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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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신선했고 표지가 싱그러웠다. 책을 선물해 주겠다는 친구의 요청을 받고 제목을 알려줬다. 나는 정녕 제철의 행복이 궁금하던 차였고 마침 이 책 소개글을 만났던 것이다. 책은 재미있었고 선물해 준 친구가 더없이 고마웠다. 이 절기의 행복이 책 안에서 흘러나왔다.

들어는 봤으나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24절기를 새삼 살폈다. 글을 읽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먼저 내가 이 책을 읽는 시기에 해당되는 절기를 찾아 그 부분부터 읽었다. 소만이다. 이어 내가 태어난 날이 들어 있는 절기의 글로 들어갔다. 동지다. 다시 소만 다음에 올 망종으로 돌아왔다. 왔다갔다 이끌리는 절기를 따라다니면서 글을 읽었다. 괜찮았다. 이러라고 우리에게 4계절이 있었을 테니. 봄여름가을겨울을 원하는 대로 살아보라고 주어졌을 테니. 24절기가 고루 들어 있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아주 좋아졌다.

행복이 별 게 아니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누구는 행복을 누릴 줄 알아야만 얻는다고도 한다. 행복도 사랑만큼이나 개별적인 감정이다. 나의 행복과 너의 행복은 절대 같을 수 없으니.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여겼다. 행복도 부지런해야만 갖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작가가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지, 얼마나 부지런히 행복을 구해 내는 사람인지 아무 절기의 글이라도 한 편만 읽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다. 난 대체로 게으른 편인데 행복을 추구하고 누리는 쪽에서는 꽤나 부지런하다고 봐 줄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보고 확인한 바다. 작가처럼 24절기에 맞춰 행복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매일을 그와 비슷한 기분으로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싶다. 힘든 일, 어려운 일 사이에도 잠깐의 즐거움과 고마움과 행복들이 늘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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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의 악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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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Evil Under the Sun. 우리말로는 백주의 악마. 백주의 뜻은 환하게 밝은 낮. 한낮에 아름다운 여성이 살해를 당한다. 악마는 누구지?

푸아로 경감이 사건을 해결시키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배경은 바닷가의 멋진 휴양지다. 작가의 이런 배경 설정은 늘 나를 대리만족시킨다. 가 본 적 없는 멋진 곳에서 푸아로 경감을 따라다니며 사람들과 사건을 구경하는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니까.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바로 이 맛에 계속 읽고 있는 것도 있고.

살해당한 여성은 남편이 있는데도 젊은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악마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지? 살해 동기는 대체로 돈이나 질투심 때문인 경우가 많았는데 독자가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작가는 많은 설정을 해 둔다. 나는 번번이 속고 이번에도 속고 푸아로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 때까지 엉뚱한 추리만 한다. 안 해도 되는 의심까지 하면서.

벌 받아야 할 사람은 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또 어떻게 이루어져야 좋을까. 지극히 마땅한 마음인데도 새삼 의심이 든다. 누가 벌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일까. ‘하늘’이라는 말과 같은 순진함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는 마음은 확실한데, 모를 일이다.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을 해치는 일은 공정한가. 오늘은 이 문제가 나를 붙잡는다. (y에서 옮김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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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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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다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고 있는 바의 모습. 남들이 이렇다저렇다 하는 말과 같을 수도 있지만 같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의 어떤 영역. 이것이 스스로를 주눅들게 하거나 비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해 주는 흐뭇한 자각. 약간 자신감이 없을 때도 있어서 흔들리거나 애매한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나야~, 하는 든든한 지지.

만화는 늘 그래 왔듯이 잔잔하다. 이제 40세가 된 독신 여성 수짱과 45세가 된 독신 여성 사오코는 나이와 더불어 순간순간의 삶을 매만져 본다. 이대로 괜찮은가 어쩐가, 앞으로도 혼자서 괜찮을까 어쩔까. 이 나이는 많은 건가 적은 건가, 나이는 나를 어떻게 규정지으려고 하는가, 나는 내 나이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나... 등등.

