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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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글의 장점을 이 책에서도 본다. 길지 않은 분량이라는 것. 길다면, 그래서 한 호흡에 읽어 내지 못한다면, 부담을 많이 느낄 글이다.

다음은, 작가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일반적으로는 작가 자체보다 글의 내용에 관심이 더 많아지게 마련인데, 나는 이번에도 작가 쪽으로 더 쏠린다.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쓴 것일까, 이 글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 걸까, 나는 얼마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낸 것일까, 나에게 무얼 요구하려고 한 걸까, 이런 식의 내 추측은 적절한 걸까, 나는 왜 이 글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지 않고 있는 걸까......

제목에서처럼 관객을 모독하는 희곡을 썼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이 희곡으로 상연되는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욕설로 마무리하는 대목에 이르면 내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 테니까. 그럼에도 이 작품으로 작가는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또한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뭐지? 어디에서? 왜? 욕을 먹는 연극에 왜 호응을 하는 거지? 사람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 거지?

익숙지 않은 내용이 이어진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내용들이 리듬을 타고 이어진다. 내용을 연결시킨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반복되는 낱말들의 자연스러운 울림이 더 주목을 받을 것 같다. '듣기 좋군' 같은. 뭔가를 알아 내려고 하다가는 도리어 피곤해지겠다. 그럴 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습관처럼 파악하려는 주제 의식 때문이다. 그냥 맹하니 듣거나 읽는 것, 울리는 음의 결대로 느끼는 것, 그러다가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욕설에 깨어나는 것, 마침내 깨어난 자신을 만나는 것,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나는 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독서로든 운동으로든 어떤 체험으로든 이렇게 만나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환영하는 것 같다. 내가 몰랐던 나,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던 나, 이루고 싶은 꿈을 꾸는 나, 현실보다 용감한 나, 낯설어서 기분 좋아지게 해 주는 나 등등. 이 작가도 이런 만남을 갖게 해 주려는 것이었을까? 내가 당신을 모독해 줄 테니 모독을 받은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스스로 살펴 보시오, 같은.

글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작가로서의 사명이든 운명이든, 작가라면 하다못해 이런 리뷰를 쓰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글로 영향을 미치고 싶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거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싶거나. '관객모독'으로 작가는 어떤 힘을 끼치고 싶어 했고, 독자는 어떤 힘을 얻어야 했을까.

다 읽고도 별로 모독을 느끼지는 않았던 나, 작가의 의도를 확인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 나, 헤매는 이 과정이 또 그다지 불쾌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운 나, 좋은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작가의 글 앞에 선 나. 이 모든 망설임의 감각 끝에 작가의 글이 닿아 있다. 신기하다. (y에서 옮김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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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 희곡선 -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혜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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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상상할 때 나는 배우 중 한 사람의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부담 막강한 연출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관객 하고 싶다. 제일 앞줄에 앉아 연극을 보는 관객(실제로 연극을 볼 때도 티켓팅 시작 시간 맞춰 제일 앞줄의 표를 받는 경우가 많은 편이고). 배우들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는 것도 바로 볼 수 있는 자리, 소품 하나하나의 질감까지 느껴볼 수 있는 자리에서. 이 책도, 책 속의 두 편도 그런 상상을 하며 읽었다. 그리고 마음 착잡하다.

우울하고 화도 난다. 사람의 악한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게 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나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의지, 다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수를 해치는 결정, 용서받을 수 있을까? 누가 용서하나? 피해자는 이미 같은 세상의 사람이 아닌데. 복수는 또 뭐란 말인가? 나도 이 복수라는 감정에서는 떳떳할 게 없는 사람인데. 내가 은근하고 사소하게 얼마나 복수를 잘 하는데. 쉬이 떨쳐버리지 못하고 마음 한곳에 남겨 놓고는 끈질기게 내 감정도 상대를 향한 복수심도 얼마나 잘 간직하고 사는데. 내가 얼마나 뒤끝 작렬하게 살려 놓는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우울함은 내 본성을 확인한 것에서 비롯되었나 보다. 모른 척 하고 싶었던 내 속의 악의를 만나 버려서.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막과 막 사이 읽는 나도 쉬고 싶었다. 마음이 고단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내게 이 정도의 양심은 있었구나 싶어 다행이었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어쩌자고 하는 낭패감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지, 착하게 늙어야지 하고 교훈 같은 다짐을 해야 하나 어쩌나 하다 보니.

