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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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좋았다고, 잘 읽었다고, 내 마음에 드는 소설집이었다고 적어 본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좋은 쪽으로의 떠올림. 애달프고 가슴 저리는 느낌의 읽는 맛.  


무엇보다 직접적인 표현 없이, 아프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한 마디도 없는데, 천천히 그리고 고스란히 전해 오는 아픔과 무서움 때문에 내가 아프고 무서웠다. 삶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처절하고 절실한데, 또 누군가는 너무 쉽게 보아 넘긴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타인의 생, 그래서 그만큼 더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 자신의 생.  


문장, 멋있다. 최근에 읽은 우리 소설 가운데 모처럼 문장 하나하나도 숨을 멈추면서 읽었다. 절망조차 이렇게 객관적으로 표현하다니. 끔찍한 상황임에도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고, 내 힘이 닿는다면 안아주고 싶은 인물과 소설들. 


행운은 어떤 사람들에게 오는 걸까. 어떤 사람이라야 행운을 맞이하는 걸까. 평소에 준비해 둔 자에게만 행운도 온다는데, 기회가 와도 붙잡지 못하는 사람은 못 잡는다는데, 아무리 애써 살아도 행운을 못 잡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모자라 행운조차 구하지 못하는 것일까. 


소설 배경에 한여름 장마가 몇 편 있었는데, 지금 읽으니 아주 스산하고 춥다. 몸서리가 살짝 쳐질 만큼. 추위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또 어느 차가운 곳에서 떨고 있을지.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또...... (y에서 옮김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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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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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보고 알았다. 작가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는 것을. 그랬다, 언젠가 한때 이 작가의 책을 줄줄이 찾아 읽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어떤 책은 마음에 들었고 어떤 책은 아쉬웠고 이 책은 퍽 마음에 들어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을 테지? 기대하면서 본 책이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을 읽고 난 후 읽고 있던 책들을 잠시 덮고 시칠리아로 들어섰다. 시칠리아라는 장소에 대한 나의 기억을 새삼 되짚어 본다. 실제로 가 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오래 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인상적으로 만났을 것이고 이후 콜린 메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로 제법 깊이 있게 알게 된 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사이 시칠리아 여행기를 보기도 했겠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나 이 작가의 책처럼. 그렇다면 제법 읽어 보았다는 것인데, 어째, 영~.


그러나, 신기했다(나의 장점이자 단점). 시칠리아라는 이름은 생생한데 시칠리아 안의 정보들은 깜깜하기만 했다. 역사도 지리도 정치도 문화도 영화 '대부'까지도. 이러니 "표범"을 읽는 동안에도 이중으로 헷갈렸지. 낯익은 곳인 듯한데 아주 낯선 땅 낯선 배경이어서. 내가 시칠리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딱 넉 자, '시칠리아'라는 이름뿐이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반응을 느꼈다. 읽었으나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책의 제목을 바꾸고 새로 편집했다는데 내게는 그저 새로운 책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나는 내가 읽은 책을 모조리 다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쁘지 않은 착각이다. 


"표범"에서 궁금하게 여겼던 대목은 가리발디 장군이 등장하는 시대의 이탈리아 역사였는데 다른 책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으로는 여행하는 기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작가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는 시칠리아에서의 여정도 읽는 나로서는 흥미로웠고 햇빛 뜨겁게 쏟아지는 땅의 분위기나 맛있게 먹었다는 시칠리아의 음식이나 숙소에서의 일화도 재미있게만 느껴졌다. 무엇을 더 바라랴. 나는 시칠리아에 갈 계획도 생각도 없는데. 


책 마지막 부분에 작가의 젊은 날 얼굴 사진이 나온다. 신선했다. 작가도 독자도 이렇게 세월을 건너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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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5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07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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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소설가인데 소설보다 산문이 더 좋다고 소감을 말하고 있으니. 


살아가다가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여유 시간이 두 달쯤 주어지고, 그 두 달 동안 지내고 싶은 곳에서 머물 수 있게 되는 그런 행운이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작가는 시칠리아를 택했다. 이탈리아 중에서도 시칠리아섬. 지중해 역사 이야기나 읽을 때 만나게 되는 땅, 무수한 역사적 사건을 품고 있는 섬. 먼 섬. 


유목민의 삶.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안정적인 것이 편할 수는 있겠지만 심심하다고 할 사람이 있을 테고, 심심함에 지쳐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떠돌 수밖에 없다. 역마살이라고 했던가. 일생이 역마살에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끔씩 역마살에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때는 좋아 보였으나 이제는 짐작만으로도 피곤할 것 같은 유목민의 떠돎. 내게는 그 유전자가 적었나 보다. 


