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프라하, 함흥 문학동네포에지 66
이홍섭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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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개정판 시인의 말에서) 걸어보고 싶다, 걸어보리라, 멀지 않은 어느 때에. 이 시집을 열고서 처음 가진 계획이다. 어떤 시들은 이런 꿈을 갖게도 하는구나, 신기하여라, 글이 아니라 내 몸을 쓰다듬게 해 주는. 


1998년 초판, 2004년 2판, 그리고 이번에 3판으로. 출판사에서 기획한 시리즈의 한 권이란다. 절판되어 만날 수 없었던 시들을 다시 살려냈다고. 나는 이 시인의 이름을 몰랐고, 몰라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생겼고, 이 미안한 마음에 조금 더 천천히 보았고, 천천히 읽으면서 내 젊은 날을 오갔다. 이렇게 또 나를 만난다. 그리 반갑지 않으나,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는 내 어린 시절의 일기를 펼쳤을 때처럼. 좀 많이 무안하게.


시는 쉽게 읽힌다. 빙빙 꼬았다거나 낱말과 낱말 사이, 행과 행 사이에 함부로 짚어내기 힘들 정도의 비유 같은 게 별로 없다. 그럼에도 머물게 만든다. 자꾸만 멈춰서 돌려 읽게 한다. 밝은 분위기에서 흔들리는 게 아니다. 좀 서럽고, 좀 안타깝고, 좀 아프다. 돌아보는 날들이 이래서야 어디 시를 읽겠나 싶은데, 쓴 맛 아린 맛 뒤끝은 만족스럽다. 내가 메마른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얻은 듯해서.   


강릉은 알겠다. 프라하도 짐작이 간다. 카프카를 품고 있는 시인. 함흥은 어떤 마음으로 품고 있는 곳일까. 알아내지 못했다. 모른대도 괜찮은 기분이다. 나로서는 프라하든 함흥이든 나만의 강릉 같은 곳과 이어지는 곳으로 바꿔 품으면 될 테니까. 시 속 이미지는 언제나 공간마저 무한으로 확장시켜 놓곤 하니까. 


[해설]이 없어서 나는 퍽 좋았다. (y에서 옮김20230326)


-woojukaki님 고마워요-

쓰라린 불빛도
멀리서 바라보면 꽃이다 - P20

기차 바퀴처럼 따스했던 수선스러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 P28

지나간 삶이
지금 지나가는 그늘만하겠다는 생각을
어느 다 자란 느티나무 아래서 해본 적이 있다 - P33

내 나이는 아직 젊고 나는 행복에 관하여 노래하고 싶다
스쳐가는 것들은 왜 하나같이 무덤 속을 열어 보이는지
……나는 보고 싶지 않다 - P50

풍비박산의 아름다움 속에 사는
헛것인 영혼들 - P59

나에게도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한 길로 가면 그대가 아프고
다른 한 길로 가면 내 마음이 서러울까봐
갈림길 위에 서서 헤매인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길 아닌 길 없듯이
외로움 아닌 길 어디 있을까요
사랑 아닌 길 어디 있을까요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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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 서정윤의 홀로서기 그 이후
서정윤 엮음, 신철균 사진 / 이가서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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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보고, 작가가 편집한 게 아니라 작가의 새 시집인 줄만 알고, 그 옛날 '홀로서기' 시집에서 얼마나 멀리 왔나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샀는데, 펼쳐보니 아니었다. 엄연한 나의 불찰이었음에도, 기대 때문이었던지 속은 느낌이었고 섭섭해졌다. 

사랑시 모음집이다. 이미 알고 있었던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 시들마다 작가의 마음을 드러내었다. 아마 그게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 사랑시를 읽고 사랑에 대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노라는. 책의 앞부분에서는 내 마음이 머물렀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금방 시들해졌다. 마치 오래 전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떤 그때 그 기분처럼.

