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마리의 아침밥 14마리 그림책 시리즈
이와무라 카즈오 지음, 박지석 옮김 / 진선아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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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은 곧 먹는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누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물음 안에 인류의 역사의 흐름이 있는 것이니까.


14마리의 생쥐 가족 이야기를 그림 동화로 읽으면서 나는 한탄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여. 생쥐보다 나은 존재이기는 한 것일까? 생쥐네 가족은 14마리, 눈을 뜬 후 전원이 아침밥을 마련하고 준비한다. 어느 한 마리 놀고 먹는 생쥐가 없다. 다 같이 찾아서 구해 오고 다 같이 만들어서 다 같이 먹는다. 우리는?


부모나 선생님들은 아이와 이 그림책을 같이 보면서 어떤 말을 주고받을까? 괜히 궁금해지고 괜히 심술이 생긴다. 아침에 온 가족이 함께 아침밥을 준비하고 함께 먹는 모습? 글쎄? 세상 어딘가에 이런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우리네 현실은? 각자 알아서 제 아침밥이라도 챙겨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처지이니. 


예쁜 그림책을 보고 싱숭생숭한 나, 무엇이란 말인가. 부럽기만 하다. 엄마 생쥐가 방금 구워 낸 빵,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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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완전판) - 에지웨어 경의 죽음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노지양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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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웨어 경이 죽는다. 경의 현재 아내가 다른 남자랑 결혼을 할 예정인데 이혼을 안 해 준다고 죽일 거라고 내내 벼르던 중에 그만 죽어 버렸다. 정말 이 아내가 죽인 걸까? 푸아로 경감이 이 사건을 해결한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그 사건이 핵심일 수도 있고 사소하게 지나가는 주변 요소에 그칠 수도 있다. 독자인 나는 이게 구별이 잘 안 된다. 당연히 작가의 솜씨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오는 사람이 모두 범인 같았다가 아무도 아닌 것 같았다가 하는 의심이 계속 반복된다. 이 재미로 읽는 것이고, 이 작가의 글은 이 재미를 얻는 데에 나를 퍽 만족시켜 준다. 어느 한 권도 빠지는 게 없다.

 

푸아로 경감은 심리 분석에 공을 들이는 탐정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 행동이나 태도를 보고 추측하거나 기질을 보고 판단하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이 되겠다. 나는 정말 못하는 일인데, 이걸 또 잘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으니 감탄하며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푸아로가 헤이스팅스를 놀리는 듯한 말로 종종 등장하는 표현, 신이 이 능력을 따로 주시지 않아서 순진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내가 딱 헤이스팅스다. 아니, 나는 헤이스팅스보다 기억력도 떨어지는데.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사건 현장,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국의 시대상, 한번 살인을 한 사람은 두 번째부터 쉽게 해치운다는 푸아로 경감의 무서운 예언까지 읽고 또 읽는다. 재미있다. 나는 앞에 읽은 책을 잘 잊어버리는 기술까지 갖고 있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다른 것에 비해 오타가 많은 편이었다. 읽기에 걸려서 짜증이 날 정도로 자주 만났다. (y에서 옮김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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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김혜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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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나라 어딘가에는 이런 곳이 있을 것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잠을 자는 곳.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다. 잘 사는 나라에도 있다니까. 집은 뭘까? 나를 지켜줄 공간이 없다는 암담함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누구는 노숙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겠는가마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그들을 생각하노라면 무지하게 불편하고 답답해진다. 나를 보호해 주는 내 집에 대한 고마움은 다른 감정이다.

 

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모처럼 인내심을 갖고 연달아 읽었다. 처음 읽은 '딸에 대하여'에서 받았던 인상이 달라지지 않았다. 섬세하고 무겁고 지독하다. 이렇게 빠져 있으면 스스로는 얼마나 힘들까,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독자 입장이면서도 염려가 된다. 이런 주제의 글쓰기는 결코 즐겁지 않을 텐데, 절대로 즐거울 수가 없는 내용인데, 작가는 어떤 사명감이나 보람이 있어서 이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일까. 

 

희망? 그런 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못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사랑에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삶,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만 가득한데 날은 새고 눈은 뜬다. 그 속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은 일어난다. 어쩌라고? 원망할 이도 애원할 이도 없는 세상에서 죽음조차 선택 사항이 되지 못하는 이 삶을 어찌 이어 나가라고?

