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닫아주세요, 날씨가 너무 좋아요...."  

플로베르의 친구인 르 푸아트벵이 임종시에 한 말이다. 이 말은 알베르 카뮈의 <수첩>에 인용되어 있다.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취기에 취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서의 도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의 무익하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물의 일부로 바뀌는 그러한 순간들을 기대하거나 추억하며서 살아간다.  

나는 이드라 고원에서 부아롤 기둥, 여름 궁전, 갈랑 공원을 지나 도보로 내려오면서, 그리고 알레티 호텔에서 정부 광장까지 강가를 따라가면서,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걷고 있었다. (중략) 진정한 환희, 당신 자신과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사이의 어떤 일치,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일치가 없으면 무엇에서 생겨나는지 말할 수 없는 그러한 환희를 느꼈다. 

                                                                                                    p106 <카뮈를 추억하며> , 장 그르니에 

책을 읽다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햇살이 마당의 장독 위에 가득 고여 있다. 침이 고인다. 커피가 생각난다. 

전기포터로 물을 끓여 커피를 한 잔 탔다. 부엌에서 마실까 거실에서 마실까 아니면 내 방에서 마실까 잠시 생각하다 바깥에서 마셔보기로 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손에 책을 들고서 마당으로 나왔다. 한 구석에 놓여진 파라솔에 앉았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머물며 방긋거린다.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고,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그림자가 먼저 보이더니 사람은 맨 나중에 보인다. 파라솔 아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새파란 하늘 아래 있으려니 눈이 부신대도 자꾸 하늘이 보고 싶다. 파라솔 아래서 보는 하늘의 해는 하얗다. 마음껏 하얀 해를 보았다. 근처에 퍼져가는 구름도 보았다. 아까 보던 구름과는 또 다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향하는 아이들 마냥 구름의 서두름이 느껴진다. 곧 붉게 노을이 져서 하늘을 물들이겠지.   
 

고양이가 사뿐 지나간다.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가 떠오른다. 어릴 적 길렀던 고양이 나비도 떠오른다. 아침 출근길에 보았던 지붕 위의 우아한 고양이도 떠오른다. 나는 우아한 고양이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어 안녕, 해주었다. 우아한 고양이는 무심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물루도, 나비도, 모두 무심하다. 무심하게 겹쳐지는 시간 속에 구름 또한 겹쳐진다.

 

 

커피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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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시간이 그새 많이 흘렀어요. 난 잠시 출근했다 퇴근했구요. 어느듯 가을이네요. 손에는 장갑이 필요하고 점퍼를 목까지 채워야 춥지 않더라구요. 퇴근길에 강가를 봤더니 고요한 강물에 하늘의 구름이 슬몃 비치네요. 그래요, 그 구름. 고개를 들었더니 그 구름은 유유히 흩날리며 비는 듯 자기 공간을 꽉 채우고 있네요. 우리의 사랑이 조금씩 흩날려 바람 저편으로 날아가듯, 그렇지만 다른 공간 어딘가를 꽉 채우고 있는 듯 말이죠.  

나는 왜 움켜쥐고 싶지 않은 걸까요? 조금이라도 손아귀에 남겨놔서 당신을 영영 볼 수 없을 때를 대비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저 평화롭게, 무심하게 보고만 있네요. 당신은 욕심이 없다고 했죠. 나도 욕심을 버리고자 했구요. 그래서일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평화로운 걸까요.

평안함 속에서 나는 아주 조금, 허전함을 느껴요. 그 허전함이 당신의 부재에 의한 것인지 태생적으로 내가 가진 외로움이 일순 강력해진 것인지 종종 분간이 힘들어요. 나는 내 외로움을 당신으로 채우고 싶진 않아요. 누구나 자기 몸을 가지고 태어나듯 누구에게나 외로움은 떼어버릴 수 없는 그림자처럼 숙명적인 것이니까요. 그래요. 유독 외로움을 느끼는 건 채우고자 하는 것의 존재가 어쩜 불가(不可)의 영역에 속함을 알기 때문일 거에요. 

일상의 번잡한 것들에 몸이 묶인 우리에게는 잠시의 티 타임이 좋을 듯 해요. 정오의 낮잠도 좋구요. 

