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합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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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실성 없는 가정이지만, 그럴 듯하다. 그런데 바랄 만한 가정은 못된다. 그럴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안심되는 상황, 나는 이 기억을 갖고 새 생을 얻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 다시 짚어 보자. 지금 이 상태의 내 생은 중단되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어린이 상태라면, 의식은 지금의 나이 그대로이면서 몸만 어려진다면,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축복일까, 불행일까. 내 변화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 있어서 그로부터 위로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그 사랑에 만족할까 불만이 될까.


작가는 참 흥미롭게도 그려내고 있다. 아내가 딸의 몸으로 바뀐 상태에서, 아내도 아니고 딸도 아닌 채로 함께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몸과 마음의 갈등. 어떤 식으로도 행복한 상태는 아니지 싶다. 모험도 아니고 도전도 아니고. 무책임한 변화일 수밖에 없다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으니 상상만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겠다.


궁금함은 남는다. 딸의 몸에 깃들여 있던 아내는 결국 떠난 것일까, 떠난 척한 것일까.  (y에서 옮김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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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입 ㅣ 창비시선 245
천양희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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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이 출간된 그해에 이 책을 샀다는 메모를 본다. 내 글씨 맞다. 책장을 넘겨 보니 읽은 흔적도 보인다. 여러 곳에 밑줄도 그어져 있다. 지금 봐도 여전히 괜찮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시집의 리뷰를 왜 쓰지 않았던 걸까. 그때 바빴나? 조금 더 들여다보고 쓰려고 미뤄 두었다가 그만 잊어버렸나? 괜히 그 즈음에 내가 썼던 다른 리뷰들을 찾아 보는데 이유를 짐작할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다시 읽어 보고 마음을 흔들어 보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지금보다 15년 젊은 시인과 지금보다 15년 젊은 독자인 나를 생각해 본다. 굳이 그러지 않고도 시를 읽을 수 있겠지만, 또 굳이 그렇게 연결지어 읽어 본다. 이건 이것대로 다시 젊어지는 기분을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 

 

젊었던 그때 그었던 밑줄에, 오늘 읽으면서 그은 밑줄 더 보탠다. 그리고 천천히 타이핑을 한다. 구절 따라 내 마음도 저무는 것 같다. 내 길도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까닭도 모를 아쉬움과 아득함 때문에 가만히 손을 놓게 된다. 그리고 멍해진다. 마음이 진하게 가벼워지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얻으려고 시집을 찾곤 하는 것이라고 나는 나를 들쑤신다. 갖고 있는 시집 중에 아직 리뷰를 쓰지 않은 것들을 찾아서 새로 읽어 보리라, 이토록 스산하고 혹독한 겨울에 이런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하면서. (y에서 옮김20201221)   

11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 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 P11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P15

지나간 것은 지나가버려 아득하고 - P28

누가 나에게 사는 일 깨닫게 하려고 나쁜 일도 주는 걸까 - P29

멀리 가야

많이 본다는 ……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모든 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 P31

그때는 참 좋았지 하고 오늘을 말할 거야

그러면 오늘도 그때가 되겠지 - P37

물보다는 물 건너가는 바람을 보았기를 바란다 - P40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참으면서 사는 일이었지요

그때서야 힘든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 P48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 P56

누구도 저 길 돌아가지 못하리라 - P59

거위눈별 물기 머금으니 비 오겠다

충동벌새 꿀 머금으니 꽃가루 옮기겠다

그늘나비 그늘 머금으니 어두워지겠다

구름비나무 비구름 머금으니 장마지겠다

청미덩굴 서리 머금으니 붉은 열매 열겠다 - P64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 - P71

나무여, 나는 너무 오래

서 있다 나도 가끔

세상 주저앉고 싶은 나무이다 - P88

울면서도 떠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서워 울면서도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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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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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다, 혹은 소설을 읽는 사람마다 얻게 되는 즐거움이 다르겠는데, 이 작가의 글에서는 딱 내가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을 얻는다. 깊은 생각이나 통찰에 잠겨들지 않아도 좋을 가벼움, 시간을 잊어도 좋을 부담 없음, 적절한 궁리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읽기의 보람, 영 낯선 것도 아니고 영 익숙한 것도 아닌 적당한 거리감. 


