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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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나 남한산성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아직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소설 속 시대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 글을 읽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지긋지긋하고 아프고 통탄스럽고 가여운 역사. 끝나지 않고 끝낼 수 없고 끝내서는 안 되는 역사. 그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면서 이게 사는 건지 자각도 못하고 그저 목숨 붙어 있는 동안 살려고 애썼던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이야기.

 

작가의 문체는 여전히 짧고 굵고 강렬하고 명쾌했다. 그래서 더 읽는 가슴을 찔렀는지도 모르고. 괜히 빙 돌려서 말하는 법 없이, 대놓고 간결하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서술. 서늘하다 못해 이제는 피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왜 나는 작가의 말을 칼날로 화살로 받아들이면서 읽었던 것인지. 더 못 읽겠는데 주저하면서 끝까지 읽어야 했던 소설이었다. 

 

다 아는 내용이다. 모르는 배경은 없다. 6.25 전쟁이 그렇고, 전쟁 이후가 그렇고, 전쟁 안에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이미 너무 많이 보고 배웠다. 전쟁 중에는 죽는 사람도 살아남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역사상 전쟁이라는 게 우리 시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없었으면 싶은 게 전쟁이다. 인간을, 인간의 삶을, 인간의 목숨을 너무 하찮게 만들어 버린다.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을 텐데.

 

작가는 꼭 써야 했던 소설이라고 했다. 독자는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일 것이다. 읽었으나, 참 읽기 싫었다. (y에서 옮김2017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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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끝이 아니야 - 2018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중단편선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중단편선
고호관 외 지음 / 아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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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의 작가. 알고 있는 이름은 곽재식뿐이었다. 아마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은 적도 있을 것인데 기억을 못하는 것일 테고. 이렇게 여러 작가의 글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을 읽는 것은 행여 새 이름을 얻을까 하는 건데 새로 새긴 이름이 없어 많이 섭섭하다.

 

SF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것을 구별하는 일에 관심도 없고 노력을 기울일 생각도 없다. 그저 읽고 있는 내 마음에 집중할 뿐인데 SF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내 취향과 아닌 쪽이 있다. 일단 잔인한 장면을 묘사해 놓은 글은 건 딱 싫다. 기분이 엄청 나빠지기 때문이다. 상상으로도 하고 싶지 않다. 괴기스러운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신비한 것에는 요즘 마음의 문을 여는 편이지만 음침하고 불량스러운 인물이나 분위기는 굳이 글로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과학 쪽 SF가 좋다. 여기서도 선과 악의 구도가 있고 악의 음모를 부수거나 물리치는 사건들을 다루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런 쪽보다는 과학이나 우주 자체의 신비한 세계로 이끌어 주는 글이 좋다. 막연히 먼 별나라 이야기인 듯해도 작가의 역량에 따라 지구 안에서의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연결해 놓은 좋은 글을 이미 읽어 봤으니까.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 책의 작가들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신인들의 작품집을 반갑게 맞이한다.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일이니까. 출판사가 넉넉한 후원을 받아서 이런 일에 더 참여해 주었으면, 셀 수도 없이 쓰지도 못할 정도로 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도 좀 해 주었으면. 이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본다. 자주 꾸는 헛된 꿈처럼. (y에서 옮김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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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곽재식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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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 학창시절에 유행하기도 했는데. 어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우리가 지루해하면 무서운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꿔 주시기도 했는데.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쪽이라 곽재식 작가의 책이라도 굳이 읽으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그만 읽고 말았네. 그리고는 은근히 무서움을 느끼고 말았네.  


소설은 특이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라는 형태로 사건을 일으키고, 풀이라는 형태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해설이라는 형태로 보완해 준다. 주제뿐 아니라 형식부터 작가가 의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이런 과정으로 쓰기도 하는구나 독자로서는 좀 신선한 기분을 맛보기도 하고. 책 마지막에 적힌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무서운가? 얼마나 무서운가? 처음에는 무섭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뭘 무서운 이야기라고? 그러다가 서서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느낌은 뚜렷하지 않았다. 무서운 듯 아닌 듯, 볼만 한 듯 보기 두려운 듯, 문제에서 풀이까지 무서움과 무섭지 않음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이야기는 흘러갔다. 그러면서 하나씩 확인하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큰 줄거리보다 소소한 소재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청년 실업문제라든가 약물중독이라든가 가짜뉴스라든가 왕따라든가 친일청산이라든가...... 이 작가 묘하게도 소설 속에 참 잘 끼워 넣고 있구나 싶었다. 의도하고 계획한 구성이었을 텐데 나에게는 제대로 효과를 낸 셈이다.


