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천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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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게 주어진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에 대해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나는 만드는 쪽이라고 본다.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게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도 원래의 자신이 보고자 하는 성향이나 의욕을 갖고 있었기에 보이는 것이고 남들은 스쳐 지나갈 일에도 굳이 매달려 풀어보고자 하는 것 또한 자신의 의지에 따른 일이라고 보니까. 나는, 음, 매달리는 쪽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쪽의 성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겠구나.

 

이 소설에서는 부부 탐정이 나온다. 이제는 일에서 은퇴하여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오래된 집을 구입했는데 이 집에 비밀이 있더라는 것이지. 이 비밀을 파헤치고 해결할 것인가, 모른 척하고 살 것인가, 이 집을 버리고 다시 다른 집을 구할 것인가. 이런 세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흠, 다른 집으로 가고 만다. 그러니 내게는 탐정으로서의 자질이란 1도 없다고 봐야겠다. 그저 이렇게 다른 이의 훌륭한 솜씨나 읽으면서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사정이 쉽게 생기지는 않을 듯하다. 유럽의 시골처럼 백 년을 넘겼다는 오래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30년쯤 된 집도 부수고 다시 지으려고만 하지 오래오래 보존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집이다 싶으면 아예 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상상 속에서라도 이야기가 나올 배경은 없는 셈이다.

 

노부부의 활약은 진득하고 끈질기게 펼쳐진다. 대단히 놀라운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전쟁이라는 상황이나 전쟁 중일 경우 저마다의 신념에 따라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사회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경우 각 개인의 선택이 자신의 삶을 어떤 쪽으로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인지, 요즘처럼 온 세상이 뒤숭숭할 때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죽고 난 뒤에도 부끄러움이라는 평판이 남는다는 것을, 그게 영광이나 명예의 무게보다 더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산다면 좋겠다. 요즘 보고만 있기에도 남부끄러운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다. 삼가 조심해야지. (y에서 옮김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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