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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호밀 (완전판) - 주머니 속의 호밀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평점 :
익숙한 배경에 낯익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글은 지루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죽는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작가들이 요령 좋게 표현해 놓은 것인가. 한때 즐겨 보던 범죄 드라마 대신에 이 작가의 글로 시간을 즐긴다. 눈 앞에서 후다닥 지나버리는 화면보다 글자 속 느릿한 상상이 훨씬 편하고 유쾌하다. 읽는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꾹 참고 읽는다.
마플 양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직접적으로 범인을 잡아 내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가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한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마플 양의 힌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 알아챌 수 없지만 형사는 신통하게도 알아듣고 일을 처리해 나간다. 특히 나는 작가가 보여 주고 감추는 묘한 경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늘 뒤통수를 치고 만다. 작가의 글을 이쯤 읽었으면 눈치를 챌 만도 한데, 이제까지 딱 한번 내 추측이 맞았을 뿐, 이제는 의심하는 일 없이 그냥 읽는다. 친절하게 밝혀 줄 때까지.
돈이 많은 아버지가 있다. 돈만 많을 뿐 당사자의 인간됨도 그다지 바르지 않다. 그에게는 욕심이 많거나 인성이 더럽거나 행동이 지저분한 자녀 그리고 아내가 있다. 이들은 돈많은 아버지 혹은 남편의 유산을 속으로 간절하게 바란다. 누군가 아버지 혹은 남편을 죽여 주었으면 할 정도로. 그리고 곧 죽는다. 죽을 만해서 죽고 죽일 만해서 죽이는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늘 신기할 정도다. 동정심이 생기지 않으니까.
단순하게 재미만 느끼다가도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의도를 만날 때면 긴장이 된다. 사람에게는 나쁜 면이 있기도 하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할 경우에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해침으로써 스스로를 망치기도 하고. 유산이라는 게 살인의 동기가 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딱한 사정일 수밖에 없다. (y에서 옮김2020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