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대신 집에 체크인합니다 - 일상에 집중하는 공간 탐험 비법
해리어트 쾰러 지음, 이덕임 옮김 / 애플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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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르는 내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읽을수록 끄덕였다. 이런 글은 고맙다. 나를 각성시켜 주니까,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있는 나를 분명하게 나무라니까, 이 나무람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어서 따라야지 하는 생각을 강하게 하도록 해 주니까. 그럼에도 내 실천력은 아직 모자랄 뿐이지만.

여행을 하는 이유는? 여행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여행을 한 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나는? 너는? 이유는 다 다른 것 같은데도 또 다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를 남들에게 보이기, 나를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내 존재를 남의 시선으로 확인받기.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분명히 아닐 것 같고. 저마다 살아 있는 이유를 찾는 과정의 하나일 테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자신을 내보이기 좋은 세상이 되기도 했고.

여행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행하는 사람 따로, 여행지에 살고 있는 사람 따로. 더불어 사는 데에 한계선을 넘은 지역이 자꾸 나온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여행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는 역설, 우리 눈앞에서 보고 있다. 사람이 덜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 이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니까. 나는 되고 너는 하지 마라? 꼭 정치가들이 하는 짓 같아서 마음이 언짢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일, 좀 했다. 이제는 다른 것보다 신체적인 이유, 건강상의 조건 때문에 안 하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나는 더 하고 싶어 했을까? 여행을 하고 싶은데, 비행기도 타고 싶은데, 못하니까 이 책으로 내 변명을 삼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부인하지 못하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것으로 삼을 말들을 수집하고 있었으니까. 여행을 하지 않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할 이유를 얻고 싶었으니까. 

다 구했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비행기를, 배를, 차를 타고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집 안에서도, 집 주변에서도, 조금 더 나아간 동네에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는 방법을 만족할 만큼 얻었다.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또 멀리 저 멀리 가 보게 되는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아예 안 가겠다고 다짐하겠다는 마음, 이건 아니다. 열어 놓고 싶다, 그래도. 

또 그래도 집에 잘 머물러 있고도 싶다. 청소하며 여행하고 밥을 하며 여행하고 슈퍼에서 쇼핑을 하며 여행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여행을 하는 것. 그러는 동안 내가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것. 잘 지내기도 하고 심심해서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만족했다가 불만을 터뜨렸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나를 달래면서 매일을 여행지에서 보내는 기분으로 살아보는 것. 

이 책을 읽는다고 여행할 사람이 여행을 하지 않게 되지는 않겠지만 여행을 못해서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위안이 되어 줄 것이라고 여긴다. 꼭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y에서 옮김20240912)    

다른 하늘, 다른 태양 아래서 우리를 둘러싸던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본질적인 나 자신이 드러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 P15

다른 곳에서 뭔가 다른 것을 경험하고 일상적 자아를 벗어 버리고 싶은 갈망, 그 욕망을 아무래도 내팽개칠 수 없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가진 본질적인 욕구로, 궁극적으로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이질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 P16

아파트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서 가끔은 읽고 있던 책이나 잡지를 내려놓은 채 밝은 빛 속에서 눈을 끔벅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때론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60

어느 새 당신은 더는 먼 곳을 그리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그 자체로 충만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집에는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 호텔에서 제공하는 베개가 아닌 내 몸에 딱 맞는 베개가 놓은 깨끗한 침대, 비가 오건 햇볕이 쨍쨍 내리쬐건 상관없이 필요한 옷이 모두 진열된 옷장,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깨끗한 물. 그리고 잘 열리고 잘 닫히며 열린 하늘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 P66

세상은 스스로를 낭비하고 소비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며 그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따라서 지구상의 공간을 당연하게 여기고 우리의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 P124

인간의 진정한 임무는 자신의 삶과 행동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다. - P162

완벽한 평화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 P164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165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여행 안내책자와 삽화집, 여행사의 카탈로그 같은 것을 참고해 어디든 여행해 보라.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그 모든 것을 가장 눈부신 색으로 칠하되, 장 데 제셍트처럼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곳엔 가지 말라. - P185

아무리 일상이 우리를 통제하고, 스트레스가 우리를 갉아 먹고 삶이 악취를 풍긴다 해도 언제나 가능한 일이 또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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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34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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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츠는 꽃을 보며 술을 마신다. 나는 꽃을 보며 술을 마시는 내용의 만화를 본다.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해 주는 쪽은 내 쪽이리라 혼자 웃으며 본다. 술을 마셔도 취하고 꽃을 보아도 취하고 만화를 보면서도 취한다. 저마다 취할 줄 아는 게 많을수록 세상 살 맛이 더 날 것 같다. 이왕이면 돈은 적게 들고 심신은 더 평온하게 해 주면 좋고.

늘 마셔도 또 마시고 싶은 술처럼, 계속 보는데도 달리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나는 자꾸 이 만화를 찾아 읽고 있다. 수집품이 되었다. 다 모을 때까지, 구하고 또 보겠다. 번호 순대로 세워 놓고 보면 멋질 듯하다. 마치 누군가 비싼 술병을 늘어놓고 흐뭇해 하는 것처럼 만족스러울 것이다. 

더 기대하는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또 기대한다. 모순이군.  (y에서 옮김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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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3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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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1996년에 나온 '식빵 굽는 시간'과 1999년에 나온 '가족의 기원'. 그 시절에 이 작가의 글을 좋아했다고 기억하고 있으므로 나는 이 두 편도 읽었을 것이다, 당연히. 각각의 책도 찾아보면 나에게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이사하면서 정리했을지도. 


