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는 맛 2 - 오늘도 열심히 살아낸 나를 위한 만찬 ㅣ 요즘 사는 맛 2
고수리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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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를 쓴 글을 찾다가 만난 책이다. 열두 명의 작가들이 쓴 열두 가지의 맛 이야기. 눈으로 먼저 맛을 읽고 입으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 정보를 얻으려는 의도를 품고 읽었으나 앞쪽만 성공하고 뒤쪽은 성공하지 못했다. 읽는 내내 달달하고 배불렀으나 읽는 도중 단 한 가지도 먹고 싶다거나 먹겠다거나 그래서 찾아 먹은 것은 없었으니. 


그래도 재미있었다. 얼마나 괜찮았는가 하면 몇몇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해 놓았다. 대출해서 봐야지, 보면서 또 눈으로 먹어야지, 상상으로 먹으면서 행복을 느껴야지, 배부름 상태를 유지해 보아야지...... 읽고 싶은 책을 가상으로 또 현실로 쌓아두는 일 또한 얼마나 흐뭇한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가수 스탠딩 에그. 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먹으면서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하시는군요. 정겹게 듣고 있던 노래들이 더 달콤해지게 생겼다. 


책은 두 권으로 나와 있고 내가 읽은 책은 두 번째 나온 책이다. 처음에 나온 책을 볼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고 먹을까 말까 만큼이나 내게는 머뭇거리는 일이 된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의 내 삶은 점점 더 먹는 쪽으로만 치우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먹으면서 다음에 먹을 것을 고민하고, 어떻게 먹을까와 어디에서 먹을까를 궁리하고, 누구와 언제 만나 무엇을 먹을까를 의논하게 되고, 먹고 먹고 또 먹으면서 이게 사는 일의 전부가 아닌가 물으면서.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실제 먹는 일 말고 사는 일에 무엇이 더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러니 잘 먹고 잘 살자 다짐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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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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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환상문학, 환상영화, 환상 어쩌고저쩌고.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빠져서 헛된 짓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겨 왔다. 내가 이렇게 여기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좀 많이 쑥스러운 기분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이랬던 내 취향을 바꿔 놓는다. 그렇다면 이전에 내가 본 작품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 혹은 내가 바뀌었거나.

이 사이트에서 필사 이벤트를 열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정하여 참여했고, 필사할 10군데를 집중해서 찾고 적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요즘 필사라는 작업은 일부러라도 하지 않으면 하지 않게 되는, 꼭 해야 할 때만 하게 되는 일이라 내게도 흥미로웠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창작이 아니라 단순히 보고 쓰고 그리는 일마저도 아무 때나 하지 않는다. 좋은 현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지만...

오로지 상상 속 공간을 마련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곳을 만들어 낼까? 나는 어떤 공간을 꾸며 낼 수 있을까?(지금 상태의 의식으로는 아무 공간도 만들어 내지 못할 듯하지만) 상상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산다. 상상도 창조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직접적인 경험이든 간접적인 경험이든 보고 겪은 바가 있어야 확장되고 심화된다. 거기에 결핍까지 느껴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난 결핍은 충분하게 가진 듯한데 뭐가 모자라나? 무엇이 모자라서 상상이 잘 안 되는 것일까?)

피라네시는 작가의 상상 속 공간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다. 상상이든 다른 차원이든 내가 또 다른 나로 살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멋지겠다. 두 공간을 왔다갔다, 오가는 것까지 인식할 수 있다면 더더욱. 지금 이곳의 현실이 고달프고 힘겨울수록 상상 속 내가 사는 곳은 현실과 반대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야 해보는 생각인데 공간이 달라진다고 해도, 상상 속이라고 해도, 그곳이 낙원이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거기도 거기대로 살기에 마냥 쉽지만은 않은 곳이지 않을까.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러하니까. 삶이 만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많은 방과 문과 벽들, 많은 조각상들, 계속 날아오는 새들, 넘쳤다가 빠졌다가 하는 바닷물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 글을 읽은 것만으로 내가 세운 공간이 작가가 그려 보이고자 한 공간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굳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을 테고, 내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피라네시를 사귀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만큼 제대로 세웠다면 좋겠다. 나로서는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색다른 공간은 아니고, 이런 공간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조각상들을 이제는 어떻게 마주하나 약간 긴장이 된다. 딱딱한 조각상이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 떨리는 기분이다. (y에서 옮김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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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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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내가 이제까기 찾고 기다리고 헤매 왔던 것이 바로 이 작가가 말하는 환상이었다. 나는 그게 현실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고 살아왔는데 현실이 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내 마음이 어찌 이토록 편안해지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일이 있을까 싶기는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는 옛사랑도 그러려니와 그 사랑에서 지난날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부질없어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환상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참나무, 박새, 청솔모,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색다르다. 우리가 그들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사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환상이 어쩌면 그들의 환상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리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힘의 근원에 그 환상이 있는 것이라고, 언뜻 생각하면 환상이라는 것이 삶을 맥빠지게 만드는 것으로 보일 테지만 사실은 환상이 있어서 우리가 남은 날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고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내 환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 그 환상이 비교적 건강한 것이라는 확신이 나를 안도하도록 해 주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y에서 옮김20040806)


