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창비시선 419
박라연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픈가? 많이 자주 아팠던가? 나는 시에서 나의 아픈 자리를 달래주는 구절을 만나면 확 빠져든다. 눈에 보이는 아픈 자리, 보이지 않는 마음 속 아픈 자리, 특별할 아픔이 없는 생인데 나는 왜 미미한 상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순전히 시의 구절들을 만나기 위한 핑계인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가 어떻게 아픈가? 마음이 저리기라도 하는가?


실려 있는 시 중에서 온전하게 나를 사로잡은 것은 시집 제목이기도 한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이다. 들여다 보고 있으니 아픈 자리가 쑤신다. 오래 아플 것 같다. 이 서글프게 아픈 느낌을 달래 보려고 전문을 타이핑한다. 손으로 옮겨 쓰고도 싶은데 그럴 때가 곧 올 것이다, 지금은 아니고. 시는 나를 제 때에 맞게 울고 웃게 한다.


실려 있는 시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다 읽고 했다. 앞쪽에 있는 글들이 뒤쪽보다 좋았다. 어쩌면 내 집중력이 떨어져 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시집 한 권도 온전히 같은 마음으로 읽지 못하는 때를 맞은 것만 같다. 서럽고 속상하다.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아픈 한 자리. 경험으로 보았을 때 새로 읽어도 같은 현상을 겪더라는 것, 시에도 첫인상이 있는 셈이다.


시집 뒤쪽에 실린 ‘시인의 말’을 보고 있자니 시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게 2018년 봄의 상황이다. 시 안에서 잠깐씩 등장하던 배경이 시인의 말로 구체적이 되었는데 이제는 시인으로서도 독자로서도 만난 지 한참이나 지나고 말았다.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 P10

우리 가고 없는 세상에 피어나고
피어날 옆의 세계 - P17

당신도 상처 몇됫박쯤 잘 싸서 놓어보세요
어둠을 곱씹으며 아물던 상처가
봄의 입구 쪽으로 귀를 놓을 것입니다

세계가
단 한명의 잘 익은 내면만으로도
따뜻하게 출렁일 수 있다면 - P21

물이 해를
불러들이기 참 좋은 거기서 우리 한번 만나요 - P24

그런데 이 마음은 또 뭐지
성난 불우에게 아군이고 싶은 이 마음 말이야
마음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금빛 물결은 누가 보낸 설렘이지
위로의 빛은 어디서 오나 - P26

놓았으나
들어 올려진 꿈의 설계도
그 마음의 처마에도 종일 봄비가 내릴까 - P36

추위도 잘 모르고
죽은 듯이 살 줄도 알지만
물도 밥도 새만큼이면 족하지만
쭉쭉 뿌리내리며 세속을 넓혀간다지만
어쭙잖은 신념이라는 이, 부끄러움

어둠의 다른 얼굴이 빛이라면
누가 세상의 모든 기억들을 움직이는 거야?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로 들어섰으니, 가가 형사도 만나야 할 때가 된 것이겠지. 시리즈로 사 놓고 한 권씩 읽는다. 이 책이 시작이다.


'가가'가 형사가 되기 이전의 배경이다. 대학교 4학년 때, 고등학교 때부터의 친구들과 함께 대학을 다녔고 졸업을 앞둔 시점에 벌어진 친구들의 죽음. 그럴 수도 있겠나 싶었는데 읽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더욱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리석고 욕심 있고 판단력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렇게 그렇게 불완전한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일 텐데, 그 결과가 친구들의 잇따른 죽음이라서 좀 씁쓸했다. 읽는 내 마음은 그러했는데, 주인공 '가가'는 좀처럼 알 수가 없다. 그 냉정함이 매력이 된 모양이다. 이 남자, 꽤 차가운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사랑은 지킬 줄 알 것 같은데?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일 테고, 이 모든 장치는 작가의 의도일 것이고. 나는 이 의도에 고스란히 빠져들리라. 


신선하고 풋풋하다. 그 동안 내가 읽은 이 작가의 소설보다 좋은 마음으로 읽힌다. '유가와' 교수보다는 '가가' 형사쪽에 내가 더 끌리는 탓일까?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주인공보다는 사회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주인공 쪽으로? 글을 읽으면서 글을 따라 내 마음을 짚어 나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 안에 있던 모르는 나를 만나는 기분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 끄덕이면서.       


단순한 호기심 하나. 일본의 청소년들은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운동 한 가지 정도는 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일까? 전공 공부 외에 운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육적 환경일까 하는 것. 가가의 검도나 유가와의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수영, 정구 등 하나 이상의 운동을 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부러웠다. 적어도 운동 하나, 악기 하나, 미술 영역에서 하나 정도를 할 줄 아는 능력(직업이 아니라)이 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y에서 옮김201410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소재로 이런 배경으로 이런 만화를 그리고 글을 써 내다니, 작가도 편집자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언뜻 하찮게 보일 재료로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들도 그렇거니와 작가의 의도대로 제대로 마음 흔들릴 줄 아는 나도 한편으로는 대단한 독자인 것일까, 이런 생뚱맞은 생각도 해 본다. 재미있고 흐뭇했다.


