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유성의 인연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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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소설로서는 모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꽤나 두근두근한 편이었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이 아니어서 산뜻한 기분이다. 시간을 들여 빠져들고 있었던 게 서운하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살인 사건을 줄거리의 축으로 삼고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나 결과를 자세히 보다 보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생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사기를 치고 있는 삼남매를 나는 노골적으로 응원을 하고 있었으니. 


별로 어울리지 않는 교훈이기는 하지만 삼남매의 사기 행각을 보고 있자니, 사기도 제대로 치려면 상당히 전문적이어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리라 싶다. 하기야 이 세상에 공을 들이지 않고 성공을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하나라도 있겠는가마는, 또 이왕이면 사기쪽으로 들일 공을 긍정적인 쪽에 투자하는 게 나을 것임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마음 속 모순을 인정하면서, 어떤 종류의 범죄는 들키지 말았으면 싶은 내 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아마도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 정의의 그릇된 희망이리라. 소설이니까, 소설 속에서라도...... (y에서 옮김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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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한은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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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재미있었고 잘 읽혔으며 주인공 하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짓말을 이렇게나 잘하는 주인공이라니.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여고생 하석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찬양하는 태도에 대하여, 거짓말을 구사하는 능력에 대하여, 거짓말에 우호적인 가치를 두는 편견에 대하여.


    문체는 시원시원하고 경쾌하고 무지막지했다. 읽고 있는 내 마음이 쏠렸다가 튕겼다가 하였는데 이게 좀 헷갈렸다.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면서 읽고 있는 것인지, 어쩌자는 건지 더 알아보겠다고 벼르며 읽고 있는 것인지. 기대한 것에 비해 결말은 어수선하게 끝나고 말았는데 이게 또 속시원한 것인지 아쉬운 것인지도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 작가의 글에 마구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더 읽자, 그만 읽을까?


    2015년에 출간된 글이니 10년 전의 이야기다. 그동안 이 작가의 이름도 글도 몰랐던 것이 이제 와서 꽤 섭섭해지는데, 나는 무얼 읽었던가 한탄도 했다가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라고 여긴다. 소설보다 산문에, 그것도 먹는 이야기에 반해서 지금에 이른 과정, 내게 종종 있는 독서의 한 줄기다.


    한참 어른인 작가가 어린이나 청소년을 화자로 내세우는 이야기를 밝히는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대체로 당돌한 주인공의 말과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어떤 면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읽는 나는 그 옛날, 지나간 나의 어떤 점과 만났기에 이렇게 불편하고 불쾌해지는 것일까. 이 또한 상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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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플라스의 마녀 ㅣ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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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적 관점에서 개체는 절대적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의미 없는 한 점일까. 컵에 물이 반 든 것을 보고 어떻게 바라보는가와 비슷한 '기준 관점' 찾기가 아닐지. 나는 굳이 한쪽을 고르라면 51% 의미 없는 한 점 쪽이다. 비관적이라는 태도보다는 궁극의 질서에 비해 개체의 의미가 뒤떨어진다고 보는 쪽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살 생각은 없기도 하고.


    작가는 라플라스라는 과학자의 이론을 들며 모든 개체의 중요성에 대해 소설적 구상을 해 보인다. 재미있다. 이 작가를 향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제까지 읽은 그의 작품들에서 본 낯익은 인상을 되짚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과학적 근거에 충실하게 전개하는 배경들(실제로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지 아닌지는 내 수준에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고 소설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인간의 본성에 있을 수 있는 악의 요소, 인물의 창조, 범죄의 현장 등 흥미진진한 독서에 흠이 될 것은 보이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거꾸로 작업을 일부 해 보았다.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전제해 놓고, (이런 소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인물들을 구조도처럼 펼쳐 전개해 나갈 상상력을 도입해 보는 일. 시나리오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해 나간다고 듣기도 했지만. 사람을 나열해 놓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거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 구성력을 갖춘 사람이겠지.(우리의 막장 드라마와 비교해 보아도 순서는 거의 같을 것이고.)


    우주에서의 원자 하나, 혹은 우리네 인간 한 명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는 과정들은 어떤 식으로는 그의 생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개인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유전자조차 근원을 살펴보면 개인의 의지에 따른 행동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 나쁜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순간의 모든 것에서 선택하게 되는 그 결과로 이루어질 일이지 싶다. 남 탓할 게 없다는 뜻이리라.


    단 2초 후의 미래라도, 그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따위, 나는 부럽지 않구나. (y에서 옮김201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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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중세 문명 - 개정판 ㅣ 현대의 지성 65
    자크 르 고프 지음, 유희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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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나는 어떠어떠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건 책 이전에 내가 가진 무언가가 있어야 서로 비교하면서 맞다,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아직 그 경지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만(작가의 사관이 옳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충실했다. 그 일만도 아주 벅찼다.