단편소설집이다. 이 작가의 글을 많이 읽은 듯, 어떤 대목들은 겹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아서 괜찮다. 추리소설의 맛이라는 게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읽은 것 같은데도 아는 것 같은데도 또 조금은 새로운 맛, 여전히 속으면서도 안 속아 보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맞게 되는 사소하나 의외의 반전. 


내가 가진 장점 아닌 장점(미국 범죄 드라마를 몇 번이나 봤음에도 범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 기억력의 한계와 같은)에 의해 이 독서는 계속 될 것 같다. 정녕 내게는 이 일이 오락인가 보다.  (y에서 옮김20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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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너리 푸드 : 오늘도 초록 ㅣ 띵 시리즈 3
한은형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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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미있다. 아주 마음에 든다. 내게는 참으로 맛있는 책이었다. 앞서 읽었던 작가의 다른 책 '먹는 기쁨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느꼈던 호감이 절로 떠올랐다. 


음식 이야기를 해도, 요리 이야기를 해도. 특별히 맛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참 좋아한다. 이 작가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가 먹는 것에 대해 쓴 책이 몇 권 더 있다.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된다. 소설가인데 소설보다 먹는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나의 이 반응 상태는 소설을 쓰는 작가를 위해서는 마냥 좋은 게 아닌 것도 같지만.


허브를 유달리 좋아하고 하루라도 허브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허브를 이용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의 이야기다. 여러 모로 부럽기도 하고 칭송해 주고 싶어진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바람직한 식생활의 모습이라고 보이기도 해서. 무엇보다 먹는 일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내게 먹는 기쁨을 간접적으로 충분히 느끼도록 해 주어서.


띵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30권이 나와 있고 소개글을 보니 음식, 음식 재료, 먹는 일 등이 책의 소재다. 이 시리즈의 책들도 몽땅 덩달아 궁금해져서 읽겠다고 챙겨 둔다. 


이 작가는 술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술을 소재로 삼은 책도 나와 있는데 어떤 내용일지. 술과 집밥과 허브와 건강은 서로서로 어떻게 이어지려나? 나의 건강 상태는 이 작가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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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ㅣ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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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요가를 할 때마다 명상을 하는데 제대로 안 된다.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게 참으로 큰 수련을 요구하는 일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명상을 해야 할까, 과연 그런 날이 와 주기는 할까. 


작가의 삶은 특별하다. 뛰어나서 특별하다. 뛰어난 사람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난다. 게다가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삶의 자세에 대해 당부까지 해 오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맞는 말이니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 주니까.


수월하게 읽힌다. 가볍게 읽으면서 무겁게 담는다. 내가 살아온 과정과 앞으로 살아갈 자세를 헤아려 보도록 해 주는 글이다. 부담없이 권할 수도 있다. 종교의 관점과는 크게 관련짓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의 원리는 다 통한다는 것을 믿는 쪽이라서 이렇게 말하게 된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지친 마음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마저 돌아보게 한다. 내가 먼저 나를 알아차려야 할 일, 진리든 지혜든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닐 것인데. (y에서 옮김20230617) 



93-95쪽에서

인간만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다고 여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다행히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했으면 한다면 기실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지요.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단지 남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판단한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바뀐 사람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남들을 판단하고 우리 뜻대로 바꾸려 합니다. 거의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집요함으로 그 방식을 고집하지요. 마치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굳건하게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폭발하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럼 나 자신이라도 마구 괴롭힐 거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민감한 감지기가 있어서, 누군가가 자기를 경계하거나 거리끼는 마음이 있으면 금세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낌새를 감지한 사람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기분도 상합니다. 마음을 잘 열지 않게 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감지기는 누군가가 이렇게 생각할 때도 금세 감지할 수 있지요. “안녕! 널 진심으로 환영해. 넌 지금 모습 그대로 정말 사랑스러워.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난 너의 특이하고 유별나고 엉뚱한 면을 다 받아줄 거야. 독특하게 행동해도 괜찮아. 난 너를 있는 그대로 격하게 환영해. 여기 너를 위한 자리가 있어.”  


누군가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맞아준다고 상상해봅시다. 당장 자신부터 더 열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하여 모두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할 때 인생은 크게 달라집니다. 각자의 강점과 재능을 발휘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기회를 서로 상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고 느끼면, 우리 또한 남들을 더 너그럽게 대하기 쉽습니다. 주변을 더 공감하는 자세로 관찰하고 또 그들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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