목욕탕이라는 특수한 공간, 일본의 목욕탕에 몇 번 가 본 적 있지만 관광지 목욕탕이라 이 작가가 그리는 동네 목욕탕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관광지 목욕탕은 오히려 우리의 목욕탕과 비슷해서 다른 점을 별로 못 느꼈다. 이 책으로 들여다보는 일본의 동네 목욕탕 풍습이 우리와 다른 게 더러 있어서 그게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먼저 일본의 목욕탕은 입구의 카운터 의자를 기준으로 남탕과 여탕이 나뉘어져 있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목욕탕 주인은 남녀 탕을 모두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나 보다. 주인도 손님들도 개의치 않는 걸 보면 그게 또 그들의 풍습일 테고. 우리네 목욕탕은 대체로 남녀가 층을 달리 하는 편이던데. 집에 욕실이 없던 시절에는 우리나 일본이나 공중목욕탕을 이용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밤늦게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목욕탕 문을 열어 놓았던 것 같아 보이고.  


이런저런 목욕탕의 사정을 만화로 보고 있자니 또 내가 지나온 어린 시절의 목욕탕 나들이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주말마다 온 식구가 목욕탕 가는 행사를 한다거나 명절 전날 복작복작 귀찮다 여기면서 목욕을 한다거나 처음으로 혼자 목욕탕에 다녀오면서 뿌듯해 했다거나 내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가 본 목욕탕 등등, 목욕탕이라는 공간에 얽힌 나의 사소한 역사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책을 보는 내내 웃었다. 아, 이런 추억 좋구나, 이런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는 이 책의 의도가 새삼 고맙구나.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남탕에는 가 본 적이 없으니 여탕과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작가와 달리 특별히 궁금한 점은 없다. 여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이나 사람들의 습관들에 대해 공감했다가 낯설게 느끼기도 했다가, 작가는 참 기억도 잘 해내는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어도 즐거웠다.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게 얼마나 소중한 능력인지 알았다고 하면 내가 또 너무 멀리 나간 것일까?  (y에서 옮김201904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파리 만개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박지숙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가게 된 수족관에서 흥미롭게 보는 구역이 있다. 해파리가 있는 곳이다. 투명한 듯 떠다니면서 저마다의 확실한 색깔과 율동으로 존재감을 보여 주는 해파리들. 거기에다가 독을 품고 있는 성질까지,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듯 약올리는 듯. 나는 해파리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소설은 짧은 것들로 6편. 읽는 데에 부담은 없는데 읽으면서 생각하는 동안에  부담이 생긴다. 어디로 데려가는 상상의 세계이지? 따라가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현실에는 분명히 없는 것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신비한 것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 된다. 나도 그들의 일원으로 바꿔 놓으려는 것일까?


상상이 무섭지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 유쾌하다거나 개운하다거나 밝고 명랑하지는 않다. 오히려 좀 암담하고 어둡고 축축하고 가라앉는 느낌을 얻는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바라보는 미래가 이쪽일 가능성이 높은 탓이겠지? 희희낙락하는 미래는 가상의 세계에서도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 같고. 그럼에도 우리는 기어이 미래로 가는 문을 열어야 하고. 작가는 해파리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도와주기를 바란 것일까? 쓸모 있는 것처럼 나대는 모든 존재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좀 슬퍼진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이 작가의 SF 상상력으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떠오르지 못하고 잠기는 쪽으로 피하는 쪽으로 빠져든다. 꼭 더워서 이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글과 같이 실려 있는 그림들의 차갑고도 부드러운 이미지가 내 취향이어서 조금 낫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순순히 받아들이는 죽음이라는 게 있을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 들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때가 올 것이다. 먼저는 부모님의 죽음이 있을 것이고 부모님의 형제자매의 죽음도 있을 것이며, 점차 친구나 동료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결 가까운 거리에서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뜻밖의 사고사나 병으로 인한 급사가 아니라면 이런 과정이야 슬퍼도 겪어 나가야 하는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작가가 삼촌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가진 전후의 마음 상태를 보여 주는 글을 담고 있다. 늘 그랬지만 담백하고 솔직하다. 거짓이나 과장이 없다.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내가 그래서 더 좋아한다. 아버지에 대한 좋음과 싫음의 표현들, 돌아가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다른 한편으로 느낀다는 홀가분함까지. 


내게 남은 어른은 이제 친정 엄마뿐이고, 언젠가는 엄마를 떠나 보낼 날이 올 것이다. 자주 있는 것은 아니나 친구의 배우자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고, 나나 남편도 마냥 젊은 나이라고만 할 수는 없으니 노년만큼이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내 아이들이 또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순리에 따르기만을 바랄 수 있을 뿐, 생은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주어진 오늘에 겸손해지는 마음도 들고,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나 나를 찾아 주는 친구가 고맙기도 하다. 


작가는 혼자인 처지라 또 부지런히 다니면서 작품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여 보기가 좋다. 부모님을 잃었다고 해서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나이, 자식의 나이가 40이 넘으면 또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책의 마지막에 현재 자신에게는 없는 아이를 대신하여 엄마로서의 자기 모습을 상상으로  쓴 글이 재미있다. 스스로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격조 있게 다룰 줄 아는 것 같다.    


이래저래 산만한 마음으로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은 편이었다.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이 정도면 받아들일만 하다 싶을 정도? 다만 이 끝이 억울함이나 원망이나 절망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잘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y에서 옮김20190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