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ㅣ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마침내 다 읽었다. 나로서는 참 오랜 시간을 들여 읽은 셈이다. 금방 후다닥 읽어버리기에는 주제도 문체도 분위기도 내 마음도 어느 하나 동조하는 게 없었다. 한 쪽 한 쪽, 한 장 한 장, 읽어 넘기는 것보다 읽으면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러고 싶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이렇게 진하게, 무겁게 읽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그래, 진했다. 상상이 이토록 진할 수가 있나, 놀라워하면서 신기하게 여기면서 무엇보다 무서워하면서 읽었다. 어느 한 장면, 배경이 무엇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라면 놓인 자리부터 풍기는 분위기까지, 사람이라면 겉으로 드러내는 대사에서부터 마음속으로 지나가는 심정 한 줄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도 소홀해 보이는 게 없었다. 그러니 아찔하고 또 철렁할 수밖에.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런 모습이라면, 우리가 살 세상이 이렇게 되고 만다면,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이 이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면, ......
그러나 이건 상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소설 속 상황의 어떤 대목들은 지금의 우리 현실에 있다. 은근히 위험하거나 아주 대놓고 위험하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섬뜩한 느낌을 받을 수 없지 않았을까.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영원히 소유하려거나 지배하려거나 무시하려는 일은, 한 쪽이 꼭 사람의 성별을 뜻하는 게 아니더라도, 약자라면 누구라도, 또 동물이라도, 참으로 잔인한 본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 사는 곳이 내가 살자고 다른 이를 꼭 죽여야 하는 밀림도 아니건만. 밀림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의 그 허황되고 괘씸한 본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읽는 내내 역겨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 상황에서도 문장들은 어쩌자고 아름답고 우아하기만 한 건지. 그래서 더 역설적인 괴로움을 느껴야 했지만. 이 책의 후일담이 나와 있다고 한다. 지금의 마음을 추스려야만 볼 수 있을 듯하다. 남자와 여자는, 생명과 생명은 서로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도 없애야 할 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둘다 서로에게 괜찮아야 둘다 괜찮게 살 수 있다. 알면서 왜 못하는 걸까, 우리는. (y에서 옮김2022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