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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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게 있던가, 잊고 싶지 않아도 잊어버리니 그게 문제인 것이지. 한편으로는 잊지 않는다는 게 좋을 일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잊을 만하면 잊어버리는 게 서로에게 나은 것일 수도 있으니. 아무리 애틋하고 아무리 그립다고 해도. 그래서 날마다 잊고 있어서 우리는 또 낯선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 테고. 


최근에 나온 책으로 손석희 아나운서와 주고받는 대화를 유튜브로 보았다. 작가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새삼 작가의 사정이 궁금해져서 찾아낸 책이다. 더듬어 살펴보니 이 작가의 글을 내가 꽤나 읽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내게는 아직 특별한 작가가 되지 못한 듯하다. 


정작 인터뷰의 소재가 된 책도 아직 읽지 못했다. 이 책은 나온 지 좀 되었고, 작가의 옛 이야기들, 작가가 되기까지의 사정들,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작가가 된 전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작가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독자라면 벌써 읽었을 책이었겠다.


인터뷰 때 보여준 말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이 작가의 글에서 내가 놓쳤던 게 있지 않았나 싶어 실린 글들을 주의 깊게 보았다. 특별히 돋보이는 게 없었던 것을 보면 이 작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이만큼 떨어져 있는 것인가 싶어진다. 말과 글은 또 다르니까. 말할 때의 모습과 글로 보여 주는 모습은 다르게 마련이니까.(똑같은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읽어야지.


작가의 글을 따라 가면서 내 안에 있을 이름들을 불러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인 나로서는 전문가인 작가의 체험을 통해 내 체험을 환기시켜 보는 일로 일상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잊기 좋은 이름 몇몇은 영영 떠오르지 않았다. 이 역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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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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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사람, 대범한 사람. 사소한 성격, 대범한 성격. 사람의 성향을 둘 중 하나로 딱 잘라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일에 따라서 어느 쪽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가, 대체로 어떤 성향이 더 자주 나타나는가 정도로 구별할 수 있을 뿐.


나는? 나는 사소한 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쪽인가, 대범하게 일을 처리하고 넘기는 쪽인가? 사소한 일까지도 얽매인다고 여겼는데 어떤 일에서는 퍽 대범하게 넘겨 버리곤 해서 나 스스로 놀란 적도 여러 번. 그러면서도 소심하다고 착각도 많이 하고 살았는데. 결국 어느 한 쪽이 더 낫고 다른 한 쪽이 모자라는 그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성격이란 건, 성향이란 건. 그저 그러할 수밖에 없고 그러고 싶어하고 그러는 게 스스로 마음 편해서일 뿐. 


이 작가의 글이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하찮은 일에 놓여 있는 경우의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일상에서는 미처 의식하지도 못하고 넘길 자잘하고 사소한 일들, 그 일에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떠했던가 하는 되돌아봄. 그리고 그게 그 순간에는 어떤 이유로든 민망했거나 난처했거나 부끄러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그런 상황들. 그리하여 내가 그리 모자란 것도 아니고 남부끄러울 만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나대로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는 말.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마저 사랑스러운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작가처럼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는 내가 더 이상 궁색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러면 된 것이다. (y에서 옮김20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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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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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편하고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이다. 어쩌면 이 작가의 삶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보란 듯 크고 대단한 야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삶, 일상에 만족하고 일상에 충실한 삶, 먼 누군가를 애써 찾거나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소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는 평범한 행복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글이나 그림을 볼 때마다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실제로 쓰지는 않고 이렇게 리뷰로 그치고 말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 또한 괜찮은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고 싶어서.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작가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애틋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싱글인 탓에 혼자 남을 자식을 걱정하면서 점점 더 나이들어가는 부모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보는 내 마음도 저절로 애틋해진다. 내 가 더 나이 들었을 때의 내 아이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염려되기도 하고. 뭔가를 대신 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 뭔가를 더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챙겨 드려야 할 내 어머니를 떠올려 보는 마음이 글을 읽는 내내 맴돌고 있었다. 이러라고 글을 읽기는 했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글 중의 어떤 점을 내가 좋아하는 건지 잠깐 생각해 봤는데, 생각났다. 굳이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표현.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 보니 좋더라, 그러니 당신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표현이 없다는 것, 바로 그것. 좀 질렸던 모양이다. 이른바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친절해 보이는, 친절이 지나쳐 보이는 삶들이. 그냥 나, 이렇게 살아요, 이것만 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사는 게 어떨 때는 참 어렵다. (y에서 옮김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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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 - 낯선 곳에서 나 혼자 쌓아올린 괜찮은 하루하루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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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들어도 좋을 때가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좋은 마음으로 대하는 경우, 그 이야기 자체가 들어도 들어도 여전히 좋은 기분을 갖게 하는 내용을 품고 있는 경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호감을 유지하는 이유라고 마련해 본 말이다. 나는 이 작가도 좋아하고, 이 작가가 하는 말은 계속 좋게만 들린다. 이미 들었는데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싶은데도, 또 들어도, 또 읽어도. 이게 사람이 가진 매력인 것일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일 수 있을까? 