 

마음이 어지럽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내 눈에는 보이고 잡히고, 볼 때마다 자꾸 언짢아지고,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득해지고. 가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게 닥친 일은 아니지만 내게 닥칠 일일 수도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문제다. 원시 사회도 아니면서,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하면서 엄연히 존재하는 문명 이전의 상황. 어떤 개인은 어쩌자고 이리도 불행하단 말인가.   

 

요즘에는 공항에도 노숙인들이 생긴다고 하는 것 같던데. (y에서 옮김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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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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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엄마의 딸이고, 내 딸의 엄마다. 엄마는 동생 집에 계시고 딸과는 함께 살고 있다.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은 내가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도 닿아 있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관심을 갖든 간섭을 하든,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독립적이든 의존적이든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엄마와 딸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지독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자는 엄마다. 엄마가 딸에 대하여 말하는 내용이다. 나는 내 나이와 비슷한 엄마인 화자에게 이입된다. 그리고는 내 딸 쪽으로 생각을 쏟으며 소설 안과 밖을 오간다. 내가 딸이 되어 내 엄마를 떠올리는 쪽으로는 좀처럼 나아가지지가 않는다. 나 역시 화자와 비슷한 고집을 피우는 엄마일 수밖에 없어진다. 

 

소설에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문제들이 여러 차원으로 펼쳐진다. 크게는 여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성소수자나 노인 문제, 취업 관련 사항 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등장인물인 엄마와 딸과 딸의 파트너에게서 비롯되어 나타나는 걸로 설정한다. 하도 일반적인 문제들이라 현실에서 이들 중 하나라도 연결되는 게 없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이 소설을 잘 쓰여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소설 속 문제는 늘 그랬듯이 당대에는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 방법을 찾는 과정을 소설이 맡아 주는 덕분에 우리 사회가 발전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그렇다고 믿는 쪽이지만. 이 소설에서도 해결 방법은 찾지 못했다. 엄마와 딸이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엄마는 딸에 대하여 할 말을 다 한 건가?   

 

모처럼 내 몫으로 남는 답이 크게 와 닿는 소설을 읽었다. 나는 내 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나, 딸에게는 무엇이라고 하나, 내 삶과 딸의 삶을 얼마나 일치시키려고 하나, 무엇보다 딸은 이런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러다가 한편으로 내 엄마는 딸인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인가, 나는 어쩌자고 엄마 생각을 딸 생각의 절반도 못하고 있나, 결국은 엄마와 딸 사이에서도 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중적인 인간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건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개운한 소설이 아니다. 다 읽어도 다 읽은 느낌이 들지 않는 소설이다. 딸은 딸대로 여전히 저항하고 있고 엄마는 엄마대로 여전히 변명하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살 만하다고 하지만 세상에 사람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고도 하지만, 한꺼풀만 벗겨도 세상은 참 힘든 곳이고 사람은 정녕 독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정직한 자신을 만나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란 말인지. (y에서 옮김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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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 개정판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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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위한 기록이다. 이 책을 내가 한번 보았고, 제대로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읽히지 않았다. 이게 뭐지? SF라면 어지간해서는 재미를 얻을 수 있는데. 소개글도 온통 극찬인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작가가 상도 많이 받고 유명한 모양인데, 꼭 어려운 말들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데. 

책 소개글에 '맥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맥락을 이해하면 더 재미있고, 맥락을 모르더라도 웃을 수 있다고. 내가 맥락을 너무 몰라서 그런 건 아닌지, 미국의 사회문화 배경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서 웃을 순간을 잡아내지 못한 게 아닌지. (행여 하는 말이지만 번역 탓은 절대 아니겠지?) 

 

첫 작품부터 꼬였다. 소설 속 상황도 꼬였고 읽는 내 기분도 꼬였다. 양자역학이라느니, 물리학 워크샵이라느니 하면서 과학이라는 배경을 깔고 인물 간의 관계를 꼬아 놓았는데, 미국의 코믹 드라마 '빅뱅'을 떠올렸다가 그만 급격하게 식어 버리는 내 기분을 느껴야 했다.

 

두 번째 작품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내용을 차용했다는데, 그러면서 더 깊이 있게 다루고 공포까지 담았다는데, 웬걸, 이 글도 안 읽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세 작품, 행여나 하면서 처음 두 쪽 정도는 마음을 다지면서 읽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다. 이쯤 되면 이 작가의 성향과 나의 독서 성향은 맞지 않다는 게 된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읽고 싶은 책이 많고 많은데 굳이 억지로 힘들여가면서 읽을 소설은 아니다. 여기까지 이르면 그만두는 게 좋다.

 

이런 책을 만나면, 잠시지만 머뭇거리게 된다. 이제 와서 내 독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y에서 옮김201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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