요로운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민중 대다수는 지배층의 노예로 살았고, 유목 민족의 정복 통치 하에서 엄청난 굴욕을 겪은 시간이 많았으며, 유목 민족들 중 대부분은 그저 약탈과 파괴로 죄 많은 역사를 일궜을 뿐이지 않습니까? 선생은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61년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 선생님이 오랜만에 펴 내신 소설입니다. 배경은 저 제목 그대로 2061년인데 생각보다 너무 소재가 다채롭고 현대적이라서 읽으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코비드19라는 변형 RNA바이러스 때문에 고생을 하는 중인데요. 이 소설 중에도 팬데믹에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주인공은 시간 여행자, 즉 영국 드라마 닥터 후 같은 데 나오는 시간여행자인데 이름이 심재익이더군요. 성이 심씨이면 조선 명문가들이 연상되어서인지, 아니면 이 선생님의 전작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 때문인지 왠지 이지적이고 어깨에는 큰 책임을 진 남성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물론 ㅎㅎ 글로 상상으로 시간을 여행하는 이인화 선생의 페르소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꿈의 힘을 믿어야..." 이런 말이 아마 청나라 말 함풍제 같은 이의 입에서 나왔다면 현실 도피라며 많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겠죠. 그러나 우리는 이미 1990년대 말에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봤기에,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 가공의 감옥이며, 오히려 우리가 자유롭게 꾸는 꿈이 현실일 수도 있음을 배운 바 있습니다. 아니, 꿈이 꿈일 뿐이라면 애초에 왜 우리가 꿈을 꾸게끔 설계, 혹은 진화가 되었느냐는 의문을 가질 만합니다. 꿈에는, 혹은 현실에서 희미한 자취만 보이고 지나가는 그 모든 것에는 다 존재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면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노름꾼도 있고, 남을 돕는 의사도 있고, 요즘 말로 "xxx WORKER"라고도 불리는 성x매 종사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미래라고 그 모든 부조리함,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 혹은 부질없고 비생산적인 욕구가 다 사라졌을까요? 인간은 애초에 태생으로부터도 비합리적이고 모순에 가득한 고깃덩어리입니다. 또 하나 개탄스러운 게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싸우거나, 아예 이 모든 걸 부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드는 무모한 분자들이 어느 시공간에나 진을 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이제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강력한 능력을 구사하기도 합니다. 뭐 17년 전 레이 커즈와일이 자신의 책에서 이미 그 존재를 예상, 상정한 대목이기는 합니다. 작가는 역시 천재적인 언어 감각의 보유자 답게, 어떤 문자라도(로마자는 물론 한글이라도) 인간의 발성기관으로부터 나는 다양한 소리를 표기하기에 역부족임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래서 동아시아권은 표음문자 아닌 뜻글자를 일찍부터 만들어 썼던 것일까요? 이름부터가 낡은 극우사상과 편협한 민족주의를 떠올리는 어느 캐릭터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음산한 부호 뭉치를 다시 입에 올립니다. 그 시절이 다시 와야 한다는 소망과 당위를 전파하듯 말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가 지금 무엇을 사색하고 응시하고 실천해야 할지, 이 소설은 우화의 형식으로 가르쳐 주는 듯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1
제니 한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누구에게건 일생의 사랑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짝사랑도 있고, 서로가 원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맺어지지 못한 인연도 있고, 옷깃도 채 스치지 말았어야 할 악연도 있습니다.

라라진은 한편으로 참 당돌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어떤 인연을 선택하거나 시도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이 중에는 놀랄 만한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있고, 그녀의 할머니 또래에게나 어울리는 구식의 감정선도 눈에 띕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의 발걸음이며 그녀의 동선입니다. 밖에서 이러쿵저러쿵할 권리는 없습니다.

"심장이 어떻게나 빠르게 뛰던지 내가 키스를 서툴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p109)." 학교의 공식 커플은 따로 있는데 우리의 주인공 라라진은 또 여기서 사고를 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만해 한용운도 회고한 것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모든 것을 잊고 넋 놓게 만들 만큼 강렬하고도 압도적인 체험입니다.

