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에요, 지금 - 산양유셔벗 & 벚꽃
구효서 지음 / 해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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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같은 연애 혹은 사랑 혹은 결혼 따위에 마음이 흔들릴 내가 아니다 보니 이 소설은 심심했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얽히고 꼬일수록, 이름이 밝혀지고 인물의 전적이 드러날수록 음, 점점 지루해지는군, 산뜻한 것은 통영의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는 카페에 대한 환상뿐이구나 애써 여겼다. 


연애소설이 재미있을 나이가 따로 있을까? 그럴지도. 아무튼 지금의 나는 아니라는 것이겠지? 게다가 소설 속에서 연애하는 세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각자 처한 사정에 따른 기막힌 운명이라는 것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탓에 읽는 과정이 흔들렸다. 뭘, 이렇게까지 꼬아서 다시 이어 붙여 놓고는 사랑이라고 이르는가? 작가에게 은근한 투로 불평하고 싶을 만큼. 


지나간 우리네 역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역사에서, 희생된 가여운 영혼들이 아직도 생생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시간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사명은 어디까지일까? 알리는 일? 밝히는 일? 묻어 두는 일? 소설가는 일반인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짐을 느끼기도 할 테지. 그러니 꿋꿋이 쓰고 있는 것일 테고. 독자로서는 읽고 있는 일 하나로 그 사명의 일부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통영의 바닷가 카페촌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곳에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굳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시대를 향한 원망이나 한을 풀어볼 엄두도 못낸 채, 그러나 오늘 하루의 몫을 알뜰하게 살아가는 대로. 살펴보면 어디에 살든 그 누구든 다 이러할 삶이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닐 것 같다.


소설 속 카페는 대체로 낭만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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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18
라즈웰 호소키 지음, 박춘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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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작가가 부산에 와서 술을 맛있게 마셨다는 내용이다. 특히 온갖 안주를 쌈으로 싸서 먹었다는 것. 회도 고기도 내장도 족발도. 요즘에야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음식을 먹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자주 봐서 우리로서도 그들이 우리의 음식 문화를 신기하게 여기는 모습을 도로 신기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만화가 나온 시절 정도라면 달리 보이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작가가 취재한 부산의 자갈치 시장과 주변의 맛있는 음식점들. 외국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가서 먹고 싶어 하는 장소일 테다. 활어를 바로 잡아서 회로 먹고 매운탕으로도 먹고 죽으로도 먹고. 술은 아니지만 입맛은 살짝 돈다. 활기찬 시장 분위기도 그윽하게 떠오르는 게 내가 지금 배가 고픈 상태인가? 살짝 확인을 해 본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나 보다. 안주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문제, 세상의 맛있는 것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 건강을 지키면서 맛있는 음식을 적절히 챙겨 먹을 줄 아는 경계란 어디란 말인지. 이 답만큼 사람마다 다를 분야가 없을 테니 살아 있는 내내 찾아야 하는 각자의 몫이지 싶다. (y에서 옮김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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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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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별로 좋지 않다. 나는 아직도 소설 속 환상의 세계에 기대를 걸고 있나 보다. 소설이 너무 현실같아서, 이 현실이 아주 보잘것 없어서, 거짓으로라도 품고 만족할 위로를 얻지 못한 느낌이어서 별로다, 별로라고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별로인 그 씁쓸한 기분은 그대로인데 그럼에도 소설에 실망이 안 된다. 점점 더 여운에 끌려든다. 그래, 사는 게 뭘 그리 대단하겠는가, 어찌 모두 성공할 수 있겠는가, 통속적인 성공만이 성공이라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은 가여워서 어쩌란 말인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주인공은 왜 이러나, 주인공의 아내는 왜 이러나, 주인공의 부모는 또 왜 이러는지. 다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맥없이 살아가고들 있는 것인지. 이래서야 어느 순간 행복을 맛보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인지, 몹시 답답했다. 그러다 잠시 눈을 돌리고 생각을 거듭하자니, 어쩌면 우리 삶이 대체로 이렇게 흘러 가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내 삶을 볼 때 어떤 판단을 해 줄 것인지. 아니 무엇보다 내가 지금까지의 내 삶을 어찌 볼 것인지.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르고 내가 나이를 더 먹고 생을 마무리할 때 쯤이면 뭐라고 한 줄에 요약할 수 있을 것인지. 스토너와 썩 달라질 인생인가 말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벌써 알았다. 그래도 내 의지에 맞춰 미래를 준비하려고 했고 오늘을 살고 있다. 행복한 순간도 있고 불행을 느낄 때도 있겠지. 무엇이 더 강한가에 따라 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냥 사는 것이다. 주어지는 대로, 그 순간 선택하고 포기하고 책임지면서. 아무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 부모도 배우자도 자녀도 일부의 영향은 미쳤을 것이나 끝내 자신이 될 수는 없다. 

