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거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한은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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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 추측하는 일, 이것도 참 큰 능력이겠다. 물론 엉터리로 추측해서야 매우 곤란하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마플 여사의 능력과 같은 정도라면 당당하게 발휘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기억력까지 겸비한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고.

내게는 관찰력도 기억력도 없는 터라 마플 여사 편의 이야기는 늘 신기하다고 여기면서 읽는다. 마플 여사의 능력이 곧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가의 능력인 셈일 테니 나로서는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런 성격을 가졌을 것 같고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될 것이며,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으로 예전에 본 누구가 떠오르고...... 이쯤 되면 노력으로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받은 능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범죄자를 좇는 수사관들이 가졌을 법한 능력들로. 목격자가 진술한 표정에 대한 묘사만으로 추리를 해내는 마플 여사.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말로 전해 듣기만 해도, 알 사람은 알아낸다는 것이리라.

어떤 결핍, 어떤 욕망은 사람을 끔찍할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다른 내용을 품고 있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그것 때문에 당사자를 살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끝내 살 수 없게 만들기도 하면서. 그러니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란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쉽지가 않고, 그저 다스렸다가 어긋났다가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겠지. 참으로 불완전한 생이로다.

어제 시외버스 터미널에 있는 카페에서 차 시간을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마플 여사 흉내를 내고 싶었는데 혼자 웃고 말았다. 상상도 안 되고 추측도 안 되니, 쩝. 꼭 마스크를 썼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목격자로서의 진술도 전혀 못할 수준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그냥 지금처럼 소설이나 재미있게 읽어야겠다. (y에서 옮김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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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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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분명히 가볍고 단순해 보이는데, 읽고 나면 가벼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책 제목과 연관된 의미가 적어도 하나 이상 울림을 갖고 남는다. 이 책을 보면서 얻은 울림은 바로 이거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도 내 생을 진행 상태로 만들고 있는가.

결혼한 주부와 미혼의 여자. 둘이 각기 따로 갖고 있는 바람. 얻은 쪽은 얻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고 있고, 얻지 못한 쪽은 얻은 쪽을 부러워하고 있고. 남자들의 경우에는 모르겠다. 나도 작가와 같은 여자이고, 일본 작가이지만 삶을 관통하는 흐름은 우리나 그들이나 다를 바도 없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 부분은 만족스럽고 다른 한 부분은 이루지 못해 섭섭하고. 그러니 보편적 소망으로 남을 텐데.

작가가 고민하는 것이든 책 속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든 혹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자들이 다들 고민하는 것이든 공감은 간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니. 고민하면서도 순간의 삶에 집중해서 성심을 다할 것이고 그 결과에 만족할 것이며, 그러다가도 얻지 못한 꿈에 아쉬워할 것이고 '언젠가는' 하면서 가능성을 남겨 두겠지.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겠지, 그게 인생일 것이고. 그래서 나 대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일 테고.

이렇게 계속 한 작가의 작품을 보아도 여전히 괜찮으니 나로서는 다행이면서 좋다. 이게 지겨워진다면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테니 말이다. (y에서 옮김201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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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의 모험 (완전판) - 헤라클레스의 모험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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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기획이 돋보이는 구성을 갖춘 작품집이다. 푸아로라는 뛰어난 탐정을 주인공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부터 이 구성을 생각해 둔 것이었을까? 푸아로의 이름인 에르퀼이 헤라클레스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으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독자로서 해 보는 이런 상상마저 신기하다. 답을 몰라도 전혀 상관없이.

이번 책에서는 푸아로가 헤라클레스 신화를 이용한다. 헤라클레스가 해결해야 했다는 12가지 과업처럼 자신이 맡은 사건들을 헤라클레스의 12가지의 과업과 연결시켜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적절한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고 약간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으나 소설 구성을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여겼다. 덕분에 오래 전에 읽었지만 다 잊어버린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괜히 읽는 시간을 늘였다. 한번에 주욱 연달아 읽어버리고 싶지는 않더라는 것. 하루 한 편씩 읽어 보니 열두 가지 사건이 서로 겹쳐지는 대목 없이 마치 요즘의 범죄수사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듯했다. 제목과는 달리 각 이야기에 푸아로의 대단한 모험 상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고 사소한 듯 사소하지만은 않은 사건들의 전말이 짧은 분량의 글 속에 재미있게 펼쳐지고 있었다. 마지막 편에서는 좀 많이 섭섭할 정도로.

