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견뎌낸 95세의 노학자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에세이.
 
 
  90이 넘었던 지식인을 알지 못한다. 저자가 내가 알고있는 지식인의 인물망 중에서는 최고령의 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지식인이 큰 고초를 겪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시기에, 저자는 격리조치와도 같은 '우붕'에서 삶을 견뎌내야만 했다. 감옥에서 비난받는 생을 사는 것과 차이가 없어보이는 굴욕의 순간을 저자는 방대한 양의 인도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의 번역으로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승화시킨다. 긴 세월을 장수로 지내올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마음 가짐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짐작해 보았다.
 
  남아있는 생이 살아온 생보다 많지 않은 저자는 인생에대한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일도 자기 뜻대로 결정하기 힘든 수동적인 삶, 어리둘정한 삶을 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야기 한다. 담담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작은 편린들을 들려준다. 길지 않지만, 글 하나하나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깊은 사색의 힘이 담겨있다. 젠체하지 않은 채, 거만하지도 자신을 낮추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의 글은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다시는 혼자서만 깊이 생각하지 마라.
 
 
  안분지족이라 할까. 저자의 글에는 동양적 삶의 깨달음이 잘 우러나와있다. 다른 사람과 사회의 추세에 마음이 끌려가지 않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생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생각하는 깊이있는 삶에 대한 철학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노학자의 글이라 고루하고, 시대의 흐름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생의 시대를 많이 보여줄거라 생각했는데, 변화하는 세대의 차, 고령화 시대 등에 생각하는 관점은 젊은이들의 철없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자유로웠다. 나이가 먹을수록 지혜가 깊어간다는 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흔을 넘어선 고령의 나이를 '늙은 시계'라 칭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허름하고 낡아보이지만, 시계의 역할은 다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까. 나이 들어감을 전략상으로 인정하지 않되, 전술상으로 늙었음을 인정하라는 묘한 지혜가 담겨있는 경구들은 되짚어 읽을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어르신들보다 나이가 많지 않기에, 고령의 삶에 대한 경구에 몸으로 바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로는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씩 몸의 기관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지 않고, 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볼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는 마음,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마음 자세가 장수와 장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생을 살아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초조해 할 시간에, 짧은 시간을 쪼개어 도리에 맞게,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의 발걸음에 맞게 뚜벅뚜벅 걸어감이 좋다고 할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발걸음을 할 수 있는지 잘 헤아려 보는 일이라 생각한다. 재능과 기회는 하늘과 운으로 다가오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근면함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정진하는 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일,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일임을 잘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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