작가의 이름도 소설 제목도 이렇게 분명한데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글을 읽는 내내. 이렇게나 인상적인 반전과 놀라운 관계 설정에 대해 이토록 까마득하다니. 나는 완전히 잊은 내 기억력에 또 놀라고 그만큼 재미있는 글에 대해 감탄했다. 지긋지긋한 가족 이야기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전개하고 있는 소설. 어느 새 30년이 지난 작품들이 되었구나. 사람 사는 모습은 30년 정도로는 그다지 바꿀 수 없는 모양이구나. 소설따라 내 나이도 흘렀을 텐데 소설만 아득하고 나는 여전히 철없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가족은 어떤 관계라고 해야 하나. 가족은 어떤 관계여야 하나. 그런 게 따로 있을까? 가족도 다른 관계와 같은 게 아닐까? 가까우면 가깝고 멀면 멀고 다정하면 다정하고 냉정하면 냉정하고. 가족이라서, 가족이니까, 가족끼리 뭘 그래... 같은 것들이 이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시대. 어느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가족이라면, 희생시켜야 하는 것이 가족이라면, 참 마음에 안 드는 가족 관계다. 


무능한 사람이 있다, 많을 것이다. 나를 생각해 봐도 자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신의 삶에 무능하고 가족의 삶에도 무능하고 그럼에도 살아 있고 살아 있을 수밖에 없고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폐를 끼치고 본인은 그럴 의지나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님에도 하는 일마다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무능한 사람들. 가족을 덩달아 병들게 하는 사람.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고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도 사람의 기본값 중에 하나일까. 원래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못난 존재를 기반으로 태어난 것일까.


소설은 어둡고 답답했다. 어떤 쪽으로도 해결이 되거나 답을 구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을 배경으로 잡고 있으니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데 속상하지는 않았다. 사는 게 그런 거지, 싶은.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지, 싶은. 지금의 내 처지가 소설 속 인물들의 처지와 같은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어쩌나, 저들을 도울 수 있기는 한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소설은 읽는 마음을 한없이 추락시키면서도 사람과 삶과 문학에 대한 기대만큼은 놓지 않도록 당겨 주었다.


현재 나오는 소설을 읽는 것도 벅차지만 지난 시절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강해진다. 서글프면서 즐거운 독서가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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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33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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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서문에서 작가는 야외에서 마시는 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벚꽃이 피는 시절이나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나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근사하지만 술을 마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여러 요건들에 대해 불평하듯이. 상상만 해서 그런가 내 기분으로는 멋있기만 한데 실제로 그런 조건에서 마시자면 불편하기는 할 것 같다. 벌레가 날아다닌다든가 너무 덥다든가 너무 춥다든가. 그러고 보면 술을 마시기에 가장 좋은 조건은 내 몸의 상태에 달려 있다고 해야겠다. 건강해야 술맛도 좋다면서.

되풀이되는 에피소드들 중에서 신기한 것들도 있다. 술꾼들은 정말 이렇게 해서 술을 마신다고? 고추를 종류별로 튀겨서 안주로 먹는다는 내용,  오징어에 술을 담아 마시면서 마지막에는 오징어까지 안주로 먹는다는 내용, 무라카미 하루키를 예로 든 감씨 과자 에피소드 등. 술이라는 게 어떤 안주와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큰가 보다. 그럴 테지, 그런가 보다 여기며 이번 호도 넘긴다. 

바다가 갑자기 걱정된다. 바다에서 나오는 생산물로 안주를 삼는 내용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묵. 안주로서가 아니라 음식의 한 종류로서의 어묵.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지만, 안 먹을 수도 없고, 먹을 때마다 걱정하는 것도 한심하게 여겨지고. 모른 척 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일까. (y에서 옮김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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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 홀로 먼 길을 가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함민복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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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는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지만, 내가 장차 살 곳도 아니지만, 있는 곳에서 마음 풍요롭게 살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 괜히 사는 일에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당신이 그곳에서 잘 살고 있다니 좋군요, 저도 이곳에서 잘 살고 있을게요, 라며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내가 사는 이유 한 가지가 된다. 


이 시인의 시와 산문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작가의 책을 사서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몹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또한 경계다. 이 시인의 글을 통해 알게 된 '경계'라는 낱말, 덕분에 자주 쓰고 있다. 온통 은혜만 입고 있다. 


강화도에 살면서 물고기도 잡고 농사도 짓는 시인, 충주시 노은면이 고향이라는 시인, 문학상을 받고서 상품으로 쌀을 받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 시인, 시 한 편의 값과 시집 한 권의 값에 고마움을 드러내는 시인. 돈과 밥과 시의 가치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또 더듬어 헤아려보았다. 나는 스스로 우쭐해서 건방을 떨었던 적은 없었는지, 그래서 혹시 누군가를 업신여기지는 않았는지.  


나는 사서 읽지 않았으나 책과 시와 자연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생각이 났다. 선물을 해야겠다. (y에서 옮김20221118)

하늘에 떠 있는 빛의 섬, 수평이 아닌 수직 성향의 섬, 태양. 빛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뭍인 태양. 태양이 살구나무 이파리들을 다시 푸르게 펼쳐놓았습니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와 나무 속으로 들어간 빛들이 태양을 그리워하며 하늘 쪽으로 가지를 뻗어 올립니다. 나무들의 모양, 꽃들의 빛깔들이 다른 것은 태양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살구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풋살구가 살구나무 가지 쪽으로 튀어 오르고 침묵 위에 떠 있던 말들이 침묵 속으로 다시 녹아드는 것도 그리움의 한 표현 방식일 것입니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다 섬이며 섬엔 그리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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