"흥정이라는 게 생각만큼 어려운 건 아니었다(p247)." 아무래도, 나이 어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이런 풋풋한 "첫 경험"에 대한 회고가 재미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공교롭게도 인생의 마지막 장을 향해 걸음하는 할아버지도 나오는데, 이분은 어느 공인회계사 이야기를 하며 "누가 생각이라도 나는 듯" 그윽한 회고에 잠긴 눈빛을 띱니다. 라라진은 그 눈빛 안에 얼마나 깊고 먼 사연이 따라올지 아마 감도 채 잡지 못할 것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네 얼굴은 잘생겼다기보다 아름답더라(p96)." 이런 말을 들으면 물론 수신 당사자는 기분이 뿌듯하겠으나 문제는 발신자의 민망함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눈치 못 채도록 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하겠지요. 반대로 어떤 사람은 백 미터 밖에서 봐야 그나마 잘생겨 보이고, 안으로 접근할수록 그 못남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보는 사람의 안경"에 달린 문제지요. 한번 사랑에 빠져 콩깎지가 씌면 보는 그 얼굴이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god(des) of sex를 연상하게도 됩니다.

"이러니 내가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p304)" 사실 라라진뿐 아니라 누구라도, 누구에게도, 진짜와 가짜가 구분이 힘들 뿐 아니라 대체 누구 관점을 기준으로 가짜와 진짜를 판별하겠습니까? 애초에 불가능한 과업입니다. 내 자신의 감정도 그게 찐인지 뭔지 판단이 힘든 판에 말입니다.

달달한 로맨스나 어떤 도피처 같은 걸 기대한 독자에게는 뜻밖의 솔직한, 그리고 신랄한 "현실 진단"이 잔뜩 펼쳐지는 게 의외입니다. 그 뒤에 몰려오는 건 각성과 공감입니다. 책 읽은 시간이 뿌듯합니다. 2권도 마저 읽어 보려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대, 4차 산업혁명을 이기는 능력 - 고사성어로 준비하는 미래형 인재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0
임재성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차 산업혁명이 눈 앞에 다가왔다고도 하고, 이미 현재진행형이라고도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직업 80% 이상이 사라질 전망이니 자라나는 아이들은 창의력과 공간지각능력, 코딩 실력 등을 특별히 길러야 한다고도 이야기되죠. 그러나 그 누구도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일러 주지는 않습니다. "그레이 스완"이란 말이 있는데 어떠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거의 확실하지만, 대처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경우를 가리킵니다. "4차 산업 혁명" 역시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에 닥쳤던 세 차례의 산업 혁명은 (역시 일부 계층에서 거센 저항이 있었으나) 대체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편의와 쾌락과 넉넉한 생산성을 가져왔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네번째 산업혁명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것도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보가 너무 얻기 어려워서 문제였는데, 반대로 요즘은 정보가 지나치게 흔합니다. 이미 20년 전에 모 컴퓨터 월간잡지에 글을 연재하던 어느 칼럼니스트가 이런 상황을 예견했는데 그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엉터리 정보의 홍수라니, 너무 배부른 고민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이게 엄연히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논리적 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엉터리 정보, 혹은 가짜 뉴스는 그 자체만 단절적으로 놓고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전체 맥락 안에서 놓고 보면 매우 허술하고 모순덩어리입니다.

"생각의 근육들이 탄탄해야 논리적 사고력이라는 기초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p62)." 어려서부터 독서가 부실하고 부호 암기식 공부에만 매몰된 자가 공부를 통해 모종의 기쁨을 발견할 리가 만무하고, 어떤 자신만의 개성적인 시야가 생길 리가 없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교조 성리학을 맹종하는, 혹은 이슬람 교의를 글자 그대로 맹신하는 장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눈치도 둔하고 타인에 공감할 능력도 없습니다. 4차 산업의 파고 속에 가장 먼저 도태될 군상 중 하나입니다.

