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남자 ㅣ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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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보았다. 내 경우는 아빠보다 남편 쪽으로 적용 사항이 더 많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공유할 만한 기억이 적었던 탓도 있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뭔지 안심되셨다는 듯이 우리 곁을 떠나셨는데 내가 번 돈으로 아버지와 추억을 나눈 게 없어 이것만큼은 오래오래 섭섭하였다. 대신 작가의 아빠 자리에 자꾸만 남편이 들어와 앉는 것은 내 나이나 입장이 작가의 부모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일 테지?

 

남자라는 종과 여자라는 종을 딱 둘로 나누어 구별할 수는 없다고 해도 으레 그러려니 하는 보편적인 특성이 있는 것은 맞는 말일 것 같다. 그래도 신기하였다. 어째 일본의 아빠나 우리나라의 아빠나 비슷한 건 저렇게 비슷한가 말이다. 그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성향일 경우-권위적이거나 독단적이거나 고집불통이거나 버럭 하는 일이나-확연하게 돋보인다. 엄마나 여자에게도 분명 이러한 성향이 있을 텐데 남자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어쨌거나 끄덕이며 끄덕이면서 잘 읽었다. 새삼 남편을 돌아보는 기회도 가져 보고. 그렇다고 이해심이 확 넓어진 건 아니고, 그렇구나 싶으면서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런 건 남편 쪽에서 나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테고.

 

예전에는 이런 책을 보면 남편에게 읽히고 싶었다. 당신에게 이런 점이 있으니 한번 들여다 봤으면 좋겠노라고, 그리하여 마음이나 행동을 바꾸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하면서. 이제는 이런 일이 헛된 기대라는 것을 안다. 나 아닌 남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 꼭 바뀌어야 한다면 내가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 이미 몇 십 년을 몸에 익힌 습성은 바꾸려고 해 봐야 안 된다는 것 등등을. 가족 안에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도록 배려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 생활 못지않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런 내용의 만화가 나올 만한 시대가 되었다는 게 뜻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좋은 건 좋은 대로 그렇지 못한 건 좋지 못해 가족들이 힘들었노라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해 놓은 작가의 용기가 대단해 보인다. 정말 아무나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만 같으니. 나만 해도 내 남편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여러 가지 들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남들에게 말하기 싫더란 말이지. 마치 내 허물 같기도 하고.  

 

「엄마라는 여자」와는 아주 다른 기분으로 봤다. 묘하게도 가슴 한 구석에 걸리는 느낌이 남는다. (y에서 옮김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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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6 ㅣ 소설 보다
김채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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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세 편 모두에게 마음을 내준다. 내게는 좋은 현상이다. 어느 하나 허투루 읽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여운을 남기더라는 것, 작가의 생각을 내 방식대로 헤아려 보는 일이 뿌듯하였다는 것. 아울러 실려 있는 인터뷰는 이 시리즈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내 독서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또 적어 둔다.


세 편 중 마지막에 읽은 최예솔의 '서해에서'가 가장 강했다. 마치 가수들의 공연 프로그램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보이기 쉬웠던 것처럼. 나는 서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짧은 시간 내내 했다. 적당한 냉소와 적당한 성실과 적당한 유머와 적당한 적응력. 작가가 그려 보인 인물의 됨됨이가 내가 좋아하는 유형이라 작가의 다른 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나는 이런 사람의 말을 듣고 싶구나, 작가든 등장인물이든. 


위수정의 '귀신이 없는 집'은 소재가 낯설어서 살짝 당황했다. 소설이 아니라면 내가 들여다보기 힘든 세상의 이야기다. 인물의 취향도 인물의 선택도 인물의 바람까지도. 세상에는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 분명히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모르고 내가 못 만나고 있을 뿐. 나쁜 사람이 아니고, 모자란 사람도 아니고, 나와 같은 사람인데 일부의 성향이 나와 많이 다른 사람. 다른 장르(영화나 드라마)보다 소설로 더 익히고 싶은 세상이다.


김채원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는 살짝 무서웠다. 무서웠지만 또 그러려니 했다. 나의 편견은 참으로 겁도 많고 소심하구나, 어쩔 수 없는 한탄이다. 내 편견 또한 나의 일부이므로. 이유를 밝히고 설명을 꼭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냥 이유가 없는 채로, 이유를 모르는 채로, 세상의 일들이 흐르기도 한다. 답답한데 답답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요즘에야 조금씩 깨닫는다. 쓸데없는 오해를 줄이면 삶이 조금씩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평화롭지 않은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소설 안에서는 바람직하게 치열한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현실은 어째 부끄러움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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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방방곡곡 여행 일기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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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제각각의 취향이 있어서 이걸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오죽하면 여행 스타일이 달라서 같이 떠났다가 그것 때문에 여행 도중에 헤어지기까지 하는 일이 있겠는가. 일행과 스타일이 잘 맞으면 더없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적절할 것이고.  


