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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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뒤에 오는 이 막막한 기분을 설명할 수가 없다. 글을 읽을 때는 몰입이 잘되었다. 글의 방향에 대한 흥미가 계속 일어났고 서술해 나가는 방식에 이끌렸으며 작가가 내보이고자 하는 의지나 숨겼으면 하는 의도까지도 수월하게 잡히는 듯했다. 다 읽고 나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다. 이게 뭔 상황인지,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도 구별이 안 된다. 나는 정녕 읽기는 했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펴 헤아리는 일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여 소설로 대신 꿈을 이루며 산다. 소설가가 보여 주는 것을 내 꿈으로 실현시키는 모양새이지만 이런 기분을 갖도록 해주는 글이 늘 좋았다. 이 작가의 글에도 이런 기분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인데 아직 완전한 확신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지금처럼 당황스러워지는 것이지.

2019년에 출간되었고 모두 9편이 실려 있다. 등장인물들 중 어느 한 사람 가엽지 않은 이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가여워해서 쓰나? 그럴 주제가 되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내가 나를 가엽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감히 남을? 나는 동정했고 동정하는 내가 낯설었고 동정받는 그들이 대견했다. 어쩌면 남을 대신하여 나를 기억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고 산다. 5년 전에도 살아 있었고 그 앞 5년 전에도 살아 있었으며 지금도 살고 앞으로 5년 후에도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얼마나 자주 가까이 만나고 어울리고 다투고 화해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왜 자꾸 이 물음에 시달리게 하나? 그래 놓고는 소설 내용을 내 기억에 남겨 놓지도 않으면서.

모자를 쓰고 온 사장이 그나마 애틋하게도 내 주위를 맴돌아 준다. 다행이다. (y에서 옮김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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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카코와 술 9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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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면서 꾸역꾸역 이 만화를 보고 있는 나. 음식이나 술이나 내게는 같다. 내가 직접 먹고 마시는 대신에 그림으로 글로 보면서 배부름을 느끼고 취함에 빠지는 것.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만화들을 구입해 놓고 바꿔 가면서 한 권씩 읽고 있는 나. 마치 술꾼이 제가 좋아하는 술을 잔뜩 쌓아 두고 한 병씩 꺼내 마시는 듯한 기분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셈이다. 만화책값이 좀 들기는 하지만 내 몸이 과식에 시달리지도 과음에 괴로워하지도 않으니 계속 해 볼 일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짧은 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구성과는 좀 다르다. 만화에서는 와카코가 술을 마시게 된 배경은 생략되어 있고 바로 술을 마신다. 그날의 맛있는 안주와 함께. 궁금하기는 하다. 정말 안주에 따라 다른 술을 마시는 게 더 맛있게 먹고 마시는 방법인 걸까?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그저 약하게 보이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술을 마셔도 절대로 취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만 하는 바람에 술맛을 익히는 순간을 끝내 가져보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시도도 못하겠고. 따뜻하게 마시는 술, 차갑게 마시는 술, 물과 섞어 마시는 술,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술,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냥 이대로 눈으로만 계속 마시자. 이 또한 충분하고.  (y에서 옮김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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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봄 여름 가을, 생명 웅진 세계그림책 231
    마시 콜린 지음, 에런 베커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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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또는 후손에게 삶을 제대로 가르치는 길은 현재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큼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못하면서, 할 줄 모르거나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후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이기적인 태도도 없을 것만 같은데. 이 그림책을 보고 있으니 이런 서글픈 반성이 많이 된다. 우리가 과연 말할 자격은 있나 싶고.


    2001년 10월, 911 테러 때 세계 무역 센터의 근방에서 다친 채 발견된 나무를 구해서 끝내 살려냈나 보다. 이 그림책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주제는 당연히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 테고. 그저 무심하게 생명만 지키고 선 나무에게 이런 슬픔이 닥치다니, 인간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비단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 사는 곳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고. 교육을 하거나 계몽을 하거나 이와 관계되는 모든 일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것일 텐데, 이 동화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도 같은 바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테러나 파괴나 전쟁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동화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제 욕심을 다스릴 줄 아는 어른이 되기를. 아이와 같이 읽으면서 마음이 따끔따끔해지는 어른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그래 봤자 얼마나 싶겠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하는 간절함이 살아 남는 세상이기를.   (y에서 옮김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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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소리 - 2017년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구효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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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동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샀다. 수상자가 매우 반가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아했다. 이분이 아직 이 상을 받지 않으셨던가? 왜? 홀로 물었다가 수상작 '풍경소리'를 읽으면서 홀로 대답했다. '그렇군.'

