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567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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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것, 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 누구든 일생 한번밖에 경험할 수 없으니 경험담이라는 게 있을 수 없고 그래서 더 멀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게는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그럼에도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았을 때는 더없이 절망하면서. 


실려 있는 시들, 읽기 괜찮지 않다. 자꾸만 걸려 마음이 넘어진다. ‘엄마’라는 말 자체에도 멈칫 하게 되는데 엄마가 죽음을, 아니 죽음이 엄마를 붙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이건 좀 괴로운 의무감이다.


게다가 이 시집은 두꺼운 편이다. 시인이 들려 주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어쩌면 자신이 자신에게 들려 주려는 위로는 아니었을지. 엄마가 아프고 엄마가 죽을 것 같고 엄마는 죽고. 엄마의 자리에 세상 모든 아까운 이름들이 다 들어서도 달라질 게 없어 보이기만 하니 죽음이 이래서 공평하다고 한 것일까.  


나는 이번에도 거리감 딱딱 유지하며 읽었다. 죽음 따위 나와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건방진 내 태도가 불쾌하다며 언제 어떻게 혼내러 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 시에서라고 달라질 것 같지 않다. (y에서 옮김20220730)


그곳에도 눈물 속에 조가비가 자라나요?
바람과 불이 이리저리 뭉쳐 다니나요?
그러면 그것들이 꽃이 되기도 하고 토끼가 되기도 하나요? - P11

모든 낮은 떠나갔지만 여전히 살아 있고
발톱처럼 머리카락처럼
이미 죽었으나 자라는 것들이여
예감의 슬픔이여
끝의 성자여 - P239

왜 우리는 바다와 눈 맞추기를 좋아하나
왜 우리는 산과 등지고 앉기를 좋아하나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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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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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은 읽고 있는 동안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끼도록 해 준다. 더 나아가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가진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김초엽의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으면서 이 유쾌한 특징을 만난다. 먼 미래의 이야기, 지금의 이야기도 아닌, 30년이나 뒤에 또 그보다 더 멀리 있는 이야기인데, 이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그 시기 동안 그 모든 독한 ‘더스트’ 상황들을 겪어 낸 뒤 끝내 살아 남아서, 나오미처럼 아마라처럼 그 먼 날에도 다행스럽게 살아 있어서, 아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우리의 만남이 참으로 축복이라는 듯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적 배경을 상상하는 재미도 특별했다. 먼 미래의 우리나라만 나오는 게 아니다. 에티오피아와 말레이시아가 등장한다. 지구 위 수많은 나라들 중에 작가가 왜 이 두 나라를 골랐을지, 우리나라와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구도에 읽는이는 저마다의 의미를 보탤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지구 위 세상은 더 이상 조각난 게 아니라는, 지금부터 30년이나 50년이나 100년 정도 지나고 나면, 지금의 국가별 싸움이나 대륙별 또는 인종별 갈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작가의 바람을 담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삶은 누구에게나 거대하면서 동시에 사소한 의미를 준다. 지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 생명을 지닌 개체가 모두 다 소중한 생명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또 어느 하나 빠뜨림없이 다들 피었다가 스러지고 마는 존재들이다.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세울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겠지만. 그러나 그 중에 위대한, 위대하겠다는, 위대하고 싶다는 인간들 몇몇이 저지른 잘못으로 지구 위 생명체들을 온통 위험한 상황에 빠뜨린 일들이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저 잘난 목숨만 믿고, 제 이익만 추구하며 오만하고 그릇된 판단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들로 인해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어떤 의도도 없이 제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수많은 생명체들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 것인지, 남은 삶에 그럴 시간이나마 주어질 것인지. 생략되어 있으나 짐작하기에 전혀 어렵지 않은 이 모든 경고와 교훈과 위로가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곳곳에서 울려나오고 있다.    