여행 자체만 그럴 줄 알았는데 여행 후의 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겠다는 것을 이 책으로 새삼 알겠다. 나는 여행이 끝난 후에는 이전 여행에 대해 대체로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여행 중에는 사진도 열심히 찍고 기록도 열심히 하다가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그만 잊어버리고 마는 쪽. 그래서 여행 사진을 찾아본다거나 기록된 바를 들춰 본다거나 하는 일은 좀체로 없는데. 이 작가는 여행의 기억과 기록만으로 이렇게 책을 낸다. 이게 또 이대로 재미있고 흐뭇하다는 게 약간 놀라울 정도다.


작가의 책을 빠짐없이 구해 보는 편이라 이 책에 실린 내용들도 낯익다. 낯익어도 지루하지 않고 심드렁하게 보이지 않는 것, 작가가 표현하는 방식의 매력일 테다. 간결하고 단순하게, 그래도 순간순간 받았던 인상만큼은 뚜렷하게 드러내는 서술. 귀여운 일러스트와 애틋한 기억을 담고 있는 사진들. 나는 무엇보다도 여권에 찍히는 형태로, 입국과 출국을 나타내는 도장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다. 내게 없는 재주가 참 부러운 순간. 


오래 전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여행이 중단되었던 시절을 거슬러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다녀온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옛 사진과 기록으로 새로 떠올려 보는 여행. 막상 하지는 않겠지만 글을 읽는 동안에는 나도 이런 걸 해 보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그때도 잘 살아 있었고 지금도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안도감을 얻으면서. 이 작가가 늘 전해 주는 고마운 느낌 바로 그것대로. (y에서 옮김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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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천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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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게 주어진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에 대해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나는 만드는 쪽이라고 본다.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게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도 원래의 자신이 보고자 하는 성향이나 의욕을 갖고 있었기에 보이는 것이고 남들은 스쳐 지나갈 일에도 굳이 매달려 풀어보고자 하는 것 또한 자신의 의지에 따른 일이라고 보니까. 나는, 음, 매달리는 쪽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쪽의 성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겠구나.

 

이 소설에서는 부부 탐정이 나온다. 이제는 일에서 은퇴하여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오래된 집을 구입했는데 이 집에 비밀이 있더라는 것이지. 이 비밀을 파헤치고 해결할 것인가, 모른 척하고 살 것인가, 이 집을 버리고 다시 다른 집을 구할 것인가. 이런 세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흠, 다른 집으로 가고 만다. 그러니 내게는 탐정으로서의 자질이란 1도 없다고 봐야겠다. 그저 이렇게 다른 이의 훌륭한 솜씨나 읽으면서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사정이 쉽게 생기지는 않을 듯하다. 유럽의 시골처럼 백 년을 넘겼다는 오래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30년쯤 된 집도 부수고 다시 지으려고만 하지 오래오래 보존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집이다 싶으면 아예 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상상 속에서라도 이야기가 나올 배경은 없는 셈이다.

 

노부부의 활약은 진득하고 끈질기게 펼쳐진다. 대단히 놀라운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전쟁이라는 상황이나 전쟁 중일 경우 저마다의 신념에 따라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사회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경우 각 개인의 선택이 자신의 삶을 어떤 쪽으로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인지, 요즘처럼 온 세상이 뒤숭숭할 때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죽고 난 뒤에도 부끄러움이라는 평판이 남는다는 것을, 그게 영광이나 명예의 무게보다 더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산다면 좋겠다. 요즘 보고만 있기에도 남부끄러운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다. 삼가 조심해야지. (y에서 옮김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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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호밀 (완전판) - 주머니 속의 호밀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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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배경에 낯익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글은 지루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죽는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작가들이 요령 좋게 표현해 놓은 것인가. 한때 즐겨 보던 범죄 드라마 대신에 이 작가의 글로 시간을 즐긴다. 눈 앞에서 후다닥 지나버리는 화면보다 글자 속 느릿한 상상이 훨씬 편하고 유쾌하다. 읽는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꾹 참고 읽는다.

 

마플 양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직접적으로 범인을 잡아 내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가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한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마플 양의 힌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 알아챌 수 없지만 형사는 신통하게도 알아듣고 일을 처리해 나간다. 특히 나는 작가가 보여 주고 감추는 묘한 경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늘 뒤통수를 치고 만다. 작가의 글을 이쯤 읽었으면 눈치를 챌 만도 한데, 이제까지 딱 한번 내 추측이 맞았을 뿐, 이제는 의심하는 일 없이 그냥 읽는다. 친절하게 밝혀 줄 때까지. 

 

돈이 많은 아버지가 있다. 돈만 많을 뿐 당사자의 인간됨도 그다지 바르지 않다. 그에게는 욕심이 많거나 인성이 더럽거나 행동이 지저분한 자녀 그리고 아내가 있다. 이들은 돈많은 아버지 혹은 남편의 유산을 속으로 간절하게 바란다. 누군가 아버지 혹은 남편을 죽여 주었으면 할 정도로. 그리고 곧 죽는다. 죽을 만해서 죽고 죽일 만해서 죽이는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늘 신기할 정도다. 동정심이 생기지 않으니까.

 

단순하게 재미만 느끼다가도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의도를 만날 때면 긴장이 된다. 사람에게는 나쁜 면이 있기도 하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할 경우에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해침으로써 스스로를 망치기도 하고. 유산이라는 게 살인의 동기가 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딱한 사정일 수밖에 없다. (y에서 옮김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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