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토성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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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네 살 시절을 이미 오래 전에 지나온 어른이 만약 다시 열네 살 소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가정의 아이였으면 좋을까를 상상해 본 이야기로 읽었다. 이런 상상, 내 취향은 아니지만 현실의 고달픈 문제를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요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또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성격이 등장인물들의 태도로 곳곳에서 잘 드러나 있는 것도 좋았다. 만화로뿐만 아니라 소설로도 계속 믿을 수 있으니까.


다시 열네 살이 된다면 어떤 가정에서 살고 싶을까? 아빠는? 엄마는? 또다른 가족으로는? 집의 형편은? 내 성격은? 내 친구로는? 학교는? 선생님은? 무엇보다 짝사랑하는 선배는? 등등.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고려했을 여러 가지 배경과 조건들이 꽤 흥미로웠다. 상상 속에서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안 하고 싶었던 것인지 주인공 안나의 생활 반경을 소박하고 평범하게 그려 놓았다. 몇 번이나 말한 듯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만큼의 평범한 조건을 얻는 일이 예사로운 게 아닌 것임을.


성실하지만 그래서 가족을 위한 집도 마련했지만 35년 동안 집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아빠. 대출금을 갚는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파트타임 일을 하는, 요리에 영 솜씨가 없고 솔직담백한 엄마. 오로지 우주에만 관심을 두고 있고 공부도 잘하면서 상냥하기까지한 대학생 오빠. 공부도 운동도 외모도 특별할 게 없이 중간층에 머물면서 하나뿐인 친구와 자신의 외모 관리와 짝사랑 대상인 선배 때문에 고민하는 여자 중학생인 주인공.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심각한 사건이나 골치 아픈 갈등 관계를 내세우지 않고도 평범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제각각의 문제를 잘 보여 준다. 글을 통한 상상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긁어서 괴로울 지경이 되도록 어렵고 고단하며 지긋지긋한 상황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놓치지 않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나로서는 참 좋았다.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너무 넘치는 것도 그렇다고 턱없이 모자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하는 내게 딱 좋은 범위 안의 글이었던 듯하다. 


주변에 열네 살의 소녀가 없다. 이만한 나이의 소녀들에게 신선한 선물이 되어 줄 책인데. 열네 살의 딸을 둔 엄마도 없다. 선물도 할 수 있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나를 위한 선물로 만족하는 수밖에. (y에서 옮김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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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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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데, 심지어 놀이삼아 타보는 말등에도 올라본 적이 없는데, 승마도 경마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말을 알고 말을 느끼고 말의 마음을 본다. 신기하고 대단하고 측은하다. 야백과 토하는 달 너머로 달려 갔을까? 제발 그랬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근원을 생각해 보는 일-처음에는 어땠을지, 사람은 어떻게 생겨났다가 어떻게 모였다가 어떻게 싸웠다가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 추측해 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았다. 소설로도 만화로도 영화로도 이미 본 듯하여(구체적으로는 들지 못하겠지만) 이런 배경만으로는 낯선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낯설지 않고도 생생한 새로움을 맛보았다. 도리어 너무 생생해서 좀 많이 무서웠다. 무서웠으나 피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은 오로지 작가에게 있었다.

 

문장들은 근원만큼 짧고 맵고 단단했다. 얼마나 자주 찔리고 베이고 박혔던지 다 읽을 즈음이 되자 내 정신이 한결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읽어 낼 수가 없었을 테니까. 나하를 사이에 둔 초와 단, 두 나라의 왕과 군사들과 백성들과 말들의 말(言)이 귀에 맴도는 듯하다. 그토록 짧으면서도 인상적인 말들이 작가가 한 말인지 등장인물들이 한 말인지 이제 나는 구별을 못하겠다. 무슨 상관이랴. 초는 초대로 단은 단대로 애틋하기만 한 목숨들이었던 것을. 하나하나 가볍게 사라져간 듯했으나 결코 사라진 적 없는 낱낱의 생명으로 이어져 온 것을. 나 또한 그들 중의 하나일 것이니.  

 

작가가 뒤에 남긴 말이 나를 붙잡는다. 나도 이제 우리집 마당에서조차 이 땅의 근원을 짐작하는 버릇을 갖게 될 듯하다. 여기에 무엇이 혹은 누가 있었을까.(y에서 옮김20200811)

무는 문을 힘차게 하고 문은 무를 아름답게 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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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식혜 웅진 우리그림책 110
백유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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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하고 힘든 일이 생겼다. 마음도 몸도 편하지 않아서 여러 모로 어수선하다. 이런 나를 진정시키는 방법 하나, 그림책 들여다보기.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흘러가도록,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잠시 동안 맡기도록 해준다. 이래도 저래도 어쩔 수 없다면, 덜 아픈 시간을 선택해서 견디는 수밖에.