시칠리아처럼 긴긴 역사를 배경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축복이겠다. 자연이면 자연, 문화유산이면 문화유산, 부러운 일이다.  


함께 실려 있는 사진, 보고 있으니 좀 설렌다. 섬을 향해 갖기 쉬운 막연한 동경, 불러일으켜 준다. 스쿠터를 타고 섬을 일주하든, 천천히 걸어서 일주하든, 동네 사람들과 낯을 익히면서 그들의 일상에 함께 젖어드는 짧은 삶.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새로 잊어도, 괜찮으리라 싶다. 두 달 정도라면. (y에서 옮김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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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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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을 때, 특히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나도 저렇게 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느냐 아니냐이다. 따라 해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은 내게 좋은 글, 따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내게 시시한 글, 하루키의 이 책은 내게 시시했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의 내면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얻는 기쁨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와 너무 다른 삶의 내용에 감탄하거나 놀라거나 존경하면서 얻는 기쁨 하나, 사람은 나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사는 것은 꽤 비슷해서 나나 너나 그다지 차이가 없구나 하는 반가운 동질감에서 오는 기쁨 하나. 이 책을 읽고 나는 두 기쁨 중 하나도 얻지 못했다. 도저히 따라해 볼 무엇이 없다고 여긴 데서 생긴 실망 탓이었을까. 


작가란 모름지기 이런 충전의 기회가 있어야 하리라. 아내와 몇 년 씩 살던 땅을 떠나 낯선 곳에 가서 살아보는 날. 나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도 좋을 사람이니, 아마도 작가의 넓고넓은 삶에 시기심을 가졌나 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 새로운 글도 쓸 수 있겠지, 그래서 작가들이 특히 여행을 많이 떠나는 것이겠지, 고여 있으면 썩는다면서 끝없이 새로운 물을 찾아 떠도는 방랑자처럼 그렇게 떠돌면서 글을 쓰는 것이겠지. 


너무 더운 여름날에 읽어서 그런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읽었다면 지금 느끼는 마음과는 다른 낭만을 구할 수 있었을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한 책에 이렇게 실망을 하고 나면, 나는 아직도 내 자신에게 의문을 갖게 된다. 제대로 읽지 않은 게 아니냐고. 책의 분량도 도톰하니 마음에 들었는데. (y에서 옮김200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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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대삼각형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1
    이주혜 지음 / 민음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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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이름이 아직 내 의식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다. 읽은 작품이 있기는 한데 딱히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먼저 제목에 유혹되었다. 작년 여름부터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하다 보니 이제야 내 차례가 되었던 것.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깔끔하고 분명하고 뚜렷하고. 소설의 내용도 이러하기를. 하물며 삼각형이라고 했으니, 삼각형이야말로 얼마나 깔끔한 도형이던가.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 누가 있는지 읽으면서 저절로 알게 된다. 세 명의 여자, 각각 사정이 있는 삶에 사정이 있는 인연들을 갖고 있다. 셋은 서로 친하지 않은 관계라고 하면서도 모여 삼각형을 이룬다. 적당하게 모르고 적당하게 아는 관계가 무난하게 굴러갈 수도 있다. 대충 짐작이 되는 거리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너무 지나치게 알려고 하다가 그 관계를 깨뜨리는 경우가 더러 생기곤 하니 다 모르는 게 나을지도. 


    적당히 친한 셋은 동행인 둘과 함께 다섯이 되어 여름철 무주로 여행을 떠난다. 가서 반딧불이를 보려고 했는데 반딧불이 대신 별을 본다. 별, 너도 별, 나도 별, 우리 모두 별, 그렇고 그런 별, 별들의 세계, 별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그러니 오해도 풀고 이해도 하고 사랑도 찾고 그러면 좋지 않겠니? 소설을 읽다가 내 긴장감이 풀어지고 만 지점이다. 이런 마무리를 위한 여행이었다고? 읽어 온 정성이 살짝 아쉬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기분으로 임하는 것일까? 어떤 이야기는 퍽 좋고 어떤 이야기는 딱 듣기 싫고.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이 소설은 중반 이후까지 계속 듣고 싶은 힘을 발휘하다가 그만 마지막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더 안 들어도 되겠다 싶은 지경에 이르고 말아서, 더 궁금해지지 않아서.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인상인데.


    그럼에도 이 작가의 이름을 놓지는 않으려고 한다.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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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3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03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