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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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보고 먼저 한 일. 예전에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었다는 기억이 났고, 그 책의 후속편이 나왔다는 정보를 봤고, 이 책을 빌렸고, 읽었다. 예전 책의 줄거리를 기억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이 이 책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고 의미를 얻었다. 정작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더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렸지만.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노인으로 등장하는 올리브. 역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잭. 각각 자녀가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고, 부모이지만 더 이상 자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처지로 상실감을 느끼는 두 사람은 재혼을 한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겠는데, 나이와 환경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듯하다. 그래도 시간이 또 흘러 마침내 올리브마저 혼자 남는 상황이 되고 보니 나는 좀 섬뜩했다. 아, 이 시간이 나의 죽음 자체보다 더 두려운 순간일 수 있겠구나 하여.


소설은 교사였던 올리브와 이런저련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하나하나 밝혀서 이야기로 꾸밀 수도 있다는 듯이.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으니. 그래서 행운보다 불운이 더 크게 작용하고 행복보다 불행이 더 오래 느껴지는 막막한 현실을 서로 나누자고 말하는 듯이. 주인공도 늙어가고 있고 글을 읽는 당신도 늙어가고 있고 우리 모두 언젠가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한 사람씩 이승을 떠나게 될 것이니 미리 체험해 보자는 듯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병들고 죽고. 그래, 이 과정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사는 것이지. 살아 있는 동안 사는 것이지.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반대쪽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고, 이 전쟁으로 전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살아 남고, 누군가는 살아서 이 모든 것을 한탄하며 보고 있고.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참 헛헛하다.


내 나름으로 평화롭게 소설을 읽고 있는 이 처지가 엄청 고맙고 엄청 미안한 기분이다.  

무서운 것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 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 전율을 일으켰고, 그는 그것을 자신이 느낀 대로 정확히 표현할 단어조차-스스로-잘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대해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큰 맹점이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정말로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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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4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04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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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리라 기대했다. 믿었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과 같은 날이 계속된다면 시간에 지는 것이라고, 시간에게 이기고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제 생각해 보니 참으로 피곤하고 지치는 기대였던 것을. 


잔잔하게 잘 읽힌다. 애잔하다. 미국의 메인주가 어디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동부의 위쪽 끝부분, 캐나다 국경과 바다에 잇닿아 있는 지역. 미국의 시골도 우리네 시골과 비슷할까. 비슷한 정도의 꿈과 욕심을 갖고 비슷한 좌절을 겪으면서 살아갈까. 그럴 것 같다. 그런 동질감이 잘 느껴졌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야기로 비추어 추측해 본다. 아파트라면 약간 거리감이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고. 삶의 일상적인 영역,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아는 사람들의 삶. 기쁨이거나 고통이거나 희망이거나 절망이거나 하다못해 죽음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오손도손,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형편, 그로부터 받게 되는 위로와 안도감들. 삶은 슬퍼도 계속되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특별한 일은 그다지 없는 것이다.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마냥 예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또 마냥 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는 이런저런 세상. 죽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가도 다른 사람의 삶에 기운을 얻기도 하고, 의외의 도움이 되어 주는 자신의 인생을 깨닫고는 새로운 의욕을 느끼기도 하고, 살아 있다면 살만한 이유와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올리브 아줌마가 약점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어서 도리어 흐뭇할 정도였다. 


나이가 더 들어도 소설만큼은 계속 읽을 수 있을 조건들, 시력이라든가 소설책 구입이라든가, 이 또한 거창한 꿈이 되고 말 것인가. (y에서 옮김20150617)    

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언제나 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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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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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모르는 두 사람도 사이에 몇 명만 더 넣으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 사회 이론으로도 나와 있다. 그걸 소설로 꾸민 책이다. 재미있었다. 이렇게 연결을 시켜 놓았다니, 여러 번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단순하게 연결된 재미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도 다 다루고 있다. 어떤 인물은 피해자로, 어떤 인물은 가해자로, 나 같은 사람도 있고, 내 가족 같은 사람도 있고, 내 친구 같은 사람도 보이고, 사람 사는 곳은 다 이러하겠구나 싶은 그런 익숙한 배경으로.

