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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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다: 표정이나 행동이 밝고 활기차다(표준국어대사전)

 

소설을 읽으면서 이 단어를 몇 차례 떠올렸다. 그리고 사전을 찾아 보았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느낌에 해당하는 말이 맞나 어쩌나. 어긋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럴 때 이 말을 쓰면 되겠구나.

 

이전이라면 내 취향이 아닌 소설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강의 소설이 주목을 받은 이후로 우리 소설에 대한 내 시선도 좀 열렸다고 해야겠다. 읽을 만하다 싶고, 읽어야겠다 싶고, 읽어서 좋구나 싶다. 가끔은 우리끼리, 서로서로 잘한다, 더 잘하자, 격려하고 응원해 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내 마음이 딱 그렇다.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이, 특히 한창 열심히 쓰고 있으면서도 고달픈 마음을 갖고 있을 젊은 소설가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 주고 싶다.(내가 그럴 만한 힘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거운 주제들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2010년대 우리나라의 곳곳이, 세계의 구석구석이 얼마나 황폐한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얼마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보이고 느껴졌다. 어디 투정 부릴 데도 없고, 하소연할 데도 없이 온통 울분에 차서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들, 그럼에도 아직은 터뜨리지 못하고 참아 보려고 애쓰는 안간힘들. 약간의 냉소와 비웃음과 자학과 포기로 버티고 있는, 대놓고는 못하겠고 이렇게 돌려서 말이라도 해 보았으면 하는 내 모습까지. 

  

살기 위해 저마다 해야 하는 일은 다 다를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 돈까지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건 정말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은혜는 아닌 것 같고, 좋아서 하는데도 돈이 생기지 않는 일이나 마지못해 해야만 돈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는 처지는 그저 눈물겨울 따름이다. 소설가는,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는 작가들은 무슨 숙명을 어쩌다가 받아 안은 것일까.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는 독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름도 기억하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보리라. (y에서 옮김20160613)

 

(이 리뷰는 y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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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궤도 2 - 하얀 비행기 신의 궤도 2
배명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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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나? 나로서는 있거나 말거나이지만.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세상이라고 하니,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이고 보니, 신에 대한 상상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믿으면 믿어서 속게 되고, 속아서라도 행복해진다니 마냥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억지로라도 믿지 않아도 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내 처지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작가의 상상력이 십오만 년을 넘어서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만큼 필요했던 것이다. 지구가, 태양계가, 우주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길 정도의 시간이라면 적어도 그 정도는 있었어야 했을 것 같다는 인정. 길어야 인간 수명 100년의 시대에, 내가 죽고 나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지 관계없다고 여기는 시대에, 살아도 살아도 끝이 없는 세상을 맞이한다면 그까짓 십오만 년 정도야 상상으로나마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소설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비행기였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비행기를 데리고 우주 저 멀리로 나갔다. 태양 에너지를 받아 조종사가 없어도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기들을 데리고. 물론 무인비행기를 모두 조종하는 사람이 한 명 이상 있어야 했지만. 가축비행기라니, 초반에 의아했던 점이 읽어 나가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참 별 걸 다 기르는 종족인 셈이다. 실제로도 상상으로도.


이 소설을 쓰기까지 이렇게저렇게 모은 자료에 대해 작가가 남긴 말도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의 실패 사례가 누군가에게는 이런 방식으로도 도움이 되는구나, 어쩌면 우리 인간이 아주 머리가 나쁜 생명체로 멸망하지는 않겠구나, 떠들썩한 어리석은 사람보다 조용하면서 현명한 사람이 세상에는 조금 더 많은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소설을 통해 기대를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독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은 있는 것일까? 있어도 내가 만날 일은 없겠지?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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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궤도 1 - 빨간 비행기 신의 궤도 1
배명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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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중 첫째 권을 읽었다. 펼쳐 놓은 상태로 잠시 끝난 책. 작가가 독자에게 던진 물음들을 내 방식으로 정리한다. 답은 내가 찾아내야 할 테고.


신은 뭐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 증명할 수 없어서 답을 만들 수가 없다는데. 그렇다면 신은 왜 필요하지? 누가 신을 원하지? 거꾸로 붙잡고 들어가면 보일 듯도 한데,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신 자체에 관심이 없는 탓이다. 관심이 안 생기는 대상에는 더 이상 주목하고 싶지 않다. 낭비가 될 뿐이니까. 대신 작가의 탐색 과정에 흥미를 느낀다. 이 작가는 신을 어떻게 그려 내고 있는가.


