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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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상상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어떤 상상은 그럴 듯하고, 어떤 상상은 얼토당토않다 싶고. 이 책은 최근 에 내가 본 영화나 다른 소설과 비교하여 그럴 듯하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 후한 점수를 매긴다. 다소 황당해도 귀여운 황당함이라고 해 두겠다. 


소설의 기본 배경이 환경을 지키겠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 점이 좋았다. 나는 비록 환경을 지키는 데 부지런한 사람이 못되고 있지만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향한 존경심은 갖고 있다. 내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니까. 지구 차원에서도 주인공 '한아'같은 사람이 많아야 하는 건데. 작가가 소설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세상도 이런 세상이 아닐까 싶었다. 지구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 우주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쓴 글.


외계인은 앞으로도 그침이 없을 소재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외계인이 온다면, 그 어떤 외계인이더라도 우리보다 발전된 존재라고 봐야 할 것이고. 우리는 아직 나서지도 못했으니까. 외계인의 지구 정복 따위 이제 설득력이 없는 소재가 된 거로 여긴다면 아예 외계인과 더불어 사는 쪽으로 상상하는 것도 그럴 듯하겠다. 이 소설처럼.   


문학 독서의 영역 한쪽을 넓히고 있는 나에게 좋은 인상으로 다가온 우리 작가다.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다. (y에서 옮김201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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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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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모르는 두 사람도 사이에 몇 명만 더 넣으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 사회 이론으로도 나와 있다. 그걸 소설로 꾸민 책이다. 재미있었다. 이렇게 연결을 시켜 놓았다니, 여러 번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단순하게 연결된 재미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도 다 다루고 있다. 어떤 인물은 피해자로, 어떤 인물은 가해자로, 나 같은 사람도 있고, 내 가족 같은 사람도 있고, 내 친구 같은 사람도 보이고, 사람 사는 곳은 다 이러하겠구나 싶은 그런 익숙한 배경으로.

 

그래도 작가가 설정한 인물 하나하나의 모습이 섬세하고 치밀하게 보인다. 그 인물의 직업이 어떠하든 그 직업에 대한 묘사가 대단하다. 이만큼 파악하려면 취재 그 이상의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인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갖지 않고서는 쉽게 발휘할 수 없을 능력으로 보였다. 그냥 알고 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닌 경지였다.

 

낯선 사람이 낯설기만 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보이는 저 모르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지, 또 내 삶과 인간관계 안에서 어느 지점에 닿은 사람일지 상상해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 더 부드러위지고 따뜻해질 수 있을까? 또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러나 아주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그건 소설에도 나온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착한 사람만, 맑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더라는 것. 무서운 사람도, 잔인한 사람도, 냉혹한 사람도, 사람 같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는 것.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남는다. 끝까지 풀지 못하는 그게 바로 인생이겠지만. (y에서 옮김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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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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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지'처럼. 이메일이 나오기 전, 핸드폰이 나오기 전. 한 마음이 다른 마음에게 가 닿기까지의 시간을 지켜 냈던 시절. 이 소설은 읽는 이를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그래서 많이, 오래 슬펐다.

와조라는 눈이 먼 늙은 개와 집을 떠나 여행자로 살고 있는 화자. 화자는 만난 사람들에게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준다. 자신이 붙인 번호로 사람을 기억하는 능력이 아주 대단해 보였는데 그 또한 삶의 한 방식이었던 것. 우리는 누구나 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여행지에서 만난, 번호를 붙인 이들에게 화자는 편지를 쓴다. 답장을 받으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면서. 답장이 오나 안 오나, 누군가 나를 불러 주나 안 부르나. 와조와 함께 하는 여행은 편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지만 안 할 수가 없다. 화자에게는 삶이 딱 이만큼의 공간만 허락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서글프네. 떠돌아야 했던 배경이, 그렇게 배경을 설정해야 했던 작가의 안간힘이.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몸과 마음에 각각 입은 상처는 어느 선에서 나누어지는 것일까. 점이나 선이 아니라 아마도 입체적 공간이겠지. 그 어딘가에 다들 어느 정도는 물린 채 살고 있는 것이겠지.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일 텐데. 나의 오만과 자만과 비겁과 허영을 먼저 헤아릴 일이다. 다른 이를 나무라거나 함부로 동정하기 전에.