특히 나는 말의 무서움에 주목했다. 말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전하는 것도 무섭고 전해지면서 바뀌고 뒤틀리는 것도 무섭고, 그 말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는 것도 무섭고, 결국에는 말 때문에 다치고 죽는 것도 무섭고. 말은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안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작가는 이 책으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무서움을 퍼뜨리려고 했던 것일까. 무서운 사람.  


괜히 덧붙여 본다. 이 책을 시리지로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주인공은 그대로 두고 무서운 이야기들을 더 찾아 보는 사건을 전개하는 형식으로. 우리 사는 세상에 무서운 일이 좀 많은가. (y에서 옮김201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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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안전가옥 앤솔로지 1
김유리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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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작가들이 재미있는 기획으로 만들어 낸 책이다. 이제부터 냉면을 먹을 때마다 이 책 속의 냉면을 떠올리게 될 듯하다.

 

다섯 편, 소재는 같지만 각각의 작품들이 다른 성향을 갖고 있어 구별이 된다. 내 취향이 확실히 아닌 것은 '목련면옥'이다. SF라고 해도 굳이 읽고 싶지 않은 작품들이 있다. 

 

김유리의 작품은 SF 장르와 관계없이 읽어도 좋았을 작품이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러나 하연옥에 가서 냉면을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범유진의 글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 하나를 다룬다. 다문화. 중화냉면을 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먹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나의 이런 태도가 사람들을 대하는 편견으로 작용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dcdc의 작품은 신선했다. 남극의 얼음 아래 뭔가가 있다는 상상, 거기서 굳이 냉면을 먹겠다는 의도가. 즐겨 하는 보드게임 중에 엘드리치 호러라는 게 있는데, 이 게임의 배경 중 하나인 남극에서 '옛것'이라는 괴물이 나온다. 작가가 이 게임을 알고 있으리라는 것도 이 글에 가까워진 이유가 되었다.

 

곽재식의 글은 늘 그래왔듯이 내 취향이다. 유쾌하고 코믹하고 발랄하고 엉뚱한 상상. 그럼에도 현실의 문제를 중요한 사건으로 다룬다. 넉넉하게 풍자하면서. 다만 파인애플이 들어간 냉면을 먹고 싶지는 않다. (y에서 옮김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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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 SF/환상문학 테마 단편선 Miracle 5
이영수(듀나) 외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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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이라는 장르에 조금 더 들어가 본다. 아직 환상문학이라는 게 어떤 장르인지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몇 편 읽고 보니 어렴풋이 잡히는 가닥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니까 조금 더 알 수도 있겠지.

 

상상은 우리를 얼마만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까. 막연하기만 한 게 아니라 과학적이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상상, 그러나 현실과는 아주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허무맹랑해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아주 헛된 것은 아닐 것 같은 상상, 이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정말 이루어질 것 같은 일들의 상상.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장르의 소설들에는 이런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과학이 있고 우주가 있고 영혼이 있고 저승도 있다. 모든 것들이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면서 연결된다. 내가 내가 아닐 수도 있고, 네가 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여기였다가 우주 저 건너였다가 과거 어디였다가 꿈속이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 한다. 소설가가 만들어내는 낯설어 보이는 단어들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만한 정도의 수고를 발휘해야 읽어낼 수 있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싶으면 들어서지 못하는 장르가 되고 말 것 같다. 내가 판타지 소설에 들어서려다가 실패했던 것처럼.

 

흥미를 느낀다. 이 작품에 실린 작가들의 작품을 더 읽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장르의 소설가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곽재식 작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y에서 옮김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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