1940년대에 나온 책이라고 하고, 작가가 글을 쓴 시대 배경도 대략 그 시절이었을 텐데 어째 작품 속 범죄의 형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 007 영화에서 본 소재와 비슷한 장면을 갖고 있는 글을 읽으면서는 약간 놀라기도 했고.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종종 던져 주는 작가다. (y에서 옮김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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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잘될 거야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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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무리 사람 사는 이야기가 비슷하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닮을 줄은 몰랐는데, 이웃 나라에서 나온 만화를 보면서 우리 사정에,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직장인의 사정에 이렇게 쉽게 공감하게 되다니. 작가의 능력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욕망, 열등감, 피해의식, 경쟁의식 등등을 내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그랬으니까(내가 그랬으니 남들도 그러리라고 짐작하는 것조차 위험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까지).

입사 2년 차인 마리코, 입사 12년 차인 마리코, 입사 20년 차인 마리코, 세 사람의 시점을 돌아가면서 보여 준다. 나는 이미 세 단계를 다 거친 후 그곳에서 빠져 나온 입장이라 총괄적으로 바라보는 재미를 느꼈다. 그랬지, 그때는, 그런 마음으로. 돌아보면 그리 매달릴 일도 속상할 일도 추궁할 일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에는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절박했을 것이다. 그만두어야 하나, 계속 버텨 나가야 하나. 마치 삶의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내리는 것처럼. 그 계단 위에 오르면 무엇이 보일지 모른 상태로.

시원한 위로를 주는 만화는 아니다. 그런데 자잘한 위로는 된다. 누구나 나랑 비슷하게 고민하면서 망설이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기운이 좀 날 듯하다. 불공평한 것처럼 보여도 또 한편으로는 공평한 세상이구나, 저마다의 몫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내 것은 내 것대로 헤쳐 나가면 되는 것이구나 하는 데에까지 이르기만 해도.

나이 먹었다고 괜히 자만하지도 말고, 잘 모르면서 젊은이의 처지를 동정하지도 말고, 꿋꿋하게 그러면서도 맑게 잘 살아 나간다면 모두를 위한 좋은 태도가 아닐까 싶다. 요즘 '좋은 영향'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내가 갖고 싶은 태도여서 그럴 것이다. 크지 않아도 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럴 수도 없고, 그럼에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만. 이 만화를 보면서 내가 얻었던 만큼만이라도(그러면 아주 큰 건가?). (y에서 옮김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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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만이라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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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만이라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일은 쉽겠지만, 이건 이것대도 와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한 번이라는 것이 영영 얻지 못할 기회이기 십상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어지간히 있는 경우의 일에 대해서는 이만큼의 간절함을 갖기 어려운 탓이기도 하고. 이왕 딱 한 번만이라도 얻기를 바란다면, 복권처럼 되어 버리고 말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가능성을 아예 기대하지 않고 사는 쪽이지만. 아닌가, 세상의 누군가는 이런 기대만으로도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그렇다면 내 마음이 너무 각박한 건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과 소개하는 내용에 살짝 낚인 느낌이다. 나야 광고와 관계없이 구할 책이므로 얻기는 했는데 읽으면서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뜨겁고 뜨겁게 빛날 수 있는 밤을 갖고 싶어'라니.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작가가 모처럼 어른들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그랬는데. 내 속물적인 속성을 가볍게 물리쳐 주면서 펼쳐 보인 뜨겁고 뜨거운 밤의 이야기, 그래, 나이와 상관없이 단 한 번만이라도 갖고 싶을 것 갖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다른 가족이 없는 부유한 친척으로부터 유산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내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도 나에게 반해서 프로포즈를 해 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남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하찮은 능력 뒤에 숨어 있는 나의 고유한 실력을 알아봐 주고 나를 스카우트해 주는 회사가 있었으면 싶은 소망 등등.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꿈이라고 해야 하나, 헛된 기대라고 해야 하나. 생각해도 생각해도 한숨만 나올 뿐인 사정인 것을.  


소설은 술술 잘 읽힌다. 손에 잡았다면 한달음에 끝낼 만하다. 무슨 일이 생길 듯하지만, 기대하는 무슨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네 현실의 삶이 그러하듯, 더더구나 자신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바뀔 정도의 거대한 일은. 괜히 헛기대만 했다가 생채기만 얻고 마는 쓸쓸함과 후회라니. 왜 그런 기대를 했던가 싶기만 해서.  


읽고 난 뒤의 마음은 호젓하다. 호젓해서 좋다. 세상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서로에게 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얻었던 덕분이다. (y에서 옮김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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