     

    맑은 소설이라고 한다. 맑아서 좋았다. 온통 흐려져 있던 내 마음이 서서히 맑아지는 듯했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가. 세상 탓을 했을지도 모르고 정치 탓을 했을지도 모르고 시대 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순한 내 마음을 씻어 주는 소설이었다. '그렇군' 하면서.

     

    그렇다고 자포자기하게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맑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했다. 세상이, 정치가, 시대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어쩌다 이렇게 탁하게 되었는지를. 인연이든 운명이든 한 발 물러선 자연의 이치로 헤아려 본다면, 복잡한 문제 상황이기는 해도 골치 아플 것까지는 없는 게 아닌가, 아파도 견뎌낼 만큼은아닌가, 아니 나의 이런 분석조차 부질없는 욕망일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이제라도 이 작가가 이 상을 받으시게 되어 독자인 내가 다 고맙다.

     

    우수작으로 실리는 소설들의 편수가 어째 적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한번에 다 읽지 못할 만큼 많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수상작가 외 작품으로는 5편밖에 없다. 그래서 더 천천히, 하루에 하나씩 아끼는 마음으로 읽었다. 다 좋았다. 지지리도 지겹고 불쾌한 삶의 이야기조차 성실하게 읽었다. 이 시대의 자화상이 맞는 거니까. 마약운반책이든, 부동산 투기든, 불륜의 사랑이든, 권력의 개든, 하나같이 왜 이렇게 사나 싶은데,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벽에 갇힌 처지라는 게 안타깝고 서글펐다. 이러다가 우리 사회에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는 게 아닐지.(분명히 가해자가 있는데, 아니라고 딱 잡아떼고 있으니.)

     

    집 밖에 풍경 하나 마련해야겠다. 날이 더워지고 창문을 열어 두는 계절이 오면 바람보다 풍경 소리가 먼저 들어오도록.  (y에서 옮김201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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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이야기 긴 사연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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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단편소설집이다. 모르고 있었던 작가였고 장 그르니에랑 어떤 관계가 있나 했는데 관계없나 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2012년에 출간되었고 1919년생인 작가는 2017년에 별세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작가가 노년에 쓴 단편소설집이라는 것, 이 나이에 이르면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가, 나도 그렇게 나이들어 갈까 짐작해 보는 이런저런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

    평소 프랑스 소설을 영국 소설에 비해 덜 읽다 보니 낯설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나른하다고나 할까, 긴장감이 있어야 할 순간마저도 맥이 풀리는 듯한 분위기에 종종 내 취향 탓을 하곤 했다. 길고 느린 호흡의 글에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못하니까. 이 책에 실린 글은 다행스럽게도 이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 읽혔고 분명했고 산뜻했고 곳곳이 귀여웠다. 나이든 작가의 글에서 귀여움을 느끼다니, 내가 받아들이는 유머의 폭도 많이 넓어진 모양이다.

    프랑스나 우리나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퍽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의 문제인 걸까. 사는 곳은 달라도 어느 나이 이상을 살고 넘다 보면 비슷비슷한 경지에 이르는 것 같다는 것. 잘 사는 것도 못 사는 것도 큰 차이가 없어지고 질투나 물욕이나 심지어 추억마저 부질없어지는 때를 맞이하게 되는 생의 저물 무렵. 어쩌면 지금 추측하는 것보다는 덜 쓸쓸할지도 모르겠다는 안심이 든다. 이 책의 소설을 읽고 나니.

    앞서 블로그의 이웃 두 분이 이 책을 읽고 극과 극의 평가를 내린 터라 내게는 어떤 느낌을 던져올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읽었는데, 좋았다고 쓴다. 예상보다 훨씬 쉽게 읽고 잘 넘겼으며 잔잔했어도 짙게 남겠다. (y에서 옮김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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