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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평점 :
찾아 보고 알았다. 작가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는 것을. 그랬다, 언젠가 한때 이 작가의 책을 줄줄이 찾아 읽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어떤 책은 마음에 들었고 어떤 책은 아쉬웠고 이 책은 퍽 마음에 들어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을 테지? 기대하면서 본 책이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을 읽고 난 후 읽고 있던 책들을 잠시 덮고 시칠리아로 들어섰다. 시칠리아라는 장소에 대한 나의 기억을 새삼 되짚어 본다. 실제로 가 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오래 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인상적으로 만났을 것이고 이후 콜린 메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로 제법 깊이 있게 알게 된 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사이 시칠리아 여행기를 보기도 했겠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나 이 작가의 책처럼. 그렇다면 제법 읽어 보았다는 것인데, 어째, 영~.
그러나, 신기했다(나의 장점이자 단점). 시칠리아라는 이름은 생생한데 시칠리아 안의 정보들은 깜깜하기만 했다. 역사도 지리도 정치도 문화도 영화 '대부'까지도. 이러니 "표범"을 읽는 동안에도 이중으로 헷갈렸지. 낯익은 곳인 듯한데 아주 낯선 땅 낯선 배경이어서. 내가 시칠리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딱 넉 자, '시칠리아'라는 이름뿐이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반응을 느꼈다. 읽었으나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책의 제목을 바꾸고 새로 편집했다는데 내게는 그저 새로운 책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나는 내가 읽은 책을 모조리 다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쁘지 않은 착각이다.
"표범"에서 궁금하게 여겼던 대목은 가리발디 장군이 등장하는 시대의 이탈리아 역사였는데 다른 책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으로는 여행하는 기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작가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는 시칠리아에서의 여정도 읽는 나로서는 흥미로웠고 햇빛 뜨겁게 쏟아지는 땅의 분위기나 맛있게 먹었다는 시칠리아의 음식이나 숙소에서의 일화도 재미있게만 느껴졌다. 무엇을 더 바라랴. 나는 시칠리아에 갈 계획도 생각도 없는데.
책 마지막 부분에 작가의 젊은 날 얼굴 사진이 나온다. 신선했다. 작가도 독자도 이렇게 세월을 건너가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