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ㅣ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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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요가를 할 때마다 명상을 하는데 제대로 안 된다.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게 참으로 큰 수련을 요구하는 일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명상을 해야 할까, 과연 그런 날이 와 주기는 할까. 


작가의 삶은 특별하다. 뛰어나서 특별하다. 뛰어난 사람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난다. 게다가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삶의 자세에 대해 당부까지 해 오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맞는 말이니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 주니까.


수월하게 읽힌다. 가볍게 읽으면서 무겁게 담는다. 내가 살아온 과정과 앞으로 살아갈 자세를 헤아려 보도록 해 주는 글이다. 부담없이 권할 수도 있다. 종교의 관점과는 크게 관련짓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의 원리는 다 통한다는 것을 믿는 쪽이라서 이렇게 말하게 된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지친 마음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마저 돌아보게 한다. 내가 먼저 나를 알아차려야 할 일, 진리든 지혜든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닐 것인데. (y에서 옮김20230617) 



93-95쪽에서

인간만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다고 여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다행히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했으면 한다면 기실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지요.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단지 남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판단한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바뀐 사람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남들을 판단하고 우리 뜻대로 바꾸려 합니다. 거의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집요함으로 그 방식을 고집하지요. 마치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굳건하게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폭발하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럼 나 자신이라도 마구 괴롭힐 거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민감한 감지기가 있어서, 누군가가 자기를 경계하거나 거리끼는 마음이 있으면 금세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낌새를 감지한 사람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기분도 상합니다. 마음을 잘 열지 않게 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감지기는 누군가가 이렇게 생각할 때도 금세 감지할 수 있지요. “안녕! 널 진심으로 환영해. 넌 지금 모습 그대로 정말 사랑스러워.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난 너의 특이하고 유별나고 엉뚱한 면을 다 받아줄 거야. 독특하게 행동해도 괜찮아. 난 너를 있는 그대로 격하게 환영해. 여기 너를 위한 자리가 있어.”  


누군가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맞아준다고 상상해봅시다. 당장 자신부터 더 열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하여 모두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할 때 인생은 크게 달라집니다. 각자의 강점과 재능을 발휘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기회를 서로 상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고 느끼면, 우리 또한 남들을 더 너그럽게 대하기 쉽습니다. 주변을 더 공감하는 자세로 관찰하고 또 그들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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