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시들 세트 - 전2권 위대한 도시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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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읽을 때 특히 많이 드는 생각인데, 나는 참 상상력이 없다. 보이지 않는 것, 세상에 없는 것,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 알지 못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 꿈꿔 보는 것 등등에 대해서. 그러니 SF소설이나 판타지 문학으로 들어서는 데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한다.(반면에 나의 현실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추측과 관련되는 상상은 오히려 넘칠 정도로 많이 한다. 그래서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인데. 소설이나 영화를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이롭지 못했다고 여긴다.) 

사람은 어디까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보면서 떠올린 물음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트랜스포머가 제일 먼저 생각났고, 이것저것 사람이 다른 존재로 바뀌는 이야기들이 살아났다. 도시가 사람이라니, 도시의 일부가 사람이라니, 도시를 사람으로 만들어 내다니, 이런 방식으로라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이 되고 싶을까...... 상상이 시작되는 지점이겠으나 나는 나아가지 못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소재로 배경으로 주제로 삼은 소설. 작가가 뉴욕을 아주아주 좋아하고 고마워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야만 이런 소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지 않는 대상을 두고 이렇게나 절절할 수는 없을 테니. 덕분에 나는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도시 뉴욕, 가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도시 뉴욕을 새롭게 찾아보았다. 뉴욕 주와 뉴욕 시는 다른 범위로 뉴욕 주 안에 뉴욕 시가 있고 뉴욕 시에는 5개의 구가 있다는 것. 바로 이 5개의 구가 이 소설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도시가 곧 인물이니 도시의 모습에 따라 인물의 성격도 달라진다. 저절로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의 상상을 해 본다. 땅과 도로와 집들, 들판과 강과 다리와 숲들. 무엇보다 사람들. 뉴욕에서는 특히 사람들이 중요해진다. 워낙 여러 인종,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으니까. 이들 사이의 관계, 원만하거나 갈등에 놓여 있거나 배척하거나 고립되는 이들. 또 차별받는 이들. 작가는 절묘하게 도시의 특성 안에 사람들의 관계를 녹여 놓았다. 사람 때문에 꿈틀거리고 터지고 주저앉는 도시의 모습이라니.  

나는 SF소설이 현재 맞이하고 있는 현실을 (일부든 전체든) 부정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에서 나온 장르라고 여긴다. 그리고 저마다 맞이하고 싶은 세상을 그려 내는 데에 작가의 개성이 담겨 있다고 본다. 이 작가는 바람직한 공간을 꿈꾸는 사람이다. 앞에 읽은 소설에서도 이 소설에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니까, 살아야 하는 곳이고 지켜 나가야 하는 곳이니까, 이런 점에서 나는 작가의 취향과 선택에 아주 공감이 된다.

뉴욕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떤 상상은 개인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고 믿으니까. (y에서 옮김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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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21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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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천천히 넘기게 되는 만화책. 술을 마시는 내용도 그럴 듯하지만 그림이, 특히 배경이 눈에 잘 들어온다. 이렇게 섬세하고 성의 있게 그리고 있었구나. 예전에 볼 때는 미처 몰랐다. 그저 먹고 마시는 쪽에만 한눈을 팔았는데, 그래서 각 에피소드가 비교적 짧다고 느꼈는데, 이제야 알게 된다. 얼마나 공을 들여서 그렸는지를. 새롭게 본다는 것,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렇게 또 깨닫는다.

내용은 앞서 나온 책들과 큰 차이가 없고, 맛있는 안주와 그에 어울리는 술을 퇴근 후 혼자서도 멋지게 마시고 있다. 정녕 따라 하고 싶을 만큼 근사하게, 이런 술집이라면 술을 못 마시더라도 한번씩 방문해 보고 싶어질 만큼 궁금하게. 

이번 호에 작가는 아베 야로 작가의 심야식당에 방문한다는 내용의 에피소드를 실어 놓았다. 책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눈 기록도 담겨 있다. 두 만화를 다 좋아하는 내게는 퍽 인상 깊은 선물이 된다. 좋아하는 한 가지에 오래 빠져들어 사는 삶, 이 정도라면 축복의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y에서 옮김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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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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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사는 내용이 풍성해진다고 했다. 부러울 만한 일이다. 책 제목에 끌려 골라본 책인데 글의 내용과는 살짝 거리가 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잔뜩 나열해 놓을 줄 알았던 내 기대와 달랐던 탓이다. 대신 좋아하는 것들을 향한 작가의 본성이라고나 할까, 마음이 끌리는 것들을 향한 애정을 담아 놓은 글들이었다. 그 중에 특히 쓰기와 읽기에 대하여. 소설가라고 하니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고.


