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입 창비시선 245
천양희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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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이 출간된 그해에 이 책을 샀다는 메모를 본다. 내 글씨 맞다. 책장을 넘겨 보니 읽은 흔적도 보인다. 여러 곳에 밑줄도 그어져 있다. 지금 봐도 여전히 괜찮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시집의 리뷰를 왜 쓰지 않았던 걸까. 그때 바빴나? 조금 더 들여다보고 쓰려고 미뤄 두었다가 그만 잊어버렸나? 괜히 그 즈음에 내가 썼던 다른 리뷰들을 찾아 보는데 이유를 짐작할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다시 읽어 보고 마음을 흔들어 보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지금보다 15년 젊은 시인과 지금보다 15년 젊은 독자인 나를 생각해 본다. 굳이 그러지 않고도 시를 읽을 수 있겠지만, 또 굳이 그렇게 연결지어 읽어 본다. 이건 이것대로 다시 젊어지는 기분을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 

 

젊었던 그때 그었던 밑줄에, 오늘 읽으면서 그은 밑줄 더 보탠다. 그리고 천천히 타이핑을 한다. 구절 따라 내 마음도 저무는 것 같다. 내 길도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까닭도 모를 아쉬움과 아득함 때문에 가만히 손을 놓게 된다. 그리고 멍해진다. 마음이 진하게 가벼워지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얻으려고 시집을 찾곤 하는 것이라고 나는 나를 들쑤신다. 갖고 있는 시집 중에 아직 리뷰를 쓰지 않은 것들을 찾아서 새로 읽어 보리라, 이토록 스산하고 혹독한 겨울에 이런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하면서. (y에서 옮김20201221)   

11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 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 P11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P15

지나간 것은 지나가버려 아득하고 - P28

누가 나에게 사는 일 깨닫게 하려고 나쁜 일도 주는 걸까 - P29

멀리 가야

많이 본다는 ……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모든 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 P31

그때는 참 좋았지 하고 오늘을 말할 거야

그러면 오늘도 그때가 되겠지 - P37

물보다는 물 건너가는 바람을 보았기를 바란다 - P40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참으면서 사는 일이었지요

그때서야 힘든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 P48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 P56

누구도 저 길 돌아가지 못하리라 - P59

거위눈별 물기 머금으니 비 오겠다

충동벌새 꿀 머금으니 꽃가루 옮기겠다

그늘나비 그늘 머금으니 어두워지겠다

구름비나무 비구름 머금으니 장마지겠다

청미덩굴 서리 머금으니 붉은 열매 열겠다 - P64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 - P71

나무여, 나는 너무 오래

서 있다 나도 가끔

세상 주저앉고 싶은 나무이다 - P88

울면서도 떠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서워 울면서도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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