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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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고 사는 삶,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삶, 생각을 못 하고 사는 삶.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더 편할까? 더 심심할까? 생각없이 살면,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생각없이 산다는 자각조차 없이 살면, 그건 짐승이나 동물처럼 되고 만다는 말일까? 인간이기 위하여, 인간으로 산다는 자존감과 자부심을 얻기 위하여, 사는 만큼의 가치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나. 


4편의 소설, 아쉬웠다. 우리 땅이 아닌, 멀고 먼 뉴욕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사는 내용은 이곳이나 그곳이나 다르지 않고. 사는 게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여기서도 거기서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 세상을 피해 도망을 친다는 것 자체가 그저 더 깊은 어려움 속으로 파고드는 일일 뿐. 남의 생만 쉬워 보이고 내 생은 오로지 고단할 따름인가. 읽는 마음이 내내 고달팠다. 오르락내리락 모처럼 소설 속 분위기에 젖어드는 내 감성을 만날 수 있어 좋았는데. 


이 작가의 글을 오랜만에 읽어 본다. 이럴 때도 있겠지, 젊어 한때는 좋아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다시 만나 반갑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뉴욕을 며칠 동안 다녀온 듯한 피곤함까지 느껴지는 게 잘 읽은 셈이다.    


이제야 알게 된 게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지만, 여행은, 나를 만나러 가는 과정이라는 것. 목적지가 세상의 그 어느 곳이든, 궁극적으로는. 이 책으로 만난 나, 전과 달리 조금 다르게 보여서, 이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새삼 마음이 놓였다. (y에서 옮김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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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글목을 돌다 -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공지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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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로 발간되는 문학상 수상집을 읽는 재미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여야 할 것이다. 한 해를 읽는 재미. 2011년이라면 2010년도를 읽는 재미, 좀 너그럽게 봐 준다면 2008년 즈음부터 2010년도를 읽는 재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책은? 재미없었다. 재미있다는 평보다 재미없다는 평이 더 많아 기대를 하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서 안 사려고 잠시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못 읽어 낸 것을 나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한번 보기는 해야겠다, 그래서 본 건데. 


내가 찾는 2010년은 작품들 속에 없었다. 두루뭉술하게 2000년대의 몇 장면들이 보인다고는 할 수 있겠다 싶기는 했다. 그러면서 내가 혹시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정치나 경제 감각이야 원래 없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문화적 감각마저 잃어버린 상태여서 이 책으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단편소설들에서 감동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내게 그것은 참 큰 무게였는데(양귀자, 윤대녕, 이청준, 박상우, 구효서 등-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들 작품이어서 그랬을까?), 최근에 내 기억을 붙잡는 이름이 없다. 간간이 새로운 이름들을 애써 기억해 보려고 하기는 했으나 결국 놓쳐 버렸고, 이 책에서 혹시라도 한 분 그런 이름을 건질 수 있을까 찾아보려고 했지만. 


블로그 이웃(껌정드레스님)의 말처럼, 수집 차원에서 2011년도 작품집을 빠뜨릴 수 없으니까 책꽂이에 줄지어 세워둔다는 의미 그 이상 없어서 좀 그렇다. 지금 실망한 것 잊어버리고,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계절이 바뀐 후에 다시 읽으면 그때는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까? 1980년대까지의 작품집들은 아직도 그 시대를 내게 생생하게 살려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도 그렇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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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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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시작은 발랄하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살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 '예'라고 하면 고양이가 된다는 설정, 그리고 지구 인구의 5%가 고양이가 되었단다. 고양이가 되지 않은 인간들과 고양이가 된 이전의 인간들과 원래부터 고양이였던 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게 되는 세상의 이야기. 지금 우리네 현실과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여전히 좋아할 것이고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이들도 여전할 것인데.


우리집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는 언제부터 고양이였을까? 새끼 때 데려온 고양이 남매인데 소설적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잠시 의심해 본다.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아직도 인간의 의식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을까? 온전한 고양이와 인간이었던 고양이는 인간을 다르게 바라볼까? 고양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나는 더 이상 멀리 나가지 못한다. 그냥 고양이는 고양이, 나는 나일 뿐.