    얼마나 오랫만에 해 보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왜 사는 것인지. 나는 이제부터 말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생각만으로도 '너는 왜 그렇게 사니?'라는 의문을 갖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삶은, 개인의 삶은,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알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누구라도 내가 될 수 없듯이 내 삶에 대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이라는 것을 얼마나 오래 잊고 있었던지.



    살아서 생명을 유지시키면서 존재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1000년 전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정반대쪽 땅에서 있었던 일들을 읽으면서, 과연 역사라는 게 무엇인가 근본적인 물음부터 되새겼다. 아울러 역사라는 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까지. 사람 사는 게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 어제가 오늘보다 못하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점점 회의적이 되어 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싸우고 죽여 왔는지. 그러면서 또 누군가는 살아남아 생명을 잇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죽는 게 무서워 신화와 전설을 만들고 마녀와 악마를 만들고, 끝없는 전쟁 전쟁 전쟁, 지금까지도... 오로지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의 현대인이 아무리 잘난 척 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던가.


    어렸을 때는 이런 내용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막무가내로 얼마나열심히 외웠는데. 왜 그렇게 싸우는지 이해도 다 하지 못한 채 참 열심히도 죽이고 죽으면서 전쟁을 하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사람 목숨이라는 게 그렇게 하찮은 게 아닌데도 너무도 쉽사리 처리하는 것 같아 도리어 야만스럽게 여기기도 했는데. 이제서야 생각하니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가장 간절히 가장 어렵게 선택한 삶을 위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게 죽음에 이르는 길일지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의 삶을 위하여.


    황제와 귀족과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펼쳐 나가는 흐름을 읽으면서 그 사이사이로 민중들의 삶과 죽음을 엿보았다. 내 능력으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짐작만으로도 충분했다. 스스로의 의지로 삶과 죽음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사회가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2000년 전 혹은 1000년 전보다 발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내 판단으로는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 이 시선을 획득한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이다.)      


    책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십자군 원정 이후부터 해외 여행을 보편적으로 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서양인들이 해외 여행의 경험으로 인해 우리보다 더 나은 경험을 축적하게 된 것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에게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이제 겨우 첫걸음인데.


    나는 지금 좀 많이 혼란스럽다. 유럽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무시해 왔던 유럽의 역사가, 갑자기 거대한 규모로 나를 향해 밀려온다. 이 책은 나를 한없이 주눅들게 했다.(y에서 옮김20100523)



    <껌정드레스님, 고마워요. 그대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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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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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길'을 좋아하는 게 맞나 보다. 이 시집에서 길에 관한 시 두 편 얻는다. '밤길'과 '새벽길'. 이 길마저 만나지 못했더라면 몹시 서운하고 허탈했으리라.

     

    떠나는 길,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 완성된 상태로 놓여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진행 중인 길.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떤 식으로든 가능성도 열려 있는 공간이어서 비록 밤이어도 좋고 아직은 새벽이어도 좋다. 길이 보이기만 한다면.

     

    실려 있는 시들은 대체로 소탈하다. 겨울 이미지가 잦아서 요즘 읽기 좋겠다는 느낌을 살풋 받기는 했지만 글자를 지나고 나면 특별히 남는 시어는 없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기가 수월했다, 마음은 무거웠어도.

     

    읽어도 읽어도 애타는 시를 만나고 싶다. (y에서 옮김20160222)  



    밤길을 걷는다

    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

    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

    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데에 가고 싶으니

    유실수들 풋열매 떨어뜨리는 소리

    이승의 끝자락을 적신다

    그러하다가

    새벽달이 뜨면 올올이

    풀리는 빛에 걸음은 걸려라

    걸려 넘어져라

    ......

    내가 밤길을 걸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 날이 와서 침침하게 앉아

    밤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는 벙어리가 되어야 하겠지

    그것이 다 우리들의 연애였으니 <밤길> 중에서 - P30

    욕망이 빠져나가버린 육체의 적막을

    사랑이 빠져나가버린 정신의 적막을

    이미 그 얼굴이 빠져나가버린 기다림의 적막을

    그리고 또 별들이 빠져나가버린 동편 하늘을

    어지간히 익힐 때 비로소

    새벽길은 거리를 지나 불빛을 지나

    들판에 닿아 쉬일 것이다

    산모퉁이에 닿아 쉴 것이다

    사랑이 그이의 몸속에서 쉬듯이 <새벽길> 중에서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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