작가는 스위스 사람이고, 두 편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도 아마 스위스의 어느 도시라는 것일 텐데, 실제 있는 도시인지 가상의 도시인지 찾아보지는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작품 활동을 했던 작가라는 배경지식을 갖고 읽으면 그때 그들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좀더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때의 전쟁에서 한참이나 지나온 지금, 그 땅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감흥을 준다는 것에 있다. 이게 문학의 힘이기는 하겠지만 가끔은 글의 힘이 무서울 정도다. 글의 힘에 비해 인간의 깨달음은 더디고 더딜지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아무리 부조리한 상태를 보인다고 해도, 그래서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주저앉는 일만은 없어야 할 텐데. 두 손 두 발 다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독자를 이렇게 맥빠지게 만드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y에서 옮김201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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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의 삶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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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는 내 느낌이 책을 읽기 전의 내 기대와 많이 다를 때면, 리뷰를 올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리뷰와 책에 대한 안내문을 먼저 읽어 보게 된다. 내가 왜 이렇게 읽었나 하는 의문도 생기고, 뭔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닌가 의심도 생기는 탓이다. 이 책도 그 과정을 거쳤다. 바꾸어 말하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무엇보다 낯설다. 낯선 게 신선한 게 아니라 실망스러워진다. 책이 잘못된 걸까, 번역이 잘못된 걸까, 내가 잘 읽지 못한 것일까 오락가락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횟수가 너무 적다 보니 내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 가장 크겠지만, 그렇더라도 이건 좀 섭섭하다. 분량이 적은 것도 내 이해력을 탓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재미없었다. 환상의 책을 읽는 중에 분량이 적어서 후다닥 보겠다는 마음으로 잠깐 펼친 것인데, 환상의 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모르겠다. 환상의 책을 읽고 나면 이 마음이 다시 바뀌게 될지.

 

* 별 세 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혹시라도 뒤에 마음이 바뀔까 하여 남겨둔다. (y에서 옮김201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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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 茶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0
라오서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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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되고 명작이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수긍이 간다는 게 바로 이런 책을 봤을 때의 느낌이다. 아무렴, 내 생각과 판단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안심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중국,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의 긴 시간을 배경으로 총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막에 해당하는 내용의 분량이 많지 않고 전체적으로 봐도 많지 않아서 읽는 데에 드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내용이 무겁다. 무겁고 깊어서 3막을 다 읽고 나면 한 생을 다 보낸 느낌마저 갖게 된다. 그것도 한숨 가득한 고단한 생.


20세기 초라면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제국주의 침탈로 수난을 받던 시대다. 마냥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 이유다. 약한 이들을 잡아 먹는 조금 강한 이들과 조금 강한 이들을 이용해서 좀더 쉽게 약한 이들을 잡아 먹는 더 강한 이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의 이야기. 나는, 우리는, 왜 이렇게 약해서 이토록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한탄하면서도 또 꿋꿋이 살아가는 이야기. 정작 작가는 끝내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고 말았지만.     


중국에는 이런 찻집이 오래 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서양의 카페처럼 사람들에게 숨쉴 공간을 제공했던 모양인데 모르고 있었던 배경이라 읽는 내내 신선했다. 찻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사연을 볼 때는 기가 막히고 안타깝고 서럽고 울화통이 터지기도 했지만. 어떻게 사람 사는 모습들이 거기나 여기나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인지. 이래서야 인류 역사가 진화하고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고. 그래서 작품은 또 더 진한 감동을 던지면서 고전으로 남게 되는 것이겠지. 인간 본성의 보편적인 한계에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갖고 싶어하는 이들의 바람으로서. 


이 극본대로의 연극을 보고도 싶고 우리 형편에 맞게 각색된 작품으로 제작된 연극을 봤으면 싶기도 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직업에 해당하는 이름 외에 달리 고칠 대사가 없어 보일 정도다. 이 또한 바람직한 모습은 절대 아니련만. (y에서 옮김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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