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가방
김성라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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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그림을 그리고 그에 맞는 글을 보여 주는 작가를 만났다. 좀 많이 횡재한 느낌이 든다. 내게 횡재란 이런 것이어서 더 근사하다. 이 작가의 책을 더 사서 갖고 싶어지는 마음까지 생겼으므로.

책 제목인 고사리 가방은 고사리를 따서 담는 가방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작가는 고향인 제주도에 가서 제주 사투리를 진하게 쓰시는 엄마와 함께 고사리를 따러 간다. 그 길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간결한 선과 깔끔한 배경의 그림 그리고 다정한 대화와 흐뭇한 독백까지. 모처럼 내 마음이 다 아늑해진다. 사는 일에 별 게 없다고 입으로는 늘 떠들곤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바로 그 별 거 없음에 소중하고 귀한 일상이 깃들여 있으니까. 그걸 이제는 확실하게 알게 되고 말았으니까.

볕 좋은 날, 이렇게 커다란 통유리창 아래 옆으로 누워서 햇빛 받는 시간을 얻고 싶다. 생각해 보면 이럴 시간도 공간도 이미 갖고 있으면서 이럴 줄 몰라 못 누리고 있었다. 이게 문제다. 좋은 걸 이미 갖고 있으면서 모르고 산다는 것.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풍경 앞에서라도 같은 자세로 누워 바라보고 싶은 걸. 바람 부는 날이면 또 어떠랴. 행복과 평화가 내 한 걸음 안에 이미 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y에서 옮김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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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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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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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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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마음에 든 책을 만나면, 앞서 읽었던 책 중에 좋았다고 생각되는 책들과 비교하게 된다. 어느 것이 더 내 마음과 가까운가. 그리고는 순위를 따지면서 책의 자리를 만들어 본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책을 제일 윗자리에 놓는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동을 주었던 책으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겼던 책으로. 올해 내 여름을 이 책에 남기겠다.

어쩌면 이렇게도 잔잔하게 펼쳐 보일 수 있는 건지. 너무 조용하고 잔잔해서 도리어 조마조마해진다. 언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몰라서. 조용함이 의외로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 말없는 성격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는 것, 차분하다는 게 어떤 힘의 다른 이름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요란한 게 전혀 없는데 읽는 이의 마음을 내내 일렁이게 하는 이야기로. 반전까지 놀라울 정도로 잔잔하다.

이야기의 중심 소재는 '건축'이다. 소박한 듯 보이지만 철두철미한 노건축가와 그가 있는 설계 사무소에 갓 들어간 젊은 건축가가 설계를 하면서 한 해의 여름을 함께 보낸 이야기. 그 여름이 오래오래 남아 소설의 제목이 된 이야기. 내게도 그런 여름이 있나? 여름이 아니라도 봄, 가을, 겨울 중에? 내 인생의 방향을 이끌어 준 어느 해 어느 계절이.그 계절을 담고 있는 소설 속 여름별장과 같은 곳이?(없다, 흑, 좀 많이 슬프고 섭섭하군.)

가끔 건축과 관련된 글에 내가 기대 밖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르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무심한데 건축만큼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모르면 알고 싶어할 정도로 나를 이끌어 가면서 읽는다. 읽으면서 흐뭇해 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여긴다. 내게 이런 쪽의 바탕이 있었던 건지도 몰라, 하면서.

건물을 설계하면서 건축가들이 고민하는 영역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아주 세세하고 치밀하게 들여다 본 느낌이다. 이 작가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정도로 혹은 그 이상으로 설계에 정성을 들이는 건축가들은 정말 위대한 예술가일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름을 남기고 있을 것이고, 비록 이름은 남지 않았더라도 그런 위대한 일을 한 건축가들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건축가이기 전에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하고 싶어진다. 거대한 건물을 설계하면서 각 방의 문고리의 재질이나 무늬까지 고려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일 것이다. 집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사람이 사는 공간의 효율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궁리하고 또 궁리하는 모습, 집이 되기 전까지 혹은 집이 된 후에도 끝없이 고치고 보완하는 모습. 아, 나는 너무도 건조하게, 바짝 마른 채로 살아온 것만 같다. 비와 바람만 피하면 된다는 듯, 우리집에게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집'을 애틋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더욱 애틋해지시라고.(y에서 옮김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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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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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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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의 외형, 아주 내 취향이다. 무엇보다 두껍고 단단하고 표지의 그림은 선명하면서 아득하고. 바닷물 사이로 키가 큰 가로등 사이로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따라 나도 간다. 무서운 듯 싶어도 유혹적이다. 내가 이렇게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었던가.


