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사나이 할리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나중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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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스웨이트라는 노신사가 화자다. 외모 면에서 대단하게 그려져 있지 않은 이 노신사,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을 해야 하나 어쩌나 할 때 이 신사 앞에 신비한 사나이가 나타난다. 신출귀몰, 정말 어느 순간에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러면서 새터스웨이트에게 자극을 준다. 당신은 이 일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라고, 그러면 당신이 뭔가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직접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새터스웨이트는 할리퀸의 말만 듣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마주한다. 영감을 얻고 추리도 하면서 누군가의 얽힌 고리를 풀어 주곤 한다. 때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때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 억울하게 남겨 둔 수수께끼 같은 고리들을. 


이번 책은 급박한 사건이나 흥미진진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1920년대 영국 상류층에서 있었을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을 영국 너머 다른 지방까지 배경으로 삼고서 이야기로 펼쳐 내고 있다. 그때도 그런 일이, 그때는 그런 일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앞서 읽은 이 작가의 책에서 새터스웨이트라는 인물을 만난 기억이 없다. 푸아로 경감의 친구라고도 하는데, 봤던가? 돈 많은 채로 나이 들면, 그 돈을 달리 쓸 데가 없이 홀로 여유로우면, 새터스웨이트라는 이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생을 구경하는 데에 자신의 시간을 쏟게 되는 걸까? 살짝 부러워지는 시절이다. (y에서 옮김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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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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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작가의 글 -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제는 작가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 버렸을 독일,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뮌스터'. 작가는 뮌스터를 걷는다, '너' 없이. 작가의 무수한 '너'를 고국에, 혹은 고향 진주에 남겨 두고서.


하나의 도시, 하나의 마을을 자신의 생만큼이나 사랑하고 아끼고 다듬을 수 있으려면 얼마만한 시간이 필요할까. 나는 이십 여 년을 살아온 고향 도시 진주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고, 이후에 살았던 동네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도 애착을 갖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이 사랑도 능력이려나, 사랑할 줄 아는 능력과 사랑할 줄 모르는 것 사이. 


한숨을 몇 번이나 쉬면서 읽었다. 뮌스터 시내를 돌면서 독일의 역사와 유럽의 역사를 챙기고, 떠오르는 고향을 붙잡았다가 뿌리치고, 좋았거나 잔인했거나 '너'와의 기억을 더듬어 매만지는 작가의 여정에 내 발길도 낯선 곳을 헤매었다. 나는 뮌스터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건마는.


홀로 걷는 매력을 보여 주는 책이다. 홀로 걸으면 이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의 나를 확인하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추측하게 되는 시간을 만날 수밖에. 아무래도 기뻤던 기억보다는 슬펐거나 쓸쓸했거나 후회되거나 아쉬웠던 일들이 더 많이 떠오르게 될 듯하고 그때 그러했던 부족한 자신을 끝내 동정하고 마는, 이것으로 생이 끝나지 않을 것도 알고 여전히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돌아보게 되는 지난 날.


그녀의 글은 내가 청춘의 나를 기억하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y에서 옮김20150823)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따뜻하지만 나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새록새록 아프다. 그 아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도 기억의 일이다. - P86

우리는 너무 가깝다. 밥을 나누어 먹었고 같이 울었고 그런데도 헤어졌다. - P103

아무리 새 사람을 만나도 영원히 내 내면에서 걷거나 뛰거나 앉아 있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옛사람들. 선연히 저 벽돌담처럼 햇살을 받으며 내 마음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그들이 있는 어느 날. 마음의 지층 아래에서 숨쉬고 있었던 그 모든 것에게 붙일 이름이 있다면 그리움이라는 이름 말고 또 어떤 이름이 있으리. - P116

삶이라는 것은 버릇을 되풀이하며 기억을 재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뜻한’ 기억에 대한 소망은 그 안에서 부풀어오른다. 기억 앞에 ‘차갑다’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해도 지나간 것들은 아무리 지긋지긋하고 진저리가 쳐진다 해도 그리운 그 무엇을 품고 있다. 지나간 것이니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까. - P151

그리고 더는 네가 나를 기다리지 않음을 알리니. 네가 나를 기다렸던 그 자리에 존재했던 둘만의 시간도 차츰 사라지리. - P202

어떤 사랑도, 비참하게 배반된 사랑마저도 사랑이었으므로 그 사랑의 마음이 물처럼 흐르던 동안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웠고 삶은 살 만했는가. 물은 흐르고 사랑은 그 밑에 고여 흐르지 않는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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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물들 -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
허수경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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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명의 여성 시인이 쓴 사물 이야기라고 했다. 제일 앞선 이름이 '허수경'이어서 덥석 구해 읽었고, 그녀의 '손삽' 이야기는 마음에 들어 했는데 이후로는 흠, 그저 그랬다. 심심했다기보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을 받았다고나 해야 할지.

