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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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그의 글을 읽게 된 특별한 계기.
작가의 작품은 초창기부터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일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의 책을 지인에게 선물하고, 적지 않은 책을 읽기도 했지만, 그의 책을 읽고 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무언가 사람들의 유명세에 끌려서 책을 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좀처럼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의 글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그의 강연을 듣고 난 뒤였다. 대학에 다니던 때 글쓰기 과목의 강좌가 있었고, 학기말에 시상식을 하는데 김훈 작가가 강연자로 초대되었다.
순박한 소처럼 큰 눈을 가진, 느릿느릿 어눌한 말씨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글에서 보이는 단정적이고, 차가운 분위기와는 다른, 순박하고 유머넘치는 강연을 하였다. 보고서를 쓸 때,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과 의견을 말하는 것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비결과 칼의 노래의 첫 문장에서 조사를 고쳐가면서, 한국어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조사를 잘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에서 보낸 시절보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공부를 했다며, 글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이 자퇴하려고 하는데, 하는게 좋을지 말아야 할지 묻는 부모의 질문에, 자신은 50이 넘어서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책을 냈다며, 그때 책을 내어도 늦지 않다고 이야기하였던 말도 떠오른다. 형용사와 부사, 수사를 쓰지않고, 주어와 동사, 목적어로 더 많은 감정의 표현을 전달해내는 작가의 글에 자기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 후 그의 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한 번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자전거 여행에 소개된 곳을 따라 여행을 하며, 내 나름의 감회를 적어볼까 하던 차에, 그의 새로운 에세이가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고흐 그림가 본문과 표지에 실려있고,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변했던 강연이 글로 적어져 채워져 있었다. 이번에 글을 남기면, 다음 작품도 읽고 글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완전한 언어로 불안전한 세계에 사는 불안전한 인간에 대해 쓰는 작가의 글에, 서툰 감상으로 글을 채워본다.
# 수식어 없는 글들을 읽으며, 마음에 슬픔이 전해져 온다.
수식어 없는 글들은 딱딱하다. 마음에 와 닿기 보다, 머리가 먼저 반응해서, 옳고 그름에 먼저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수식어 하나 없는 그의 글을 읽는 동안, 해지고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은 강 하구에 앉아 닿을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는 한 사내가 마음의 스케치북에 그려졌다. 손목에 보이는 푸른 정맥, 동물원의 동물들의 이름, 시선 등의 소소한 소재들이 적힌 메모장을 뒤적이며, 사랑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글에는 수식어가 하나도 없지만, 아련하고 애석한 마음이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으로 전해져온다. 아름다운 불꽃과 총천연색의 화려한 빛깔로 눈을 현혹하지 않더라도, 단색으로 그린 투박한 그림 하나에,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고 할까. 그림으로 따지면, 수채화보다 수묵화에 닿아있는 느낌이다.
아버지와의 추억, 어머니와의 추억, 소방관 이야기, 칠장사, 시집과 화가에 대한 평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에세이집의 틀 안에 담겨있다. 작가의 다양한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음속의 의문들을 풀어낼 수 있다고 할까. 시집을 보면 좋다 나쁘다의 틀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생생한 체험들과 꼼꼼한 조사가 잘 조합되어 편안하게 읽기는 어렵지만, 깊이있는 글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나이 많이 먹은 장인의 꼬장꼬장한 성품이 담긴 물건을 사서 사용하는 느낌이다.
그와 동시대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의 고충과 고난을 알기 힘들다. 슬픔과 고난과 괴로움의 늪 속에서 작은 희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임꺽정과 산적들이 의형제를 맺었던 칠장사를 다녀와 남긴, <칠장사 기행>을 보면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이가 아닌, 거부로서 삶을 살았던 임꺽정과 그의 삶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완성되지 못한 민중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보인다고 할까. '정의' 에 뜻을 두기 보다는, 한평생 일상의 영원성을 지켜가고 싶었던 그의 로망이 있었기에, 그들에 대한 시선이 차갑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이념, 보이지 않는 이상에 대한 환멸이 강한 사내가 작품속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모습일거라 생각했다.
# 화려한 부록이 인상적인 책.
말과 사물이란 이름이 붙은 3장은 <회상>과 <말과 사물>은 저자의 강연을 기초로 저자가 다시 글로 적은 에세이이다. 저자의 삶에 대한 생각과, 조국을 바라보는 모습, 인생관 등을 잘 느낄 수 있다. 옹기장이 노인이 어떻게 옹기장이가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나의 옹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기만의 철학과 고행등을 전해 듣는 것처럼, 그의 눌변의 이야기가 냉철하고 수식없는 글로 정돈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장부터 부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강연을 듣는 일은 쉬운 기회가 아니다. 내가 들었던 강연의 내용은 둘로 나뉘어 회상과 말과 사물에 나누어 소개되어 있었지만, 저자가 말했던 조사의 사용과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말하는 일만 잘해도 글쓰기의 절반은 잘 하는것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호기심을 키우고,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쉼 없이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동어반복을 피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삶의 현물성이 것들에 대한 묘사와 표현으로 다음 작품에 소개될 것 같다. 이제까지 저자가 바라봤던 삶의 현상들과 이제 바뀌어 표현하려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었기에,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설레임을 안겨준 책과의 만남이었다.
책을 고를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 기준으로 책을 결정한다. 30페이지를 읽어 볼 시간이 없을 때, 목차와 저자의 말을 보고 그 책을 읽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내가 읽었던 책 중 가장 저자의 말이 인상깊었던 저자 중의 한 명이었기에, 그의 저자의 글만 모아서 정리하고 싶었는데, <바다의 기별>에서 그런 수고를 덜어주었다. 오치균의 그림이 부록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 또한, 그에 대한 에세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독특한 부록이 마음의 기쁨을 더해주었던 책이다.
좋은 글은 누가 읽어도 마음의 울림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책을 읽을 연이 되었을 때, 읽는다면 책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그의 글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소리내어 읽으니 그의 말의 울림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수상소감 앞까지 소리내어 읽고나니 하루 해가 저물어 버렸다. 하루를 이 책으로 보냈다. 나의 인생의 정해진 시간 중 하루의 시간이 그의 책과 함께 시간의 강물에 흘러갔다.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