한 가지 확실하지 않은 게 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어느 한 부분, '사랑'이다. 내가 이 책에 실망감을 느낀 이유가 책 자체 때문인지, '사랑' 그 자체 때문인지, '사랑'에 대한 내 관심이 젊은 날의 그것에 비해 썩 물러난 탓인지, 그걸 정확히 모르겠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한데, '사랑'이 어째(특히나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 이렇게 심심하게 여겨지게 된 것인지. 그래서 그만 더 쓸쓸해진다.  (y에서 옮김20110614)

‘아픔‘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래전에 그런 고통을 지나온 사람이다.
...
참 많은 부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쯤이면 이 아픈 기억들이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반짝거릴 것이라고 믿고 싶다. - P15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 P16

이 세상에서 사랑의 위력으로 날고 있는 모래의 말들아

사랑이 깊고 깊어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 P30

사랑했던 사람이 보고 싶어질 때, 술을 한잔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들... 나는 나에게서 달아나고 싶은데 달아날 곳은 없고... 그대가 힘겨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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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시선 386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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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노래는 본원적으로 아픔을 먹고 자라는 글일까. 아프지 않는 시, 아프지 않는 노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것마저도 삶 자체가 아픔을 원천으로 삼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일까. 우리는 아프게 태어나서 아프게 살다가 아프게 사라지는 것인가 하는 말이지. 아픈 사이사이 안 아픈 순간들로 견디면서.


이 시집, 아픈 말들 투성이다. 안 아픈 행이 거의 안 보인다. 겨우 몇 줄 건진다. 아프지 않아 보이는 행의 아래 위를 덮고 읽으니 잠깐은 반짝인다. 열면 아파서 다시 주저앉는다. 반갑지 않다, 잊었던 사랑과 인연의 아픈 조각에 걸려 자꾸만 넘어지는 기분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시집. 작가는 어떤 시대의 배경에서 이 시집을 냈을까? 등단 6년 만, 2015년 4월에 출간된 책이니 먼저 2014년에 있었던 일들을 찾아보면 얼마쯤 짐작할 수 있겠구나. 곧 먹먹해진다. 반드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겠지만, 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을 그 시절의 아픔들이 시행 사이에서 되살아난다. 어떤 과거는, 어떤 역사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그때보다 더 아플지도. 이 시집 속 몇 편의 시가 2014년에 탄생했을지 나는 모른다. 몰라도 충분하고 안다고 해도 달라질 느낌은 아닐 듯하다.


시를 쓰는 이는 아팠을지라도 시를 읽는 사람은 아픔 후의 어루만짐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사라져간 모든 영혼들을 위로함으로써 위로 받고 싶은 추운 날이다.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 P9

참외를 깎는다 샛노랗게 익은 웃음을 - P28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 P38

늘 하나쯤 갖고 싶던 머플러, 너는
참 따뜻하구나 - P86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 - P106

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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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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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이라는 것을 채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접하게 되는, 어릴 때의 어떤 경험은 일생을 함께 하는 놀이가 되기도 하고 직업이 되기도 하고 꿈이 되기도 한다. 내게는 '시 쓰기'가 그런 경험 중 하나다. 돈이 들지 않는 취미이자 특기가 될 수 있었던 시 쓰기, 한때 시인이 아니었던 어린이는 없었다는 말까지 있고 보면 어려서 참 쉽고 다정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게 시이기는 했다. 그랬는데 어쩌다가 우리는 시를 읽고 시를 쓰는 마음을 놓치고 말았던 것일까. 그리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앞서 나온 작가의 시집을 읽었고, 어렴풋이 괜찮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기억이 있고(내가 쓴 리뷰를 다시 확인해 보니 망설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 시집도 읽어 나가면서 괜찮구나, 괜찮구나, 잡히는 구절도 많구나, 좋게 중얼거렸다. 다만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서 이 반가움이 줄어들더니 4부에 이르자 '흠, 내 취향과는 멀어졌는데?' 하기에 이르렀다. 그럴 수도 있지. 앞선 반가움만 해도 어디랴. 이만큼이면 만족스러운 시집인 거지.

