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봄 여름 가을, 생명 웅진 세계그림책 231
마시 콜린 지음, 에런 베커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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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또는 후손에게 삶을 제대로 가르치는 길은 현재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큼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못하면서, 할 줄 모르거나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후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이기적인 태도도 없을 것만 같은데. 이 그림책을 보고 있으니 이런 서글픈 반성이 많이 된다. 우리가 과연 말할 자격은 있나 싶고.


2001년 10월, 911 테러 때 세계 무역 센터의 근방에서 다친 채 발견된 나무를 구해서 끝내 살려냈나 보다. 이 그림책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주제는 당연히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 테고. 그저 무심하게 생명만 지키고 선 나무에게 이런 슬픔이 닥치다니, 인간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비단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 사는 곳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고. 교육을 하거나 계몽을 하거나 이와 관계되는 모든 일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것일 텐데, 이 동화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도 같은 바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테러나 파괴나 전쟁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동화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제 욕심을 다스릴 줄 아는 어른이 되기를. 아이와 같이 읽으면서 마음이 따끔따끔해지는 어른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그래 봤자 얼마나 싶겠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하는 간절함이 살아 남는 세상이기를.   (y에서 옮김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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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 2017년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구효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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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샀다. 수상자가 매우 반가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아했다. 이분이 아직 이 상을 받지 않으셨던가? 왜? 홀로 물었다가 수상작 '풍경소리'를 읽으면서 홀로 대답했다. '그렇군.'

 

맑은 소설이라고 한다. 맑아서 좋았다. 온통 흐려져 있던 내 마음이 서서히 맑아지는 듯했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가. 세상 탓을 했을지도 모르고 정치 탓을 했을지도 모르고 시대 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순한 내 마음을 씻어 주는 소설이었다. '그렇군' 하면서.

 

그렇다고 자포자기하게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맑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했다. 세상이, 정치가, 시대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어쩌다 이렇게 탁하게 되었는지를. 인연이든 운명이든 한 발 물러선 자연의 이치로 헤아려 본다면, 복잡한 문제 상황이기는 해도 골치 아플 것까지는 없는 게 아닌가, 아파도 견뎌낼 만큼은아닌가, 아니 나의 이런 분석조차 부질없는 욕망일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이제라도 이 작가가 이 상을 받으시게 되어 독자인 내가 다 고맙다.

 

우수작으로 실리는 소설들의 편수가 어째 적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한번에 다 읽지 못할 만큼 많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수상작가 외 작품으로는 5편밖에 없다. 그래서 더 천천히, 하루에 하나씩 아끼는 마음으로 읽었다. 다 좋았다. 지지리도 지겹고 불쾌한 삶의 이야기조차 성실하게 읽었다. 이 시대의 자화상이 맞는 거니까. 마약운반책이든, 부동산 투기든, 불륜의 사랑이든, 권력의 개든, 하나같이 왜 이렇게 사나 싶은데,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벽에 갇힌 처지라는 게 안타깝고 서글펐다. 이러다가 우리 사회에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는 게 아닐지.(분명히 가해자가 있는데, 아니라고 딱 잡아떼고 있으니.)

 

집 밖에 풍경 하나 마련해야겠다. 날이 더워지고 창문을 열어 두는 계절이 오면 바람보다 풍경 소리가 먼저 들어오도록.  (y에서 옮김201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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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긴 사연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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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단편소설집이다. 모르고 있었던 작가였고 장 그르니에랑 어떤 관계가 있나 했는데 관계없나 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2012년에 출간되었고 1919년생인 작가는 2017년에 별세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작가가 노년에 쓴 단편소설집이라는 것, 이 나이에 이르면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가, 나도 그렇게 나이들어 갈까 짐작해 보는 이런저런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

평소 프랑스 소설을 영국 소설에 비해 덜 읽다 보니 낯설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나른하다고나 할까, 긴장감이 있어야 할 순간마저도 맥이 풀리는 듯한 분위기에 종종 내 취향 탓을 하곤 했다. 길고 느린 호흡의 글에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못하니까. 이 책에 실린 글은 다행스럽게도 이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 읽혔고 분명했고 산뜻했고 곳곳이 귀여웠다. 나이든 작가의 글에서 귀여움을 느끼다니, 내가 받아들이는 유머의 폭도 많이 넓어진 모양이다.

프랑스나 우리나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퍽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의 문제인 걸까. 사는 곳은 달라도 어느 나이 이상을 살고 넘다 보면 비슷비슷한 경지에 이르는 것 같다는 것. 잘 사는 것도 못 사는 것도 큰 차이가 없어지고 질투나 물욕이나 심지어 추억마저 부질없어지는 때를 맞이하게 되는 생의 저물 무렵. 어쩌면 지금 추측하는 것보다는 덜 쓸쓸할지도 모르겠다는 안심이 든다. 이 책의 소설을 읽고 나니.

