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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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을 나오는 대로 읽다 보니 작가의 삶과 생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그게 지루하지도 않고 좋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데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작가가 한결같은 사람이어서 내가 그만큼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독자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삶의 소소한 기쁨을 계속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책 제목에 느긋한 작가생활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만화 속 내용에도 느긋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꼭 그러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겠다. 어찌 우리 삶이 이처럼 느긋할 수 있겠는가. 지나와 돌아보니 여유가 생기고 호흡이 길어져서 느긋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삶의 매순간 순간마다는 치열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전공을 바꿀 때도, 일이 없을 때도, 일이 주어져도 제대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싶을 때도, 예금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도 마냥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작가가 말하는 '나'의 모습, 예쁘고 공감된다. 조급한 '나'도 나의 모습이고 느긋한 '나'도 나의 모습이고. 게으른 '나'도 부지런한 '나'도 민첩한 '나'도 둔한 '나'도 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마음에 드는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나'도. 그래서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모든 모습을 인정하는 태도.  


계속 볼 수 있기를. (y에서 옮김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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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유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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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와 있는 책은 모두 79권이다. 나는 지금 임의로 골라서 구입하고 있는 중이고, 이 책은 마지막 번호를 달고 있다. 담긴 글은 8편인데 푸아로 경감이 활약하는 6편은 비교적 길이가 긴 중편이고 마플 여사가 주인공인 뒤의 두 편은 짧은 글이다. 글의 내용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재미있고 집중되고 신기하고 대단하고. 

 

이번에는 추리소설을 읽는 내 마음이나 더듬어 보려고 한다. 왜 읽는가는 재미있어서 읽는 것이니 따로 물어 볼 일도 아니고. 언제 어떨 때 읽는가 하는 것. 내놓고 당당하게 말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좀 숨어 있고 싶을 때, 나서고 싶지 않을 때, 나서지 않으려는 내가 부끄럽고 성가셔서 그것조차 잊고 있었으면 싶을 때,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데에 꼭 내 책임의 일부가 있는 것만 같아서 그걸 피하고 싶을 때, 눈은 뜨고 있으나 뭘 굳이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여겨질 때, 내가 추리소설을 잡는구나. 그리고는 틈틈이 사 모아 두는구나. 언제든지 붙잡고 숨어들 수 있도록.

 

책을 읽는 일은, 책을 읽고 생각하는 일은, 책을 읽고 생각을 했으나 아직 행동에 옮기기 전까지의 상태에서는, 책읽기를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걸 취미라고 부르는 것일까. 하면 좋고 안 하면 안 해도 되는 정도로서의 취미. 나는 책으로 무엇을 도모하고 싶은 것일까. 책만 읽고 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여겼던 지난 어느 날의 꿈이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요즘이다. 책만 읽고 있는 것으로는 정말 행복하지 않다. 늦은 깨닮음이 아니길. (y에서 옮김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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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의 연애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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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 사람이 나와 인연이 될 사람인가 아닌가를 살피고 모색하는 과정. 그 끝에는 결혼이 있을 수도 있고 이별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별을 한 후라면 이 과정을 떳떳이 되풀이하게 될 것이고, 결혼을 했더라도 남들 알게 모르게 은근히 시도할 수도 있는 것이기는 한데. 어쩌자고 우리는 연애에 이토록 많은 관심과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서 울고 웃게 된 것일까.  


연애, 이것만큼 빈익빈부익부 현상도 없으리라. 오죽하면 연애에도 기술이라는 게 있어서 배우고 익히겠다는 사람까지 있으니. 내가 그 기술에 대해 뭐라 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몇 번의 연애 경험은 갖고 있으니 이러저러하다 정도는 풀어 놓을 수 있겠고. 그러니 이 만화 속 수짱이 연애에 대해 갖고 있는 절실함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고 한편으로는 저 부질없는 연애에 왜 저렇게 목말라 하나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 단 한번 연애를 해 보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행운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는 것. 연애의 횟수나 한 사람과의 연애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연애를 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삶의 내용인 것은 아닐까. 연애라는 게 해도 불행하고 안 해도 불행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그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이고), 오는 연애 감정을 굳이 막을 것도 없고 가는 연애 감정을 굳이 잡을 것도 없다 싶기는 하지만.  