물론 나는 그 이후의 시간, 그리고나서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겁이 나요. 당신이란 아름다운 과일의 향기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죠. 당신이 없이도 난, 당신의 향기를 기억 속에서 매번 끄집어내거든요. 그렇지만 그건 나의 행복한 일과 중 하나. 이 가을 날에 당신을 추억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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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0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을 타게 만드는 글... 너무 낭만적이잖아요! 정오의 낮잠과 티타임, 저도 해보고 싶은데 오늘은 할 일이 꽤 많아서 다음 주말을 기약해야겠네요 ㅠ ㅠ 당신이란 아름다운 과일의 향기, 요 문장이 참 좋아요 :)

달사르 2011-10-03 17:46   좋아요 0 | URL
캬캬. 전 잠시 낮잠을 즐기다가 오후의 티타임까지 가졌답니당~~ ㅎㅎㅎ

말없는수다쟁이님도 다음 주말에 해보셔요. 고양이처럼 뒹굴뒹굴.완전 신나네요. ^^ (힛. 그 과일 같은 사람의 향기는 정말 달콤했답니다. ^^ )
 

 
하자르 민족과 그들의 국가는 어떤 한 사건의 결과로 인해 역사의 무대에서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바로 이 책의 주된 관심사이다. 하자르 민족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그들 고유의 신앙을 버리고, 잘 알려진 현재와 과거의 세 종교, 즉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가운데 하나로 개종했다. 그러나 하자르 민족이 세 가지 종교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자르 민족이 개종하고 나서, 곧바로 그들의 제국은 붕괴했다. 10세기 무렵에 러시아 군대를 지휘하던 스뱌토슬라프 대공이 사과를 삼키듯이 하자르 제국을 삼켜 버린 것이다. 그는 말에서 내릴 필요조차 없었다. 963년에 러시아 병사들은 잠도 자지 않고 8일 동안, 볼가 강이 카스피 해로 흘러드는 어귀에 위치한 하자르 제국의 수도를 짓밟았다. 그리고 965년에서 970년 사이에 하자르 국가는 영원히 멸망했다.   
                                                                                                                         p.13 <하자르 사전> 

 6세기 프로코피오스가 쓴 비잔티움 제국의 <비사>에서는 이 동슬라브인이 제국의 영토를 끊임없이 침범하는 야만족으로 묘사되면, 때로는 이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노예로도 팔리고 있음이 언급되고 있다. 앞으로 동슬라브인은 키예프 루시 시대의 <원초연대기>에서도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발트 해에서 노브고로드를 지나 드네프르 강을 따라 흑해로 이어지는 '고대의 수상 무역로'를 따라 비잔티움 제국과 직접적인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동슬라브인은 4-6ㅔ기경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중부와 동부 러시아의 삼림, 하천, 초원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하며, 점차로 키예프 루시 공국의 류리크 왕조 성립에 근간이 되는 단일 민족을 결성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키예프노브고로드를 중심으로 모여 살더 동슬라브인은 고트족에 대항하기도 했고 훈족에게는 동화되기도 했으며 키예프 루시가 들어서면서 스뱌토슬라프 공에 의해 멸망한 하자르족들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9-10세기경의 일이었다.                                p.38<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하자르 민족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그들 고유의 신앙을 버리고, 잘 알려진 현재와 과거의 세 종교, 즉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가운데 하나로 개종했다. 그러나 하자르 민족이 세 가지 종교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자르 민족이 개종하고 나서, 곧바로 그들의 제국은 붕괴했다. p.13 <하자르 사전> 

 
한편 유대교를 받아들였던 하자르족의 신에서 차용한 것이라고도 알려진 '호르스'라는 명칭은 '원'의 개념과도 부합하는데, 그것은 아주 커다란 순환의 '바퀴'를 상징하기도 한다. (중략) 또한 '호르스'는 태양과 빛을 상징했으므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기 전의 키예프 루시 사람들은 '호르스'를 '대공'의 왕관이라고도 생각했다. p.59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하자르족은 러시아와 관련이 밀접하다. 러시아에 의해 멸망했기도 했지만 (위의 사례를 보아) 양자는 서로의 종교나 신을 모방하거나 차용하기도 한 듯하다. 같은 시기 러시아에 대해서 좀더 알아본다면, 하자르 족이 왜 기존의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고자 했는지 추측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하자르 족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자만을 초대해서 개종을 결심했는데 왜 러시아는 그런 하자르 족의 신 중 하나인 '호르스' 를 차용했을까. 그리고 하자르족이 개종하자마자 러시아는 왜 하필이면 그 시기에 하자르 족을 멸망시켰을까. 정치경제적인 목적 이외에 종교적인 목적은 혹시 있을까.

러시아의 역사를 구분하자면, 

1. 키예프 루시 2. 몽고 타타르 시대의 루시 3. 모스크바 루시 4. 표토르 대제 시대의 제국 러시아 5. 소비에트 러시아 6.현대 러시아   

첫번째 시기인 키예프 루시 시기, 그러니까 9-13세기에 블라디미르 대공의 정교 수용(988)을 통해 비잔티움의 서구 문명과 접할 수 있었고 비잔티움 신학과 예술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전통적인 동슬라브의 범신론적 자연관과 조화롭게 결합시켰다. 흔히 '이중 신앙' 체계라고 불리는 러시아 정신의 이원적 가치관이 형성된다.  p.20<러시아문화예술의 천년>

 
 
후기 슬라브 민족 신화에 <코지제 해>라는 것이 나온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하자르 해>라고 불리는 바다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슬라브 민족은 하자르 민족을 <코자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p.12 <하자르 사전>  

