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안에 담은 것들 - 걷다 떠오르다 새기다
이원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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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산책'. 새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뜻을 찾아본다.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로 나온다. 그렇구나, 소풍(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과는 아주 조금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두 낱말 다 한자말이고 순우리말로는 적당한 낱말을 찾지 못했다. 이것도 우리의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우리 조상들이 산책이나 소풍을 딱히 하지 않았던 듯한, 그래서 필요가 없었던 듯한.(굳이 더 자세히 알아볼 사항은 아니고) 


산책, 좋아한다.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이래저래 산책이라는 것을 할 때마다 생각했던 건데, 산책을 하고 있는 내가, 내 처지가 퍽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지곤 했다. 사느라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건강이 나빠서, 이것마저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하는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막막하고 먹먹하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 산책만큼은 오래오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걸 남은 생의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산책을 할 수 있어야 사소한 다른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책을 비롯하여 이전에 읽은 시인들의 산문집에서 비슷하게 느낀 공통점이 있다. 시와 산문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듯한 문장들.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산문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를 느끼는 것이 이게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로 나뉘어진다는 점이다. 좋을 때는 시 구절로 이어지는 우아한 산문을 읽는 기분이 들어서 잔잔한 흔들림과 설렘을 오래 누리게 된다. 그게 아닐 때는? 실망만이 남는다. 놀림을 받은 듯한 기분마저 들어서. 


작가는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다. 산책한 곳도 대부분 서울이다. 평소 서울을 외국처럼 여기고 있던 터라 익숙한 지명이라도 한 겹만 들어가면 내게는 낯선 곳이 된다. 홍대에서도 골목길에서도 시장에서도 작가의 산책은 구체적이지 않았고 좀 몽롱했다. 이 부분은 읽는 이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요즘의 나는 골목골목을 남의 글따라 총총 걸어보고 싶은데(몸은 게으르니 마음만으로), 작가에 기대어 그걸 예상했는데, 글은 산책의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다른 시절 다른 상황에서 읽었다면 이 작가의 시집으로까지 이어졌을 산책길이 되었으련만. 


몇 장면의 일러스트레이션, 상당히 인상에 남는다. (y에서 옮김202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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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ㅣ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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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책이다. 앞서 읽으면서 반하다시피 하여 이 책을 연달아 읽게 된 것인데, 결론으로는 입맛이 아니 보는 술맛이 썼다. 앞의 책만큼 취하지 못했다. 읽는 내 탓일까, 쓴 작가 탓일까, 따져 보는 것도 딱히 의미가 없어 무료했다고 쓴다.


작가가 언급하는 술들의 이름이 영 낯설다. 술의 종류 정도만, 그것도 큰 분류로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낱낱의 이름 앞에서 주눅이 들고 말았다. 술맛 자체를 짐작할 수 없으니 읽는 느낌이 시들할 수밖에. 책에 나오는 술이든 영화에 나오는 술이든 이 또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작가의 술에 대한 애정만 인정하게 되었다. 


술은 다 같은 술이라고 여겼는데 술에도 좋은 술이 있다니, 이것도 놀랄 일이다. 맥주 한 컵에 취하는 정도인 내가 어떻게 술의 오묘한 경지를 알겠는가. 단순하게도 한 잔의 그 취한 맛이 좋아서 술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찾고 읽고 새기고는 있는데 이번에는 내 수준에서 영 멀리 높은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이럴 수도 있는 거지.


책에도 나오지만 경기장에서 술 한 잔 해 보는 일, 나의 사소한 로망 중 하나인데. 야구장도 좋고 배구장도 좋고 테니스장도 좋은데, 사는 곳이 시골이라 경기장에 갈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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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맛 2 - 오늘도 열심히 살아낸 나를 위한 만찬 ㅣ 요즘 사는 맛 2
고수리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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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를 쓴 글을 찾다가 만난 책이다. 열두 명의 작가들이 쓴 열두 가지의 맛 이야기. 눈으로 먼저 맛을 읽고 입으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 정보를 얻으려는 의도를 품고 읽었으나 앞쪽만 성공하고 뒤쪽은 성공하지 못했다. 읽는 내내 달달하고 배불렀으나 읽는 도중 단 한 가지도 먹고 싶다거나 먹겠다거나 그래서 찾아 먹은 것은 없었으니. 


그래도 재미있었다. 얼마나 괜찮았는가 하면 몇몇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해 놓았다. 대출해서 봐야지, 보면서 또 눈으로 먹어야지, 상상으로 먹으면서 행복을 느껴야지, 배부름 상태를 유지해 보아야지...... 읽고 싶은 책을 가상으로 또 현실로 쌓아두는 일 또한 얼마나 흐뭇한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가수 스탠딩 에그. 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먹으면서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하시는군요. 정겹게 듣고 있던 노래들이 더 달콤해지게 생겼다. 