수짱 혹은 마스다 미리가 마음에 드는 연애를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연애 후에 결혼을 하든 이별을 하든 연애를 하게 된다면 그녀의 만화가 더욱 풍성해질 것 같으니까. (y에서 옮김20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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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무도회 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유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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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단편을 16편 모아 놓았다. 오래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에 딱 좋았다. 한 편 읽고 쉬었다고 또 한 편 읽고 쉬고. 마치 범죄 수사 드라마의 한 시즌을 몰아서 보는 것처럼. 콧수염을 기른, 벨기에 출신의 경감의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했으니까.

 

작가로 보아서는 에피소드 모음 정도 될 듯하다. 기본 사건과 기본 인물을 설정해 놓고 이야기를 확산시킬 것인가 이대로 정리할 것인가. 워낙 많은 글을 쓴 작가의 작품이라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도 또 재미있다. 그리고 나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여전히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계속 이대로 감탄만 하면서 읽게 될 듯하다.

 

사건 중심으로 짤막하게 진행하다 보니 작가가 장편에서 보여 주는, 인물들의 내면을 읽는 재미는 덜하다. 특히 인간의 악한 마음에 주목하면서 읽곤 했는데 단편집에서는 푸아로가 큰 힘 들이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만족해야겠다. (y에서 옮김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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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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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늙어 본 적은 없지만 젊어 본 적은 있다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다. 그 시절이 실제로 유복했든 남루했든 적어도 다시 떠올리는 기억 안에서는 대체로 아늑하고 흐뭇하기만 한 세상일 것 같기도 한데, 정녕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생의 축복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싶다.  


이 책은 어른인 작가가 초등학생 때의 자신에게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선하고 또 애처롭다. 이렇게 이렇게 자라 이제는 어른이 된 자신에게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는 면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그때와는 달라진 좋은 것들, 또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여전히 모자란 내 모습. 사람은 변하기도 한다 싶어 들떴다가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못하는 거지 하면서 체념하게 되는 우울함까지 다 내 안의 모습이다. 


작가의 추억 속에 있는 그림책 스무 권이 함께 등장한다. 쓸쓸하게도 이 가운데 내가 알고 있는 그림책은 한 권도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그림책 교류가 없었던 것인지, 이런 그림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출판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 그림책을 제대로 못 읽었던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아무래도 마지막일 이유가 가장 클 것 같은데.) 간접적으로나마 아이가 자라면서 책으로부터 받게 되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고스란히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림이 무서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았던 책, 그 그림이 아이의 영혼 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뜻이겠지. 그로 인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받게 될 것이고. 사람을 좋아하거나 미워하거나, 어떤 동식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어떤 음식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등등. 그러고 보니 내가 고양이와 개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와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읽으면서 느꼈던 무서운 기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듯하니까.


작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기억력도 대단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선택적 기억이라고 해도 이렇게 시시콜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애써 지웠던, 나의 어린 시절 씁쓸한 몇 장면을 떠올리면서 작가가 약간 원망스럽기도 했다. 굳이 이런 기억은 살려 주지 않아도 좋을 텐데 싶어서. 어린 마음에도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나의 소행들, 그로 인한 친구와의 갈등과 다툼, 부모님께도 숨겼던 나의 어긋난 양심 몇 쪽과 헛된 욕심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오글거리기도 하고 낯뜨거워지기도 하는 보잘것없는 자만심까지. 마음도 다치고 신뢰를 잃기도 하면서 자라왔겠지, 더 이상의 실수는 하지 말고 살아가자고 다짐도 하면서.   


지난 날이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때보다는 지금이 가장 낫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점인데, 나는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만족스럽다. 예전에 나름 화려했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이 있다. 지금의 내가 초등학생 때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이후로 잘 커 왔다고, 막연히 바라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 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고작은 흔들림은 있었지만 바라던 꿈의 길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고, 어렸을 때 느꼈던 갖가지 빈곤감은 서서히 지워 나갔으며,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오늘을 낭비하는 일은 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나 역시 작가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하는 말처럼 어른이 되어 좋다고.


가볍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다 읽었다고 가볍게 치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쩌면 작가의 어린 시절을 차지한 그림책 중의 한 권처럼 내게도, 어른인 나에게, 먼훗날 나이가 더 들었을 때 떠올리게 될 책 중의 한 권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인 나에게 젊은 날의 나를 소환하는 기쁨이 되어 줄 테지. 이렇게 하여 마음 한 번 제대로 머문 책은 내내 사라지지 않게 되는 것이리라.  (y에서 옮김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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