 

오늘은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다짐도 못하겠다. 더 이상 어찌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인가.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할 모든 생명체가 가여울 따름이다. 살고 싶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인생에 패배했다는 평가는 다른 사람이 내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차원에서 성공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사라지지 않는데. (y에서 옮김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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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 / 구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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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중에는 별로 못 느꼈는데 다 읽고 나니 몹시 언짢다. 계속 소설 속 장면을 생각하게 되고 인생의 한계를 떠올리면서 한탄하게 된다. 태어나고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을 받은 일이기는 한데, 글쎄, 삶을 고행이라고 한 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살아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참 딱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사는 것이란 또 살지 않는 것이란 뭘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 듯 싶어도 누군가는 선택하고 그걸 또 다른 누군가는 응원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유쾌해지지가 않는다. 이럴 필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우구스투스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오래 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이름을 익혔다. 최근에는 콜린 매컬로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로 기억을 되살렸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통해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는 큰 호감을 얻었던 것 같은데 콜린 매컬로의 글을 읽으면서 어째 영 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작가 탓인가? 읽는 내가 변했나? 내가 그때 잘못 읽었나?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못한 것인가? 이럴 수는 있겠지만 새로 궁금해졌다. 찾았다. 이 책을 발견하고 아주 반가웠다. 


역시 꽤 오래 전 이 작가가 쓴 스토너를 읽었다. 내용은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읽은 후의 답답했던 느낌은 생생하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을 만큼. 그래서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책에 대한 평가가 좋아서 빌리고 펼치고 읽었다. 안 읽었으면 엄청 후회했을 만큼 소중한 독서가 되었다. 올해 첫 리뷰가 되는 셈이라 이 또한 만족스럽고.


역사소설은 주요 사건과 결말을 다 알고 있다는 전제로 쓰여지는 글이므로 작가가 어떻게 형상화하였는지에 주목해서 읽게 된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계속 읽고 싶은가, 그만두고 싶은가. 이미 여러 번 읽었어도 기억을 다 못하는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우구스투스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였다. 확장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설령 다 읽고 또 다 잊는다고 해도, 읽는 동안의 풍성했던 기분은 남아 있을 테니까 섭섭하지도 않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와 2부는 아우구스투스 주변 인물들이 쓴 글로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됨과 당시의 정세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1부는 아우구스투스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글, 2부는 아우구스투스의 딸인 리비아의 글이 중심을 차지한다. 궁금한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솜씨이자 능력이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보다 이러한 간접 서술이 해당 인물에 대해 훨씬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런 방식이 독자에게 좋은가 아닌가는 독자의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내게는 적절했다. 아주 좋았다는 기억과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했던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 상황에서는. 


다 읽고 보니 좋았다 안 좋았다는 평가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인 것을 알겠다. 75세가 되도록 살았고 40년 동안 정치를 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았음에도 그 역시 사는 일은 내내 고난과 시련의 연속에 사이사이 짧은 영광과 축복이 있었을 뿐이었음을. 길고 긴 쓸쓸한 생이었음을. 아우구스투스의 마지막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는 3부의 글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하는 내 마음이 어찌나 언짢던지. 그냥 지구 위에 머물렀던 한 사람의 실제적인 인물이었을 뿐, 딱히 좋은 사람도 안 좋은 사람도 아닌 아주 많이 뛰어난 한 사람이었을 뿐. 


아직 오지도 않은 나의 75세가 염려스러워진다. 지극히 평범해서 오히려 더 가벼운 무게가 될까, 내 생은? 나는 나대로 쓸쓸할까? 75세, 그때가 오든 그 전이 되든 혹은 그 후가 되든 아니 그 어느 때가 되든. 


제 몫의 수명과 운명을 붙잡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가엾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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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 한국 대표작가 아홉 명이 쓴 가족소설
이순원 외 지음, 권태현 엮음 / 은행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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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책이다. 문득 손에 잡히는 때가 온다. 예전에, 책을 샀던 그즈음에 읽었을 책인데, 다 읽지는 않았더라도 몇 편은 읽었을 터인데,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다시 살펴본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글은 또 읽는다. 어차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전히 괜찮은 독서 시간을 누릴 수 있으니까. 


작가들이 알 만한 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책이 나오던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던가, 양귀자, 이순원, 구효서의 이름에서는 확신할 수 있겠는데 다른 분들은 그 이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상당히 앞을 내다보고 꾸몄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실린 소설은 각 작가의 개인 소설집에서 혹은 발표된 다른 책에서 뽑아 모은 것들로 보인다. 이를테면 책 처음에 실려 있는 양귀자의 '마지막 땅'은 작가의 책 <원미동 사람들>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가족소설'이라는 주제로 아홉 명의 작가 작품을 모아 놓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가족'이라는 주제로 새로 쓴 작품들을 모아서 책으로 펴내는 기획을 할 텐데, 그때는 이미 발표된 소설로 책을 묶어 내기도 했나 보다. 나는 그때 이 책을 왜 구했던 것일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추측으로는 학생들과 함께 읽을 자료를 구하려고 했던 것 같기는 하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수업하기에 꽤 적절한 편이니까. 지금은 품절인 책이다. 내게는 또다른 의미의 가족사진과 같은 책으로 남아 있게 될 것 같다.  (y에서 옮김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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