책은 6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고 1인 출판사 대표, 책방 주인이 된 번역가, 소설가 등이 등장한다. 연결 고리는 고양이, 화자는 바뀐다. 글을 쓰는 이는 대체로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걸까? 고양이가 작품 생산에 어떤 영감을 주기는 하나?(이런 말을 들은 것도 같고) 고양이 입장에서 보는 세상, 또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사랑이겠지, 사랑이 아닐 수 없다니까, 사람이든 고양이든 이만큼의 관심과 거리를 고민한다면 마땅히 사랑이렷다.


설정만큼 소설 속 사건들이 긴박하거나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좀 심심했다고 해야 할까? 가까운 사람이 고양이가 되었는데도 크게 놀라거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우리와 고양이의 사이가 썩 가까워진 세상이 되었나 보다. 반려가 사람보다 개나 고양이와 더 어울려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그리고 작가가 바라는 바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여겨지고. 


고양이가 글을 쓰는 이들에게 특히나 도움이 되는 존재라면, 번성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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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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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본연의 나이고 싶고, 그런데 가끔은 내가 아니고 싶고. 나는 누구일까? 내가 보는 나, 내가 원하는 나, 내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나, 나를 원망하는 나......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돌아돌아서 이 물음에 닿는다.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물어볼 엄두를 못내고.


흔하지 않은 상상, 흔할 수 없는 이야기, 신기하고도 매력적인 상상의 이야기를 읽는다. 자꾸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면, 자꾸 자신 밖의 세상을 꿈꾸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일까? 현실에는 없는, 그럼에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방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인물과 배경과 사건과 주제들. 낯설어서 풋풋하고 익숙해서 안심이 되는 장치들이다.  


얼마 전 울산의 반구대와 태화강국가정원과 간절곶에 가 보았다. '소금물 주파수'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이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의 배경으로 살아나다니. 무엇보다 울산 근처의 바다 어딘가에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를 몽이를 그려 보는 재미까지 느꼈다. 있을 거야, 분명히. 


책을 읽지 않으면 도저히 접해 볼 수 없을 세상을 구현해 주는 이 작가의 솜씨에 고마움을 느낀다. 고달픈 현실이 SF 소설의 소재로 쓰이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하는 주제의 근거가 되는 것을 볼 때마다 입맛이, 글맛이 쓰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천천히 나아져 가고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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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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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작가다. 친구의 권유로 읽어 본 책인데, 이 친구의 권유는 늘 믿을만 하다는 결과를 준다. 그리고 이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친구들을 만나러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읽었다. 지루하지 않게 좋은 시간을 얻은 셈이다.)


7편의 소설. 각각의 사건보다 표현에 집중하면서 읽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저절로 집중이 되는 표현의  힘. 한 문장 한 문장에 머물렀다 떠나면서 소설을 벗어나 내 지난 날을 돌아보았다. 좀 아릿하다가 아프다가 쓸쓸해졌다. 사이사이 화도 나고 속터지는 듯한 순간들도 있었는데 그 감정들까지 서서히 품어 안아들이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이미 지나온 이십대를 다시 거쳤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래서 엷어져도 여전히 아프구나.  


소설이 무엇이기에, 고작 지어낸 글일 뿐인데, 소설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굳이 불러들이는 걸까.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일상과 비슷한 사건과 비슷한 상처와 비슷한 분노와 비슷한 암담함까지. 이 소설의 이 주인공은 이렇게 했는데, 나는 그 시절 그렇게 했었지, 나는 아마도 이렇게 하게 되겠지, 이런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다 보면, 이렇게 해 주는 소설을 만나게 되면, 잘 읽었구나 싶어지는 거다.   


도덕적 연대감, 세월호와 연관된 온갖 책임의식은 이 시대를 오래 붙잡고 있을 화두로 남을 것이다. 우리 삶은 여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이어져 있을 것이며, 두고두고 아프게 살아남아 각성시킬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글로,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노래로, 이야기로, 영화로 드라마로, 또 교육으로.


사는 건 쉽고 선명할 수가 없는 일인가 보다. (y에서 옮김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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