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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창고로 가는 길 - 박물관 기행 산문
신현림 글, 사진 / 마음산책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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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세 가지 바램. 떠나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내 이 바램 세 가지를 너무나 잘 녹여 놓은 이 책. 나는 작가를 부러워했다가 곧 시기질투하기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세상과 자연을 보는 눈, 그 마음을 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 게다가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힘까지.

어느 쪽부터 시작하더라도 상관이 없으며, 어느 박물관을 먼저 가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자유로움 속에서 마음껏 펼쳐져 있는 작가의 상상력. 언젠가부터 잊고 살아온 듯 싶은 우리의 옛 그림자와 시간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눈으로 쓰다듬는 작가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들.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읽고 또 보면서 나는 작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렇게 쉽게 내가 누려도 되는가 싶었던 것이다. 이 글들을 쓰기 위해 전국을 떠돌면서 작가는 얼마나 고생했을 것인가. 게다가 글은 또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 정신은 얼마나 건강한가. 곳곳에 배여 있는 삶에 대한 작가의 겸손하면서도 치열한 정신이 나를 내내 감동시켰다.

정말 나도 떠나고 싶다. 그리고 써 보고 싶다. 이 작가와 같은 수준의 멋있는 글을 쓰지 못한들 어떠랴. 내게 보이는 것, 내가 느끼는 것, 내가 깨달은 것들을 순서없이 마구 써내려갈 수만 있다면, 그런 여건만 마련된다면 나도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 행복한 이 작가처럼. (y에서 옮김20010523)

최근에 선물받은 책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
제목이 너무 좋다. 나는 여전히 줄을 치면서 책을 보는데 이 책에 줄친 부분이 뒤로 갈수록 줄어든 아쉬움은 있으나, 앎에 대한 열정을 부추기는 대목 하나 다시 읽는다.

나는 벌컥벌컥 술장을 비우듯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어냈고 책의 나라와 대륙을 모두 섭렵했으며, 아무리 읽어도 늘 책에 허기져 있었다. 엘리자베스시대의 극작가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러시아 소설가들, 초현실주의 시인들, 나는 두뇌에 불이라도 붙은 듯 책을 읽지 않으면 목숨이 꺼지기라도 할 듯,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한 작품은 다음 작품으로 이어졌고, 하나의 사상은 다른 사상으로 이어졌고, 세상사에 대한 생각은 다달이 바뀌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작가라면, 온통 알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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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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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탐방에 관한 글은 하루키 산문집에서 먼저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참 신선했다는 생각을 했고, 이 에피소드는 대상만 적절하게 바꾸어 나간다면 꽤 지속적인 여행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일을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가가 한 모양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공장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고단하고 지친 이미지에 대해서는 작가가 충분히 잘 말해 준다. 세련된 현대 공장의 이미지보다는 우리가 힘들었던 시절 혹은 산업혁명의 부정적인 영향을 공부할 때 얼핏 보았던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공부 못하면 공장에 가야 한다는 말을 협박처럼 들어야 했으니까.(공장은 그런 곳인 줄 알았다.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참고 참고 일해야 하는 곳.) 


지금이라고 해서 우리네 인식이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나 역시 전혀 모르고 있는 쪽이지만, 가끔 텔레비전 뉴스로 보는 자동화된 공장 라인을 보노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공장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일은 이래저래 필요할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꼭 해야 하는 일과 기계가 할 수 있는 일로 나뉘는 지점에 사람이 서 있다.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만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일 것이고. 앞으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다. 


공장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것이므로 인간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할 것이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생겼다. 무기 공장, 돈 공장 이런 곳도 구경해 봤으면 하는 것. 현실성은 없지만. 공장 입장에서는 탐방로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다. 공장의 긍정적인 면을 알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행사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장탐방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어떨지. 이렇게 주절주절 쓰고 있으니 나도 어쩐지 작가의 궁시렁거림 일부에 전염된 것 같구나.  (y에서 옮김201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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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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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줍는다. 이것저것 내게 필요한 것들을 잘 줍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주운 것들을 잘 보관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버리기도 잘한다. 필요가 없어졌을 때, 마음이 멀어졌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버려야겠다 싶을 때, 버린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시를 읽을 때는 어려움을 느꼈던 시인의 산문이 의외로 잘 읽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준이나 취향의 차이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라도 잘 읽히면 좋은 게 아닌가 싶다. 이 여행기, 모처럼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읽었다.


2005년부터 2025년 사이의 여행 기록이라고 한다. 5년씩 4부로 나누어 편집했다. 20년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작품으로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스스로에게 시달렸을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경계선이 여기에 있다. 여행을 하고 기록을 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고 짧은 기간의 여행을 책으로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20년을 가까이 두고 그냥 보고 지키고 있었을 자료라니, 들썩이는 마음이 잦았을 텐데. 


작가의 여행 기록을 따라 나는 내 여행을 떠올리는 경험을 한다. 그때 그곳에서, 내가 가 보았던 곳이든 아직 못 가 본 곳이든 작가는 작가대로 헤매고 나는 나대로 헤맨다. 꽤 근사한 기억 속 세상, 상상 속 여행이다. 