잘 읽힌다. 그래서 섭섭하다. 금방 다 읽어 버리고 말겠군. 그래서 또 천천히 읽는다. 책장을 바로 넘기지 않고 책을 덮는다. 몇 장씩 감질나게 읽는다. 그래도 좋다. 부담도 없고 무리도 안 되고. 그러면서 나 역시 매일 이곳이, 지금 살고 있는 내 처지의 모든 것이 좋아진다. 고마운 일이다. 


사소한 일과 경험들을 사소하지 않은 자신만의 역사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본다. 에세이라고 다 같은 품격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어떤 글은 지루하고 옹졸하고 유치하고 지긋지긋하기만 한데 그 정반대에 있는 담백하고 솔직하며 깔끔한 글, 그리고 인생.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 


만화도 에세이도 모자람이 없다. 넘치지 않아서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넘쳐 보이려고 애쓰는 이들의 안간힘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더 배우고 익혀야 할 자세다. (y에서 옮김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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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도 있다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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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서른여섯에서 서른일곱 살 때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놓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7년에 발간된 것인데 번역본이 이제야 나온 셈이다. 덕분에 나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상상 체험을 해 보았다. 상당히 생생하면서 좋은 기분이 든다. 내게 맞는 글, 나와 어울리는 정서, 나를 북돋우는 다짐들, 사는 맛과 읽는 맛을 고르게 느끼도록 해 준다. 


글 한 편이 두 쪽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들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데도 남는 무게감이 꽤 묵직하다. 짧은 분량이라고 해서 다 하찮은 것도 아니고 긴 글이라고 해서 다 웅장한 것도 아닐 테다. 스치듯 무심하게 건네는 듯 남기는 글들인데, 이 글 속에 담긴 생각이나 깨달음이 깊어서 다른 고상한 철학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보다 더 진지하고 명확하며 솔직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글을 읽고 있는 나 자신마저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서른여섯 살에 나는 어떠했던가. 나는 자꾸만 작가의 상황에 나를 견주어 보곤 했다. 이때의 작가는 애인과 동거를 하는 중이고 결혼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고향인 오사카를 떠나 도쿄에서 산 지 10년 쯤 되었고. 좌충우돌 시험 과정을 거쳐 직업적인 면으로는 나름 안정감도 누리고 있는 시기다. 그 때의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느라 작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살고 있던 때다. 바빴고 신체적으로 힘들었고 정신적인 여유를 누린다는 생각은 거의 못 해 본 시절이지 않았나 싶다. 신기한 건 이 작가가 그 시절에 했던 생각이나 다짐들을 나는 이제서야 해 보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빨랐던 건지 내가 늦은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마다 다르게 이런 시절을 맞이하는 건지.  


작가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어제 했던 생각이 오늘 바뀌어도, 오늘 하는 생각이 내일 바뀔지라도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대응하는 모든 순간의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서른여섯에 그러했더란 말이지. 살짝 아쉽다. 후회까지는 아니고 나도 그 비슷한 나이에 그럴 수 있었더라면 좀더 편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넘길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해서. 지금이라도 작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이렇게 좋은 걸 왜 더 일찍 얻지 못했나 싶은 아쉬움이겠다.   


그런 날이 있다. 좋은 날과 덜 좋은 날. 나쁜 날은 없는 거다. 이 생각만 잘 해도 세상 살기가 참 괜찮은 것이 아닐지. (y에서 옮김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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