역사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만 기록하고 기억한다지만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이들의 삶이 이어져 역사가 된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내가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모른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다들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이 세상에 기여하는 존재임을, 오직 평범한 삶을 바라고 실천하는 올곧은 의지 하나만으로도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세상을 구원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며 엔지니어로 제몫을 다하겠다던 지수와 식물 연구자로 충실하며 만족한다던 레이첼이 하고 싶었던 말, 이들을 대신하여 온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록물로 전하고자 한 아영의  당부에 이 모든 소망이 담겨 있었던 게 아닌지.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곧 세상을 구원하는 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자만이 이를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득 담은 글로서. 


작가는 기록하는 사명을 가진 이다. 어떤 모습으로 기록하든 그건 작가의 고유한 영역일 것이고, 과거를 기록하든 현재를 기록하든 아직은 알 수 없는 미래를 기록하든 그 어떤 모습이든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사회일 것임은 분명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후손들에게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일은 앞서 사는 이들의 책임이자 의무다. 이 작가가 이것을 이 책으로 보여주고 있다. (y에서 옮김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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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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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으나 다 읽었다는 개운함은 들지 않는다. 3부는, 3부에서 펼쳐 놓은 세계는 내 상상과 내 생각과 내 지식과 내 범위를 넘어서는 규모였다. 그래서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집중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우주란 이런 곳이라고? 비록 소설가의 상상이라고 하지만 워낙 과학적 장치와 이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높은 수준이라 헤아릴 수가 없었던 탓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1부와 2부에서 밀접하게 이어지는 내용과 구성이 아니다. 서로서로 연결은 되어 있으나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이 상당하다. 동면으로 다음 세상에 넘어간다는 설정부터 내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라고? 그것도 지구가 망하고 있거나 망한 이후거나. 흠, 상상력에도 스케일이 있다고 하더니 작가가 다 해 놓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도 못 알아먹는 독자의 하찮은 입장이라니. 스스로에게 무안하다. 좀더 확실하게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세상을 보는 눈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의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멀리 하늘 저 멀리 우주 저 멀리까지 내다보면서 별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일까, 어느 별까지 생각의 빛을 쏘면서 사는 걸까, 소설 속 주인공이 받았던 것마냥 누군가 나에게 별을 선물할 사람이 있을까. 아니, 없을 게 분명하니 내가 나에게 선물한다면 어느 별을 택하는 게 좋을까, 그럴 만한 별 하나라도 품은 적이 있었던가...... 별이라, 태양계라, 우주라, 우주 생명체라, 우주 문명이라......


소설은 비록 상상이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의 글이다. 작가는 이렇게나 거대하고 거대한 상상을 자신이 처한 현실의 어느 대목에서부터 시작했을까. 사회주의 중국,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이라는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내 멋대로 이어서 추측해 보는 재미는 있다. 중국 작가니까 인류를 구원하는 인물을 중국인으로 내세운 게 당연한데도, 세 권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낯설다. 이 또한 깊은 편견인데.  


우주 전쟁으로 지구가 망하거나 말거나 우주의 차원이 바뀌거나 말거나 나는 동면도 영생도 피난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이곳에서의 삶에 충실할 생각이다. 내 현실과 선택에서 너무 벗어나 있는 상상은 고려해 볼 엄두가 나지 않고, 그래서 좀 많이 심드렁해진다. 이 책 후반부로 갈수록 심드렁해진 게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y에서 옮김202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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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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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우리는, 우리 중의 누군가는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를 떠나서 세상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상상으로도 못 갈 것이라고 여기고 사는 사람인데 나와 달리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아니, 또 글쎄. 그런 사람들, 이 책의 작가처럼 그들 역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바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실린 소설은 모두 7편. 눈에 드러난 것만으로는 우리네 현실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한 겹만 더 들어가면 사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게 나는 좀 많이 아프다. 달랐으면 좋을 세상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세상은 앞으로도 옆으로도 저 멀리멀리 시간으로도 공간으로도 찾아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똑같은 세상, 똑같은 슬픔, 똑같은 절망, 똑같은 한숨, 희망마저 똑같을 것이라는 게 더없이 맥빠지게 만든다. 