 

그래도 작가가 설정한 인물 하나하나의 모습이 섬세하고 치밀하게 보인다. 그 인물의 직업이 어떠하든 그 직업에 대한 묘사가 대단하다. 이만큼 파악하려면 취재 그 이상의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인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갖지 않고서는 쉽게 발휘할 수 없을 능력으로 보였다. 그냥 알고 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닌 경지였다.

 

낯선 사람이 낯설기만 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보이는 저 모르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지, 또 내 삶과 인간관계 안에서 어느 지점에 닿은 사람일지 상상해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 더 부드러위지고 따뜻해질 수 있을까? 또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러나 아주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그건 소설에도 나온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착한 사람만, 맑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더라는 것. 무서운 사람도, 잔인한 사람도, 냉혹한 사람도, 사람 같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는 것.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남는다. 끝까지 풀지 못하는 그게 바로 인생이겠지만. (y에서 옮김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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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 뚝딱 홈메이드
다카기 나오코 지음, 손이경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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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 것을 내가 만들어 쓰는 일, 꽤 매력적이다. 나도 이런 걸 좋아하고 해 본 적도 있다. 성공해서 잘 쓴 적도 있고 만든 게 마음에 안 들어 금방 버리고 만 것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시도하지 않게 되었는지. 재료값도 얻지 못하는 결과물, 노력도 추억도 못되는 물건, 사서 쓰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계산이 되면서 더 이상 만드는 일에 성의를 갖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만화책을 보니, 그랬던 내 마음이 잔잔히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 다시 시도를 해 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지면서. 상품처럼 금방 잘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게 내 작품이겠는가. 삐뚤빼뚤, 울퉁불퉁, 터덜터덜, 그래도 내 손길이 구석구석 미친 작품이라면 그게 내 작품인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팔 것도 아니고, 약간은 자랑할 만도 하겠으나 자랑하지 않으면 또 어떠랴, 만드는 일은 대상의 크기가 얼마만 하든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 같은 모양새인 것을. 


없는 상태에서 있는 상태로 만들어 내는 일은 어쨌든 신비한 일이다. 글을 쓰는 것도 노래를 만드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리고 물건을 만드는 것도. 맞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같은 기쁨을 주겠구나. 이 작가는 뭐든지 하나하나에 참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든 먹는 일이든 만드는 일이든. 


칠판이랑, 앨범이랑, 보자기랑, 마그넷은 나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y에서 옮김201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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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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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지'처럼. 이메일이 나오기 전, 핸드폰이 나오기 전. 한 마음이 다른 마음에게 가 닿기까지의 시간을 지켜 냈던 시절. 이 소설은 읽는 이를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그래서 많이, 오래 슬펐다.

와조라는 눈이 먼 늙은 개와 집을 떠나 여행자로 살고 있는 화자. 화자는 만난 사람들에게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준다. 자신이 붙인 번호로 사람을 기억하는 능력이 아주 대단해 보였는데 그 또한 삶의 한 방식이었던 것. 우리는 누구나 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여행지에서 만난, 번호를 붙인 이들에게 화자는 편지를 쓴다. 답장을 받으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면서. 답장이 오나 안 오나, 누군가 나를 불러 주나 안 부르나. 와조와 함께 하는 여행은 편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지만 안 할 수가 없다. 화자에게는 삶이 딱 이만큼의 공간만 허락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서글프네. 떠돌아야 했던 배경이, 그렇게 배경을 설정해야 했던 작가의 안간힘이.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몸과 마음에 각각 입은 상처는 어느 선에서 나누어지는 것일까. 점이나 선이 아니라 아마도 입체적 공간이겠지. 그 어딘가에 다들 어느 정도는 물린 채 살고 있는 것이겠지.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일 텐데. 나의 오만과 자만과 비겁과 허영을 먼저 헤아릴 일이다. 다른 이를 나무라거나 함부로 동정하기 전에.

이 작가의 글, 이번에도 내게 큰 감동을 준다. 기쁘다, 계속 읽을 글을 주는 것이니.  (y에서 옮김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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