어느 가을날 너구리 할머니를 찾아온 동물 친구들. 저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먹을 것을 챙겨 온다. 토끼는 먹을 것 대신 들꽃을 챙겨 왔다며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하는데 이 멋진 너구리 할머니는 들꽃까지 식혜의 재료로 쓴다. 들꽃이 뿌려진 식혜라니, 얼마나 상큼할까.


나는 현실을 잠깐 잊고 그림에 동물들의 귀여운 이야기에 빠져 든다.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를 둔 것도 행복한 일일 텐데. 나는 앞으로도 영영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가 될 수는 없을 듯하고, 이 또한 서글퍼지는 생각이다.


이 작가의 그림책은 내 안에 있는 저 멀고 먼 어린이부터 훗날의 노인까지 불러 내어 함께 읽도록 해준다. 지금 내게 퍽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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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을 땐 고양이
마스다 미리 지음, 히라사와 잇페이 그림, 이소담 옮김 / 이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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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작가는 글을 맡고, 그림은 다른 작가가 그려서 함께 만든 책이다. 그림을 그린 작가를 잘 모르는데 아마도 고양이 그림에 맞춰져 있는 작가인 모양이다. 좀 세밀하게 살피지 못하고 마스다 미리 신작이라는 말에 얼른 구입부터 한 뒤에 어랏? 싶었던 아주 작은 낭패감. 뭐, 그럴 수도 있지. 책 제목처럼 생각이 많아지지 않도록 얼른 우리 고양이를 보는 거지. 


편집 기획이 특별하다. 아마 두 작가에게 이런 형식의 내용을 권한 편집자가 있었겠지. 작가가 먼저 제안했더라도 크게 상관없고. 한 쪽에 두 컷의 그림, 고양이가 우리네 사람을 살핀다는 설정 아래 보여 주는 짧은 인상들. 말하는 주체가 고양이라 하더라도 결국 작가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사람인 나는 그런가 보다 싶은 느낌을 자연스럽게 이어 갔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품으면서.


고양이에 우리네 감정을 이입하는 작품을 더러 본다. 아니, 아예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형식을 취한 글도 제법 있었다. 사람과 가까이 사는 동물로 고양이 말고 개도 있는데, 작품으로 등장하는 쪽은 고양이가 더 많은 듯하다. 아니면 내가 개가 주인공인 쪽보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쪽의 글을 더 많이 읽어서 그렇게 느낀 탓일지도 모르고.   


개든 고양이든, 주인공을 동물로 삼은 데에는 작가 나름대로의 이유와 전하고자 하는 효과가 있을 테다. 사람이 사람 말을 듣는 것과 듣지 않는 것, 사람 말이 아니라면 대신 고양이의 말이라도 들으라는 것, 글쎄, 이것도 좋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었으니 작품의 힘에 따른 것이겠지? 누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가 닿을 글은 가 닿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할 글은 중간에 끊어지고 말 것이고.  


귀여운 그림에 담백한 생각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좀 심심했다. 지루했던 것 같기도 하고. (y에서 옮김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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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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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잘 넘어가는 글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유쾌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마치 내가 주인공인 개 '보리'가 되어 마구마구 돌아다닌 기분이다. 내 기분은? 글쎄, 말 그대로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자유롭고 신선했다는 느낌 정도? 사람으로서는 맛볼 수 없는 기분이기도 했고. 그래서 작가의 표현에 더 감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었으니.

 

이 작가의 글은 챙겨 읽는다고 했는데 이 책을 놓쳤었다. 블로그 이웃 'goodchung'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 되는 셈. 내게 아주 좋았다고 할 글은 아니었고, 그래도 읽으니 좋기는 하구나 하는 만큼이었다. 아마도 개의 생태에 대한 관심이 없는 편이라 아주 좋다는 느낌을 못 받은 것일 테다.

 

나는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를 만지지도 못하고 개가 내게로 오는 것도 싫다. 제일 싫은 것은 묶인 개를 보는 일이다. 답답함을 넘어서 암담할 정도다. 개를 학대한다는 사람들의 기사는 더더욱 끔찍하다. 개를 반려동물로 삼고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들의 정다운 이야기보다는 개를 못살게 구는 나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내게 더 큰 영향을 주는 셈이다.

 

개를 보살피는 어려움까지 겹쳐 생각하다 보면 아무나 아무 때나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것만 확인하게 된다. 개랑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어도 집에서 키운 개가 여럿 있다. 애들이 돌봤는데 끝내 풀어 놓은 채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더 이상 키울 생각이 없다고 한다. 

 

소설 속 '보리'는 사고를 치기도 하고 주인으로부터 혼이 나기도 하지만 개로서는 대체로 좋은 환경에 놓인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살았고, 묶여 있기보다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주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개에게도 개만의 고단한 삶이 있더란 말이지. 주인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수놈으로서 어떤 경쟁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좋아하는 암놈에게는 어떻게 다가가느냐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길에서 개를 만나게 되면 저절로 '보리'의 시선을 떠올리게 될 듯하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만나 보고 생각해 볼 일이고.     

 

개도 사람도 순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안 될 모양이다. (y에서 옮김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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