신기한 건 이 두 사람과 전혀 다른 조건과 환경임에도 같은 성질의 질문을 내가 나에게 던지고 있다는 거다. 만화 속 인물들과 달리 내가 결혼을 했고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있고 직업을 가졌다가 은퇴를 했다는 건 이런 질문 앞에서 그다지 힘이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일 뿐, 누군가 못해 본 것을 했다고 내가 더 가진 게 아니었더라는 것이지.

그걸 이제야, 이 만화를 보면서 깨닫는 건가? 아니겠지, 알고 있었어도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러면서 뭔가 더 가져 보려고, 남들보다 더 위에 서 보겠다고 용을 써 왔던 것이겠지. 정작 갖고 싶은 그게 무엇인지, 그 위라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인생, 참, 답 없다. 답이 없어서, 제 각각의 답이 다 달라서 각자에게 가치로운 것을. 또 하나, 죽을 때까지도 그 답이라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서 우리는 매일 눈뜨며 일어나는 것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하는 거다. 나다운 것,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것. 시절이 수상할수록 더욱더. (y에서 옮김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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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거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한은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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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 추측하는 일, 이것도 참 큰 능력이겠다. 물론 엉터리로 추측해서야 매우 곤란하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마플 여사의 능력과 같은 정도라면 당당하게 발휘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기억력까지 겸비한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고.

내게는 관찰력도 기억력도 없는 터라 마플 여사 편의 이야기는 늘 신기하다고 여기면서 읽는다. 마플 여사의 능력이 곧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가의 능력인 셈일 테니 나로서는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런 성격을 가졌을 것 같고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될 것이며,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으로 예전에 본 누구가 떠오르고...... 이쯤 되면 노력으로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받은 능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범죄자를 좇는 수사관들이 가졌을 법한 능력들로. 목격자가 진술한 표정에 대한 묘사만으로 추리를 해내는 마플 여사.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말로 전해 듣기만 해도, 알 사람은 알아낸다는 것이리라.

어떤 결핍, 어떤 욕망은 사람을 끔찍할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다른 내용을 품고 있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그것 때문에 당사자를 살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끝내 살 수 없게 만들기도 하면서. 그러니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란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쉽지가 않고, 그저 다스렸다가 어긋났다가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겠지. 참으로 불완전한 생이로다.

어제 시외버스 터미널에 있는 카페에서 차 시간을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마플 여사 흉내를 내고 싶었는데 혼자 웃고 말았다. 상상도 안 되고 추측도 안 되니, 쩝. 꼭 마스크를 썼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목격자로서의 진술도 전혀 못할 수준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그냥 지금처럼 소설이나 재미있게 읽어야겠다. (y에서 옮김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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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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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분명히 가볍고 단순해 보이는데, 읽고 나면 가벼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책 제목과 연관된 의미가 적어도 하나 이상 울림을 갖고 남는다. 이 책을 보면서 얻은 울림은 바로 이거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도 내 생을 진행 상태로 만들고 있는가.

결혼한 주부와 미혼의 여자. 둘이 각기 따로 갖고 있는 바람. 얻은 쪽은 얻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고 있고, 얻지 못한 쪽은 얻은 쪽을 부러워하고 있고. 남자들의 경우에는 모르겠다. 나도 작가와 같은 여자이고, 일본 작가이지만 삶을 관통하는 흐름은 우리나 그들이나 다를 바도 없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 부분은 만족스럽고 다른 한 부분은 이루지 못해 섭섭하고. 그러니 보편적 소망으로 남을 텐데.

작가가 고민하는 것이든 책 속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든 혹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자들이 다들 고민하는 것이든 공감은 간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니. 고민하면서도 순간의 삶에 집중해서 성심을 다할 것이고 그 결과에 만족할 것이며, 그러다가도 얻지 못한 꿈에 아쉬워할 것이고 '언젠가는' 하면서 가능성을 남겨 두겠지.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겠지, 그게 인생일 것이고. 그래서 나 대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일 테고.

이렇게 계속 한 작가의 작품을 보아도 여전히 괜찮으니 나로서는 다행이면서 좋다. 이게 지겨워진다면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테니 말이다. (y에서 옮김201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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