책은 두 권으로 나와 있고 내가 읽은 책은 두 번째 나온 책이다. 처음에 나온 책을 볼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고 먹을까 말까 만큼이나 내게는 머뭇거리는 일이 된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의 내 삶은 점점 더 먹는 쪽으로만 치우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먹으면서 다음에 먹을 것을 고민하고, 어떻게 먹을까와 어디에서 먹을까를 궁리하고, 누구와 언제 만나 무엇을 먹을까를 의논하게 되고, 먹고 먹고 또 먹으면서 이게 사는 일의 전부가 아닌가 물으면서.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실제 먹는 일 말고 사는 일에 무엇이 더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러니 잘 먹고 잘 살자 다짐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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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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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는다. 박완서의 글이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살아서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작가는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는구나, 이후로 다시 이분의 글을 읽어도 이 마음은 여전하겠구나, 그러면서 읽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분별력과 비판력을 잃지 않으려면, 젊었을 때부터 얼마나 단단한 끈기로 생을 이어가야 할까. 잔소리쟁이 아니고, 주책없는 늙은이 말고, 실없이 간섭하지 않고, 냉정하게 굴지 않는 노인이 되고 싶다고. 작가의 글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솔직한 글이다. 가끔은 이렇게 자신에게 세상에 솔직할 수 있는 작가의 용기에 놀라곤 한다. 제 속의 어떤 면은 모자라거나 유치하거나 비겁해서 숨기고 싶게 마련인데, 작가는 그럴수록 더 노골적으로 밝혀 놓는다. 그리곤 반성하고 스스로를 나무라고 격려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그 모든 일을 혼자서, 남모르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글로 나타내고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이들어오신 것만 같다.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짧은 소설도 있고 산문도 있다. 살아 계시는 내내 글을 붙잡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또한 나이와 관계 없는 자기 단련이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세속적인 일은 그만두고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잘난 척하는 게 아닌, 삶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가족과 이웃과 자연과 세상과 소통하신 작가. 반가웠다. (y에서 옮김20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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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살다 (문고본) - 소설을 쓰기까지 먹고 듣고 읽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한 소설가의 모든 것 ㅣ 마음산 문고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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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떤 이는 소설을 쓰면서 산다. 이 일 저 일 하면서 소설까지 쓰는 이도 있겠지만 오로지 소설을 쓰는 일만을 대상으로 삼고 사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소설을 쓰기 위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이곳으로 집중시킨다. 먹고 자고 일어나서 소설을 쓰기. 이건 한편으로 행운(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이고 다른 한편으로 숙명이며 또 한편으로는 고통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작가가 이런 사람이다. 예전에 이웃 나라의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도 해 보았던 생각인데 소설만 품고 사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 궁금하다. 힘들겠지만, 힘들 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행복하고 보람차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독자로서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다. 작가가 행복한 마음으로 맺은 글을 볼 때라야 읽는 마음도 작가가 전하는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작가의 글 쓴 과정이 비록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작가로서의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인 고통이라면 그 쓴 맛조차 독자에게는 곱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 남을 테니까.   



소설가도 아니면서, 소설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면서, 소설가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을 견주고 비춰 보는 일을 한다. 내용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고 해야 하나,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사는 것이 맞겠구나, 이렇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구나, 그래서 고마워지는구나, 에 이른다. 책은, 이 산문집은 나를 이렇게 살고 싶게 하고 이렇게 의욕을 갖게 한다. 


2008년에 나온 책을 문고판으로 다시 냈다. 자그마한 크기에 도톰한 두께, 작가는 소설을 살고 있다고 하는데 소설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게 아님을, 아니, 하나라도 제대로 사는 이의 삶은 그 자체로 완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책이다. 이런 책이 있어서 다행스러운 시절이다. (y에서 옮김20220429)


‘앓고 있는 사람들’은 왜 앓고 있는가?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각하지 않은 사람은 앓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픔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그곳으로부터 조금 더 나아갔다.



앓고 있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무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 ‘앓고 있는 자’의 무력함에서 참된, 근원적인 힘이 나온다는 것을, …… - P64

책은 온 인류의 정신이 저장된 창고와 같다. 책을 뒤적이고 있으면 무언가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책들은 잠자고 있던 정신, 무뎌 있던 감각, 흐릿해 있던 열정 같은 것을 깨우고 벼리고 밝힌다. 독서가 무언가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책에든 책을 읽는 독자에게든 그 둘 다에게든 문제가 있다. 내가 읽는 책이 내 안의 무엇인가를 불러일으킬 때, 깨우고 벼리고 밝힐 때 나는 살고 싶어진다. 불러일으키는 책은 좋은 책이다. - P73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소설책을 읽지 않고, 지식이나 정보를 원하는 사람도 문학판에 머물지 않는다.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문학보다 더 유익한 것 또한 넘쳐난다. 남은(남을) 사람은 소설이나 문학에서 오락성과 실용성이 아닌, 그것만의 고유한 가치를 보았거나 보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어진 하나의 현실 세계에 만족하지 않거나 만족할 수 없거나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 P90

물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지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금방 형체를 무너뜨려버린다. 그것은 물이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 P94

다른 사람에게 부과된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너의 것을 누리고 감당하라.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말라, 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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