"끌려가는 자는 자신보다 끌어가는 사람을 믿는다. 끌어주는 사람이 믿는 것일 뿐인데, 이를 자신이 직접 선택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누군가가 가라고 하는 길을 대신 걷는 것인데, 그것을 자신의 길이라고 착각한다는 뜻이다(p36)." 참 폐부를 찌르는 말입니다. ㅎㅎ 레밍스처럼 그저 다수의 무리(이조차도 착각이죠. 그게 다수의 길이기나 하다면 말도 안 합니다)에 휩쓸려 끌려가는 당사자에게 이런 말을 해 줘 봐야 쇠 귀에 경 읽기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올바른 세계관, 자아상이 정립되어야 하는데 이미 머리가 저리 굳어버리고 나면 답이 없습니다. 이런 좀비 같은 인간보다야 (극악무도한 범죄자이긴 하나) 자기 의지와 느낌대로 한 순간이나마 산 뫼르소가 더 자유인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대체 왜 자신의 대표작 중에 저런 극단적인 인성 파탄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지 한 번이라도 진지한 의문을 가져 봒겠습니까? ㅋ 그게 다,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저런 좀비들을 조롱하기 위해서인데 말입니다. 모든 게 다, 입시 통과를 위한 족보 노트화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심한 암기 중독자 주제에 지식인, 교양인으로 스스로를 착각하는 거죠.

p30에는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의 말이 인용됩니다. "자신감이 높은 사람은 현재의 삶을 잘 받아들인다." 스스로가 환상, 허상 속에 갇혀 살기에, 예전 무슨 노래 가사처럼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철학을 논하고 공부한다는 말입니까. p29에는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UN에서 연설했던 내용 일부가 인용되는데, 메시지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올바른 자기 사랑 방법이 아닙니다. 일종의 허상을 스스로에게 투영하여 그 허상을 (자신 대신에) 사랑하는 거죠. 사람은 아무리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스스로가 자신에게 확신을 갖는지 아닌지,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압니다. 그러기에 참된 자신감을 갖고 현재를 침착하게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한다는 게 여간 내공으로는 가능한 게 아닙니다. p24에는 라 로슈푸코의 말이 나오네요.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은 어리석다."

p128에는 다시 방탄소년단의 그 멤버가 UN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가 인용됩니다. 아무래도 요즘 청소년들에게 더 강한, 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이분들이라서인 듯합니다. 연설문 자체는 참으로 맞는 말이며 흠 잡을 데도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게 그 방법까지 올바르며 타당한 목표를 잡기란 참으로 어려운 과업이니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어떤 공부라든가 기능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을 올바르게 아는 길"이라는 건 다소 의외지만, 그만큼 새로운 세상에 어떤 본질적인 부분을 직시하며 적응한다는 게 어려워서이기도 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고, 난관에 봉착할수록 "지피지기", 즉 자신과 그 환경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필요해서이기도 합니다.

창의력을 향상시키려면 먼저 (자신에 대한 올바른 사랑을 통해 발견한) 진짜 취미, 적성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자는 "모든 분야에 능통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능통"해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p143). 이런 창의력이 계발되어야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올바른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또한 필요합니다. p153에는 과거 피처폰 시대의 강자였던 노키아가 어떻게 해서 무너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노키아의 잘못된 임기응변 사례"도 주의 깊게 읽어 볼 만합니다. 그들은 자체 OS인 심비안을 내놓았는데 "기능이 너무 단순해서 시장에서 외면받았다"고 합니다. 임기응변 자체는 나무랄 게 없으나 그 방법까지도 타당해야 했었다는 거죠.

요즘은 어디서나 교감, 소통, 공감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위한 첫걸음이 바로 "경청"입니다. 무슨 궁예도 아니고(ㅋ),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무슨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훈장질부터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적 자체도 포인트를 못 짚은 바보스러운 것이지만, 도대체 자신이 누구한테 무엇을 지적하고 말고할 자격이 되는지부터를 먼저 좀 진지하고 솔직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의 머리에는 검은 보자기를 씌운다.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돌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기 위해서이다(p41)." 이 말이 자연과학적으로 근거를 갖춘 것이건 아니건 간에,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떤 의미를 끊임없이 찾고 지향한다는 점은 그 강도의 크기에 무관하게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뒤에는 경주마에 착용시키는 "차안대"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자가 십대들에게 주장하는 건 명확합니다. "강요된 차안대를 스스로 벗고 내 생의 의미를 발견하자." 먼저 참된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어떤 신들린 창의력도 발견되고 계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