발상은 괜찮아 보였다. 자신이 가진 것 혹은 보고 있는 사물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글로 나타내는 일. 하나의 사물에 2000자 이상의 글을 쓰려면 그래도 애정이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고, 추억이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대상이면 더욱 좋을 것이고, 그 내용이 독자의 공감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을 만하면 더할 나위 없기는 한데. 이런 생각은 나 혼자 해 보는 것이었고 실려 있는 글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시인들이라 표현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사물을 두고 반복과 변주로 꾸준히 묘사해 나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 정도의 긴 호흡으로 그려낼 수 있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인가 보다. 독자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가는 작가와 독자와의 인연에 달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두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사물들, 이 사물들 하나하나에 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듯도 하다. 혹은 이야기를 건네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얼중얼.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마음이 솟으면서 흐뭇해진다. 이게 이 책을 읽은 보람이 되는 건가? (y에서 옮김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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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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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여러 모로. 얼마 전에 이 작가의 새 시집이 마음에 들어 이전 시집을 찾아보다가 내가 이 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읽은 흔적도 여러 군데 있다. 그런데 내가 쓴 리뷰가 없다. 이미 리뷰를 올린 책을, 읽은 줄 모르고 다시 읽거나 리뷰를 올리겠다고 검색했다가 내가 쓴 리뷰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나는 좀 진득하니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리고 리뷰를 쓰지 않았다고 결론을 얻었다.

아마 처음 읽었던 그때의 마음이나 이번에 읽은 이 마음이나 큰 차이가 없지 싶다. 어떤 책은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거듭 읽을 때마다 더더욱 좋아지기도 한다는데, 이 책도 내가 그런 기대를 품고 다음을 기약하며 리뷰 쓰기를 미뤄 두었던 것일 수도 있는데, 시집 속 몇몇 흔적을 보면서도 같은 기대를 해 보았는데......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보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말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무엇이 거북한지, 어느 대목에서 막히는지, 어떤 말들이 거슬리는지, 나는 왜 이 표현에 이 구절에 이 시어에 공감이 안 되고 있는지, 마침내는 이 고민을 왜 하고 있는 것인지.

해설은 허수경 시인이 썼다. 이마저도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게는 찬란한 구석이 요만큼도 없나 보다. (y에서 옮김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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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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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엄마의 딸이고 내 딸의 엄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흔하디 흔하게 있는 관계일 텐데 이게 소설이 된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하며 마음에 오래 남을 듯한 이야기로.


엄마와 딸은 어떤 정도로 가까워야 살기에 적절할까? 너무 가까워도 갈등, 너무 멀어도 갈등. 자신과 닮았다고 비난,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비난. 딸이 엄마처럼 살게 될까 봐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니면 딱 엄마처럼 살게 되도록 하려고 전전긍긍. 같아서 닮아서 엄마는 딸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식하며 일체가 되어 살려고 하고 딸은 엄마와는 전혀 다르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언제나 그러하듯 소설은 물음만 던지고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이 없으니까. 답은 각각의 엄마와 각각의 딸에게 있을 것이니까. 내가 나만의 답을 확인하듯이. 


딸 에이미와 엄마 이저벨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다니면서 참으로 긴 여행을 한 것 같다. 미국의 작은 마을, 좋지 않은 냄새가 마을 전체를 떠돌고, 게다가 여름이었다.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만으로 견디는 사람들이라니. 가난의 여러 모습은 사람들을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하였다. 마치 지난 시절의 헐벗은 나를 다시 마주하는 것처럼.  


이저벨도 에이미를 낳고 엄마로서는 처음이었을 것이고 에이미도 딸로서는 처음이었다. 둘은 같이 자라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서로가 서로를 외면했을지도. 우리 모두는 단 한 번밖에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까운 이에게든 멀리 있는 이에게든. 두 번째에는 잘할 것 같지만 그마저 그 상황은 다시 처음이 되고 말 일이니.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글은 끈질기게 읽혔다. 내 의식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당장 글로 풀어 쓸 수는 없고, 그럴 능력도 못되고, 그저 내 일상을 이어 가면서 이저벨을 불렀다가 에이미를 불렀다가 해 보게 될 것 같다. 


이 작가의 책을 세 권 더 쌓아 놓고 있다. 흐뭇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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