주인공은 아팠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는다. 자신의 남은 날들 앞에 다가오고 있을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떠할까? 절망하고 절망하고 또 절망하게 될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은 살았구나, 내일에도 살아날까? 밤에 잠드는 일은 또 어떨까? 잠이 오기는 할까? 안 자고 못 자다가 어느 순간 지쳐 쓰러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또 놀랍게도 깨어나고?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작가의 처지에 나의 상상력을 갖다대면서 나는 멋진 혼란을 겪었다. 이 소설은 소설만이 아니었다. 온전한 삶의 온전한 형상 하나였다.  


곧 죽을 줄 알았기에, 자신이 살아 있었던 흔적을 모조리 정리까지 하고(운영하던 출판사도 팔았는데), 죽음에 기꺼이 굴복하려는 즈음 자신의 뇌사진이 다른 사람의 뇌사진과 바뀌었다는 것을 주인공이 알게 된다. 의사가 사진 아래의 환자 이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 안 죽을 사람을 죽을 것이라고 하고 곧 죽게 될 사람에게 안 죽을 것이라고 진단하는 의사라니. 이렇게 하여 누군가의 실수로 잃어버릴 뻔했던 내 목숨을 되찾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심정은 어떠할까? 새롭게 다가오는 남은 날들이 이제는 어떻게 보일까? 소설은 참으로 끈질기고도 웅장하게 나아간다. 하루하루 만나고 헤어지고 추억하고 몰두하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이 책만큼은 다른 책과 같이 읽을 수가 없었다. 온전히 이 책에만 매달렸다. 


읽는 동안 내가 나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아서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과제처럼 의무처럼 책 속 사항들을 정리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읽고 묻고 답을 고르고 잊어버리고 다시 읽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내가 언어를 이만큼 좋아하는 수준이라는 것에 또다시 만족하고 고마워하고. 책은 나를 괜찮은 독자로 자꾸 확인시켜 주는 듯하였다. 


좋은 사람 옆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면 당사자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도 했던가. 주인공 레이랜드와 이어진 사람 중 형편 없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심지어 오진한 의사조차 악의나 무지로 그런 실수를 저질렀던 게 아니라고 믿어졌으므로), 나는 이게 가장 문학적이라고 여겼다. 문학이 아니고서는 이런 세상을 창조할 수가 없다. 현실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하고 끔찍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없이 초라하고 하찮고 짜증스럽게 여겨질 때마다 꿈꾸게 되는 문학, 문학 속 인물, 문학 속 세상. 레이랜드를 통해 촘촘하게 펼쳐 보이는 세상. 


번역이 이렇게 달콤한 작업이었나, 번역가가 이렇게 숭고한 직업이었나, 소설가가 이렇게 복잡한 예술이었나. 어느 것 하나도 가볍게 놓아 보내지를 못하겠다. 내가 앞으로 읽을 글들은 얼마나 무거운 무게로, 얼마나 무거운 감동으로, 얼마나 무거운 사명감으로 나를 사로잡게 될 것인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언어와 모르는 언어들에게 어떤 경의를 품게 될 것인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다. 혼란스러워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흥미로워진다. 주인공이 낯선 언어를 모두 배우려고 했던 마음처럼 나도 모든 글 앞에서 설레게 될 것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고 보내는 순간은?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인데, 내가 먼저 죽을지 네가 먼저 죽을지 모르면서 우리 스스로는 자신을 죽음의 길에서 빼놓는다. 오래 생각하고 있다. 나도 모를 나의 죽음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내 곁에 있는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의 죽음을 먼저 맞게 된다면 내가 또 어떤 사람으로 바뀌게 될 것인지를.