십오만 년은 어느 만큼의 양일까. 작가는 참으로 넉넉하게도 끌어안았다. 십오만 년 후에 지구 아닌 다른 행성으로 주인공을 보내다니. 그리고 깨어나게 하다니. 비행기를 키운다는 설정은 또 얼마나 참신한지. 주인공들이 조종하는 삼엽기가 어떤 비행기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날개가 세 쌍(3단)인 비행기라는데, 그러면 오엽기, 칠엽기도 어떤 모습인지 짐작이 된다. 맞거나 안 맞거나 관계 없이. 십오만 년 후에 나니예라는 행성에서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정확하게 어떤 모습일지 만들어낸 작가는 알겠지. 


작가가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작품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을 놓쳤던 모양이다. 장편의 시작이 이런 상상이었단 말이지? 은경과 나물이 1권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있는데 2권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마무리될지 궁금해진다.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깔아 놓은 것이 재미있다. 나는 정말 유머를 좋아하나 보다.


영화와 소설 '듄'에서 본 머나먼 행성의 모습이 수시로 겹쳐 보여서 약간 성가시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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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세고 촛불 불기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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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8인이 기억하고자 하는 기념일을 소재로 엮은 소설집이다. 이 중 내게까지 인상적인 기념일로 다가온 글은 세 편. 아쉬움이 남는다. 몇 편 더 와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김화진의 '축제의 친구들'. 낯선 사람들과의 동행. 우리는 몇 살 때부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라고 해서 다 똑같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고. 내가 친구로 여기는 농도와 상대가 나를 친구로 여기는 농도가 다르다는 것도 분명하고. 연애와 우정 사이 혹은 연애와 우정의 차이? 그리고 이 모든 불분명한 과정이 삶이라는 무게로 와 내리누르는 청춘의 어깨라니. 나는 지나와서 다행이고 지나와서 섭섭하다.


윤성희의 '바다의 기분'. 바다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의자라든가, 구름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는 의자 같은 것을 갖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 글이다. 이 작가의 글을 향한 나의 호감도를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사람끼리의 관계, 사람 사이의 거리, 관심의 밀도와 오해의 착각. 조목조목 따지듯이 서술되어 있는 문장을 읽고 있으니 저절로 차분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의 양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남유하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고독사박물관이라니, 뜨끔했던 상상력을 본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죽을 수밖에 없는데, 따지고 보면 고독하지 않은 죽음은 없는 것인데, 살아 있는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으니 두려움이 크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홀로 죽으면 힘들까, 내가 죽고 나면 죽은 나를 어떻게 처리할까... 사실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항들인 것을. 자꾸자꾸 살려 내는 이 시절에 존엄한 죽음이라는 것을 내가 과연 가질 수 있게 될 것인지 헤아려 보게 한다. 


여러 사람이 참여한 소설집을 읽고 나면 오락가락 한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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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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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으로 분위기는 짐작이 되었다. 없는 것이 밤일지라도, 밤이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없는 게 있는 생은 유쾌하거나 즐거울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밤이 있어야 하고, 밤을 보내야 또 아침이 더 밝게 온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밤을 견디는 힘으로 온 나날을 버틸 수도 있으니. 


한숨을 쉬고 살펴본 소설의 수는 모두 10편. 이 중에 작품 '아무도'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과 '9'는 다른 책에서 읽었던 글이었다. 책 뒤쪽에 각 소설의 출처가 나와 있고 [소설 보다] 시리즈를 통해 작가 이름을 알고 있어서 쉽게 알아보았다. 자칫 기억의 오류 속에서 헤맬 수도 있었을 것 같았는데 안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읽은 글과 안 읽은 글이 헷갈릴 때는 좀 서글퍼진다. 더구나 이만큼이나 짙게 우울한 글에서는. 읽을수록 우울해지는 이 시절에는.

이 리뷰를 적으려고 책을 다시 펼쳐보는데, 여전히 마음이 안 좋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썼을까? 쓰는 동안에는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쓰기 전보다 쓰고 나서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의 고뇌나 불행이나 안타까운 처지 같은 것들을 마치 남의 것인 듯 표현한 후에 새삼스럽게 들여다보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 그러면 세상이 조금 더 괜찮아 보일까? 아무리 엉망진창인 세상이라고 해도.

생각해 보니 작가들이 소설 속에서 그려 내는 세상은 어지간해서는 괜찮지 않았던 듯하다. 그렇겠지, 소설은 문제적 상황을 다루는 장르이니. 그래도 이렇게 편편마다 암담해서야, 동정조차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 앞에서는 맥이 빠진다. 

'집'이 특별히 남는다. 집을 떠나 어느 먼 곳에서 마침내 마음 속 집을 구한 주인공의 딱한 이야기. 어떤 삶은 삶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내가 아주 쉽게 남의 삶을 평가했던 것 같다는 반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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