[인상깊은구절]

..환상을 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그것에 끌려가거나 일방적으로 그것을 쫓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어리석은 환상 따위는 키우지 않는다고 큰소리쳐서도 안 되며, 재수 없는 환상이라는 놈을 기어이 때려잡아 박멸하고야 말겠다고 기염을 토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조심할 일은 환상을 현실 속에서 성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환상은 손에 넣는 순간 즉시, 필히 환멸로 바뀌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행복을 기대했던 결혼 생활이 피 터지는 갈등으로 변하고, 일상을 털어내듯 출발한 여행에서 더 곤고한 일상을 맞닥뜨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환상이 현실이 되어 환멸이 찾아온다면 그 환멸을 또 하나의 현실로 인정한 다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멀고 먼 환상을 새롭게 영접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음껏 빛나고 아름다운 것, 현실과 무관하며 허황된 것, 가장 충만해서 서러운 것으로 다시 환상을 골라 잡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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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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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는다. 박완서의 글이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살아서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작가는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는구나, 이후로 다시 이분의 글을 읽어도 이 마음은 여전하겠구나, 그러면서 읽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분별력과 비판력을 잃지 않으려면, 젊었을 때부터 얼마나 단단한 끈기로 생을 이어가야 할까. 잔소리쟁이 아니고, 주책없는 늙은이 말고, 실없이 간섭하지 않고, 냉정하게 굴지 않는 노인이 되고 싶다고. 작가의 글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솔직한 글이다. 가끔은 이렇게 자신에게 세상에 솔직할 수 있는 작가의 용기에 놀라곤 한다. 제 속의 어떤 면은 모자라거나 유치하거나 비겁해서 숨기고 싶게 마련인데, 작가는 그럴수록 더 노골적으로 밝혀 놓는다. 그리곤 반성하고 스스로를 나무라고 격려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그 모든 일을 혼자서, 남모르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글로 나타내고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이들어오신 것만 같다.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짧은 소설도 있고 산문도 있다. 살아 계시는 내내 글을 붙잡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또한 나이와 관계 없는 자기 단련이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세속적인 일은 그만두고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잘난 척하는 게 아닌, 삶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가족과 이웃과 자연과 세상과 소통하신 작가. 반가웠다. (y에서 옮김20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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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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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는 우리 소설을 읽었다.'라고 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쓰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설 읽는 재미라고. 책 초반에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다. 시점의 변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이게 뭔 말인가 싶었으니까. 곧 익숙해지면서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아, 이렇게도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것이구나.

어린 시절 한때,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니,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 살지 않도록,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듣고 배우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주체적인 의식이 자리잡히지 않았던 때라 주체성을 키워 주기 위해 주위 어른들이 그렇게 가르치신 것이겠지만, 돌아보면 나는 채 성숙되지 못한 의식의 탓으로 어른들의 가르침 일부만 받아들여 내 삶만 소중한 것이고, 나만 주인이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주인이고 누구나 구경꾼일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과 주고받은 상처와 은혜로 주인이어서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고 구경꾼이어서 섭섭하기도 다행스럽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다니다가 그렇게 살아온 내 지난날을 문득문득 만났다.

작가 이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작품이다. 세상은 외로울 수도 있으나, 모두들 외로워하고 있는 구경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리라. 그랬다. (y에서 옮김201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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