 

나는 시인이 쓴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 몽롱한 표현이 더 좋다. 생활에 가까운 표현일수록 읽기에 쑥스럽다. 내가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어서 거북함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굳이 이 시인의 작품에서만 이런 기분을 갖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생활에서 아주 멀어진 관념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가운데쯤, 생활과 이상의 가운데쯤에서, 만남과 이별의 가운데쯤에서, 현실과 기억의 가운데쯤에서 떠돌고 있는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땅과 하늘의 가운데쯤에 있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대신이라고나 할까? 어중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어중간하니 도리어 아무것이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더 크다고 우기고 싶을 만큼.  

 

잊고 싶고 잊혀지고 싶은 계절이다. 그 대상이 특별한 몇몇이라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이제부터는 부디 나를 잊어 주기를.  (y에서 옮김20170921) 

당신은 어떤 과거를 보관하기 위해 모든 것에 옷을 입히고 싶어 하는가. 나 또한 고요한 것은 진실 이전의 일이라 믿는다. - P13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 P16

아무 데서나 황야를 생각한다 - P18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어서 퍽 안심이 됩니다 - P21

사는 것은 늘 지루한 혼잣말 - P28

잊혀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봄날 내 가슴에 처음 온 꽃잎으로 피었다가
오는 비 가는 세월에 남김없이 스러져
저물어간다는 건 - P44

아무것도 아니고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러나 그 모든 것이어서 슬펐던 날들을
기억해야지 - P47

어떤 계절에 내린 비
어떤 가을날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쯤의 일로
고요하게 지나간 날들이길 바랍니다 - P48

살아서 다시는 서로의 빈자리를 확인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서로의 부재가 위안이 되는 삶이길 바랍니다 - P49

세상에 너만 남겨져
혼자서 아프라고 햇빛 비추는 것 아니다 - P51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가득 찬 목숨 안에서 당신 하나 여의며 사는가 - P63

우리가 살아서 서로의 옛날이 되고
옛날의 사람이 되어서 결국 옛날 애인이 될 것을
그날 하루 전에만 알았던들 - P125

아주 지는 꽃
끄트머리처럼 내 그늘이 밝았다 - P127

그러니 잘 지나간 것들은 거듭 잘 지나가라
나는 이제 헛된 발자국 같은 것과 동행하지 않는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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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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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큐레이션 앱 '시요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을 빌려 읽었다. 책은 2018년에 출간되었고 나는 몰랐다. 내가 시의 세상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이것저것 다 몰랐다는 것이 무안해졌다. 아직도 한참 더, 자주, 많이, 진심을 다해서 시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사랑시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들의 출전을 보니 1987년의 작품부터 2018년 사이의 작품들이다. 기획하고 편집한 이들의 수고가 어렴풋이 잡힌다. 읽고 또 읽고 고르고 또 골랐겠지. 한 사람의 독자라도 더 이 시들을 읽어 주기를, 한 사람의 작가라도 더 독자에게 가 닿기를 비는 마음이었겠지. 내가 생각하는 의도이지만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렇게 읽으니 좋았다고, 지나가버린 나의 서툴렀던 사랑을 잠시 애도했다고, 그때도 지금도 사랑 앞에서는 딱딱한 마음이 한없이 풀어지고 있다고. 


편집에서 내 취향과 살짝 어긋났다. 나는 시마다 내 마음에 드는 시행을 찾아볼 작정을 하고 펼쳤다. 그랬는데 편집 측에서 시의 제목 아래 시 속에 있는 1~2행을 이미 뽑아 실어 놓은 것이었다. 방해가 되고 말았다. 이를 손으로 막고 시를 읽고 나의 시행을 골랐다가 편집 측과 같은 구절인 것을 계속 확인하자니 재미가 영 떨어졌다. 나는 나대로 타이핑을 하면서 좀 더 긴 시간을 머물러 있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냥 따라하는 것은 또 아니지 않겠는가.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혼나지 않는다고 하니 사랑이 힘든 이들에게 이 시집을 권하는 마음이다. 요즘에도 사랑을 하기는 하나? 이런 고리타분한 의심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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