이 작가의 글, 이번에도 내게 큰 감동을 준다. 기쁘다, 계속 읽을 글을 주는 것이니.  (y에서 옮김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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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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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그의 글이 좋아진다. 더 좋아질 것 같다. 그래서 좋다.

내가 어렸다면, 많이 어렸다면, 그래서 글을 잘 써 보겠다고 연습할 시간이 넉넉할 만큼 어렸다면, 어쩌면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어렸다면, 그런 때에 이 책을 보고 이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나는 그의 글을 천천히 옮겨 적었으리라. 스무 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가는 소설을 쓸 수 있을 만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을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다. 둘 중에서도 더 좋은 것은 직접 경험일 것이고, 간접 경험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접 경험은 곧 글을 쓰는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크기와 깊이를 수반해야 하는 것일 테니, 기억력보다 더 큰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나는 어느 부분 기억력보다 상상력을 더 무게 있게 여기나 보다. 은연 중에 그렇게 여겨 왔던 것도 같다.)

이 작가는 내가 생각하는 상상력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겪지도 않았을 텐데(이건 순전히 나의 짐작이지만, 실제로 겪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짐작할 것이니까) 어떻게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지. 마치 작가는 자신의 눈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풍경을 이야기로 바꾸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산을 보면 산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숲을 보면 숲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봐도 그 나무에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이 작가.

쓸쓸했고 하염없이 잠겨들었다. 이 계절에 이 글을 읽어서 좋았고, 좋은 만큼 서글펐다. 세상에는 정열적으로, 하루하루를 아낌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세상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지는 않았으나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심정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이나 책으로 마치 오늘만 살아도 좋을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를 접하다가 이 책 속의 인물들을 만나고 있자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만든다기보다는 그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아있으니 살라고 하는 것 같은 소설. 살기 힘들다고 굳이 죽어보겠다는 심정 따위는 건드리지 말고, 남보란 듯이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보람 있게 살아보라는 것도 아니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어느 한때가 그러했던 것처럼... (y에서 옮김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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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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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다: 표정이나 행동이 밝고 활기차다(표준국어대사전)

 

소설을 읽으면서 이 단어를 몇 차례 떠올렸다. 그리고 사전을 찾아 보았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느낌에 해당하는 말이 맞나 어쩌나. 어긋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럴 때 이 말을 쓰면 되겠구나.

 

이전이라면 내 취향이 아닌 소설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강의 소설이 주목을 받은 이후로 우리 소설에 대한 내 시선도 좀 열렸다고 해야겠다. 읽을 만하다 싶고, 읽어야겠다 싶고, 읽어서 좋구나 싶다. 가끔은 우리끼리, 서로서로 잘한다, 더 잘하자, 격려하고 응원해 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내 마음이 딱 그렇다.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이, 특히 한창 열심히 쓰고 있으면서도 고달픈 마음을 갖고 있을 젊은 소설가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 주고 싶다.(내가 그럴 만한 힘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거운 주제들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2010년대 우리나라의 곳곳이, 세계의 구석구석이 얼마나 황폐한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얼마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보이고 느껴졌다. 어디 투정 부릴 데도 없고, 하소연할 데도 없이 온통 울분에 차서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들, 그럼에도 아직은 터뜨리지 못하고 참아 보려고 애쓰는 안간힘들. 약간의 냉소와 비웃음과 자학과 포기로 버티고 있는, 대놓고는 못하겠고 이렇게 돌려서 말이라도 해 보았으면 하는 내 모습까지. 

  

살기 위해 저마다 해야 하는 일은 다 다를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 돈까지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건 정말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은혜는 아닌 것 같고, 좋아서 하는데도 돈이 생기지 않는 일이나 마지못해 해야만 돈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는 처지는 그저 눈물겨울 따름이다. 소설가는,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는 작가들은 무슨 숙명을 어쩌다가 받아 안은 것일까.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는 독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름도 기억하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보리라. (y에서 옮김20160613)

 

(이 리뷰는 y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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