슬라브인은 일반적으로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지역의 서슬라브인, 세르비아,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지역의 남슬라브인, 그리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지역, 즉 키에프와 노브고로드 지역에 거주하던 동슬라브인으로 분류된다. '슬라브'라는 말은 동유럽의 제 민족들이 로마나 비잔티움 제국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6세기경부터 형성된 조어라고 보는 견해와 러시아어로 영광을 나타내는 '슬라바 slava'에서 기원한다는 설로 갈라지고 있다. p 37 <러시아문화예술의천년>

 <하자르 사전>을 접하면서 읽다가 어려워서 한동안 밀쳐놓았던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을 다시 들춰볼 수 있었다. 러시아의 고대슬라브 종교에 대해 좀더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글 곳곳에 나타나는 '하자르'라는 단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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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0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꽤나 두툼한 책이지요? 음.. 혹시 하자르 사전도 크기가 저만할까요?
저는 <나타샤 댄스> 에 이끌려 저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

달사르님 안녕하세요 :D

달사르 2011-10-03 09: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D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다 읽으려면 일 년은 훠어얼씬~ 더 걸리지 않나 생각했어요. 친구 추천으로 알게 된 책인데 바람결님까지 알고 계시다니 무척 뿌듯한데요? ^^ 예술로 접근하는 역사 알아가기, 여서 더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음..하자르 사전은 크기는 러시아 책의 절반입니다. A4지가 러시아 책 사이즈라면 하자르 사전은 A4지 절반이거든요. 두께도 러시아 책 절반 조금 넘습니다. 러시아 책이 800몇십페이지. 하자르 책이 400몇샙페이지거든요.

앗. <나타샤 댄스>는 뭘까요. 히힛. 궁금하네요. 찾아봐야겠어요.
 

1. 카스피해, 흑해 

 
하자르 민족은 독립된 강력한 부족이었으며 호전적인 성격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시기에 땅 위의 모든 것을 말려 죽일 것 같은 침묵에 떠밀려 <동쪽>에서 이주해 왔다. 그리고 7세기부터 10세기 무렵까지 두 개의 바다, 즉 카스피 해 흑해 사이에 정착했다.                                                                        p.12 <하자르 사전>  

터키 위가 흑해, 이란 위가 카스피해이다. 그 사이(러시아라고 적힌 부분 근방)가 하자르 민족이 있던 곳이다.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와 왼쪽의 유럽을 잇는 가교인 이스탄불 아래엔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가 있다.


 


 
 



2. 다뉴브 강

 
하지만 그들의 기원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으며, 그들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떤 이름으로, 혹은 어떤 민족 중에서 하자르 민족을 찾아야 하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하자르 민족이 남긴 흔적으로는 다뉴브 강가의 묘지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하자르인의 무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p.13  <하자르 사전>   

다뉴브 강은 도나우 강이라고도 부르며 어원은 라틴어  두나비우스(Dunavius)이다. 다뉴브 강은 알프스 북부의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해 여러 나라를 거쳐 흑해에 이른다.

  
  

  

 

3. 볼가강 

 
하자르 제국의 수도에 있던 집들이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그림자는 여러 해 동안이나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했다고 목격자들은 기록했다. 파괴된 건물의 파괴되지 않은 그림자들은 볼가 강물과 바람 속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p.13 <하자르 사전>
 

볼가 강은 러시아의 발다이구릉에서 발원하여 카스피해로 흐른다.  고대에는 라(Ra), 중세에는 이틸리(Itil’) 또는 에틸(Etil’)이라고 불렀다. 밑의 돈강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타나이스 강이라고 불렀으며, 아조프해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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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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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흐릿한 마음이 진해지는 시간. 투둑! 창가의 바람소리는 혹시..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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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저두 이 책 언젠가 꼭 읽으려고 읽으려고 했는데! ㅎㅎ
읽은 사람들끼리 모여 새벽 세 시 클럽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

달사르 2011-10-02 23:50   좋아요 0 | URL
ㅎㅎ 빨랑 읽으셔욧!
저는 이 책 리뷰 쓰려고 종일 낑낑거리다가, 밀린 '하자르 사전' 포스팅만 두 개나 올렸네요. ㅎ


그나저나, 새벽 세 시 클럽은 새벽 세 시에 만나는 겁니까! :)
참고로, 저는 다락방님께 이쁨 받으려고 읽은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하하하.

다락방 2011-10-03 13:56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은 이 책을 아직 안읽으셨구나....(시무룩)

다락방 2011-10-0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달사르님. 읽으셨군요! 꺅 >.<

달사르 2011-10-03 17:47   좋아요 0 | URL
헤헤. 넹. 넹~
어여쁜 리뷰까지 써야 더 이쁨 받을텐데 말이죠. ^^ 아직 생각을 정리 중이야요. 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