앞서 블로그의 이웃 두 분이 이 책을 읽고 극과 극의 평가를 내린 터라 내게는 어떤 느낌을 던져올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읽었는데, 좋았다고 쓴다. 예상보다 훨씬 쉽게 읽고 잘 넘겼으며 잔잔했어도 짙게 남겠다. (y에서 옮김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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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구효서 지음 / 해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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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글이라서 망설이지 않고 사서 읽었다.(e북으로 구했어도 괜찮을 뻔했다.)

연애 소설이다. 표면적인 삼각 관계. 그런데 일반적인 연애 소설과는 거리가 좀 있다.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있는 소설 같다. 현실이 아니니까 이럴 수도 있는 것이겠지 싶을 정도로. 배경이 아프리카이고, 등장인물들이 세계 봉사 요원으로 나오는데 내 상상의 배경에 자꾸만 '우르크'가 떠오르고 있어서 성가시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정말 나도 어쩔 수 없다니까.)

정말 긴 호흡이다. 소설 속 시간이 짧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시간 개념은 별로 느껴지지 않고 주인공들이 숨쉬는 순간들이 살아서 전해져 온다. 그 순간이 과거든 현재든 꼭 구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게 되고, 그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마음 안에 품고서 상대에게 닿지 못하도록 애타게 붙잡아 막고 있는 진심만이 울린다.

나를 너에게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알려야 하나 숨겨야 하나, 나를 향하고 있는 네 마음을 안다고 해야 하나 모른 척 해야 하나, 사랑은 누가 누구를 지켜 베풀어야 하는 것인가. 연애소설을쓰고 싶었다는 작가, 이전에도 나는 그의 소설을 연애소설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가 스스로는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정도로는 간절함이나 절대적 애착이 부족했다고 느꼈던 것인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나의 얼마만큼일까? 내가 아는 너는 너의 얼마만큼일까? 우리는 어쩌다가 사랑 때문에 서로를 탐구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사랑을 지키는 일은 무엇이며 사랑을 저버리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아무 힘도 갖지 못한 것처럼 취급하다가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것처럼 대우하기도 하고,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멀고 아득한 것인지.

슬프기는 하다. 사랑을 해도 슬프고 사랑을 못해도 슬프고. 담백한 사랑이란 아예 성립될 수 없는 말인 것인지. 가상의 사랑이라도 사랑에 지친 듯 피곤해진다. 연애소설을 읽고 나면 연애가 지긋지긋해지는 게 마땅한 반응일까, 엉뚱한 반응일까. (y에서 옮김20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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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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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다 읽었다. 나로서는 참 오랜 시간을 들여 읽은 셈이다. 금방 후다닥 읽어버리기에는 주제도 문체도 분위기도 내 마음도 어느 하나 동조하는 게 없었다. 한 쪽 한 쪽, 한 장 한 장, 읽어 넘기는 것보다 읽으면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러고 싶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이렇게 진하게, 무겁게 읽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그래, 진했다. 상상이 이토록 진할 수가 있나, 놀라워하면서 신기하게 여기면서 무엇보다 무서워하면서 읽었다. 어느 한 장면, 배경이 무엇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라면 놓인 자리부터 풍기는 분위기까지, 사람이라면 겉으로 드러내는 대사에서부터 마음속으로 지나가는 심정 한 줄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도 소홀해 보이는 게 없었다. 그러니 아찔하고 또 철렁할 수밖에.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런 모습이라면, 우리가 살 세상이 이렇게 되고 만다면,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이 이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면, ......


그러나 이건 상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소설 속 상황의 어떤 대목들은 지금의 우리 현실에 있다. 은근히 위험하거나 아주 대놓고 위험하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섬뜩한 느낌을 받을 수 없지 않았을까.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영원히 소유하려거나 지배하려거나 무시하려는 일은, 한 쪽이 꼭 사람의 성별을 뜻하는 게 아니더라도, 약자라면 누구라도, 또 동물이라도, 참으로 잔인한 본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 사는 곳이 내가 살자고 다른 이를 꼭 죽여야 하는 밀림도 아니건만. 밀림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의 그 허황되고 괘씸한 본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읽는 내내 역겨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 상황에서도 문장들은 어쩌자고 아름답고 우아하기만 한 건지. 그래서 더 역설적인 괴로움을 느껴야 했지만. 이 책의 후일담이 나와 있다고 한다. 지금의 마음을 추스려야만 볼 수 있을 듯하다. 남자와 여자는, 생명과 생명은 서로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도 없애야 할 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둘다 서로에게 괜찮아야 둘다 괜찮게 살 수 있다. 알면서 왜 못하는 걸까, 우리는. (y에서 옮김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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