내가 응원하는 작가이므로, 응원하는 작가의 글이므로, 시작부터 끝까지 옹호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낯선 요소들은 신선하다 하며 받아들이고 익숙한 장치에서는 노련하다 하며 끌어당긴다. 어느 한 편 내 기대에서 떨어지는 작품이 없다. 나로서는 한번도 가정해 본 적 없는 세계의 모습들이, 그 세계를 이루는 요소 낱낱이 그럴 듯해진다. 의심이 되지 않는 가정,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의 실현, 작가의 도움으로 내 상상력의 폭을 넓힌다. 현실이 구차할수록, 끔찍하게 여겨질수록 상상은 숨쉴 틈을 만들어준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장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건 너무도 중요하다. 삶과 죽음이 어떤 이들에게는 같은 선에 서서 이름을 부르고 있기도 하니까.  


SF 장치와 소재들로 입혀 놓은 상징들이 온통 뜨끔뜨끔한 자극을 준다. 약자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음에도 저는 아닌 척, 강자로 군림하는 이들의 허상이 애달프다.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을 때일 텐데.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챌 만큼 지혜로우면 좋을 텐데. 그릇된 편견과 아둔한 고집으로 놓치는 진실이 얼마나 많은지, 놓친 진실 때문에 아픔을 겪게 되는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알면 좋을 텐데. 작가가 7편의 작품에서 그려 보이는 특수 상황에 처한 이들과 닮은 사람들을 우리네 현실에서 끌어내다 보니 고단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나 또한 거기에 뻔뻔하고도 어리석은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니.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흐뭇하고 또 고맙다. (y에서 옮김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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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2부 :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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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 전부터 해 본 생각인데, 지금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면 우리 지구인들로서는 그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이길 방도가 없다는 것. 그들은 이곳에 올 수 있었으나 우리는 그곳으로 가 볼 수 없는 수준이고 실력인 셈이니까. 이 소설은 나의 이 좁디좁은 생각을 확 넓혀 놓았다. 거대하고 거대한 상상으로.


2부의 제목이기도 한 '암흑의 숲'이 뜻하는 바를 알게 되었을 때는 놀랍기도 했고 절망스럽기도 했다. 모른다는 것, 내가 상대의 의도를 모르고 내 의도를 상대도 모른다고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일, 싸움이라 혹은 파멸이라... 저 멀리 우주 공간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네 개개인에게서도 우리들 사이에서도 늘 일어나는 현상 중의 하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자꾸만 늘어났다. 그러다가 곧 다음 생각에 앞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았지만(이건 이것대로 내 유용한 독서법이라고 여기기로 해서).  


사람마다 스케일(통)이라는 게 있다. 얼마만큼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생각이든 물건이든 관계없이 고려할 수 있겠다. 아무리 상상이라지만 태양계를 넘겨 생각하고 이를 글로 나타내 보이는 일은, 흠, 대단하다. 과학 지식도 갖고 있어야 하겠지만 이를 현실과 이어서 그 다음의 현실도 창조해야 하니까. 한마디로 앞뒤 말이 맞아야, 상황이 어긋나지 않는다고 느껴져야, 나 같은 일반 독자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것이니, 독자인 나로서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지구가 외계 문명의 침입으로 망하게 될 것이라는 설정이 주어진다면 우리들 각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400년 후에 삼체문명이 지구를 파멸시키러 온다고 설정했다. 미래의 후손을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개개인이 갖고 있는 삶이나 가치관의 스케일을 짐작할 수도 있을 듯하다. 나는, 미래에 다시 태어나겠다고 동면 따위를 하지는 않을 것이고.


중국 소설이라 배경과 인물들이 중국을 중심으로 등장한다. 이게 읽는 내내 낯선 느낌을 갖게 한다. 미국 중심의 글과 영화를 너무 많이 봐 온 탓이다. 내 안의 이런 편견을 확인해 보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다. (y에서 옮김20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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