에세이는 1인칭 독백의 글이라는 정의가 새삼 생각난다. 허구로 쓰는 에세이도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는 예외로 두고. 내 이야기를 내가 하는 일이다, 에세이를 쓰고 발표하는 과정은. 표현의 본능을 넘어서 자기 확신과 자기 자랑과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까지 에세이에는 다 드러난다. 당연하게도 쓰는 사람은 이것을 위해 에세이를 쓰는 것일 테고 읽는 쪽은 그런 것들을 알아주기 위해 읽는 셈이니 서로서로 챙겨 주는 장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읽을 에세이가 많아졌다. 쓰는 사람이 많아지니 읽는 쪽에서도 취향이 생긴다. 가리게 된다. 읽을 만한 글,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글, 더 읽고 싶은 글로. 이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어서 이에 대해 할 말이 없는데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약간 짐작할 수 있다. 읽어 볼까, 어쩔까 망설여지는 경계선 위, 이 책에 대한 내 취향과 딱 일치한다.  


작가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 소설가가 되고 난 후에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글들이었다. 작가처럼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싶기도 하는 모양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든 제 삶의 축복이든 불행이든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어 위로도 공감도 받고 싶은 마음으로. 직접적인 에세이로든 그보다는 간접적인 시나 소설로든. 글이라는 게 본래 자기 자랑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수단이니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리뷰에도 나의 욕망이 담겨 있는 것이고. 


글을 쓰며 사는 사람의 일상과 덕질을 들여다보면서 작가보다는 읽는 나를 더 탐구했던 것 같다. 여러 모로 좀 많이 위축되었는데 이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도로 신기하다. 결과적으로 괜찮은 독서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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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20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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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술을 마시는 대신에 술을 마시는 와카코와 함께 하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앞으로도 길었으면 좋겠고, 이미 함께 한 시간을 다시 만들고 싶기도 해서 나란히 세워 놓은 이 만화책들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기 그지없다. 

말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이 푸근하다. 작가가 정성을 다해 그린 가게 그림들이 이제서야 조금씩 보이는 게 새삼 아쉽지만 언제든 펼쳐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하다. 저금통장 같다. 

표지에 등장하는 안주들의 그림은 참으로 화려하다. 단색인데도 나는 칼라 그림으로 읽고 심지어는 부글부글 이글이글 열기까지 느낀다. 술잔을 들고 있는 와카코의 만족스러운 표정에 저절로 미소가 생긴다. 이만큼의 행복이라면, 이만큼만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이만큼의 바람을 따르다 보면 이만큼이라는 게 결코 쉬운 수준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내 입맛은 쓴 여운에 빠진다. 술맛이 그리워지면서.

초콜렛 튀김을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는 에피소드가 독특했다. 요리 재료로 희한한 것이 적지 않겠지만 상상력과 호기심의 경지는 놀랍다. 딱히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   (y에서 옮김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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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공간 일기 - 일상을 영감으로 바꾸는 인생 공간
조성익 지음 / 북스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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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공간이라는 영역도 결국 각자의 삶과 가치관이 지닌 그릇대로 차지하게 된다. 누가 나를 위해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고 선택하여 누리는 모든 시간 안에 있는 곳. 집이든 길이든 예술이든 휴식이든.

일기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대상을 무엇으로 두든 자신의 관심사를 투영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작가에게는 건축이자 공간일 것이고 독자인 우리는 또 각자의 무언가로 가늠하겠지. 나에게는, 무엇일까? 책일까, 글쓰기일까? 평범한 일기 대신 리뷰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여길 수도 있고, 또 아니어도 상관없고. 내 삶의 공간에는 이제 더 이상 억지로 무언가를 채울 생각이 없으므로.

건축가인 작가는 우리나라 바깥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공간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우리나라 안의 공간을 같이 소개하고 있다. 글을 읽는 초반에는 이런 좋은 곳이 있다니 가 보고 싶군, 했다가 곧 그만두었다. 그 공간 안에 들어앉아 있어도 나는 작가처럼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좋고 그럴 듯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찾아낸 공간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의 말에 속지 않을 만큼 나는 현명해졌다.

나만의 공간을 찾는 방법, 나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머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게 좋았다. 이 방법을 아는 과정은 나를 탐구하는 과정과 같고 책은 내가 나를 만나는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남들에게 좋은 공간이 내게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 대상이 무엇이든 이 점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책 뒷부분에 그려 놓은 작가의 바람이 내 마음 안에도 고스란히 자리잡힌다. 이런 곳이 있을까? 이렇게 마련할 수 있을까? 이 중에 몇 가지만 있어도 괜찮겠지? 어쩌면 단 하나만 가져도 괜찮은 건 아닐까? 이토록 험하고 하찮은 세상살이에 단 하나만 제대로 누릴 수 있어도.  (y에서 옮김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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