2부 예술이라는 여행(2010~2015)이 특히 좋았다. 해 보고 싶었으나 끝내 해 본 적 없는 유형의 여행이다. 앞으로도 해 보게 될 것 같지는 않고 이렇게 작가의 글을 빌어 간접 경험으로 달랜다. 예술가가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찾아가는 일, 예술가가 살아서 활동을 했던 장소를 찾아가는 일, 하다못해 그 예술가가 커피를 마셨다는 카페라도, 어느 한 곳이라도 기억할 수 있게 가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 기억으로 내 노년의 어떤 날이 반짝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4부 시라는 여행(2020~2025)은 진행형이다. 작가도 나도. 작가는 시를 쓰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고 나는 시를 읽는 여행을 계속하게 되겠지. 해로움은 없고 유익함만 있는 시 읽기, 갈증은 사라지고 충만한 느낌으로 일상을 채우는 시 읽기. 내가 시와 여행하는 길. 


흑백 사진들이 홀로 여행하는 분위기를 한껏 북돋워 준다. 시인의 숙명은 내 몫이 아니어서 작가에게 다 밀어 두고 나는 독자로서 얻을 수 있을 즐거움만 전해 받았다. 아니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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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 마스다 미리의 좌충우돌 여행기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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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에서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여행 이야기에 관심이 없노라고. 대신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열심인 편이라고. 그런 듯 고개가 끄덕여진다. 생각해 보니, 남 여행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내 여행을 위한 준비나 내 여행과의 비교를 위함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보면서도 나는 내내 나라면, 내가 여행 중이라면, 작가와는 이런 점이 비슷하고 이런 점이 다르군, 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


일본에서 이 책을 발간한 시기는 2008년이었나 보다. 그 전 4년 동안 일본의 47개 현을 한 달에 한 곳씩 찾아가 보았다고 하니 편집 쪽의 기획부터 작가의 실행력까지 대단하다고만 느껴진다. 책의 끝부분에서 이 여행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 중 잃은 게 돈이라며, 220만 엔을 썼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솔직담백함에 감탄마저 들었다. 그렇게 쓴 돈으로 만들어진 이 책, 과연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을지 궁금하다. 말해 줄리야 없겠지만. 물론 당연하게도 여행으로 얻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만족감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집밖으로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어느 곳으로든 떠나는 게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을 버티면서 지내고 있는 요즘, 이 책에서 들려 주는 여행 이야기는 상당히 부럽다. 여행이라는 게, 삶의 스타일만큼이나 제각각일 수밖에 없으니 어느 것이 더 좋고 더 나쁘다고 할 수도 없어서 그저 그런가 보다, 작가 당신은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군요, 하는 기분으로 구경을 했다.


가려는 곳을 정하는 일부터 그곳까지 가는 교통편과 가서 숙박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숙박을 한다면 어떤 곳으로 정할 것인가, 그곳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살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하다못해 현지 주민과 어떤 식으로든 말을 나누어 볼 것인가 하는 일조차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마련이니. 이런 여행을 왜 하는가 혹은 이런 여행이라도 해 보는 게 좋지 아니한가, 가벼운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은 여행 가상체험을 했던지.      


혼자 하든 여럿이 함께 하든, 나이 젊어서 하든 나이 들어서 하든, 주변의 눈치 안 받고, 감염에 대한 걱정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때가 가까운 시일 안에 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우리나라 전국의 도시든 시골이든 가 보고 싶은 곳을 점찍어 보기라도 하지.  (y에서 옮김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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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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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여행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이제야 알게 된 게 좀 많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내게 중요한 기준은 누구의 여행이냐이지 어디로 간 여행이었나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랬던가, 그래서 같은 여행지에 대한 글을 읽고도 어떤 책은 마음에 들고 어떤 책은 아니고 그랬나 보다.


9년 동안 여행 에세이를 써 왔다고, 그걸 이제야 책으로 만들었다고, 코로나 19로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 보라며 내놓은 책. 작가가 독자를 대상으로 기대했을 수준을 넘길 정도로 나는 만족했다. 내가 가 본 적 없는 뉴욕과 아헨, 단 며칠 동안이었지만 발은 디뎌 보았던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 나처럼 잠깐 스쳐 지나간 게 아니라 한 곳에서 한 달 이상씩 머물렀던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라 낯익음도 낯섦도 신기하고 흥미롭기만 했다. 아, 이렇게 공간을 바꿔 살아볼 수도 있는 것이구나.


여행이라는 게 사람마다 형편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직업도 적성도 여러 가지 사정의 여유까지도 각자 여행의 시간과 질을 결정하는 조건이 될 것이므로 어느 것이 낫다 못하다 할 수는 없겠다. 아마 작가 역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아주 알맞도록 여행을 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자신의 건강 상태까지 고려하면서. 그래서 더더욱 여행지에서의 생활이 충실해 보였을 것이고.  


소설가인 작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비롯하여 감각으로 겪는 모든 상황들을 소설의 재료로 삼기 위한 태도가 유달리 돋보였다. 이렇게 하나하나 챙겨서 소설 속에 맞춰 넣는구나. 만나는 사람, 장소, 분위기, 소품 하나하나까지. 소설을 쓰기 위한 여행, 소설을 쓰기 위한 삶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게 또 나쁘다거나 모자란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할 것도 아니라서 축복처럼 숙명처럼 여기고 받아들이며 살아도 좋을 것 같더란 말이지. 


소설만큼 넓고 풍요롭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읽는 일도 이렇게나 가슴 설레는데 쓰는 사람의 세상 만들기는 또 얼마나 근사할까. 아무쪼록 내가 좋아하는 이 작가를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소설가들이 좋은 글을 많이많이 써 주시기를.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해 줄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실 테니.(y에서 옮김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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