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완전판) - 커튼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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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이 스타일스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것이었다. 13권은 더 앞에 읽은 터라 14권을 읽은 건데 배경이 12권과 같다. 대신 세월이 많이 흐른 것으로 나온다. 예전에 살인 사건이 있었던 저택이 호텔이 되었고 이 호텔에 먼저 온 푸아로가 화자인 헤이스팅스를 초대하면서 다시 살인 사건을 맞는다. 이번에는 완전히 내 예상과 벗어난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었지만. 


이야기를 많이 짓다 보면 나중에는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되는 걸까. 이렇게 두 권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홈즈 책도 아직 다 못 읽었으니까 마찬가지가 될 것 같은데 푸아로 경감처럼 이야기 속 인물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계속 등장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인물, 이렇게 매력적이면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우리 문학에는 누가 있나?(갑자기 김홍신의 인간시장 장총찬이 생각났다, 아후)


푸아로 경감은 이번 권에서 죽는다. 그런데 내가 읽고 있는 시리즈가 어떤 순서로 번호를 매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글을 쓴 순서대로는 아닌 모양이다. 내가 아직 안 읽은 책에서 푸아로의 활약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다. 나는 이미 푸아로 경감이 여기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살아서 날카롭게 사건을 파헤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니. 그건 그것대로 또 재미가 있겠지.


살인.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요즘이다. 심지어 묻지마 살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인간 본성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된다. 시기, 질투, 복수, ...... 그리고 이유 없음까지. 왜 죽이고 싶어지는 건지, 어떤 사람은 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지, 누가 원인이고 누가 결과인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라고만 하기에는 불행해지는 개인들이 너무 많고 무책임한 말이 된다. 이번 책에서의 범인 같은 경우, 정녕 무섭고 싫다.  (y에서 옮김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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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10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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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독서의 양념 같다는 생각을 한다. 먹는 방송은 보기 싫어 해도 먹는 만화나 먹는 책은 여전히 좋아하는 나, 책과 책 사이의 징검다리처럼 짚는다. 괜찮다. 이대로 이 방법을 지켜도 좋을 듯하다. 사 놓고 보면서 흐뭇해 하다가 어느 순간 펼쳐 읽기.

 

만화가 같은 형식이라 내용에 대해 할 말이 늘 생기는 건 아니다. 이번에는 혼자만의 공간을 즐기는 데에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거리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혼자 가게에 들어가도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이 없고, 주인과는 적당하게 따뜻하고 친절한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저마다 술을 즐기는 모습에 간섭도 하지 않고 비난하는 눈초리도 보내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는 어떤 사람도 술을 핑계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그런 공간과 사람 사이. 서로 봐 주는 거다. 너는 그만큼, 나는 이만큼, 우리 각자 요만큼.

 

일본의 술집에 가 본 적이 없으니 실제로 이 만화와 같을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분위기만큼은 부러운 대상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술과 엉켜 나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때에 여자 혼자 술집에 간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를 발휘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닐지(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다행이겠고).  

 

이번 호에서는 술보다 안주에 더 빠졌다. 가볍게 먹는 안주라면서 제시해 놓은 음식들이 정말 가벼워서 또 놀란다. 술꾼에게 안주가 안 될 것은 없겠다 싶다. (y에서 옮김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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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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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뒤에 오는 이 막막한 기분을 설명할 수가 없다. 글을 읽을 때는 몰입이 잘되었다. 글의 방향에 대한 흥미가 계속 일어났고 서술해 나가는 방식에 이끌렸으며 작가가 내보이고자 하는 의지나 숨겼으면 하는 의도까지도 수월하게 잡히는 듯했다. 다 읽고 나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다. 이게 뭔 상황인지,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도 구별이 안 된다. 나는 정녕 읽기는 했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펴 헤아리는 일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여 소설로 대신 꿈을 이루며 산다. 소설가가 보여 주는 것을 내 꿈으로 실현시키는 모양새이지만 이런 기분을 갖도록 해주는 글이 늘 좋았다. 이 작가의 글에도 이런 기분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인데 아직 완전한 확신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지금처럼 당황스러워지는 것이지.

2019년에 출간되었고 모두 9편이 실려 있다. 등장인물들 중 어느 한 사람 가엽지 않은 이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가여워해서 쓰나? 그럴 주제가 되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내가 나를 가엽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감히 남을? 나는 동정했고 동정하는 내가 낯설었고 동정받는 그들이 대견했다. 어쩌면 남을 대신하여 나를 기억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고 산다. 5년 전에도 살아 있었고 그 앞 5년 전에도 살아 있었으며 지금도 살고 앞으로 5년 후에도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얼마나 자주 가까이 만나고 어울리고 다투고 화해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왜 자꾸 이 물음에 시달리게 하나? 그래 놓고는 소설 내용을 내 기억에 남겨 놓지도 않으면서.

모자를 쓰고 온 사장이 그나마 애틋하게도 내 주위를 맴돌아 준다. 다행이다. (y에서 옮김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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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카코와 술 9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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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면서 꾸역꾸역 이 만화를 보고 있는 나. 음식이나 술이나 내게는 같다. 내가 직접 먹고 마시는 대신에 그림으로 글로 보면서 배부름을 느끼고 취함에 빠지는 것.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만화들을 구입해 놓고 바꿔 가면서 한 권씩 읽고 있는 나. 마치 술꾼이 제가 좋아하는 술을 잔뜩 쌓아 두고 한 병씩 꺼내 마시는 듯한 기분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셈이다. 만화책값이 좀 들기는 하지만 내 몸이 과식에 시달리지도 과음에 괴로워하지도 않으니 계속 해 볼 일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짧은 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구성과는 좀 다르다. 만화에서는 와카코가 술을 마시게 된 배경은 생략되어 있고 바로 술을 마신다. 그날의 맛있는 안주와 함께. 궁금하기는 하다. 정말 안주에 따라 다른 술을 마시는 게 더 맛있게 먹고 마시는 방법인 걸까?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그저 약하게 보이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술을 마셔도 절대로 취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만 하는 바람에 술맛을 익히는 순간을 끝내 가져보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시도도 못하겠고. 따뜻하게 마시는 술, 차갑게 마시는 술, 물과 섞어 마시는 술,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술,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냥 이대로 눈으로만 계속 마시자. 이 또한 충분하고.  (y에서 옮김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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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봄 여름 가을, 생명 웅진 세계그림책 231
    마시 콜린 지음, 에런 베커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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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또는 후손에게 삶을 제대로 가르치는 길은 현재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큼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못하면서, 할 줄 모르거나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후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이기적인 태도도 없을 것만 같은데. 이 그림책을 보고 있으니 이런 서글픈 반성이 많이 된다. 우리가 과연 말할 자격은 있나 싶고.


    2001년 10월, 911 테러 때 세계 무역 센터의 근방에서 다친 채 발견된 나무를 구해서 끝내 살려냈나 보다. 이 그림책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주제는 당연히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 테고. 그저 무심하게 생명만 지키고 선 나무에게 이런 슬픔이 닥치다니, 인간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비단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 사는 곳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고. 교육을 하거나 계몽을 하거나 이와 관계되는 모든 일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것일 텐데, 이 동화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도 같은 바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테러나 파괴나 전쟁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동화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제 욕심을 다스릴 줄 아는 어른이 되기를. 아이와 같이 읽으면서 마음이 따끔따끔해지는 어른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그래 봤자 얼마나 싶겠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하는 간절함이 살아 남는 세상이기를.   (y에서 옮김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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