책에 담긴 언어의 무게가 그윽해서 참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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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루돌프 Dear 그림책
김성라 지음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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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더위에 지쳐 꼼짝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마음은 들끓는다. 할 수만 있다면,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다고, 저 바다로, 저 제주의 바다 곁으로.

제주의 작가, 그림과 만화를 그리고 에세이를 쓰는 작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보여 주는 작가. 나는 이 뜨거운 여름의 며칠을 이 책으로 달랜다.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충분히 시원하고 달콤했다. 제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제주를 여행만 하는 사람과는 보는 것도 먹는 것도 다르게 마련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짐작되는 더위조차 금방금방 잊게 해 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다. 내가 꿈꾸는 모습의 하나이기도 하다. 시원한 유리창 안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여름 바다를 보는 일, 따뜻한 유리창 안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겨울 바다를 보는 일 또한 한가지로. 나는 게으르고 약하고 그러나 꿈은 거창하고 야무지고.(앞선 책 리뷰에서 차원문이라는 게 있다면 모마 미술관으로 갔다왔다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 헛된 바람은 여기서도 같은 무게로 작용된다.)  

인물들의 대화를 제주 방언으로 나타내 놓았다. 그림 아래에 표준어로 바꿔 놓았는데 성가시지 않고 읽는 재미를 따로 준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쓴 다른 에세이집이 손 가까이에 있다. 이 책도 읽고 있는 중인데 제주에서의 삶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만화와 겹쳐 보이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다. 이 또한 내가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y에서 옮김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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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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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의 문체가 내 말투로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한다. 그가 쓴 말처럼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그랬던 것 같았더니,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해졌다. 어지간한 동경심이 아니고서야 내가 이렇게 빠져들다니, 즐거운 경험이다. 


남한산성을 읽고, 이어 칼의 노래를 읽고, 한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일'에 진저리를 쳤다. 이렇게 살아야만 했던 백성의 목숨. 나는 내가 그런 백성 중의 한 명이면서, 또 그런 한 명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읽었다. 이 생각은 다른 표현의 의문으로 바뀌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여전히 계속 되었다. '나는 이 땅의 백성 중 한 사람인가, 백성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앞서 두 권의 책은 전쟁 중이어서 그런 줄로 알았다. 장군이 아니니, 귀족이 아니니, 왕실 가족이 아니니, 그저 이름없는 백성이니, 그런 시대의 힘없는 백성들은 그렇게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 때로는 적에 의해 때로는 우리 상관에 의해-죽고 살 수밖에 없었나 싶었다. 비단 우리 땅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아, 전쟁이란 세상 위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이어서 전쟁 중에 스러지는 생명들의 가엾음을 그저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전쟁만이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웃 나라와의 전쟁이 없어도 나라 안은 늘 전쟁 중이었다. 생각해 보니, 산다는 것이 전쟁인 것이었다. 내가 나와 싸우는 전쟁만이 아니라, 내가 내 이웃과 싸우고 나를 지배하는 관리와 싸우고 내 삶을 보호한다는 체제와 싸우는, 삶 자체가 전쟁인 것이다. 그러니 살 길을 찾아야 할 밖에. 살아 있으니, 살아가야 하니, 살 길을 찾아서 도모할 수밖에. 


전에는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음이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에도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100년 전에 살았던 게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랬는데, 잠시 고개를 든 순간, 지금이, 100년 전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백성은 여전히 춥고 배고프고 아파서 울고 있으며, 그런 백성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잡혀들어가고 있고, 백성을 모르면서 안다고 말하는 이들은 저들의 욕심에 갇혀 아우성치고 있으니. 


할 말을 다 하지 않고 감추는, 아니 버리는 작가의 문체에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글을 쓰면서 앞서 죽어간 그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랴. 살아서도 아프고 죽어도 아플 일이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살아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찌 모를 수 있는 것인지.        


이 책을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읽으시라고 권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읽으신다면, 그는 적어도 아픈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리하여 세상이 지금만큼이나마 빛을 품고 있는 것일 터이므로. (y에서 옮김201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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